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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의 아름다운 집 Maria Vittoria Paggini 콜라주처럼 이야기가 겹겹이 흐른다
밀라노 한복판에서 느껴지는 지중해의 온기. 마리아 비토리아 파지니의 집 ‘카사 오르넬라Casa Ornella’는 색채와 재료, 장식이 층층이 포개져 하나의 풍경으로 펼쳐지는 공간이다.

마리아 비토리아 파지니는 호텔·레스토랑·상점·주택 등 다양한 공간 디자인은 물론, 가구 및 오브제 개발에도 주력한다. 그는 올트라노 디자인Oltrarno Design과 맞춤 카펫 라인, 타티아나 브로다크와 그래픽 벽지 작업, 리플렉션 코펜하겐 아르키테투라 소노라Reflections Copenhagen·Architettura Sonora와 공간 설치 협업 등을 통해 다채로운 창작 영역을 개척해왔다.


문을 달지 않아 공간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개방감이 강조되었다. 소프트하우스의 위트 위트Huit Huit 암체어와 텔마 에 루이스Thelma e Luis 커피 테이블이 공간에 확실한 임팩트를 더한다.


토스카나 아레초의 금세공 가문에서 태어난 마리아. 어린 시절부터 금속의 질감과 빛의 반사를 손끝으로 느끼며 자란 그는 재료의 속성이 인간의 감정을 자극한다는 사실을 일찍이 깨달았다. 이러한 경험은 지금도 그의 디자인 세계 전반에 깊이 스며들었다. 대표작인 ‘산드라 에 라이몬도Sandra e Raimondo’ 테이블 시리즈, 오렌지 컬러의 ‘지노Gino’ 테이블, ‘베랄레Verale’ 헤드보드에서도 그 철학은 명확하게 드러난다. 단순한 형태 속에서 나무, 유리, 스틸 등 서로 다른 재료를 결합해 시각적 조화를 만들어내는 제품으로, 각 재료가 지닌 고유한 특성이 공간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천장 장식은 마리아가 직접 디자인하고 구아슈Gouache가 제작했으며, 페인팅은 알레산드로 플로리오Alessandro Florio, 세라믹 베이스는 주세페 팔레르모Giuseppe Palermo의 손에서 완성됐다.


이러한 그의 디자인 철학은 밀라노 자택 카사 오르넬라에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다. 밀라노 5비아 지구의 비아 콘카 데 아미치스Via Conca De Amicis에 자리한 이 집은 그의 내면세계를 시각화한 듯한 공간이다. 포르타 티치네세Porta Ticinese와 나빌리Navigli 사이에 위치한 이 거리는 고대 로마 유적지와 맞닿은 역사 깊은 주거 지역으로, 현재 도시 재생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20세기 초·중반의 밀라노식 신고전주의와 합리주의 건축이 밀집해 있는 곳. 석재 외벽과 아치형 창, 철제 발코니 난간이 인상적인 동네다. 최근에는 이러한 구조적 특징을 유지한 채 현대적 미니멀리즘으로 레노베이션한 아파트가 늘고 있다. 그중에서도 마리아의 집은 단연 돋보인다. 도시의 맥락 속에서 색채, 질감, 가구, 벽면 그래픽이 하나의 리듬을 이루고 있다.

 

벽지는 마리아가 직접 디자인한 애니멀리에Animalier 패턴으로, 글러브Glove가 제작했다. 투라티 쿠치네Turati Cucine의 애니멀리에 키친, KWC의 수전, 조 폰티가 디자인한 마몰리 밀라노Mamoli Milano의 몬테카티니 세면대, 그리고 르크루제Le Creuset의 타지나가 공간을 완성한다.


