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실 명인 홍쌍리
농사는 작품으로 지어야 한다
‘시건방진 부산 가스나’였던 홍쌍리 씨는 전라남도 광양으로 멋모르고 시집을 와, 시아버지의 산에 돈 되는 밤나무를 베고 돈 안 되는 매화나무를 심었다. 시아버지는 내내 그것을 싫어하셨지만, 홍쌍리 씨는 매화를 딸 삼고 매실을 아들 삼고 싶어서 매화나무를 심고 또 심었다. 그가 꿈꿨던 대로 이제 청매실농원은 매년 3월이면 흐드러지는 매화로 천국 같은 절경을 이루고, 그 열매는 2천2백 개의 항아리 속에서 매실차, 매실주, 매실장아찌, 매실된장으로 발효된다. 그리고 ‘매실’ 하면 ‘홍쌍리’라는 이름을 빼고 이야기할 수 없을 만큼 그는 매실 명인이 되었다. “콩밭을 매다가 옆에 떨어진 매실 열매에 손을 비비니 시커먼 때가 말끔히 없어지대요.
그 길로 반했지. 매실은 속에서도 씻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우리 몸속을 해독하고 피를 맑게 해요. 특히 현대인의 잘못된 식습관으로 쌓인 기름진 독에 효과가 있지요.” 그 자신도 두 번의 자궁암과 류머티스 관절염을 극복하는 데 자연식과 매실은 큰 도움이 되었다.
매실에 대한 그의 믿음과 정성은 확고하다. 매실 농축액을 따뜻한 물에 섞어 마시면 속을 살균하고, 매실장아찌나 매실된장은 같이 먹는 음식의 독을 풀어준다. 식후에 먹는 매실차는 식중독을 막아주고 소화가 잘되게 한다. 매실은 특히 레몬보다 구연산이 5~7배나 많은데, 이 때문에 탁월한 항균 효과가 있다고. “농사는 작품으로 짓는 겁니다.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사람은 이를 깨달아야 합니다. 자연 그대로의 먹을거리를 소신을 가지고 길러야지요. 우리의 오장육부가 곧 흙인 겁니다.” 글 손영선 사진 박건주 기자
유기농 현미 명인 김성주
재래식 방법으로 농사짓는 교수님
‘농사짓는 교수님’. 그에게 붙은 별명이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가르치는 김성주 씨는 8년 전 대대로 내려오던 농토를 물려받아 본인이 직접 경작하기 시작했다. 농부들이 농약과 화학비료로 땅을 마구 다루는 것을 그대로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쓰면 쓸수록 더 쓰게 되는 농약에 위기감을 느끼고 땅을 살리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사람에게도, 땅에게도, 경제적으로도 이익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 것이다. 경기도 여주에서 농사를 시작한 지 8년째, 마을 이름을 따서 만든 ‘토골미’라는 브랜드 네임으로 그의 고집 센 유기농법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모종의 이랑 사이를 넓혀 오리가 지나다니게 하여 면적당 수확량은 적지만 농약 없이 벼를 키울 수 있게 되었다. 단, 올해는 조류독감 때문에 오리를 쓰지 않고 우렁이만 이용했다.
