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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에 투영도니 옛 추억 이야기 그리운 우리 음식
가끔은 어린시절어머니가해주던콩가루밥이먹고싶을때가있다. 학교앞문방구에서팔던불량식품이 먹고싶을때도있다. 어릴 적추억에 잠길 때그음식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나의어린시절을대표하는 하나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어떤 음식을 통해떠오르는수많은기억들은어린 시절의 나를찾아가는 지름길로, 우리모두에게잊고살았던소중한추억을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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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에 저장되었던 기억속의맛과 냄새와 추억들을 풀어헤친다. 머릿속 기억보다 혀로 기억하는 맛이 더선명하고 오래간다는 사실을 아는가. 미식의 시대, 현대인의 다양한 기호와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해 빠르고 간편한 외국 음식들이 우리네 식탁을 점령 할태세지만, 그어떤 최고급 음식도 어머니가 차려준 따뜻한 밥한끼에비할바가못된다.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어느순간불현듯, 꼭, 반드시, 어린 시절 어머니가 만들어주었던 음식을 먹고 싶은 때가 온다. 복잡다단하게 발전하는 음식 문화 속에서 우리가어릴적먹던, 단순하면서도 몸을 보하기 위해 존재하던 음식들이 점점 잊혀져가는 요즘 세태에 적잖은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모두저마다의 추억이 있듯이 잃어버린 음식의 맛을 찾아보면서 내어린 시절의 아련한 기억과 향수를 더듬어본다. 용강동 90번지, 내어릴 적미각이 시작된 그곳. 맨드라미와 채송화가 피어 예뻤던 마당넓은 집에서 나는마냥 행복했다. 새우젓 도가, 큰우물, 작은우물, 전차종점, 경보극장, 콩나물 움집, 배추꼬랭이, 장마, 술통 아이스께끼, 재건대 넝마주이…. 동네를 돌아다니다 보면언제나늘제자리에 있을것같은그런 풍경들이 어린나를 아늑하게 품어주곤 했었는데, 그기억들이 이제는 오래된 흑백 사진처럼 잔뜩구겨지다못해점점희미해지고있다. 잠시생각에잠기면그아련한기억들이혀를타고 눈에서 머문다.

들녘에 둘러앉아 정을 나누며 먹던 들밥
복실이가 먼저 앞장선다. 미루나무를 지나 들녘에서 일하는 아버지와 삼촌에게 배달하는 들밥. 엄마손에 이끌려 걸음을 재촉하다 보면땀이 밴고무신이 자꾸 벗겨지곤 했다. 뒷목을 타고 흐르는 땀을 주체할 수없었던 그길. 밤새 한지를 오려붙여만든지광주리에는 복을 받자고 복??자도 붙이고 한껏 치장도 했다. 지광주리에 넣을 밥그릇에는 뒷산 할머니 산소만큼이나 높게밥을쌓아 담고, 짠내를 머금은 오이지에 매운 고추를 띄운다. 그래도 혹허기를 못면할까 봐가마솥 한구석에는 옆집 잔칫날 얻어온 떡이데 워지고, 뒤꼍에서 캐낸 감자까지 한자리를 차지한다. 마른 멸치를 유난히 좋아하는 아버지를 위해 막된장이며 고추장을 사기 종지에 덜고, 찬기에는 찬장에서 잠자던 반찬들을 담는다. 매운맛을 좋아하는 삼촌을 위해 챙기던 짠지는 맨드라미보다 더붉은 고춧가루로 보기만 해도 머리칼이 쭈뼛 설정도였다. 외할머니가 시집올 때주신 모시 옷이 아까워 조각조각 상보를 만든 어머니는 밥이 식을세라 어린 내걸음을 재촉하고. 걷기도 힘든데 양은 주전자에 담긴 막걸리는 넘실거리고 얼마나 무거웠던지. 논두렁에 반쯤이나 흘리고 온막걸리를 마신 할미꽃은 기분만큼이나 축늘어져버린 것같았다. 들밥은 농사일로 출출하고 허기진 배를채워주는 날아다니는 도시락이다. 서로의 안녕을 확인하는 들판식사. 가난했던 그시절 들밥은 사람 사이의 정을 느끼게 하는 음식이었다. 막내며 복실이까지도 따라오던 들밥배달 풍경은 지금 생각해도 너무 정겹다. 아버지의 까칠한 수염이 여린내볼을 스치던기억들도들녘을달리는오토바이소리에잊혀져간다. 요즘은자장면까지배달된다니예전의풍경과맛이그리울따름이다.
 
