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해주세요.
본문 바로가기
건축가가 지은 집 클리셰를 벗어나는 보통의 집, 양평 담랑채
박민주·윤봉식 부부는 2021년 양평에 두 아이와 함께 살아갈 단독주택을 지었다. 그리고 맑고 밝은 곳이 되길 바라며 두 아이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와 ‘담랑채’라는 이름을 붙였다. 서울을 떠나 이곳에 뿌리내린 지 4년째. 집은 제 이름처럼 내향형 가족이 몸과 마음의 긴장을 내려놓고 에너지를 채우는 안온한 정박지가 되어주고 있다.

3층에서 내려다본 2층 거실. 실내는 하얀 캔버스처럼 조성해 집 가꾸기를 즐기는 박민주 씨가 자유롭게 꾸밀 수 있도록 했다.
단독주택의 클리셰를 벗어난 독특한 외관의 담랑채. 같은 크기의 창을 반복해 어떤 용도의 공간인지 종잡을 수 없는 모호한 파사드가 특징이다. 창 아래 포인트가 되는 인방은 콘크리트를 내밀어 시공하고, 표면을 정으로 깨서 거친 질감을 구현했다.
3층까지 탁 트인 2층 거실. 집의 가장 안쪽에 위치하지만 1층 복층 욕실의 유리블록 벽과 복층 구조 덕분에 늘 햇빛이 든다.
이 집의 첫인상은 ‘다세대주택’이었다. 3층 규모의 건물에 일정한 크기로 반복되는 창, 거실이나 부엌 같은 용도를 짐작하기 어려운 외관, 가로로 긴 처마나 박공지붕 등 단독주택의 언어는 찾아볼 수 없는 중성적 분위기까지. 모두 박민주 씨 가족이 사는 담랑채에서 만날 수 있는 모습이다. 독특한 풍경의 집은 겉모습만큼이나 그 탄생에도 흥미로운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가족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거실. 창 주변으로 수납공간을 촘촘히 확보하고 마모륨 바닥재, 소나무 성분의 벽지 등 친환경 소재를 사용했다.


부부는 4년 전, 서울 생활을 접고 교외로 이주를 결심했다. 남편 윤봉식 씨가 호주에서 일하게 되면서 자연과 벗 삼아 살던 1년 반의 시간이 가족의 삶을 크게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그리 오래 산 것이 아니었음에도 서울로 돌아왔을 때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도시의 소음이나 번잡함을 견디기 힘들었고, 아이도 답답한 아파트 생활을 어려워했죠. 아이가 마음껏 뛰놀면서 자유롭게 지낼 곳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네 식구의 로망이 담긴 1층 복층 욕실. 여름에는 수영장이었다가 겨울에는 식물이 쉬어가는 온실로 변신한다. 마당을 향해 슬라이딩 도어를 설치해 바깥으로 바로 나갈 수도 있다.


때마침 아내 박민주 씨의 가까운 지인 몇몇도 양평으로 집을 옮긴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당시 양평은 평창 동계올림픽이 열리면서 KTX로 서울까지 출퇴근이 가능해졌고, 농어촌 특례 전형이나 대안 교육이 자리 잡아 아이들 교육 면에서도 괜찮은 선택지였다. 부부는 가족의 생활을 고려해 양평역에서 차로 10분 내 거리, 초등학교와 가까운 위치, 타운하우스가 밀집해 도시처럼 획일적이지 않은 주변 환경 등 여러 조건을 검토하며 지금의 동네로 선택지를 좁혔다. 가족에게 오롯이 맞춘 집이었으면 해 레노베이션 대신 신축으로 방향을 잡았고, 설계를 맡길 건축가도 결정했다. 홈페이지나 포트폴리오에서 일관되게 기본에 충실하다는 인상을 준 stpmj를 택했다. 마침 이승택·임미정 소장도 어린 남매를 키우고 있던 터라 서로 공감하며 지어갈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들었다. 하나하나 착실히 단계를 밟아가던 가족에게 찾아온 문제는 바로 ‘땅’이었다.

 

노란색 페니 타일로 마감한 2층 화장실.


담랑채의 대지는 한 차례 바뀌었다. 두 번째 땅이 지금의 집터가 됐다. 2019년 3월 설계를 시작했지만 2년이 지나서야 착공하게 된 이유다. 교외 지역에서는 대개 개발 행위를 거쳐 농지나 산지이던 곳을 집 지을 수 있는 대지로 바꾼다. 문제는 토목업체가 차일피일 일을 미루면서 예정한 시기보다 일정이 너무 늦어졌던 것. 여러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었기에 집 짓기를 무작정 미룰 수는 없었고, 진행이 어려워지자 stpmj 이승택 소장은 대지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집을 설계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건축가로서는 정말 불안하고 특이하고 또 흥미롭기도 한 경험이었어요.(웃음) 저희는 지켜야 할 일정이 있었고 건축주는 양평으로 거점을 정했으니, 우선 양평에서 단독주택 필지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조사해 일련의 규칙을 찾아보기로 했어요. 대개는 반복되는 패턴이 있었습니다. 남향의 배치, 건물을 앉히기 편한 직사각형 형태, 1백30~1백50평 사이의 규모 같은 것이었죠. 그러한 보편적 요소를 기준 삼아 볼륨을 정하고 설계를 시작했어요. 그 결과 남쪽으로는 정면성을 지니면서 열려 있고, 동서 방향으로는 테라스를 두는 지금의 방향성이 정해졌습니다.” 주어진 땅은 없었지만, stpmj의 두 소장은 나름의 보편성을 찾아 설계를 해나갔다. 그들이 정한 이 프로젝트의 이름이 ‘슈퍼노멀’이 된 이유다.