“이 아파트 문을 여는 순간, 마치 공간이 저를 기다리고 있던 것 같은 강한 에너지를 느꼈어요. 제가 이 집을 선택했다기보다 집이 저를 선택한 느낌이었죠. 이곳에서 역사와 예술, 그리고 현대적 실험 정신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곳곳에 예상치 못한 놀라움이 숨어 있고, 예측 불가능한 매력이 있었죠.” 마리아에게 이 공간은 단순한 거주지가 아니라, 상상력과 실험이 자유롭게 펼쳐지는 하나의 무대가 되었다.

“카사 오르넬라는 흔적을 남기는 공간이에요.”
이 집의 주제는 ‘Mediterranea–Andamento lento’, 직역하면 ‘지중해–느림의 미학’이다. 본질로 돌아가고자 하는 욕망에서 출발한 이 개념에는 시각적 자극이 넘쳐나는 시대 속에서 속도를 늦추고, 보다 인간적이고 감각적인 차원을 회복하고자 하는 그의 의도가 담겨 있다. “저에게 지중해는 하나의 마음가짐이에요. 빛, 유영하는 시간, 그리고 교류로 이루어진 것 말이죠.”

 

빈티지 거울과 원형 패턴, 퀸테센차 체라미케Quintessenza Ceramiche의 파그블록 타일, 마몰리 밀라노의 수전 세트와 세면대, 그리고 마리아가 직접 디자인한 미러 욕실장이 조화를 이룬다.

 

그 ‘느림의 미학’은 현관에서 시작된다. 집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조 폰티Gio Ponti의 세면대다. 층층이 쌓인 거울장 위에 놓인 세면대는 세라믹 타일로 장식한 줄무늬와 원형 패턴의 벽을 배경으로, 마치 ‘걱정을 씻어내는 의식’에 초대받은 듯한 인상을 준다. 이어서 아라베스크와 고딕 양식이 섞인 뾰족한 아치형 입구를 지나면 세 개의 주요 공간이 펼쳐진다. 이국적인 동물 무늬가 돋보이는 주방, 모로코의 안뜰을 연상시키는 거실, 그리고 옷장과 바bar로 변신하는 다목적 공간이다. 문이 없는 개방형 구조 덕분에 공간의 경계는 흐릿해지고, 자연스러운 이동을 유도한다.

 

“욕실을 지나 침실로 들어가는 구조를 특히 좋아해요. 일반적인 순서가 뒤집힌 그 동선은 일상 속에서도 감각적 전환을 만들어주죠. 매번 지날 때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돼요. 그렇게 공간을 경험하는 순간이 모여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고 생각해요. 인테리어는 단순한 ‘구성’이 아니라 ‘이야기’에 가깝죠. 각 방은 하나의 페이지처럼 이어지고, 감정의 여정을 따라가듯 흐름을 만들어야 해요. 카사 오르넬라에는 그런 이야기 속에 지중해의 미학이 자연스럽게 스며 있어요.”

 

알베르토 알리카타의 사진 작품과 루도비카 룰리Ludovica Lugli의 디지털 아트워크, 구아슈의 벽·바닥 장식이 더해져 예술적 리듬을 만든다. 맞은편 방에는 소프트하우스의 두에토Duetto 암체어가 놓였다.


감각이 모이는 집
이 집에서 또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점은 공간 곳곳에 놓인 가구와 오브제다. 미켈레 키오촐리니Michele Chiozzolini, 타티아나 브로다크Tatiana Brodach, 알베르토 알리카타Alberto Alicata 등 오랜 동료들의 작품이 곳곳에 자리한다.


“협업은 카사 오르넬라의 핵심이에요. 단순히 미적 취향이 맞는 사람보다 비전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과 함께하죠. 모든 만남은 대화와 실험, 그리고 직관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서로 다른 창작 언어가 겹칠 때 비로소 생명력을 지닌 무언가가 태어납니다.”

 

코르포울루체Corpouluce의 ‘Shape of the Sea’ 조명, 마리아의 모텔 컬렉션 ‘라스트 콜Last Call’ 나이트 스탠드와 ‘로메오Romeo’ 베드, 소사이어티 리몬타Society Limonta의 블랭킷, 퀸테센차 체라미케의 플루이드 플로어링이 어우러진 침실.