 
photo01 풍류가 녹아 있는 옛 도시락 사대부 찬합
해장죽 소리 들리는 정자. 몸종들의 손에는 술병과 자수놓인 보자기가 들려있다. 세상사의 시름을 잠시잊기위해들과 산으로 나간우리선조들의먹을거리문화에는멋과기품이흐르는도시락도있었다. 현시대를살아가는우리들은본적도들은적도 없지만 분명지체높은 사대부도 나들이 길에 도시락을 챙겼으니, 알고보면 참재미있는 사실이다. 집밖을나선 길이라 음식의 가짓수는 훨씬 간소했지만 그정갈한 담음새나 음식에서 느껴지는 기품은 역시지체높은 양반가의 그것이다. 지금 재현해보면 옛사대부의 도시락은 이러했으리라. 고슬고슬 잘지은밥위에 은행과 잣, 대추 등으로 모양 낸고명이 수놓듯 놓이고, 곱게부친여러가지전과육적이 보기에도 입맛 당기게 담긴다. 다른 한쪽에는 출출할 때간편하게 먹을수있는떡과정과, 견과류도 가지런히 자리하는데, 계절마다 그에 어울리는 술이 곁들여질 때면 간단한 술안주로도 훌륭하다. 찬합에 담긴 음식은 젓가락을 이용해서 한번에먹기쉽게 만들어졌고, 잘게썰어씹기쉽고 소화가 잘되도록 조리했다. 찬은 순하고 담백하게 조리되어 목이 마르지 않으며, 먹는이가수명 장수하라고 찬합에 거북이 형태의 장식을 사용했다. 야외에서 벌이는 가진 자의 향연이랄까. 맛있고 멋있는 찬합을 앞에두고 자연을 벗삼아 풍류를 즐기던 그옛날 사대부의 나들이 길. 햄버거와 생선초밥이 난무하는 요즘, 풍류를 즐기는 자리에서도먹을거리의중요성을놓치지않았던우리선조들의멋이새삼부러워진다.
 
photo01 내 어릴 적 추억의 창고, 양은 도시락
찌그러진 양은 도시락을 기억하는 이가 많을 것이다. 아침마다 도시락 뚜껑을 열고 반찬을 확인하던 어릴적기억들. 밥위에달걀이라도한장올려진날이면그날점심시간은 더욱 기다려지게 마련이다. 혹가방 속에김치 국물이 흐를까 김치 반찬을 넣던 어머니에게투정 부리던 아침. 식은 도시락을 데우려고 난로 위에벽돌처럼 쌓아 올리고, 맨아래 깔린 내 도시락 타는냄새에 온통 신경이 쓰여 애태우던 기억. 반찬이 모자라내도시락에 숟가락을 꽂던 얄미운 친구들. 하굣길가방 속 도시락이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버스 안에서누가 알아챌까 민망해 고개 숙이고 돌아오던 길. 볼품없는 도시락이지만 그에 얽힌 에피소드와 기억은 천금을 주어도 바꿀수없는귀중한추억으로남았다.

