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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먼트 라이프 낯선 소재, 맞춤 디테일로 뻔하지 않게
서원호· 김은지 씨는 두 사람의 취향에 맞춘 소재와 가구로 집 안을 물들였다. 거실에 놓인 스테인리스 스틸 수납장이 강한 인상을 남기는 상암동 83㎡ 아파트. 여기에는 과거 원호 씨의 오랜 동료이던 강인준 디자이너가 운영하는 스튜디오 우네그의 든든한 뒷받침이 있었다.

서원호·김은지 부부는 그들만의 취향으로 채색한 아파트에서 아들 유원, 반려견 밥풀이와 함께 살고 있다.
다양한 재료로 사물을 만드는 이와 단어를 조합해 세상에 울림을 전하는 사람이 있다. 젠틀몬스터 공간 파트에서 부파트장으로 일하는 서원호 씨와 현장을 종횡무진으로 누비는 종합 일간지 기자 김은지 씨의 얘기다. 지나가다 들른 카페든 쇼룸이든 가구만 보면 이건 어떤 디자이너가 몇 년도에 만든 가구라는 얘기를 술술 풀어내는 원호 씨 모습이 은지 씨 눈에 멋져 보였다. 대다수가 바라보는 곳의 반대편을 보고 자신만의 관점을 지닌 은지 씨 모습에 원호 씨도 끌림을 느꼈다. 둘은 정말 달랐지만, 바로 그 다름이 두 사람을 부부로 엮어줬다.

 

일반 주거 공간 무드에서 벗어나고자 스테인리스 스틸 수납장을 거실 벽면에 배치하고, 천장에는 슈퍼 미러 소재를 활용한 미니멀한 조명을 달았다. 테이블은 원호 씨가 직접 디자인했다. 의자는 네덜란드 가구 디자이너 헤이스 바커르Gijs Bakker의 스트립Strip 암체어.


하는 일도, 취향도 전혀 다른 둘이었지만 집을 만드는 과정은 순탄했다. 공간을 만드는 일은 원호 씨의 전문 분야였기 때문이다. 아내의 전폭적 신뢰에 힘입은 원호 씨는 조력자로 곧장 스튜디오 우네그를 떠올렸다. 여기엔 아내의 믿음만큼이나 두터운 신뢰가 기반해 있었다. “스튜디오 우네그의 강인준 디자이너와는 젠틀몬스터에서 같이 일하던 동료였어요. 워낙 같이 일을 많이 하던 사이라 커뮤니케이션 방식도 잘 맞았고, 무엇보다 서로의 취향이 잘 공유된 상태였거든요. 퇴사한 후 스튜디오를 운영할 거라말했을 때도 진심으로 응원하기도 했고요.”

 

아내 은지 씨가 원하는 기능을 접목한 침대. 이 또한 인테리어를 맡은 스튜디오 우네그가 제작했다.


두 사람이 고른 집은 상암동에 위치한 방 세 개에 거실 하나로 구성된 25평 아파트. 주변에 공원이 있고 단지도 조용했다. 게다가 남향이라 해도 잘 들어 집을 본 당일 바로 계약했다. 좋은 환경, 아내의 신뢰, 거기에 믿음직한 동료가 있는 원호 씨는 ‘뻔해 보이는 집을 만들지 말자’는 문장으로 설계를 시작했다. “비싼 가구, 좋은 오브제, 그럴듯한 작품을 진열하기보다는 누가 봐도 ‘서원호의 집답네’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집이면 했어요.” 어쩐지 강인준 디자이너도 주거 공간의 문법을 따르지 않는 실험적인 집을 만들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두 사람 모두 상공간 위주의 작업을 해온 이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침실 밖에 있는 화장대 모습. 우네그는 동선의 효율성과 집 안 무드와 어울리는 형태를 구상하고 원호 씨가 소재를 선택했다.


뻔하지 않은 거실을 위해 스튜디오 우네그는 거실 벽에 TV 대신 수납장을 거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하여 세상에 단 하나뿐인 미닫이 수납장을 고안했다. “원호 씨는 오브제나 디자인 관련 서적을 보유하고 있었고, 은지 씨는 직업 특성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인문 및 사회과학 책을 소장하고 있었어요. 책도 책이지만 성향도 달랐죠. 원호 씨는 자신의 책장을 드러내길 원하는 반면, 은지 씨는 감추길 원했죠. 이 두 가지 기능이 가능하도록 미닫이 수납장을 제안했어요. 드러내고 싶은 부분은 보이게, 감추고 싶은 부분은 감출 수 있게 말이죠.” 소재는 스테인리스 스틸로 결정했다. 이 역시 실험적이면서도 전복적인 시도였다.

