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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들로드에선 만난 국수 6 축제의 음식 공동체의 음식
슬픈 날에는 먹지 않는다. 잔칫상에 빠지지 않고, 가족이 먼 길을 떠날 때 안녕을 기원하면서 먹는 음식이며, 여럿이 모여 함께 만들고 나누어 먹는 음식이기도 하다. 이 음식은 바로 ‘국수’. 최근 방영 중인 KBS 다큐멘터리 <누들로드>는 평범한 국수 한 그릇에 담긴 동서양의 문명사를 흥미진진하게 파헤쳐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그 여정에서 만난 진귀한 이야기를 담아 여섯 가지 국수를 맛있게 재현해보았다. 먼저 <누들로드>를 기획하고 만든 이욱정 PD와 진행자인 셰프 켄 홈이 취재 뒷이야기를 들려준다.



만남 홈 Ken Hom 우선 한국의 <행복이 가득한 집> 독자들에게 인사드린다. <누들로드>를 통해 한국의 시청자들을 간접적으로 만나봤지만 잡지 지면을 통해 독자들과 만나는 것은 처음이다.
이욱정 켄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005년 즈음 런던의 한 서점에서였다. 해외 출장을 가면 서점에 들러 음식 문화나 요리 분야의 책을 살펴보곤 했는데, BBC에서 나온 아시아 요리책 중 가장 눈에 자주 띄는 저자가 켄이었다. 그가 20년 전부터 BBC 히트 요리 시리즈의 진행자였다는 것을 알고 언젠가 그와 함께 작업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2년이 지나 막상 그에게 <누들로드> 기획안을 보내면서도 솔직히 세계적인 셰프인 그가 오케이할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마침내 첫 촬영을 위해 그가 베이징 공항 출입구에 나타났을 때 속으로 환호했다!
켄 홈 2007년 초 이욱정 PD에게 기획안을 이메일로 처음 받아보았을 때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한국의 프로듀서가 출연 제의를 했다는 데 놀라기도 했지만, 국수의 역사를 가지고 다큐를 만들겠다는 제안에 호기심이 생겼다. <누들로드> 기획안은 10쪽 정도였는데 실크로드에서 중국과 일본, 이탈리아의 음식 문화를 횡단하는 스토리가 매우 흥미로웠다. 아시아 방송사와는 같이 작업한 적이 없었지만 선뜻 출연을 수락한 것도 그런 점 때문이었다. 평생 동안 누들은 나의 요리 레퍼토리에서 중요한 테마였으므로 그것의 역사적 기원과 문화적 궤적을 추적해보는 작업은 도전할 만한 것이었고, 촬영 내내 즐거웠다. 이 PD와 KBS 스태프들이 좀처럼 휴식 시간을 주지 않은 점을 빼고는.(웃음)
잊을 수 없는 맛 이욱정 <누들로드>를 촬영하면서 여러 나라의 국수 요리를 탐험해보았는데 부탄에서 먹었던 푸타(메밀국수)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우리에게 국수는 간편하고 쉽게 먹을 수 있는 패스트푸드이지만 히말라야 오지 사람들에게는 반나절 이상의 노력 끝에 겨우 한 그릇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이라는 점이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면을 먹고 싶은 인류의 천년 욕망이랄까, 촬영팀에게 푸타를 대접하려고 낑낑대며 나무 국수 틀을 누르시던 붐탕 할머니의 얼굴이 아직도 많이 생각난다.
켄 홈 중국의 한 농가에서 촬영할 때 마을 아낙이 직접 밀가루를 반죽해 따뜻한 고기 국물에 국수를 말아주었다. 마당에 둘러앉아 국수를 먹었는데, 물론 화려한 맛은 없었지만 중국어를 못하는 나를 가족처럼 환대해준 사람들의 마음이 느껴져 오래 기억이 남는다. 나는 애리조나에서 태어나 자란 중국계 미국인이지만 나의 선친은 광둥 성에서 미국으로 온 이민 1세대다. 젊은 시절 아버지와 함께 중국의 친척을 방문했던 추억이 되살아나 즐거웠다.


<누들로드> 의 진행자인 셰프 켄 홈(앞)과 기획자 이욱정 PD(뒤).