보편적 설계, 보편적이지 않은 라이프스타일
보편적 조건에서 출발했지만 집까지 일반적인 것은 아니었다. 이승택 소장은 가족의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해 네 식구에게 딱 맞춘 공간을 제안했다. 부부의 바람은 ‘가족이 함께하는 공간이 가장 중심에 있는 집’. 이를 바탕으로 그는 층마다 공용 공간을 가운데 두고 나머지 공간이 퍼져나가는 구조를 계획했다. 1층의 중심은 욕실 겸 온실이다. 타고난 물 속성인 네 식구의 취향을 적극 반영해 실 하나를 수영장처럼 만들고 겨울에는 부부의 또 다른 취미인 식물들이 쉬어가는 온실로 쓸 수 있도록 했다. 마당에서 놀다가 바로 뛰어 들어갈 수 있도록 슬라이딩 도어도 설치했다. 그 결과 아이들과 식물이 번갈아 점유하는 담랑채만의 특별한 장소가 완성됐다. 욕실 겸 온실이 1층의 중심이라면, 2층의 중심은 작은 거실이다. 이렇게 두 공간을 중심으로 1층은 현관과 주방 겸 거실을, 2층은 아이 방과 부부 침실 및 각각의 방에 딸린 테라스까지 양옆으로 뻗어나가는 구조다. 단단으로 쌓아 올린 듯한 지금의 입면은 이 구성을 그대로 배치한 결과다. “보통 거실엔 통창, 방에는 작은 창을 내는 식으로 집의 위계가 있잖아요. 저는 그런 구분이 일종의 클리셰라고 생각했어요. ‘실내의 프로그램이 굳이 바깥으로 명확하게 드러날 필요가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진 거죠. 실제로 사용하는 주체가 바뀌는 것은 아니니 창이 크게 달라질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고, 밖에서 봤을 때 어디까지가 한 층인지, 어디에서 프로그램이 바뀌는지 예측할 수 없도록 하고 싶었어요. 그 결과 위계 없이 일관된 지금의 입면이 탄생했습니다.”

 

가족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마당. 텃밭 겸 바비큐, 불멍 스폿으로 사계절 내내 요긴하게 쓴다.


보편적인 땅의 조건, 보편적이지 않은 건축주의 라이프스타일을 고루 고려한 집은 2021년 마침내 지금의 땅을 찾아 안착했다. 그해 11월에 완공하고 가족이 거주한 지 벌써 4년 차. 건축가가 의도한 대로 욕실은 여름이면 마당에서 뛰놀다 풍덩 뛰어드는 수영장이었다가 겨울에는 찬 바람을 맞으며 몸을 녹이는 저쿠지가 되고, 식물을 위한 온실로 변신하기도 하며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2층 거실은 농구대를 설치해 농구를 하거나 위층에서 비행기를 날리면서 놀기도 하며 높은 층고를 제대로 활용하는 중이다. 두 곳 모두 복층으로 계획해 작은 면적이지만 개방감이 느껴지고, 너른 창을 통해 안쪽까지 깊이 해가 드는 것이 최고의 장점. 가족이 가장 고대한 마당은 낮에는 캐치볼이나 비눗방울을 불며 노는 놀이터이자 자연 학습장으로, 저녁에는 바비큐와 불멍 스폿으로 계절을 만끽하는 최애 장소가 되었다. 박민주 씨의 이야기에 따르면 건축가가 집을 너무 잘 지어준 탓에 아이들이 집만 좋아한다고. “곳곳마다 나름의 포인트가 있어서 마치 장면을 전환하듯이 여기저기 오가면서 다채롭게 즐기고 있어요. 덕분에 ‘밥도 집에서 먹자, 노는 것도 집에서 놀자’고 해서 문제입니다.(웃음) 주말에도 하루는 거의 집에서 보내곤 해요.”

 

조명과 소파, 둥글게 라운드 처리한 주방 아일랜드 등 동글동글한 것을 좋아하는 박민주 씨의 취향이 곳곳에 드러나는 주방 겸 거실. 알루미늄 창호는 실내는 화이트, 바깥엔 실버로 창틀 색을 다르게 해 하얀 벽면의 미감을 해치지 않도록 했다.


4년이 흘렀지만 가족은 지금도 집의 쓸모를 새롭게 발견하고 있다. 남편 윤봉식 씨는 지금은 아이들 놀이방으로 쓰고 있는 3층을 언젠가는 원래 목적이던 서재로 쓸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중이다. 리클라이너를 설치하고 식물을 돌보며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예정이라고. 아내 박민주 씨의 작업실로 지었지만 외부 창고가 되어버린 별채도 아이들이 좀 더 자라면 부부의 아지트로 탈바꿈할 계획이다. 방마다 있는 테라스는 훗날 아이들이 엄마 아빠에게도 말 못 할 고민이 생길 때면 한 틈 쉬어갈 피난처가 되어줄 것이다. 건축가가 구석구석 다채로운 가능성을 담아 설계한 공간은 가족의 생애 주기에 맞춰 조금씩 모습을 바꾸며 함께 자라고 있다.


“제 로망은 평온한 삶을 유지하는 건데, 서울을 오가며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이리저리 흔들릴 때가 많아요. 지금의 집은 그 균형을 잡아주고 중심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 아내와 함께 양평에 오기로 결정한 것은 정말 잘한 일이었어요. 아이들에게도 이 집이 마음의 위안을 얻고 자신을 지키는 힘을 길러주는 장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행복> 12월호를 통해 더 많은 콘텐츠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E-매거진 보러가기 

글 정경화 기자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5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