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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가 전수천 씨 예술가의 아주 특별한 시간
미술가 전수천 씨는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수상한 이후 자랑할 만큼의 후광을 얻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남들 앞에 나서기를 꺼리고 자신을 소심한 사람이라 말한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이 세상을 변모시키기 위해 산책 나온 예술의 신사’라 부른다. 소심남과 소년과 신사 사이를 오가고, ‘~요’라는 말투가 맞춤옷처럼 어울리는 전수천 씨의 ‘배롱나무 집’을 찾았다. 그 안에는 아주 특별한 시간이 흐르고 있었으니.

전수천 씨의 집을 이루는 두 채의 건물 중 작업실 건물 데크에서 안을 들여다봤다. 왼쪽이 식당, 오른쪽이 응접실인데, 내부 공간은 외부처럼 데크를 깔아 주인이나 손님이 신발을 벗지 않고도 편하게 드나들 수 있도록 했다. 식탁 뒤의 사진은 몽골에서 벌인 ‘움직이는 드로잉’ 프로젝트를 전수천 씨가 촬영한 작품.

기압이 높은 날이었고, 8월의 열기가 손가락 사이에 스며들고 있었다. 전수천 씨의 집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난 한 시간 전에 마친 인터뷰가 얼마나 잘되나를 확인해보는 것으로 탈진한 기운을 추스리고 싶었다. 그런데 1초 후 내 혈압은 그대로 폭발하고 말았다. 디지털 녹음기는 하얗게 비어 있었다. 난 문명의 탈을 쓰고 인간을 우롱하는 그 못된 기계를 부러뜨리고 싶었다. 그놈은 내 시간을, 나와 취재원이 나눈 시간과 역사를 먹어치운 것이다. 기와 묘를 다해 그놈을 미워하고 있는데, 어느새 평창동 언덕배기의 전수천 씨 집 앞이다.

우리는 2층 거실에 앉았다. 녹음되지 않은 인터뷰에 대한 생각으로 속이 시꺼메진 난 종이수첩을 꺼내 들었다. 그림을 취한 지 40년이 된 그의 시간을 반추하기엔 오히려 이게 나아 보이기도 했다. “있잖아요. 난 남들 앞에 나서는 거 서툴러요. 소심해요. 나도 한 번쯤은 술 왕창 먹고 취해도 보고 싶고, 그 기운에 열변도 토해보고 싶고, 깜짝 놀랄 퍼포먼스도 해보고 싶은데요. 하지만 내가 다른 이를 모두 읽을 수 없는 것처럼 다른 이가 내 모습을, 내 시간을 제대로 읽을 수 있을까요?” 이상 시대의 마지막 시인 같은 얼굴로 그가 말했다.

작가 전수천. 1995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특별상을 수상하면서 국내외적으로 주목받는 미술계의 ‘스타’가 된 작가다. 그의 시간을 설명하기 위해 미술 말고 다른 단서는 없다. 그에게 그림은 삶의 지향점이었으니까. 정규 학력은 중학교 졸업이 전부였던 정읍의 농촌 청년, 오로지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일념에 대입 검정고시를 보고, 유학 경비를 벌려고 베트남 파병을 자원하기도 했던 미술학도, 일본 무사시노 미술대학으로 뉴욕 프랫 대학으로 배움을 넓히던 와중에도 도로 공사 막노동이나 페인트공질 같은 허드렛일을 해야 했던 고학생. 여기까지가 그의 개인사적인 과거다. 그 원하던 미술의 꿈을 이룬 후에는 소호에 작업실을 두고 일본과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작업했다. 회화와 조각, 설치, 퍼포먼스를 넘나들며 대한민국 대표 예술가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1 응접실 안 풍경. 아내 한미경 씨가 가끔 연주하는 피아노가 한쪽에, 식탁도 응접 테이블도 되는 탁자가 한쪽에 놓여 있다. 동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전망을 문으로 해치고 싶지 않아서 유리창으로 벽을 채웠는데, 폭이 좁은 블라인드를 내리고 올림에 따라 풍경이 달라진다. 그 풍경 속 아름다운 아내와 소년 같은 남편.
2 살림집과 작업실 건물이 땅 속에 박힌 거대한 바위를 중심으로 나뉘어 있고 그 가운데 배롱나무가 서 있다. 지금은 배롱나무가 우거져 바위가 잘 보이지 않는다.
3 작업실 건물 입구의 장식 소품들. 부부가 함께한 여행에서 가져온 물건들이다.
4 살림집 한구석에 놓여 있는 전수천 씨의 작품 ‘Among the civilization’과, 제자가 이 집 강아지를 보고 만들어준 조각.