벼를 수확할 때는 기계를 쓰지 않고 힘들더라도 탈곡까지 재래식 방법으로 한다. 논에 대나무로 대를 세우고 추수한 벼를 단으로 묶어 거꾸로 2~3일을 말린다. 그래야 벼의 영양이 쌀로 모인다고. 이렇게 귀하게 수확한 벼는 15도의 저온 저장고에 보관해두고 농장에 있는 정미소에서 매주 목요일 주문량만큼만 도정한다. 토골미의 쌀이 모두 2kg 이하 단위인 것도 항상 신선하게 먹도록 하기 위함이다. 도정 후에도 쌀알의 모양에 이상이 있는 것을 선별하는데 수확한 양의 10%나 걸러지지만 그는 그것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유기농산물이 품질도 최고라는 것을 소비자에게 알리는 데 그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알곡 하나하나 정성을 들인 토골미는 기른 사람의 철학이 담겨 있는 밥상의 기본이 될 충분한 자격이 있다. 글 이유진 사진 박건주 기자
(왼쪽) 장아찌 명인 박광희
자연산 채소의 생명력을 담은 발효식품
음식을 맛있게 만들기 위한 최우선 조건은 질 좋은 최고의 재료를 사용하는 것.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에는 봄부터 늦가을까지 먹을 수 있는 생명력 가득한 나물이 지천이다. 박광희 씨는 식물이 생장하는 데 최적의 조건을 갖춘 강원도 평창 고랭지에서 자란 자연산 약초를 채취하고 자연산이 없을 때는 친환경적으로 재배한 재료를 써서 김치와 장아찌를 담근다. 제철에 나는 당귀, 오가피, 산초, 개두릅, 지구자, 나물취, 곰취, 곤드레, 산마늘, 마늘종, 버섯, 양파, 오이 등이 장아찌의 주재료. 그리고 질 좋은 젓갈을 한지에 밭여 거른 뒤 맛있게 장물을 달여 깨끗이 씻은 채소에 붓는다. 짧게는 3개월에서 길게는 5년까지 ‘시간’이라는 양념에 발효되고 나면 약초 특유의 쓴맛도 향기롭게 변해 맛깔스러운 밥도둑으로 변신한다. 제대로 된 발효식품은 오래 묵을수록 맛이 좋다. 맛의 비결은 ‘자연이 키우고, 자연에서 숙성시키는 것’. 2002년 MBC 김치 명인으로 선정되기도 한 박광희 씨는 한국 음식 홍보차 해외에 두루 다니면서 최근 절임류의 가능성을 재발견했다.
“외국인들이 김치보다 더 관심을 보이는 게 장아찌예요. 우리의 장아찌는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발효식품이지만 간이 너무 짠 것이 문제지요”라며 새콤달콤한 피클과 짭조름한 장아찌 중간쯤 되는 맛의 접점을 찾으면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백문이 불여일견, 따뜻한 밥 한 그릇에 뱃속까지 개운해지는 장아찌 한 줄기를 곁들여보시라. 향긋한 당귀와 지구자, 산마늘절임이 강추 메뉴다.
글 구선숙 기자 사진 양재준 기자
(오른쪽) 부각명인 오희숙
세계인의 간식이 된 종부의 손맛
전라남도 곡성군 오곡면, 섬진강 상류를 끼고 있는 이곳은 청정 지역으로 선포되어 화학비료, 퇴비,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농사를 짓는다. 부각 회사 ‘생자연’을 운영하는 오희숙 씨는 이 맑고 깨끗한 환경에서 자란 순수 우리 농산물로 정성을 다해 부각을 만들고 있다. 오희숙 씨가 부각과 인연을 맺은 것은 시어머니 덕분이다. 결혼 후 파평 윤씨 16대 종부인 시어머니의 손맛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었고 그중 제철에 난 채소나 해산물에 찹쌀풀을 발라 틈틈이 말려두었다가 귀한 손님이 오면 튀겨냈던 부각이 가장 눈에 띄었다. 그가 부각 사업에 뛰어든 지 20여 년, 오희숙 씨의 전통 부각은 국내 판매는 물론 ‘한스타일 스낵Hanstyle Snack’이라는 이름을 달고 전 세계로 수출하고 있다. “우리는 보통 밥반찬으로 많이 먹는데 외국인들은 부각을 ‘건강 스낵’으로 인식하더군요. 우리 전통 식품을 해외에 알리는 데 앞장선다는 자부심으로 힘이 드는 것도 모른 채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그의 노력으로 우리의 전통 식품 부각이 전 세계 식탁 위에 오를 날을 기대해본다. 글 이화선 기자 사진 민희기 기자