에피소드 이욱정 켄과 함께 작업하면서 감탄한 점 가운데 하나는 그의 왕성한 식욕이다.(웃음) 새로운 음식을 맛볼 때 재료와 조리법에 대해 코멘트를 잊지 않고 궁금한 것은 셰프에게 직접 물어보는 모습도 참 보기 좋았다.
켄 홈 만리장성 촬영 장면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중국을 여러 번 방문했지만 만리장성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중국의 한족이 북방 유목민의 침략을 막기 위해 이 거대한 장벽을 쌓았는데, 누들이라는 중국 음식 문화의 대표 요리가 실은 만리장성 넘어 유목민의 주방에서 왔다는 사실을 생각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마지막 테이크 때 이욱정 PD가 성벽 끝에 걸터앉으라고 주문했을 때만 빼고는.(웃음) 나중에 편집한 그림을 보니 중국 풍경화의 한 장면 같아 스턴트를 한 보람은 있었다.
국수 예찬 이욱정 이런 표현이 어떨지 모르겠으나 국수는 섹슈얼하고 관능적인 음식이다. 미끈미끈하고 기다란 모양의 국수가 입안으로 빨려 들어올 때 느껴지는 식감과 후루룩 후루룩 내는 소리는 다른 어떤 식재료에서도 경험하기 어려운 독특한 것이다. 국수가 3천 년 가까이 인류의 식탁에 오를 수 있었고 오늘날 동서양으로 확산될 수 있었던 숨은 이유는 바로 이런 기묘한 디자인에서 나오는 강렬한 유혹 때문인 것 같다.
켄 홈 맞다. 한편 요리사 관점에서 보면 국수 요리의 최대 장점은 무한대의 창의성이다. 몇 가지 소스와 국물을 다양한 재료와 모양이 다른 국수와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개성 있는 국수 요리가 가능해진다. 국수 자체는 강렬한 맛이 없다고 할 수 있지만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어떤 레시피와도 결합이 가능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국수는 한마디로, 주방이라는 문명의 실험실에서 탄생한 인류 최대의 창조물 중 하나라 부르고 싶다.
이욱정 국수를 단순히 먹을거리로만 치부하기에는 그 힘이 놀랍도록 크다. 가장 현대적인 국수인 라면은 우주로까지 진출했으니까. 이제 국수는 세계인을 하나로 이어주며 맛으로 인간을 위로하는 음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1 납작한 면에 뜨거운 닭고기 국물을 부은 탕면은 문헌상 인류 최초의 국수 ‘수인병’을 재현한 것.
2 국수 제조법이 기록된 가장 오래된 문헌인 <제민요술>에 의하면 어떤 도구도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잡아 늘여 국수를 만들었다고 한다. ‘수인병’은 물에서 잡아 늘인 밀가루 음식이라는 뜻.



3 실크로드의 중앙아시아 유목민의 전통 국수 ‘라그만’ 반죽.
4 양고기, 부추, 파프리카, 토마토, 고추로 만든 매콤한 소스에 비벼 먹는 ‘라그만’.