그를 설명하기 위해 가장 많이 입에 담아야 하는 단어는 바로 ‘시간’이다. 그를 베니스 비엔날레의 영광 위에 올려놓은 ‘토우’도 시간과 역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무수히 많은 토우가 유리 위에 세워져 있고, 그 유리 밑은 산업폐기물이 뒤섞여 있는 쓰레기장이다. 이 토우는 조상에 대한 존경심(사후 세계에서까지 조상을 지켜드리려는 마음의 발원), 죽음과 폐품에 대한 문제(토우 밑에 깔린 산업폐기물), 일상적인 삶의 순환을 초월해 삶과 죽음 사이의 다리를 놓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바로 시간에 대한 이야기다. 머리가 잘린 그리스 조각을 사진으로 담은 ‘인간의 얼굴’도 결국은 서로가 모두 다르지만 같은 시간의 터널 속에 존재하는 삶이라는 이야기다. 작가 전수천은 시간과 시간 사이에 인간이 매개체로 서 있었음을 회화로, 설치로, 조각으로, 사진으로, 퍼포먼스로 줄기차게 이야기했다. “나는 사람의 모습에서 내 모습을 보고 내 모습에서 사람의 모습을 보며 산다. 시간의 터널 속에서 역사를 읽으면서도 나는 시대 속의 사람들과 닮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 ‘여기’라는 단어를 퍽 좋아한다. 그것은 BC와 AD가 공유되는 무한한 가능성의 선상에 있으며 나는 그 시점에서 인간의 리얼한 모습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2000년 <미술시대>).” 그는 요즘도 두타처럼 젊은이들이 모이는 곳이나 시장을 혼자 기웃거린다. 3일에 한 번씩 인사동을 찾아가기도 한다. ‘3일 만에 인사동이 무지 많이 변했을 것이다’라고 상상하고 갔다가 실망하고 돌아오고 그러다 다시 가고, 길거리에서 붕어빵도 사 먹다가 길거리 좌판에서 물건 골라오기도 하면서 인간을, 시간의 흐름과 흔적을 관찰한다. 그 관찰은 작품으로 이어지니, 그를 ‘시간의 중재자’라 불러도 좋겠다.


5 소박하게 꾸며진 살림집의 침실. 벽의 그림은 전수천 씨의 작품 ‘독도’.
6 미니 갤러리 겸 거실로 쓰이는 공간.

시간의 중재자가 사는 집은 건축가 민선주 씨가 지어줬다. 평창동 바위 언덕 위에 지어진 이 집은 살림집과 작업실 건물 사이에 커다란 바위가 땅 위로 얼굴을 내밀고 있다. 신발을 벗지 않고 걸어 다닐 수 있도록 데크를 깐 식당, 그리고 전수천 씨의 작업실이 무뚝뚝한 노출 콘크리트 건물 안에 들어 있다. 황벽돌로 밖을 두른 살림집에는 간소한 침실 하나, 응접실 겸 미니 갤러리 하나만 채워져 있다. 이 집의 보물은 두 건물 사이에 버티고 선 바위 때문에 지하에 자연스레 생겨난 동굴이다. 땅속으로 묻힌 바위가 너무 어마어마한 크기여서 그 바위를 피해 집을 짓다 보니 벽과 바위 사이에 틈이 좀 생겼는데, 그는 그걸 시멘트로 메우지 않고 놔뒀다. “작은 와인 저장고랑 바 만들려고 나무까지 실어다 놨는데, 그만 게을러서 몇 년째 미루고 있어요. 난 술 한 잔도 제대로 못 마시는데, 아내가 술맛을 아니 어서 만들어야죠.” 시간이 빗물처럼 스며 있는 바위 동굴 안에서 그가 온수처럼 따스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집은 ‘배롱나무 집’으로 불린다. 바위 위에 앉혀진 두 채의 건물 사이에 배롱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비가 오면 줄기가 브론즈처럼 보이고, 해가 뜨면 분 바른 색시처럼 하얘 보이고, 달이 뜨면 유혹적으로 보이는 나무다. 2층의 안방 창을 열면 배롱나무 실루엣이 서울 시내와 겹치는데, 어떤 예술 작품도 이와 비교할 수 없단다. 전수천 씨가 가장 애지중지하는 이 배롱나무 말고도 그가 집 바로 뒤 북한산 길을 산책하다 업어 온 들꽃들, 길 가다 데려온 화초들이 마당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이름도 잘 모르는데, 너무 이쁘면 바로 사갖고 와요. 자식처럼 애인처럼 돌보고 가꾸는데 샘날 지경이에요.” 아내 한미경 씨의 즐거운 푸념처럼 이 집 마당에는 사시사철 꽃이 만발한다. 작고 약한 생명에게 귀 기울일 줄 아는 그에게, 구비구비 휘어진 배롱나무에게 신경림 시인의 ‘나무’라는 시를 선물하고 싶어졌다. “나무를 길러본 사람만이 안다 / 반듯하게 잘 자란 나무는 제대로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것을 / 너무 잘나고 큰 나무는 / 제 치레하느라 오히려 좋은 열매를 갖지 못한다는 것을 / 한 군데쯤 부러졌거나 가지를 친 나무에 / 또는 못나고 볼품없이 자란 나무에 / 보다 실하고 단단한 열매가 맺힌다는 것을”