(왼쪽) 두유 명인 정유섭
자연에 순응해 느릿느릿 만드는 우리콩 두유
경기도 안성에 있는 희망나무공동체. 이곳의 대표 일꾼 정요섭 씨는 5년째 직접 기른 콩으로 두유를 만든다. 두유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8년 전. 고향인 대구에서 먹던 콩국의 맛을 못 잊어 콩으로 하는 사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수입콩의 문제점도 알게 되고, 가공 과정에서의 오류도 발견하게 되었다. 절대로 첨가물을 넣지 않겠다 다짐하고 개발한 정요섭 씨의 두유는 일단 저온살균을 한다. 기업체에서 만든 것은 유기농 콩을 썼다고 해도 고온살균 과정에서 콩의 좋은 성분이 모두 날아가므로 그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저온살균으로 콩의 영양을 살린다. 콩이 끓으면서 생기는 거품도 자연적으로 없어지기를 기다리지 절대 다른 것을 넣어 거품을 없애지 않는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하루 생산량이 많지 않아도 자연에 순응하여 만든다는 고집이다. 콩 농사를 시작할 때는 유전자 변형이 된 종자가 아닌 토종 콩을 찾고 찾아서 영주 부석사에서 내려온다는 부석태를 선택했다. 이곳 두유의 유통기한은 겨우 한 달. 예전과 달리 요즘은 두유가 상하면 고객이 오히려 고맙다고 인사를 한단다. 그래서 그는 오늘도 느릿느릿 두유를 만든다. 글 이유진 사진 박건주 기자
(오른쪽) 토판 천일염 명인 김막동
열 배의 노동력, 20% 생산량 그러나 소금 맛은 최고
새벽 네 시, 세광염전 김막동 씨의 하루는 누구보다 일찍 시작된다. 프로야구시즌 야간 경기인 양 불을 밝힌 염전엔 김막동 씨와 그의 아내 그리고 몇몇 인부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무더위 탓에 해가 중천에 떠오르기 전까지만 일을 할 수 있기에 잰 놀림으로 염전에 물을 대고, 롤러를 굴려 결정지를 다지고, 고무래로 소금을 모으고, 물길을 터주거나 막아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전라남도 해남의 세광염전이 특별한 이유는 토판염을 생산한다는 점이다. 토판염은 자연 그대로의 개펄 바닥에서 생산하는 소금으로 불과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모든 소금을 토판에서 생산했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 토판염을 생산하는 염전은 몇 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염전이 하얗고 깨끗한 소금을 생산하기 위해 염전 바닥에 타일이나 PVC 장판 등을 깔았기 때문이다. “저 역시 토판염 외에 일반 염도 생산합니다. 토판염에 비하면 일반 염작업은 매우 쉽죠. 해수를 끌어다 말린 뒤에 소금이 생기면 고무래로 긁어 모으기만 하면 되니까요. 그런데 토판염은 일반 염에 비해 열 배 이상의 노동력을 필요로 합니다. 또 비가 오면 개펄이 굳을 때까지 며칠을 쉬었다가 다시 결정지에 롤러를 굴려 평평하게 한 뒤라야 작업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에 생산량도 무척 적습니다.” 토판염이 일반 염보다 점수를 높이 사는 이유는 미네랄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자연 그대로의 것보다 좋은 것이 있을까요? 우리나라 토판염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랑스 게랑드 지방의 소금에 비해도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우리나라 토판염의 우수성이 널리 알려질 것입니다.” 일반 염보다 작업이 고되고 생산량은 20%밖에 안 되지만 김막동 씨가 토판염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다. 글 이화선 기자 사진 민희기 기자