문헌상 인류 최초의 국수, 수인병 중국의 서쪽 끝,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는 불모의 사막이 끝없이 펼쳐져 있고 그 한가운데 화염산이 자리 잡고 있다. 1991년 도로공사 중 발견한 2천5백 년 전 고대인들의 무덤에서 거친 밀반죽을 양손으로 비벼 손가락 길이 정도로 짧고 굵게 만든 음식이 출토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인류 최초의 국수다. 이렇게 동서 문명의 교차로에서 탄생한 국수는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으로 전해지고, 중국 중원에 이르러 면의 문화가 꽃피게 된다. 그 옛날 사람들은 국수를 어떻게 만들었을까? 국수 제조법이 기록된 가장 오래된 문헌은 1천4백여 년 전에 쓴 <제민요술>(식품 조리 및 가공에 관한 내용을 담은 중국의 농가 생활 백과사전). 이 문헌을 보면 어떤 도구도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잡아 늘여 국수를 만들어 먹었다. 밀가루를 곱게 쳐 고기 국물로 반죽하고, 손으로 밀어 원형을 만든 다음 양손으로 당겨 나무젓가락 굵기가 될 때까지 늘인다. 이것을 30cm 길이로 잘라 물에 3~4분 정도 담가 숙성시킨(이렇게 하면 점성과 탄성이 늘어난다) 뒤, 끓는 물 위에서 수증기를 쐬며 눌러 늘여 부추처럼 납작하고 얇게 편다. 물에서 잡아 늘인 밀가루 음식이라는 뜻으로 고대 중국인들은 이것을 ‘수인병’이라 불렀다. 삶은 국수 위에 뜨겁게 끓인 맑은 닭고기 국물을 부은 탕면 형태로 즐겼다.
동서양을 이어주던 실크로드의 국수, 라그만 이란 지역에서 동쪽으로 유라시아를 건너 중앙아시아 중국 신장의 대초원으로 이주해온 타지크인. 이란 남부 지역은 9천 년 전 인류가 최초로 밀 경작을 시작한 메소포타미아 지역과 인접해 있어 이들은 밀알을 가지고 동쪽으로 건너와 신장에 도달했다. 평소에는 빵을 구워 분식을 하는 타지크인에게 특별한 날의 별식이 있었으니, 바로 국수다. 이들은 아무런 도구 없이 양손만 이용해 라그만이라는 국수를 만들어 먹었다. 이 지역의 분식 문화는 실크로드의 고대 도시인 자오허 고성에서 중국 문명과 조우하게 된다. 오늘날 신장 화염산 인근 시장에 가면 지금도 할머니가 라그만이라는 국수를 만든다. 밀가루 반죽을 적당히 잘라 큰 도마 위에 놓고 양손으로 밀어 길게 만든 뒤 커다란 그릇에 똬리를 지어 숙성시킨다. 숙성 과정에서 점성과 탄성이 강해진 밀가루 반죽을 실타래처럼 양팔에 걸고 늘여 가느다랗게 만든다. 소금을 약간 넣은 물에 바로 국수를 삶아낸 뒤 양고기와 부추, 고추, 피망, 토마토를 볶아 고명으로 얹어 먹는다. 지금에야 시장에서 누구라도 맛볼 수 있는 서민 음식이지만, 예전에는 귀한 손님을 대접하는 별식이었다. 라그만은 신장의 위구르족만의 것이 아니다. 타지크,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 등 실크로드의 중앙아시아 민족들은 오래전부터 라그만의 전통을 공유하고 있다. 무척 쫄깃쫄깃한 면과 짧은 시간에 고열로 볶아 향이 살아 있는 신선한 재료들과의 조화로운 배합이 라그만의 특징.

5 실크로드를 통해 밀과 분식을 전한 타지크족. 중국 신장에 사는 이란계 타지크족은 장구한 세월이 흐른 오늘날에도 새해 첫날이면 집 안 가득 하얀 밀가루를 뿌리며 복을 기원한다.

수인병
재료(4인분)
반죽 강력분 2컵, 박력분 2컵, 닭고기 육수 1컵 정도, 곤소금 1작은술 닭고기 육수 6컵, 닭가슴살(또는 닭다리) 1쪽, 쪽파 6~8대, 소금・후춧가루 약간씩

만들기
1
강력분과 박력분을 섞어 체에 친 뒤 곤소금으로 간한 육수로 대충 반죽한다. 비닐 주머니에 반죽을 담아 1시간 정도 두었다가 비닐 주머니째 주물러 귓불 정도로 말랑하게 반죽한다. 다시 4시간에서 하루 정도 숙성시킨다.
2 반죽을 잘라 도마 위에 놓고 손에 기름을 바른 뒤 양손으로 굴려 스틱 모양을 만든다. 점점 길게 늘이면서 밀어 나무젓가락 굵기로 만든다.
3 30cm 길이로 잘라 물에 3~4분가량 담가놓는다. 끓는 물 위에서 김을 쐬면서 손으로 납작하게 누르며 늘인다.
4 끓는 물에 국수를 넣었다가 둥둥 떠오르면 건진다.
5 닭고기 육수에 약하게 소금 간을 한 다음 닭고기를 삶아 건져 가늘게 찢은 뒤 소금과 후춧가루로 무친다.
6 쪽파는 다듬어 4cm 길이로 썬다.
7 그릇에 국수를 담고 끓는 육수(소금 간 하고 후춧가루 친)를 부어 국수를 따뜻하게 데운 뒤 국물을 따라낸다. 국수에 닭고기와 쪽파를 얹고 팔팔 끓는 육수를 붓는다.

