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처럼 모여 있는 집 두 채. 왼쪽의 초콜릿색 건물이 최기석 씨 작업실, 오른쪽의 초콜릿색 건물이 하상림 씨 작업실, 그 옆 하얀 집이 살림집이다. 두 작업실 사이 파라솔 옆엔 최기석 씨의 대형 스테인리스 스틸 작품과 벤치 작품이 놓여 있다.
“좋은 때는 늘 짧아서 가을 해도 짧고, 사랑도 짧고, 꽃 피는 시절도 짧고, 점심시간도 짧네요. 사는 나날이 다 꽃다웠는데 그것도 모르고, 꽃다운 날은 내게서 이미 가버렸다고, 이제 꽃답다고 말해주는 사람도 없다고 투정했지요. 꽃 지는 이 가을이 되어서야 꽃같이 아름다운 인생의 나날에, 꽃 같은 향기에 빠져 이 떨림을 달랩니다.” 우체국 창문 앞에 서서 저릿저릿한 연서 한 장 쓰고 싶은 가을, 용인시 원삼면의 고갯길을 넘는다. 고만고만한 시골 풍경을 지나치자, 땅 위로 그리운 냄새가 뭉게뭉게 올라오는 동네가 나온다. 목신리木新里, 그 아늑한 마을의 둔덕 위에 집 한 채가 연필화처럼 이식돼 있다. ‘꽃’ 작품으로, ‘쇠기둥’ 작품으로 대한민국 주류 작가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화가 하상림, 조각가 최기석 씨의 집이다. 새파란 잔디 위에 발 딛고 선 꺼칠하고도 따뜻한 집 두 채(세 채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두 채). 오른쪽 집 안에서 구름 모자 같은 머리카락을 머리에 인 하상림 씨가, 대형 컨테이너 박스 같은 왼쪽 작업실 안에서 찰리 브라운의 모자를 빌려 쓴 듯한 최기석 씨가 객을 맞으러 나온다.
작가 하상림. ‘꽃의 화가’로 이름 높은 그는 물오른 순간의 꽃이 아니라, 다 말라버려 탈색된 꽃, 흔적으로 남은 꽃만을 무채색으로 그린다. 작가 최기석. 고집 센 쇠를 도 닦듯이 두드리고 용접해 쇠의 단단함을 부드러움으로 슬쩍 바꿔치기하는 그다. 과장도 없이, 대상을 새롭게 보이려는 강박이나 충동을 절제한 채 쇠의 미묘함을 읽어내고, 그걸 일정한 패턴에 따라 용접해 붙인다. 굳이 갖다 대자면 꽃과 쇠의 협화음 속 불협화음이다.
이 부부가 집을 지었다. 파주의 옛집(<행복> 2003년 6월 ‘라이프&스타일’ 칼럼에서 그들의 집이 소개되었다)을 떠나, 둥근 산 위로 늙은 달이 떠오르는 용인의 시골 마을에 집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짓다’라는 말은 참 아름답다. 집을 짓고 옷을 짓고 밥을 짓고. 우리의 의식주를 이루는 것들은 모두 이 ‘짓다’라는 말에서 생겨난다. 이 부부는 ‘집을 짓는다’는 아름다운 일을 해냈다. 파주의 옛집이 그러했듯, 아이디어 구성부터 설계, 도면 작업까지 남편과 아내가 전부 직접 했다. 책을 탐독하고 박람회를 누비고 고등학교 시절 가정 시간에 배운 내용을 떠올리며 또 한 번의 집 짓기를 끝냈다. 그 집은 아주 단순하고 간소하다. 비가 얼마큼 왔는지 살피는 측우기는 단조롭게 만들어야 그 빗물의 양이 제대로 보이듯, 사람 살이가 담길 집도 단순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왠지 양념이 부족한 음식도 같지만, 고명 얹지 않은 음식의 담백함 같은 맛이 나는 집. 살림집과 작업실 두 개가 함께 어우러진 하상림·최기석표 ‘맞춤 집’.