 


1 작업실 전경만으로 회화, 설치, 조각, 퍼포먼스를 넘나들며 인간과 시간에 대해 탐구하는 그의 작업을 엿볼 수 있다. 높이 5m의 공간이 복층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2 작업실 계단에 설치된 그의 조각 ‘How much would you pay for this one?’과 판화 ‘바코드로 읽는 부처’.
3, 4 작가의 고뇌와 탐구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작업실 풍경이다.

그의 배롱나무 자랑에 넋이 나갈 즈음, 그의 아내가 꿀에 잰 복분자를 내왔다. 결혼이나 가족은 일에 방해가 된다는 독신주의자였던 그에게 지아비의 자리를 찾아준 아내다. 그가 늘 포근하도록 도와주는 방석 같은, 담요 같은 아내. 구한말의 흑백사진 속 가희를 연상시키는 미인 한미경 씨는 손끝까지 어찌나 여문지 메밀국수 한 그릇을 내도 그 맵시가 만만치 않다. 복숭아 한 접시 내는 데도 경건한 손놀림과 평화 같은 균형이 흐른다. 그 아내 곁에 서자 전수천 씨의 낯빛이 환해졌다. 슬쩍 놀려대자 아내가 슬며시 말을 돌린다. “결혼해 살기 참 좋은 사람이에요. 아침에 일어나서 문득 ‘마누라, 사랑한다!’ 이렇게 툭 내뱉는 사람, 밤에 잘 때까지 헤헤 웃고 다니는 사람이에요. 뭐가 그렇게 즐겁냐고 물으면 ‘너 정말 웃기다, 재밌다’면서 마누라 보고 웃어요. 타고난 낙천주의자예요. 마누라가 현실적인 걱정을 하면 ‘어, 그래?’ 이러면서 또 웃어요. 돈만 잘 벌어 오면 더 좋을 텐데. 헤헤.” 물가나 엥겔계수 따위에 무감할 게 분명해 보이는 작가와 그런 일로 예술가를 옥죄는 일일랑 하지 않을 아내가 서로 쳐다보며 벙긋 웃었다.


1 건축가 민선주 씨가 설계해준 평창동 바위 위의 집.
2 생명을 사랑하는 그의 집 곳곳엔 작은 풀들이 자라고 있다.
3 우정박물관에서 한국 최초의 우체통을 보고 그가 직접 제작한 우체통.
4 이 집의 보물이라 할 동굴로 와인 저장고와 바를 만들 계획이다.