라그만
재료(4인분)
반죽 강력분 2컵, 박력분 2컵, 닭고기 육수 1컵 정도, 곤소금 1작은술 양고기 200g, 중국부추 100g, 파프리카・토마토 2개씩, 올리브 오일 2큰술, 다진 마늘 1큰술, 다진 청양고추 1개 분량, 소금・후춧가루 약간씩

만들기
1 강력분과 박력분을 섞어 체에 친 뒤 곤소금으로 간한 육수로 대충 반죽한다. 비닐 팩에 반죽을 담아 1시간 정도 두었다가 비닐째 주물러 귓불 정도로 말랑하게 반죽한 뒤 4시간에서 하루 정도 숙성시킨다.
2 양고기는 굵게 다지고 중국부추는 씻어서 줄기와 잎으로 나눠 4cm 길이로 썬다. 파프리카와 토마토는 가로세로 2cm 크기로 썬다.
3 반죽을 적당히 떼어 도마 위에 놓고 손에 기름을 바른 뒤 양손으로 굴려 스틱 모양을 만든다. 점점 길게 늘이면서 밀어 나무젓가락 굵기로 만든다.
4 끓는 물에 소금을 약간 넣고 국수를 삶아 건진다. 국수 삶은 국물은 약간 떠놓는다.
5 팬에 올리브 오일을 두르고 마늘과 고추를 볶다가 양고기를 넣고 주걱으로 잘게 부수면서 볶는다. 양고기가 익으면 옆으로 밀어놓고 파프리카와 부추 줄기를 볶다가 반쯤 익으면 토마토와 부추 잎을 넣고 볶은 뒤 소금과 후춧가루를 넣는다. 뻑뻑하면 국수 삶은 물을 약간 넣는다.
6 삶은 국수를 그릇에 담고 ⑤를 얹어 버무려 먹는다.


1, 4 타이의 수안 파카드 궁전 벽화에 그려진 쌀국수 만드는 방법. 타이의 시골 마을에서는 지금도 벽화와 똑같은 방식으로 쌀국수를 만든다.
2 생크림처럼 부드러운 쌀반죽으로 만든 쌀국수는 매끄러운 질감으로 전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수안 파카드 벽화 속 부처님께 바치는 쌀국수 덥고 비가 많이 내리는 타이는 쌀의 천국. 17세기에 그린 수안 파카드 궁전의 벽화에는 쌀국수 만드는 법이 상세히 묘사돼 있다. 인간은 늘 가장 귀한 음식을 신에게 바쳐왔다. 타이인에게 국수는 신에게 바치는 귀한 음식이었다. 타이의 시골 마을에서는 지금도 벽화에 묘사된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쌀국수를 만든다. 불린 쌀을 빻아 둥글게 뭉친 반죽을 끓는 물에 넣어 표면만 살짝 익힌 뒤, 식기 전에 절구에 빻아 익은 표면과 날것인 속이 골고루 섞이도록 한다. 걸쭉한 쌀반죽을 다시 고운 망에 걸러 알갱이를 걸러내면 생크림처럼 질고 부드러운 상태가 된다. 이것을 구멍이 여러 개 뚫린 보자기나 양철통에 담아 끓는 물 속에 넣어 빙글빙글 돌리면 쌀반죽이 눌리면서 뜨거운 물 속으로 가느다랗게 빠져 나와 국수가 만들어진다. 이것이 타이의 대표적인 전통 쌀국수 카놈친이다. 그 과정은 중국 남부 윈난의 국수와 놀랄 만치 흡사하다. 중국에서 꽃피운 국수 문화가 타이로 전파되고 이후 베트남과 라오스 등 동남아시아 일대로 널리 퍼져나갔다.
삶은 국수에 국물을 부어 먹기도 하고 건더기가 많은 소스에 비벼 먹기도 한다. 걸쭉한 소스는 숙주나물, 얇게 저민 돼지고기나 닭고기, 매운 고추, 라임으로 새콤하고 매콤하게 맛을 낸다. 밀가루 국수처럼 쫄깃한 맛은 없지만 거의 씹히지 않을 만큼 부드럽고 매끄러운 식감이 오히려 쌀국수만의 매력. 최근 시중에 다양한 모양의 쌀국수가 나와 인기를 끌고 있다. 요리하기도 쉽고 부드러운 질감으로 소화에도 부담이 적어 전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히말라야 부탄의 메밀국수, 푸타 바람이 닿는 곳마다 소원의 깃발이 내걸린 곳, 부탄은 히말라야 동부 산맥의 남쪽 기슭에 자리 잡은 작은 불교 왕국이다. 해발고도 2000m가 넘는 부탄의 고산지대, 이 지역의 주요 작물은 척박한 자연환경에서 버틸 수 있는 메밀이다. 메밀 이삭을 수십 번 두드리고, 잇새로 기이한 바람 소리를 내며 키질을 해 알곡을 얻는다. 마을 아낙들은 함께 모여 미네랄과 비타민이 풍부하고 단백질 함량도 높은 메밀로 국수를 만든다. 이것이 부탄 사람들의 메밀국수 푸타다. 메밀은 끈기가 없어 국수로 만들 때는 특별한 도구가 필요하다. 국수 이름과 같은 ‘푸타’라는 국수 틀의 오목하게 파인 구멍에 메밀 반죽을 눌러 넣고 지렛대로 압력을 가해 누르면 아래쪽의 작은 구멍을 통해 단단하게 압축된 국수가 빠져나온다. 우리나라의 막국수나 냉면 역시 이런 압출기를 이용해 면을 뽑는다. 푸타는 손이 많이 가기 때문에 일상적으로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라, 주로 축제 때 여럿이 모여 함께 만들고 나누어 먹는 음식이다. 누군가는 반죽을 하고, 다른 누군가는 고추를 볶고, 또 다른 누군가는 물을 끓여 국수를 삶는다. 식물성 기름에 큰 산파를 잘게 썰어 넣고 고춧가루를 넣어 볶아 만든 매운 소스에 비벼 먹는 메밀국수는 이들이 가장 즐겨 먹는 푸타 요리인 람푸타. 맵기로 소문난 부탄 고추가 들어가 입안이 얼얼할 정도로 매운 한 그릇의 푸타는 온 가족의 식사를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타이식 쌀국수
재료(4인분)
쌀국수 1mm 굵기 300~350g, 다진 닭고기・숙주 200g씩, 마늘 2쪽, 매운 고추 2개, 다진 홍고추 3개 분량, 육수 1/2컵, 피시소스 3큰술, 라임즙 1개 분량, 소금・후춧가루 약간씩, 올리브 오일(또는 식용유)・녹말물(녹말・물 1큰술씩) 적당량, 고수 약간