1 온통 꽃대궐인 하상림 씨의 작업실. 복층 구조로, 위층에서 아래쪽을 내려다보며 작품을 객관적으로 살필 수 있다.
2 최기석 씨 할머니가 간직했던 이층장을 파주 집에서부터 하상림 씨가 애지중지하다 이 집으로 데려왔다. 경기대 교수님이 선물한 달항아리와 잘 어울린다.
3 하상림 씨의 작업실 한쪽 벽. 무채색 꽃을 감싸는 원색 배경은 이 공간에서 창조된다.
4 이젤 앞에서 작업할 때 하상림 씨의 벗이 되는 스틸 의자.
그동안 간절히 원했지만 견공들 때문에 포기했던 파란 잔디밭을 드디어 요처럼 깔고, 그 위에 초콜릿색 스틸(아연으로 도금한 경량 스틸인 ‘I-메탈’ 자재. 이것도 자재 박람회 다니다 발견한 것이다)로 네모난 상자를 올리고 나니 말 그대로 저 푸른 초원 위 그림 같은 집이다. “난 원래 집이 곧 작업실이기 때문에 작업실과 살림집이 나누어져야 돼요. 내 작업실과 살림집 사이에 유리로 된 아트리움을 만들어 전시장으로 쓰고 싶었는데, 쓸데없는 욕심이 점점 부푸는 것 같아 많이 버리고 비우고, 그냥 이렇게 만들어놨어요. 그냥 ‘장식 없는 장식’? 하하호호하.”(하상림) “조각은 계절과 날씨를 많이 타요. 불 가까이에서 담금질, 풀무질을 해야 하니 더우면 안 되고, 먼지도 많이 나고. 비나 눈이 오면 작업하기 힘들고, 그래서 크고 높은 작업실이 필요했어요. 단출한 작업실 하나,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나무 많이 심을 수 있고 개들 놀 수 있는 좀 넓은 마당. 허허허허. 학교(최기석 씨는 경기대학교 미술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와도 좀 가까우면 좋겠고.”(최기석).
하상림 씨의 작업실과 한몸으로 붙어 있는 살림집 1층은 이 집의 아궁이 같은 공간이다. 우리 옛집들이 불(에너지)을 에워싸고 모이는 것으로 시작됐던 것처럼 이 공간은 작가가 사는 집의 에너지가 끓는 곳이자 현관을 들어서면 처음 만나는, 이 집의 동선이 제일 처음 열리는 곳이다. 작업에 들어가면 밥 때를 빼놓곤 서로에게 얼굴 보여주기도 힘든 부부는 이 방에서 만나고, 학생들과 함께 세미나를 열기도 하고, 미팅 룸으로 쓰기도 하고, 만들어낸 작품이 어떤 느낌인지 걸어보고 놓아보며 스스로 관람자가 돼본다. 이 방에는 보물이 여럿 있는데, 최기석 씨가 직접 만든 대형 테이블이 가장 먼저 눈을 잡는다. 고급 목재인 멀바우로 길게 짜고 아랫부분에 빔을 댄 테이블인데, 3m는 족히 돼 보이는 긴 통나무가 늠름하기 이를 데 없다. “처음엔 15cm 두께의 통나무 테이블을 생각했는데, 우리나라에서 첫손에 꼽힌다는 유림목재에 갔더니 견적도 낼 수 없다고 하대요. 그래서 9cm로 줄였어요. 추운 지방에서 자란 나무는 밀도가 높아서 잘 휘지 않아요.” 이 테이블 말고도, 한쪽 벽을 채운 최기석 씨의 애장품(음악 마니아인 그의 오디오 기기들), 쌀뒤주와 달항아리와 방짜로 만든 밥통, 제자인 최우람 씨가 만들어 선물한 로봇 작품, 그리고 무엇보다 벽에 걸린 작가 하상림의 꽃, 마룻바닥을 육중하게 딛고 선 작가 최기석의 쇠구슬 등이 즐비하다. “위층 살림 공간에는 작품 하나 안 걸고, 안 갖다 놨어요. 거기서까지 보면 계속 스트레스 받을까 봐.” 