 

아들 유원이가 태어난 뒤 부부는 두 사람이 쓰던 서재를 아들 방으로 재탄생시켰다.


거실 천장 조명은 곡선과 직선을 가미해 디자인했다. 빈티지보다는 미니멀한 것을 추구하고 정갈하게 떨어지는 선을 좋아하는 원호 씨의 취향을 반영한 부분이었다. 슈퍼 미러로 제작한 천장 조명은 보는 위치에 따라 집의 모습이 각양각색으로 반사된다. 바로 그 아래 놓인 비정형 테이블은 어딘지 천장 조명을 닮은 것만 같다. 이는 원호 씨가 직접 디자인했다. “거실의 수납장이나 조명과 어우러지려면 밀도 있고 존재감이 강한 형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거실에 있는 내력벽과 균형을 맞추기 위해 임시 가벽을 설치하고 개구부를 낸 다음 조명을 배치했다.


거실부터 침실까지 이어지는 일관된 무드
화장대도 우네그가 제작했다. 아내가 고른 기성 제품의 디자인은 원호 씨 기준으로는 용인되지 않았기 때문. 미적인 부분도 아쉬웠지만 기능적으로도 흠결이 있었다. 침실 문 앞에 배치할 화장대의 경우 이동 동선에 방해가 되지 않는, 이 집의 톤과 규모에 맞는 게 필요했는데, 이에 부합하는 걸 찾기가 쉽지 않기도 했다. 결국 공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으면서도 집의 톤 앤 매너에 맞는 가구를 고안하기에 이르렀다. 스튜디오 우네그가 또 한번 펜을 들었다. “이동에 방해가 되지 않게 최대한 벽에 넣은 형태로 디자인했어요. 거울이나 수납장을 미닫이로 제작해 효율성을 고려했지요.” 색과 소재의 경우 원호 씨의 취향인 유광 블랙 컬러로 정했다.

 

욕실 밖 수납장의 디자인 역시 거실 수납장과 비슷하게 연출했다. 직접 제작한 각각의 수납장은 손잡이 홈 크기를 동일하게 만들어 공간의 일관성을 해치지 않도록 했다.


하나둘 만들다 보니 결국 집에 있는 굵직한 가구 모두 직접 제작하기에 이르렀다. 두 사람이 숙면을 취하는 침대도 아내를 위한 원호 씨의 마음으로 설계했다. “침대 양쪽에 조명이랑 콘센트를 따로 쓸 수 있는 침대가 많이 나오잖아요. 아내가 그런 침대를 원했어요.” 기성 제품으로 구할 수 있었지만 아내를 위해 수고로움도 기꺼이 감내했다. 그 사려 깊은 마음에 스튜디오 우네그가 디테일을 더했다. 침대 헤드를 살짝 기울여 침대에 편히 기댈 수 있도록 배려한 것.

 

드레스룸이자 반려견 밥풀이의 놀이터.


우네그의 섬세함은 주방에도 반영됐다. 기존 집의 주방은 ㄱ자로 테이블을 놓기도 어정쩡하고 냉장고 같은 주방 가전을 놓기에도 어딘지 비좁게 느껴지는 구조였다. 이에 강인준 디자이너는 냉장고를 주방 베란다 바깥으로 뺀 다음, ㄱ자 구조를 일자 형태로 바꾸는 대수선을 감행했다. 이를 통해 확보한 벽면 공간에는 제작 수납장을 삽입했는데, 디자인은 거실 수납장의 결을 살리되 목재로 제작해 공간의 톤은 유지하면서도 주방만의 포인트를 주었다.

 

그래픽디자이너 사키의 작품. 집의 무드에 어울릴 것 같아 원호 씨가 구매했다.


이렇듯 두터운 신뢰와 믿음으로 완성된 부부의 집. 이곳에 얼마 전 색 하나가 더해졌다. 아들 유원이가 태어난 것이다. 유원이의 탄생은 원호 씨의 스펙트럼을 보다 넓히는 계기가 됐다. “아이가 바닥을 기어다니기 시작했는데, 그때마다 거실 책장에 머리를 부딪칠까 걱정되더라고요. 언젠가 살게 될 또 다른 집에서는 아내뿐 아니라 유원이에게도 필요한 부분까지 헤아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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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승훈 기자 | 사진 이우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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