만들기
1
쌀국수는 찬물에 담가 10분 이상 불린다.
2 마늘과 매운 고추는 굵게 찧는다.
3 팬에 올리브 오일을 두르고 마늘과 매운 고추, 홍고추를 볶아 향이 우러나면 닭고기를 넣어 볶다가 숙주를 넣고 재빨리 볶는다. 육수, 피시소스, 라임즙, 후춧가루를 넣고 소금으로 간한 다음 녹말물을 넣어 약간 걸쭉하게 만든다.
4 쌀국수를 뜨거운 물에 담가 부드럽게 만들어 물기를 뺀 뒤 그릇에 담고 ③의 소스와 고수를 얹는다.

부탄의 푸타
재료(4인분) 메밀 생면 600g, 중국부추 200g, 매운 고추 3개 정도, 올리브 오일 3큰술, 소금・후춧가루 약간씩

만들기
1 메밀 생면은 끓는 물에 삶아서 찬물에 비비면서 헹궈 전분기를 씻어낸다.
2 부추는 줄기와 잎으로 나눠 4cm 길이로 썬다.
3 고추는 잘게 다진다.
4 팬을 달궈 올리브 오일을 두르고 고추를 볶다가 부추를 넣고 볶은 뒤, 후춧가루와 소금으로 간한다.
5 그릇에 국수를 담고 ④를 얹는다.


3 타이의 전통 쌀국수 ‘카놈친’. 닭고기와 숙주, 라임, 피시소스로 맛을 낸 소스를 얹어 비벼 먹는다.


5 찰기 없는 메밀을 빻고 반죽해 압출기로 뽑은 히말라야 부탄의 메밀 국수 ‘푸타’. 여럿이 함께 모여 만들어 먹는 축제의 음식이다.
6 산파 대신 부추를 넣고 매운 고추로 맛을 낸 소스에 비벼 먹는 부탄의 푸타 요리 ‘람푸타’를 재현했다.