살림집 2층엔 아주 작은 거실 하나, 아내 방 하나, 남편 방 하나, 남편이 가끔 들어가 기타 치는 방 하나가 자리한다. 아내 방, 남편 방을 바라보니 결혼 20주년 기념 전시회를 앞두고 그들이 했다는 농담 같은 이야기, “우리 두 사람이 이렇게 결혼 20주년을 맞이하다니 기적이 일어났습니다”가 떠오른다. 서로의 작품 세계에 대해선 비판도, 조언도 좀처럼 없이 따로 놀다가도 서로를 ‘내가 좋아하는 사람’(아내 하상림 씨의 말),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 그 모습이 나도 좋은 사람’(남편 최기석 씨의 말)으로 이야기하는 부부. 스무 살 때 대학 동창으로 만나 스물넷에 결혼했고 이제 결혼 24년 차가 되어가면서 부부애를 넘어선 우정, 가족애로 살아가는 부부. 따로 또 같이 사는 부부의 풍경이다.
1 작업에 몰두하다 부부가 상봉하는 살림집 1층. 미팅 룸, 세미나 룸, 거실로 두루 쓰인다. 왼쪽의 철로 된 조각은 최기석 씨 작품, 벽에 걸린 꽃 그림은 하상림 씨의 창조물이다. 꽃 그림 밑에 놓인 건 대가족의 밥을 저장하는 밥통으로 쓰인 방짜 그릇. 두 사람이 걸터앉은 대형 테이블은 최기석 씨가 직접 만들었다. 두 사람의 바로 뒤 천장에 매달린 건 최기석 씨의 제자이자 미술계 블루칩으로 통하는 최우람 씨의 로봇 작품.
2, 3, 4 대학 동기로 만나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결혼해 20년 넘게 한집에서 살아온 예술가 부부는 다른 듯 닮았고, 닮은 듯 다르다. 미소마저도.
집을 다 짓고 나서 이 부부는 파주 집에 있던 나무를 모두 데려왔다. 손바닥만 한 묘목을 심어 훌쩍 키운 나무들이어서 떼놓고 올 수가 없었다. “느티나무는 다 이발시켜서 데려왔어요. 한 4~5년 지나면 다시 머리가 보기 좋게 자랄 거예요. 팔뚝만 한 나무 심은 게 엊그제 같은데 저놈이 벌써 저렇게 컸네요. 산벚나무에, 주목에, 겹철쭉에, 모란에 계절마다 우리 집은 꽃대궐이에요. 겹철쭉은 파주에 있을 땐 마당이 작아서 느티나무 밑에 심어놨더니 괴로워하던 놈인데, 이 집 오면서 넓은 명당자리에 심어주고 나서 많이 컸어요.” 남편은 애완해야 할 자식처럼 나무를 가꾸고, 아내는 손끝 매운 솜씨로 집을 짓고 가꾼다. ‘마흔 살쯤 되면 마루에 앉아 부채질하며 내다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바라던 아내는 마흔이 훌쩍 넘어 남편이 만든 통나무 벤치에 앉아 매시간 다른 각도에서 굴절되어 들어오는 빛을 온몸으로 빨아들인다. 그리고 그린다. 말라 탈색된 꽃, 하지만 종말도 아니고 비극도 아닌 꽃. 화사한 유채색의 배경 위에 무채색 꽃 한 송이, 두 송이를 그린다. 원래 주인공은 찰나이며 순간을 살 뿐이라고, 인간도 꽃과 같다고, 영원한 것은 세상일 뿐이라고, 꽃은 인간은 무이고 자취이며 기억이며 울림이라고. 그래서 더 시리게 눈물 나게 아름다운 게 꽃이고 인간이라고. 실존주의자들이 레드 와인을 마시며 토론해야 할 것 같은 작업실에서 최기석 씨는 쇳조각 수백 개를 도인처럼 장인처럼 노동자처럼 쉼 없이 두들긴다. 쇠를 못살게 만들어놓곤 차갑고 무거운 쇠를 부드럽게 흐르는 존재로 태어나게 했다고 즐거워한다. 그러곤 그림을 그리듯이 쇳조각 수백 개를 용접해 하나의 덩어리를 만든다.