한우 명인 구교철, 구진모
전국에서 가장 맛있는 한우
작년 10월 제10회 전국한우능력평가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경상북도 성주 가나안 농장의 구진모·구교철 씨 부자. 전국 1백31개 농가 중 단연 육질 좋기로 손꼽힐 만큼 소 잘 키우는 비결을 묻자, 구진모 씨는 “소가 사는 동안 편하게 해주는 것밖에 없다”고 말한다. 단순한 대답이지만 이것이 진리. 드라마 <식객>에서 주인공 성찬은 누렁소 ‘꽃순이’를 고속도로가 아닌 흙길로, 느리지만 편안하게 싣고 와 육질 대결에서 승리하지 않았던가. 최고 등급인 1++, 그리고 1+, 1, 2등급순으로 나뉘는 한우 육질을 결정하는 요소는 무엇일까? “사육 환경과 유전자죠. 부모 소에게서 얼마나 좋은 유전자를 물려받았느냐와, 사육 환경이 얼마나 좋으냐가 한우의 맛을 좌우합니다.” 16년째 한우를 키워온 이들 부자는, 아버지 구진모 씨의 숙련된 안목과 노하우로 우수한 종자를 고르고, 아들 구교철 씨의 합리적인 판단으로 축사를 관리하고 농장을 운영한다. 수질 검사 등의 환경 검사를 완료했고, 축사에 톱밥을 정기적으로 깔아 소의 퇴비가 잘 건조되도록 한다고. 과연 털에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한우들이 살고 있는 축사에는 ‘소똥’ 냄새가 거의 나지 않는다. 수입 소가 밀려오는 요즘, 이들은 꼭 한우임을 확인하고 먹으라는 당부를 잊지 않는다. “외국에서 소가 들어와도 6개월만 우리나라에서 살면 국내산 소가 됩니다. ‘국내산’이 아니라 ‘한우’ 표기를 확인하고 드십시오.” 안남미와 우리 쌀 맛이 다르듯 수입 소와 한우의 맛 또한 차이가 나는 것은 물론이다. 글 손영선 사진 박건주 기자
(왼쪽) 삼경차 명인 오금자
뽕잎·감잎·은행잎의 삼합
온화한 굴곡의 산자락 아래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옛날 모습 그대로 빨래터가 남아 있는 전라남도 화순의 작은 마을에 예쁜 돌담 집이 있다. 차 덖는 향기가 담장을 넘어 들로 산으로 퍼지는 이 집은 30여 년간 삼경차를 만들어온 오금자 씨의 작업터다. 삼경차는 오래전부터 민간에서 전해 내려온 차로 뽕나무, 감나무, 은행나무에서 채취한 잎으로 만든다. 때문에 오금자 씨는 매년 늦은 봄부터 여름까지 깊은 산속에 들어가 산에서 자생으로 자란 뽕잎, 감잎, 은행 잎을 채취한다. ‘야생’이 아니라 ‘자생’이라 말하는 이유는 일부러 산에 심었거나 사람이 드나드는 길에서 자라는 나무가 아닌, 산속 깊은 곳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자란 나무에서만 잎을 채취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채취한 잎은 모두 화순의 맑은 물로 씻어 말린 후 직접 손으로 썰고, 황토방에서 발효시키고, 가마솥에서 수차례 손으로 덖으며 차 잎 하나하나에 열기가 닿도록 정성을 들인다. 삼경차를 마시면서 혈액 순환으로 고생했던 지병이 나아졌다는 오금자 씨. 건강을 돌봐주는 고마운 차를 만들면서 그가 지키는 원칙은 ‘자연스러움’이다. 잎을 채취할 때도 나무가 다치지 않게 하는 것이 우선이고, 반드시 사람 손으로 썰고 덖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의 정성스러운 마음결이 삼경차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글 이화선 기자 사진 민희기 기자
(오른쪽) 복숭아 명인 정규철
막내딸보다 더 애지중지 키운다