일본 승려들의 해방의 음식, 우동 일본 후쿠이 현 산중에 있는 영평사. 이곳의 하루는 수행자들의 아침 청소로 시작된다. 송나라 때 일본으로 전해진 선종의 생활 규율은 엄하기로 유명한데 그 모두가 수행의 일부다. 청소 시간만큼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야 하는 식사 시간. 영평사는 선종의 예법에 따라 음식을 만들고 먹는 예법을 중히 여기는 절이다. 육식은 철저히 금하며 식사 중 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 선종의 식사 예법. 한데 예외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국수다. 1년에 단 몇 차례, 고된 수행이 끝난 후에 먹을 수 있는 매우 특별한 음식인 것이다. 국수를 먹을 때만은 후루룩 후루룩 소리 내서 먹는 것이 허락된다. 이들에게 국수 공양은 고된 수행의 보상이자 해방의 시간이며, 아주 짧은 승려들의 축제다.
교토의 천년 고찰 동복사에서는 해마다 10월이면 특별한 제사를 준비한다. 아무 간도 하지 않은 삶은 국수를 올리는 제사, 소면 공양이다. 네모난 작은 그릇에 소면을 한입 분량으로 나누어 담는다. 소면 공양을 받는 이는 이 절을 창건한 쇼이치 국사. 일본에 국수가 전해진 것은 13세기 송나라에 유학 간 쇼이치 국사에 의해서였다. 밀을 제분하여 면을 만들어 먹는 조리법은 이처럼 사찰의 주방을 통해 일본에 처음 알려졌고, 참깨를 절구에 넣고 갈고 으깨는 방법이나 무를 갈아 즙을 내고 양념으로 쓰는 법 등 중국 불교의 식재료와 조리법도 함께 전해졌다. 당시 국수는 신문물의 하나로 승려와 상류층만 즐길 수 있는 별식으로 귀한 대접을 받았는데, 그 전통이 소면 공양을 통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사찰의 국수는 군더더기 없고 맛과 상차림이 단순한 것이 특징. 미리 삶아놓은 면을 뜨거운 물에 한 번 담갔다가 꺼낸다. 다시마와 표고버섯 우린 물에 무 간 것과 참깨 간 것, 생강 등을 섞어 장국을 만들고 여기에 국수를 찍어 먹는다. 가다랑어포를 듬뿍 넣어 감칠맛을 돋운 일반 우동을 이렇게 장국에 찍어 먹는 방식으로 응용하면 더욱 깔끔한 우동 맛을 즐길 수 있다.

1 그림 속 두 여인을 통해 시칠리아에서 ‘이트리야’라는 건조 국수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건조 파스타의 원조인 이트리야는 시칠리아를 점령한 이슬람인이 그 만드는 법을 전했다.


2 군더더기 없고 깔끔한 일본 사찰의 우동. 선종에서 고된 수행이 끝난 후에 먹을 수 있는 특별한 음식이다. 그때만큼은 후루룩 소리 내서 먹는 것이 허락된다.
3 일본의 소면 공장에서 국수 말리는 모습. 일본에 국수가 전파된 것은 중국에 유학간 승려에 의해서였다.



4 이탈리아 사람에게 파스타는 일상에서도, 축제에서도 빠지지 않는 음식이다.
5 안초비, 가지, 레몬, 잣, 피스타치오 등 이슬람 식재료로 만든 시칠리안 스파게티.


아랍풍의 시칠리안 스파게티 이탈리아는 유럽에서 유일하게 고유한 국수 문화가 있는 나라. 국수가 유럽 대륙 전체로 퍼져나간 것은 2백 년도 되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 이탈리아인들은 매일 파스타를 먹게 되었을까? 파스타는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 섬 트라비아 마을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한다. 이 마을에서는 가늘고 긴 모양의 건조 국수 ‘이트리야’를 대량 생산해 세계 각국으로 수출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시칠리아에 국수를 전한 사람들은 바로 이슬람인. 지금의 북아프리카, 시칠리아, 스페인, 안달루시아에 이르는 거대한 이슬람 제국을 이루었던 아드라비드 왕조의 군사들이다. 9세기 초 시칠리아를 정복한 후 2백 년간 통치한 이슬람 군대는 매우 앞선 문명을 가져왔고, 지배 이후에도 문화적 영향이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이슬람 문화의 흔적이 가장 잘 남아 있는 곳은 시칠리아 시장. 정어리 잡는 법과 소금에 절여 먹는 법 같은 새로운 음식 문화와 잣, 피스타치오, 레몬, 가지 등 이슬람 식재료가 시칠리아 요리에 널리 쓰였다. 특히 10세기 무렵 이슬람의 카라반 상인들은 이미 국수를 알고 있었고, 고대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건조한 음식 문화가 매우 발달했으니 이들은 분명 시칠리아에 오래 저장할 수 있는 건조 국수를 전해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건조 파스타의 시작이었을 테다. 지금도 시칠리아에서는 삶은 홍합, 후추를 넣은 육수, 올리브 오일, 양파, 매운 고추, 아몬드 가루를 듬뿍 넣어 끓인 소스에 삶은 파스타를 버무린 뒤 잘게 썬 프레시 파슬리를 뿌린 파스타를 즐겨 먹는다.