1 풀무질, 담금질로 쇠를 말랑말랑하게 만들어 조각의 굳건한 의미를 만들어내는 최기석 씨의 작업실 한쪽. 그의 창조의 재료들이다.
2 뭉치처럼 보이는 쇳조각을 두드려 평평하게 만들고 그 조각들을 다시 용접으로 이어 붙이는 인고의 과정을 거쳐야 최기석 씨의 작품이 완성된다.
3 역시 쇳조각을 두드리고 용접해 만들어낸 구 형태의 조각들.
4 4년 전 <행복>에 ‘라이프&스타일’ 칼럼 주인공으로 소개될 때보다 사진 촬영 적응 능력이 훨씬 높아졌다고 웃는 최기석 씨. 늘 연구하고 실험하는 학자풍 예술가인 그는 수줍음이 많고 흥도 많고 멋도 아는 사람이다.
비 맞으면 녹슬고, 바람에 씻기고, 기온에 따라 늘었다 줄었다 하는 쇠 조각품을 보면서 생명체의 법칙을 느낀다. 마르고 탈색되어 생명을 잃은 듯 보이는 (하지만 그 생명은 여전히 기억과 자취로 남아 있는) 꽃, 말랑말랑한 생명을 얻은 ‘무기물’ 쇠. 어떤가, 다른 듯 닮은 꼴, 닮은 듯 다른 꼴 아닌가. 이 부부처럼, 삶의 양면처럼, 진실의 양면처럼.
옥색 치맛감만치나 정갈하고 고운 집 거실에 앉아, 콩고물 쏟아지는 소리처럼 정겨운 이야기들을 듣고 있자니 벌써 해가 서쪽으로 기우뚱하다. 속도 전쟁에, 과도한 충동에 갇혀 이 세대가 정작 말 못하는 것들을 작품으로 이야기하는 예술가 부부와 보낸 오후는 짧았다. 좋은 때는 늘 짧듯이. 꽃보다 아름답고 쇠보다 부드러운 두 예술가의 일상을 바라보자니, 세상과 사람들에 대한 오만도, 편견도 잠시 내려놓을 수 있을 것만 같다. 다시 세상으로 돌아오며 가슴에 수줍은 인사를 담는다. 하상림 씨, 최기석 씨. 감사합니다. 뭣보다 인생은 밥으로만 되는 게 아니라 꽃이어야 한다고 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꽃과 쇠는 한집에 산다 하상림, 최기석 부부가 손수 지은 목신리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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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화가 하상림 씨와 쇠기둥의 조각가 최기석 씨. 이 부부는 1년 넘게 땅을 보러 다니다 어머니의 품에 안긴 것처럼 훈기 가득한 동네, 용인의 목신리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 동네의 얕은 둔덕 위에 동네와 그림처럼 어우러지는 집 두 채를 지었다. 아이디어 구성부터 설계, 도면 작업, 자재 조달까지 부부가 함께하며 직접 지은 목신리 집은 두 사람을 위한 맞춤옷 같다. 그리고 그 두 채는 서로 다른 듯 닮았고, 닮은 듯 다르다. 아내가 그리고 남편이 만드는 꽃과 쇠처럼, 에너자이저 같은 열정의 예술가 하상림과 늘 배우고 가르치는 학구파 예술가 최기석처럼. 단단한 꽃, 부드러운 쇠가 함께 사는 집, 그 아름답고도 리드미컬한 풍경 안에 함께 스며들고 싶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7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