물 맑고 산세 좋은 충청북도 옥천에서 정구철 씨는 힘들고 고된 유기농법으로 복숭아를 키운다. 서울서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귀향해 어느덧 15년째. 화학비료나 농약 대신 토착 미생물을 이용해 발효시킨 퇴비를 흙에 넣어주고 쑥이나 미나리, 칡 순 등에서 추출한 녹즙, 당귀*계피*감초를 막걸리에 불려 흑설탕으로 발효시킨 한방 영양제, 마늘 살균제, 생선 아미노산, 현미식초, 천연 칼슘, 목초액 등의 천연 재료를 총동원한다. 어디 그뿐인가, 벌레들과 숨 막히는 전쟁을 벌여야 하는 까닭에 열 손가락에 노란 ‘벌레물’까지 들어가며 자식 키우듯 애지중지 복숭아를 키운다. 그런데도 벌레가 갉아 먹고 새가 쪼아 먹은 것을 제하고 나면 남는 게 겨우 ‘반타작’이다. 그는 화학비료와 농약의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고 자연농법을 실천하는 고집 센 농부, 유기농으로 과일을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지 해를 거듭할수록 뼈저리게 느끼면서도 통통하게 여문 복숭아를 보면 그저 고마운 소박한 농부, 껍질째 먹는 안전한 복숭아를 생산하는 정직한 농부, 자기가 키운 복숭아가 전국에서 가장 맛있다는 자신감 넘치는 농부, 고객에게 보내는 복숭아 상자에 손으로 쓴 감사 편지를 동봉할 줄 아는 부드러운 농부, 그래서 믿음이 갈 수밖에 없는 농부다. 그런 농부가 키웠으니, 당연히 ‘정도령’ 복숭아의 육질은 부드럽고 맛은 꿀처럼 달다. 글 구선숙 기자 사진 양재준 기자
(왼쪽) 유정란 명인 윤재우
힘차게 날아오르는 토종닭의 알 맛을 아는가
시중에 유통되는 달걀 대부분이 무정란이고, 닭들은 비좁은 축사에서 오직 알을 낳기 위해 멍청하게 갇혀 산다는 사실에 우리는 충격을 받았었다. 경상북도 상주시 삼봉산 양지농원의 윤재우 씨는 일반 닭보다 훨씬 작은 달걀을 낳는 토종닭을 키운다. 1년에 60개 정도의 알만 낳는다. 하지만 쌀겨와 풀, 황토를 섞어 만든 사료를 먹고, 삼봉산 중턱에서 자유롭게 자란 토종닭의 달걀은 100% 건강한 먹을거리임을 그는 확신한다. “우리 달걀 드시면 일반 달걀은 비려서 못 먹겠다고 하세요. 노른자가 얼마나 크고 싱싱한데요. 생명이 담긴 유정란이기 때문에 실온에 한 달을 두어도 상하지 않아요.” 최근에는 큰 달걀을 원하는 소비자를 위해 육계와의 개량종을 개발하기도 했다. 그가 키우는 토종닭도 최고의 건강식품. 성장 호르몬, 항생제 먹여가며 60일간 키운 ‘병아리닭’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6개월 이상 운동을 많이 하고 자란 탓에 육질은 훨씬 쫄깃하다.
“배추 겉잎, 감 껍질을 얻어 와 먹였더니 농약 때문에 닭이 죽더라고요. 그것 때문에 저희 주말농장에서 은행잎 진액을 개발했고 계속 자연 농약을 연구 중입니다.” 글 손영선 사진 박건주 기자
(오른쪽) 어란 명인 김광자
대를 이어온 60년 손맛
“지문이 닳아 없어지도록 쓰다듬으며 정성을 들여야지. 아침저녁 잔잔한 햇빛만 쬐어야 돼. 비가 올지 모르니 하루 종일 쳐다보고 있어야 하고, 볕에 내놓았다가 거둬들이기를 한 달 남짓 반복해. 그렇게 만든 어란이야. 썰어줄 테니 맛 좀 봐.” 할머니가 손수 종잇장처럼 얇게 저며준 어란을 혀끝에 놓고 살살 녹이니 알이 톡톡 터지며 향기가 입 안 가득 퍼졌다. 어란은 바다에서 잡은 민어, 숭어, 청어 등의 알을 건조시켜 만드는데, 어란 중에서도 4월과 5월에 잡은 숭어 알로 만든 ‘영암 어란’을 첫손에 꼽는다. 19세에 광주에서 여학교를 졸업하고 영암으로 시집와 시어머니에게 어란 제조 비법을 배운 김광자 할머니의 나이는 올해로 여든셋. 집안 대대로 내려온 전통 방법으로 어란을 만든 지 60년이 넘었다. 시어머니 때부터 헤아리면 1백 년은 족히 넘는다는 김광자 할머니네 ‘어란의 집’은 영암군청 옆에 자리 잡고 있는데, 매년 4월부터 6월까지 이 일대에서 가장 분주하고 바쁜 집으로 소문이 나 있다. 알이 밴 숭어를 고르는 특별한 안목과 상처가 나지 않도록 알을 채취하는 기술, 천일염에 직접 담근 조선간장을 섞어 만드는 간수의 염도, 간수에 담갔던 알을 꺼내 아침저녁 서너 번씩 참기름을 바르며 바람과 빛이 넉넉한 곳에서 말리는 정성…. 이 모든 것이 김광자 할머니의 어란을 대한민국 대표 어란으로 인정하는 이유다. 글 이화선 기자 사진 민희기 기자