아내는 그를 ‘어이, 백수건달!’이라 부른다. 이 집 진돗개 이름이 백수인데, 어느 날부터인가 전수천 씨가 ‘건달’로 불리고 있더란다. 작업도 안 하고 TV를 보더라도 새벽 두 시를 넘겨야 직성이 풀리고, 마당을 맴맴 돌며 꽃들과 대화하고, 길을 쏘다니면서 두리번거리고, 학교(그는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다)에 나가지 않을 땐 작업실에 들어가 하루 종일 앉아 있는 그에게 아내가 붙인 별칭이다. 요즘엔 그 별칭이 더 들어맞는다. 작업실 한쪽 벽을 메운 작품 ‘대한민국’ 앞에 앉아 조는 것처럼 명상할 때가 많아진 탓이다. 대한민국의 가치(문화, 정신, 인간, 가능성)를 바코드에 함축해놓은 이 거대한 조각 앞에 앉아 작가로서 자신의 가치를 셈하느라 하루가 즐겁다. 그건 자신이 거쳐온 시간과 역사의 값이고, 대한민국이 거쳐온 시간의 값이기도 하다. …저녁이다. 일몰이 성급하게 길 위에 내려와 있다. 시간을 도둑맞은 대낮의 사건을 까맣게 잊은 채 난 예술가의 시간론을 얻어내느라 예술가의 시간을 도둑질하고 있었다. 황망해져서 작가인 게 행복하냐고 결론으로 준비해 온 질문을 맹추처럼 내밀었다. “늦잠 잘 수 있는 게 행복해요. 그리고 죽을 때까지 직업이 있다는 게 행복해요. 묘비명에 이렇게 쓸 거야. ‘이 세상에 태어나서 행복했다’.” 그의 아내가 한 수 더 거든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행복했다. 마누라를 만나 더 행복했다’라고 써야지.” 시간의 중재자는 동네 주민인 작가 신경숙 씨, 음악인 노영심 씨와 술 마시러 간다며 아내 손을 붙들었다.


작가 전수천이 추적한 시간의 예술 그는 재작년 9월, 미국 뉴욕과 로스앤젤레스를 횡단하는 ‘움직이는 드로잉’ 프로젝트를 감행했다. 흰 천으로 감싼 열차에 화가, 영화감독, 소설가, 풍수학자, 여행사 직원, 탐험가 등을 태우고 7박8일 동안 5천5백㎞를 횡단한 대장정이었다. 그 열차가 그려낸 궤적이 바로 작품이 되는 프로젝트였고, 그 안에 탄 사람들의 커뮤니케이션이 작품이 되는 퍼포먼스였다. 그는 소심함을 딛고 깜짝 놀랄 퍼포먼스를 해보고 싶다지만, 사실 알고 보면 대한민국 제도권 작가 중에 그만큼 놀랄 만한 퍼포먼스를 벌인 사람도 드물다. 도쿄 긴자 거리에 잘라진 신문 더미를 뿌린 ‘시간의 추적’ 퍼포먼스(시간의 기록 매체인 신문을 통해 사라져가는 시간의 흔적을 잡겠다는 의미를 가진 퍼포먼스), 1984년 뉴욕 배터리 파크에 신문ㆍ잡지 조각을 가루처럼 뿌린 또 하나의 ‘시간의 추적’ 퍼포먼스, 흐르는 한강 물줄기를 따라 뗏목이 교차되도록 한 수상 드로잉도 있었다. “미술이 가끔 힘을 갖지 못하는 건 역사와 사회에 대한 무관심 때문이에요. 미술이 사회 참여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가 그동안 작품을 통해 보여준 이야기들은 ‘강하지만 적대적이지 않다’는 평을 받았다. 그건 세상에 대해 발언하지만 세상에 화나 있지 않고 위협적이지도 않아서다. 위는 그가 요즘 가장 사랑하는 작품인 ‘대한민국’. 그리고 아래의 오른쪽 작품은 ‘명상의 공간’. 두 작품 모두 인간의 가치를 바코드에 함축해놓고 감상자가 자신의 가치를 셈해보도록 한다. 아래의 왼쪽 사진은 바로 ‘움직이는 드로잉’ 프로젝트.


이 집은 데크가 집 크기에 비해 굉장히 크게 만들어졌는데, 집의 크기를 키우기 보다는 자연의 풍경을 끌어안을 수 있게 하려는 배려였다. 시간과 시간, 사람과 시간, 시간과 역사 사이에 대해 탐구하는 미술가 전수천의 하루가 저물고 있다. 비 온 뒤에 유난히 더 고운 배롱나무 꽃과, 꽃보다 고운 아내가 함께한 하루의 끝.

최혜경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7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