입맛 돋우던 어머니의 별미 콩가루밥유독반찬 투정이 심했던 어린시절, 나의 특별한 별미는콩가루밥이었다. 인절미를 만들고 난후콩가루 고물을찬합에보관해두었다가내가 밥투정할 때마다 꺼내어 만들어주시던 특별한 음식. 고소한 콩가루와 식은밥을 섞어 주먹밥 형태로 만들거나 그저 밥공기에밥과 콩가루를 넣고 비벼 먹기만 해도 짜증이 눈녹듯사라지곤 했다. 그옛날 어머니의 마음으로 새롭게 만들어본 콩가루밥. 지금은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음식이지만, 다시 만들어 먹는다면 요즘 아이들도 충분히좋아할만한맛이다.

소화 잘되는 담백한 영양밥 무밥
“무밥을 먹고 돌아서면 배가 고프다.”그만큼 소화가 잘된다는 얘기다. 위장병을 앓고 계신 이모님에게 겨우내 보관한 무로 밥을 해드리니 소화가 잘되어 속이편하다 하시며 안색이 밝아진다. 무는 몸에 해로운 과산화수소를 분해하는 효소들을 고루 함유하고 있어우리 몸의 산성화를 막고 소화를 도우며 신진대사를원활하게 해주는 좋은 음식 재료다. 소화가 잘되는 담백한 맛의 무밥은 지금도 식탁 위에 가끔 등장하곤 하는우리음식. 겨우내 움에 보관해 싹이 틀라치면 무를채썰어서 냄비 밑에 깔고 불린 쌀을 넣어 고슬고슬하게밥을 짓는다. 깨끗해 보이는 만큼이나 우리몸도깨끗하게 해주는 영양밥. 양념간장에 밥을 비벼 먹으면감칠맛 나는무향이입안에 감도는별미가 된다.
 
 
photo01 추억의 밤참 묵사발 VS 오늘 밤참 묵잡채
그옛날저녁 간식은 단연 찹쌀떡과 메밀묵이었다. 고단한 하루가 기울어 가면서 동네에 어둠이 내려앉으면 인적끊긴골목 저끝에서부터 이따금 먼울림처럼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찹쌀~~떡~~! 메밀~~무욱~~!!”저녁 식사후한참이 지난 밤시간에 들려오는 외침 소리는 작지만 너무나 분명하게 귓가에 내리꽂히고, 허기진 식구들의 침샘을 강력하게 자극한 나머지 모두들 참을수없는 기분으로 그외침이 가까워지기만을 기다리곤 했다. 밤늦은 시간이라 메밀묵을 양념장에 찍어 먹기만 해도 좋았지만 우리집에는 메밀묵을 특별하게 만들어 먹던 비법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묵사발이다. 우스갯소리로 묵사발이라 하면 사발에 담긴 묵처럼 형편없이 뭉개지고 깨진 상태를 일컫지만, 음식으로서의 묵사발은 사발에 담긴 묵국수를 뜻한다. 국수면발처럼 굵게 채썬묵에 잘익은 김치와 오이를 송송 썰어 넣고 뜨거운 또는차가운 육수를 부어 숟가락으로 떠먹는 묵사발. 담백한 맛으로 밤시간에도부담없이즐길 오늘날‘내가즐겨먹는 밤참에는 마른묵을 이용한 묵잡채도 있다. 마른 묵과 우엉, 목이버섯 등을 조려 만드는 색다른 맛의 묵잡채는짭조름한맛으로심심한입맛을달래주기에충분하다.