(왼쪽) 이강주 명인 조정형
민속주의 맥을 잇다
우리나라의 술에는 토속적인 전통주와 문화제에서 지정한 민속주가 있다. 민속주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만든 술로 오랫동안 그 방법이 이어져 내려온 술이다. 민속주 연구가인 조정형 씨는 농림부에서 지정한 전통식품 명인으로 전라도 전주에서 이강주의 맥을 이어오고 있다. 대학에서 양조학을 전공하고 집안에서 내려오던 방식으로 이강주를 만든 그는 지금까지도 연구를 거듭하며 민속주의 맥을 찾고 있는 장인이다. 주조사로 일하다가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1964년부터 전국을 돌며 민속주 연구하기를 시작했다. 이강주는 전통 방식대로 만든 증류식 소주에 과실로 향을 더한 리큐어에 속한다. 고두밥과 누룩을 섞어 술을 만들고 증류식으로 소주를 내린다. 소주고리에 불을 지펴서 알코올이 먼저 증기가 되어 올라가는 것을 항아리 위쪽의 공간에서 식혀 추출한다. 여기에 계피, 생강, 배, 울금, 꿀을 넣어 저온에서 오랫동안 발효해 향을 내면 이강주가 된다. 배의 시원하고 달콤한 맛과 소화를 도와주는 기능, 생강의 알싸한 향, 계피의 시원한 향이 더해진다. 이강주의 특징은 마셔도 다른 술에 비해 머리가 아프지 않고 숙취가 없다는 것. 그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울금이다.
울금은 한방에서 신경안정제로 쓰였던 한약재로 식중독을 억제하는 기능도 있다. 청와대 공식 만찬에 쓰이고 세계로도 수출되는 명주인 이강주를 만드는 조정형 씨는 명인 중의 명인으로 꼽힌다.
글 이유진 사진 박건주 기자
(오른쪽) 젓갈 명인 김정배
3대째 이어온 토굴 새우젓
온양온천으로 신혼여행 왔던 부부가 20여 년이 지나서 며느리를 데리고 다시 찾아오는 곳. 온천이 아니라 바로 그 앞에 있는 젓갈집 이야기다. 같은 자리에서 벌써 3대에 걸쳐 53년째 이어온 젓갈집 ‘굴다리식품’을 운영하는 김정배 씨는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젓갈을 만들어왔다는 젓갈의 장인. 전라남도 목포에서 사 온 싱싱한 새우를 심심한 바닷물에 씻어 건져 일일이 선별 작업을 하고, 우리나라의 갯벌에서 만든 천일염을 넣어 간을 맞춘다. 새우는 잡히는 시기나 잡힌 바닷물의 위치에 따라 염도가 조금씩 다르다는데, 김정배 씨는 이제 새우에 손만 넣어봐도 짠맛을 가늠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새우젓의 달인답게 그의 소금 간은 정확하다. 예전과 달라진 점은 예전에는 소금 반, 새우 반이라고 할 정도로 짜게 만들었던 것을 요즘은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염도를 많이 낮췄다는 것이다. 간을 한 새우젓은 그의 아버지가 지은 40년 된 토굴에서 숙성을 거친다.
예전에 토굴은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며 새우젓을 숙성시킬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으나 요즘은 새우젓의 염도를 낮추었기 때문에 최신 냉방 시설을 설치해 새우젓의 맛을 유지하고 있다. 뽀얗고 통통한 육질의 이곳 새우젓은 기분 좋은 짠맛이 난다. 새우가 제 몸을 삭혀 만든 알싸한 감칠맛이 입맛을 당기고, 천일염의 구수함이 끝 맛을 달게 한다. 해양수산부가 선정한 수산전통식품 젓갈류 부문 1호에 꼽힐 정도로 품질을 인정받은 굴다리식품의 새우젓. 조미료가 필요 없는 천연의 재료는 우리 전통 식품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글 이유진 사진 박건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