 

침대와 협탁은 마리아가 소프트하우스Softhouse를 위해 새롭게 선보인 ‘모텔Motel’ 라인으로, 공간의 중심을 잡아준다. 주변의 가구들은 기존 컬렉션을 새로운 패브릭으로 덧입혀 색다른 분위기를 완성했다. 주방 가구는 마리아가 직접 설계하고 투라티 쿠치네Turati Cucine가 제작했는데, 기능성과 조형미가 돋보이는 제품이다. 공간을 감싸는 패브릭은 대부분 피에르 프레이Pierre Frey의 제품이고, 일부 커튼에는 키오촐리니의 프린트를 더한 이중 원단을 사용했다. 어머니의 식탁보이던 앤티크 레이스 커튼은 이번 프로젝트에서 새 생명을 얻었다. 퀸테센차 체라미케Quintessenza Ceramiche의 세라믹 타일은 벽과 바닥을 넘나들며 공간에 리듬감을 더한다. 낡은 빈티지 가구 또한 그의 손끝에서 다시 태어났다.


서로 다른 이야기를 지닌 물건이지만, 모든 오브제에는 하나의 공통된 정서가 흐른다. “결국 핵심은 ‘공감’이에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누군가의 감정이나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물건이어야 하죠. 그런 의미에서 존재감과 이야기를 지닌 오브제에 마음이 갑니다. 또 저는 ‘대비’에 끌려요. 재료 간 대비, 과거와 현재의 대비, 상징적인 것과 무명의 것 사이의 대비요. 그들이 공간 안에서 만들어내는 시너지에 늘 흥미를 느낍니다.”

 

미켈레 키오촐리니가 손으로 직접 페인팅한 커튼은 피에르 프레이의 프리덤 버거Freedom Verger 원단으로 마감했다. 침대 위에는 알레산드로 갈로리니 Alessandro Gallorini의 카프탄이 놓여 있다.


다채로운 이야기가 스며드는 이 집은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완성된다. “친구, 예술가, 협업자들이 자유롭게 드나들어요.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죠. 밀라노에 오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머물 수 있는 침대가 있습니다.” 최근 그는 ‘카사 오르넬라 디너Casa Ornella Dinner’를 기획했다. 매달 세 명의 게스트를 초대하는데, 그들은 서로에게도, 그에게도 낯선 이들이다. 인스타그램 팔로워 중 무작위로 선정한 이들은 저녁 식사 자리에서 예기치 못한 대화를 나눈다. 첫 시도는 성공적이었다.

 

마리아가 디자인한 에로티카Erotica 북 케이스, 주세페 팔레르모의 세라믹 화병, 엘레나 코스타Elena Costa의 사진 작품이 공간을 장식한다.


“이곳에 오는 이들이 환대받는 느낌 그리고 영감을 얻길 바랍니다. 답을 찾기보다 질문을 품고 돌아갔으면 해요. 카사 오르넬라는 흔적을 남기는 공간이에요. 다시 돌아오고 싶거나, 삶의 방식을 바꾸고 싶게 만드는 곳이죠. 저 역시 마찬가지예요. 이곳에 있으면 자연스레 춤을 추고 싶거나 사랑에 빠지고 싶어져요.(웃음)”


마리아에게 집에 머무는 경험은 시간과 장소의 감각을 잊게 만드는 일이다. 10대 소녀의 다이어리나 스크랩북을 떠올리게 하는 이 아파트는 그의 감정과 기억이 층층이 쌓인 거대한 무드보드처럼 읽힌다. “이곳은 저의 자화상이기도 해요. 저와 함께 숨 쉬고, 자라며, 실수하고, 변해가죠. 앞으로도 이 공간의 이야기를 계속 써나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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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백세리 기자 | 사진 Helenio Barbetta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5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