묵사발 재료 메밀묵, 잘 익은 김치, 오이, 동치미 무채, 마른 김채, 달걀 지단, 참기름, 깨소금, 소금, 참기름 국물 마른 메밀 우린 물, 표고버섯 우린 물, 국간장 만들기 끓는 물에 메밀묵을 살짝데쳐낸 뒤 굵게 채 썰어 그릇에 담는다. 잘 익은 김치는 물에 살짝 헹궈 물기를 짜낸 뒤 송송 썰어서 참기름과 깨소금으로 양념해 넣는다. 얇게 썬 오이는 소금에 살짝 절여 참기름으로 볶은 뒤 식혀서 넣는다. 고명으로 동치미 무채와 김채, 달걀 지단을 얹은 뒤 국물을 붓는다. 국물은 마른 메밀 우린 물과 표고버섯 우린 물을 섞어 국간장으로 간한 뒤 뜨겁게 또는 차갑게 식혀서 사용한다.
묵잡채 재료 마른 묵(도토리, 호박, 메밀, 청포 등), 우엉, 목이버섯, 국간장, 진간장, 요리엿, 흰 후춧가루, 깨소금, 참기름 만들기 마른 묵은 끓는 물에 쫀득쫀득하게 삶아낸 뒤 찬물에 헹군다. 우엉은 길쭉하게 채 썬 뒤 찜통에 쪄내고, 목이버섯은 물에 불린다. 팬에 참기름을 두르고 묵과 우엉, 목이버섯을 넣어 볶다가 국간장과 진간장을 넣고 살짝 조린다. 이때 물을 약간 넣어야 팬에 재료가 들러붙지 않고 묵과 우엉에 간도 잘 밴다. 요리엿과 흰 후춧가루, 깨소금을 넣고 한번 뒤섞은뒤 불을 끄고 참기름을 약간 넣어 향을 낸다.
 
photo01 이웃과 마음을 전하는 나눔의 음식 떡
시루떡 시루에 김이 잘오르도록 쌀가루로 반죽해서 붙인시루본이 굳어갈때면 가족을 위한 어머니의 기도가 끝나고, 접시에 시루떡을 얹어 신문지로덮은 뒤이집저집배달하는 것이 나의 몫이었다. 시루떡을 받아들고 접시는씻지않고 돌려줘야 다음에 또떡을 얻어먹을 수있는 거라시던 아주머니아저씨들은 지금도 안녕하신지. 갑갑한 도심과 획일화된 생활, 어두워져 불이한집두집켜질 때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스쳐 지나간 사람이 옆집사람인지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건조한 삶을사는 요즘이다. 더불어 사는 이웃들서로에게 나눔의 음식이 있었던 그시절의 기억이 그립기만 하다. 모시떡옛날 농가에서 머슴들의 노고를 위로하기 위해 만든 떡으로‘노비 송편’이라고도 불렀다. 예전 어른들은 모시를 이용해서 옷만 만들어 입은것이아니라떡까지 만들어 먹었다니 그지혜가 놀라울 뿐이다. 모시의 어린잎을 따다가깨끗이 씻어삶은뒤쌀과함께곱게 갈아서 반죽하고 그안에동부(콩의일종)나여러 곡물을 이용한 소를 넣어 쪄낸 모시떡. 하나씩 싸서 냉동실에두었다가 옛생각에 잠길때면 하나씩 꺼내어 드시던 어머니 생각에 나도한입베어 문다. 찰쑥떡 어머니가 외갓집을 다녀오시면 우리집은 곧바로 방앗간으로 변신하고, 우리 형제들은 인간 방아가 된다. 어머니의 보따리에는어린햇쑥, 찐쌀, 참기름 등할머니의 사랑이 가득담겨있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정성을 조금이라도 더느끼기 위해 찹쌀을 쪄서 형과 누이, 엄마가 번갈아가며 돌절구에 넣고 찹쌀을 찧는다. 살짝익힌 햇쑥을 절구에 집어넣어절굿공이찧는소리한번한번에할머니사랑으로몰래눈물훔치시던어머니. 으깨진 찹쌀처럼 착달라붙어 정을 나누던 가족. 아직도 내혀가 기억하는, 덜으깨진 찹쌀이 씹히는 그맛도 일품이었다. 흰콩고물에 녹색 찹쌀떡이 굴려질 때면 비녀 꽂은 할머니 모습이 더욱더 선명하게 떠오른다. 우리형제들의힘으로간이방앗간이가동되는날동네는잔치분위기였다.
 
 
글과 요리 이종국, 어시스트 박재환 진행 문혜진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6년 4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