우동
재료(4인분) 생우동 4인분, 무・통깨・생강・쪽파 약간씩
국물 다시마 15cm 길이 1장, 말린 표고버섯 15g, 말린 매운 고추 1개, 통후추 1작은술, 청주・맛술 1컵씩, 물 2컵, 가다랑어포 50g, 진간장 2/3컵, 곤소금 1큰술

만들기
1 다시마는 젖은 면보자기로 닦는다.
2 냄비에 다시마, 표고버섯 비벼 씻은 것, 고추, 통후추, 청주, 맛술, 물을 부어 재료가 뜨지 않게 눌러 6시간 정도 불린다.
3 ②의 냄비를 불에 올린 뒤 가장자리에 작은 기포가 생기기 시작하면 다시마는 건져내고 5분 정도 팔팔 끓인다.
4 불을 끈 뒤 가다랑어포를 넣고 그대로 가라앉힌다.
5 체에 젖은 면보자기를 깔고 ④를 부어 밭친다. 건더기에는 끓는 물 1컵을 부어 헹군다.
6 ⑤의 국물을 냄비에 붓고 맛술, 진간장, 곤소금을 넣어 끓인다. 오래 보관할 수 있으며, 물에 희석해서 사용한다.
7 무는 강판에 갈아 체에 밭쳐 자연스레 무즙이 빠지게 하고, 생강도 강판에 간다. 깨는 분말기에 갈고, 쪽파는 송송 썬다.
8 우동을 끓는 물에 삶아 찬물에 헹궈 그릇에 담고 뜨거운 물을 잠길 정도로 붓는다.
9 ⑥에 ⑦의 재료를 넣고 우동을 건져서 찍어 먹는다.

시칠리안 스파게티
재료(4인분)
스파게티 300g, 그린 홍합 20개, 가지 2개, 양파 100g, 매운 고추 2개, 안초비 20g, 견과류(아몬드, 호두, 피스타치오 등) 1컵, 다진 파슬리 2큰술, 올리브 오일 4~6큰술, 레몬즙・후춧가루・소금 적당량씩

만들기
1
스파게티는 소금을 넣고 삶아 건지고, 삶은 국물을 1컵 정도 떠놓는다.
2 홍합은 흐르는 찬물에 담가 해동한 뒤 살만 바른다. 가지는 1cm 두께로 동그랗게 썰고, 양파는 굵게 다진다.
3 고추는 씨를 빼내고 잘게 다지고, 안초비는 가늘게 찢는다.
4 팬을 달궈 올리브 오일을 두르고 양파와 고추를 볶다가 안초비를 넣고 볶는다. 여기에 가지를 넣고 볶다가 홍합과 스파게티를 넣고 면 삶은 물을 약간 부어 부드럽게 볶는다.
5 ④에 견과류를 다져 넣고 레몬즙과 후춧가루, 소금을 뿌린 뒤 파슬리를 섞는다.

* 프로그램을 완성하기도 전에 세계 10개국에 판매되어 화제가 된 KBS의 다큐멘터리 <누들로드>. 중국 내륙 오지를 비롯한 아시아, 아프리카, 중동, 유럽 등 10개국을 돌며 2년에 걸친 취재, 세계적 권위자들의 자문, 최첨단 컴퓨터 그래픽, 가수 윤상이 작곡한 배경음악 등 순수 우리 기술로 완성했다. 3월 28일(토)과 29일(일) 오후 8시 KBS 1TV에서 방송되는 ‘6편: 세상의 모든 국수’ ‘7편: 누들로드 제작 노트’에서는 본 칼럼에서 재현한 국수의 조리 과정을 영상으로 만날 수 있다.

구선숙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9년 4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