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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스타일 미완성의 집이 주는 아늑함을 위하여
신기하지. 구석구석 완벽하리만치 풍성하고 아름다운 집은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이 덜한데, 어딘가 모르게 미완성인 것 같고 이북식 만둣국처럼 심심한 맛이 있는 집은 묘하게 여운이 남아 계속 생각이 난다. 편안하고 아늑한 기운은 그렇듯 조금은 허술한 공간에서 바위틈의 기포처럼 퐁퐁 올라오는 것이 아닌가 싶다. 덜어내는 디자인으로 안락한 휴식의 집을 만드는 마미지·홍봉기 대표의 미완성 예찬.

우연히 이 구도가 나왔는데, 두 분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 “평소에도 이런 모습입니다. 아내는 거실에, 남편은 주방에.(웃음)” 강아지 두 마리는 루니(흰색)와 빙고. 첫째 야룽이는 구석에서 간식 취식 중이다.

 

함께 욕심내며 원하는 것을 다 하게 해주면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좋지만, 클라이언트도 집 꾸미는 즐거움을 알면 좋겠어요. 근데 그건 그 집에 살며 천천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알아가게 되는 것 같아요. 딱 이 자리다 싶어 그림을 걸었는데, ‘어? 이 자리가 아니라 저 자리였네’ 할 때가 있잖아요. 공간의 매력을 섣불리 단정 짓고 싶지 않아요.


마미지·홍봉기 대표를 알게 된 건 유튜브 ‘행가집’을 찍으면서다. 성북동의 오래된 빌라를 고쳐 들어간 송호성·김민정 부부는 마미지·홍봉기 대표를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있었다. 그 핵심에는 ‘공사는 최소한으로, 가구는 시간을 두고 천천히’로 요약 가능한 이 부부의 인테리어 원칙이 있었다. 공사를 하다 보면 이참에 바꾸고 싶은 것의 리스트가 계속 불어난다. 하지만 예산 없는 프로젝트란 없으니 종국에는 지킬 것과 바꿀 것을 결정해야 하는데, 마미지·홍봉기 대표는 이 ‘지킬 것’의 리스트를 유독 오랫동안 들여다본다. 더 아름답게 만들 자신이 없으면 깨끗이 포기. 좋은 것까지 막무가내로 건드려 덕지덕지 오합지졸이 된 인테리어를 경계한다. 그 빌라는 마치 1백 년을 내다보고 지은 곳 같았다. 벽면의 유리블록, 곡선으로 아름다운 천장, 호텔의 그것처럼 기품이 흐르는 욕실, 공들여 설계한 발코니와 안쪽으로 비밀의 방이 보너스처럼 들어가 있는 다락방까지 어느 것 하나 허투루 지은 곳이 없었다. 마미지 대표는 애초에 귀한 대접을 받으며 완성한 집에 거친 망치질을 하고 싶지 않았다. 많은 곳을 그냥 놔두고 자잘한 보수가 필요한 곳만 최소한으로 손봤다. 특히 기억에 남는 곳은 1층에 있는 아이들 방. 벽에 있는 에어컨 배관을 책꽂이를 만들어 감쪽같이 감추고, 2층 침대에서도 분위기 있는 독서가 가능하도록 손바닥만 한 작은 벽등을 달았다. 그 작은 섬세함이 어찌나 좋던지 언젠가 꼭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책도, 소품도 딱 적당한 만큼만 있는 집. 숨구멍은 책장에도 어김없이 적용했다.

 

화장실과 세면대 문을 따로 만들어 한층 아늑해 보이는 안방. 침대 뒤로는 이불장까지 겸할 수 있는 가구를 따로 제작해 넣었다. 그리고 아름다운 화분 두 개.


용산에 있는 마미지·홍봉기 대표의 집도 이런 기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많은 곳을 훅 비워 단출하고 간소한 느낌이랄까? 물건으로 꽉 찬 곳은 한 곳도 없었고, 많은 곳이 여백으로 아름다웠다. 이제 막 이삿짐을 말끔하게 정리한 집 같기도 했다. “가구며 조명이며 좋다는 걸 엄청 보고 다니잖아요. 그래서 신혼집은 이런저런 소품까지 더해 아기자기, 바글바글했어요.(웃음) 그런데 내 집을 갖고 다른 관점에서 보니 미완성인 게 좋더라고요. 사는 도중에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잖아요. 취향이 바뀔 수도 있고, 마음에 쏙 드는 물건을 한참 후에 만날 수도 있지요. 그런 가능성과 기회를 위해 공간을 비워놓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곳에 저도 안 살아봤고, 집주인도 안 살아봤는데 처음부터 ‘이게 답이에요’ 하고 모든 것을 완벽하게 세팅하고 싶지 않은 거죠. 그래서 가구며, 조명이며, 그림이며 시간을 두고 천천히 구매하시라고 해요. 몇 년 후에 연락을 주셔도 함께 고민해드리겠다 하면서요. 그러고 보니 프로젝트를 하면서 ‘이 정도면 충분해요’ 하는 말을 제일 많이 하는 것 같아요. 함께 욕심내며 원하는 것을 다 하게 해주면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좋지만, 클라이언트도 집 꾸미는 즐거움을 알면 좋겠어요. 근데 그건 그 집에 살며 천천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알아가게 되는 것 같아요. 딱 이 자리다 싶어 그림을 걸었는데, ‘어? 이 자리가 아니라 저 자리였네’ 할 때가 있잖아요. 공간의 매력을 섣불리 단정 짓고 싶지 않아요.”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안쪽으로는 꽤 넓은 욕조가 들어가 있다. 목욕을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


“시간을 두고 천천히”라는 말을 많이 하지만 “이것만은 꼭!” 하고 과감하게 밀어붙이는 것도 있다. “마루처럼 집의 바탕을 만들어주는 것에는 가급적 비용을 아끼지 말자고 해요. 다른 데서 비용을 줄일 테니 기본 자재만큼은 좋은 것으로 하자고 설득하지요. 집에 정이 들고 집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많은 순간에 ‘빛’이 있어요. 가구 상판과 그릇장에, 커튼 자락 너울거리는 마룻바닥에 빛이 들어올 때 나직하게 감탄사를 뱉게 되는데, 값싼 자재는 이 빛을 오롯이 못 받아주거든요. 그런 이유로 어디에든 필름 같은 건 절대 쓰지 않지요. 저희 집만 해도 마루에 가장 많은 투자를 했어요. 원목 광폭 마루라고 해도 나뭇결무늬가 오롯이 살아 있는 제품은 찾기가 힘들더라고요. 결국 이탈리아에서 공수해왔어요. 돈은 좀 들었지만 만족합니다. 지금 유행하는 것도 가급적이면 사용하지 않으려 해요. 이게 지금 유행해서 예뻐 보이는 건지, 여기저기 많이 보여서 눈이 현혹된 건지 지금 당장은 모르거든요. 정확하게 판단하려면 시간이 좀 걸리지요. 재미있는 이야기인데, 저와 함께한 분들이 모두 집을 잘 파세요.(웃음) 이런저런 이유로 집을 바꾸는 경우가 있는데, 금방 새 주인을 찾더라고요. 그게 다 집의 ‘기본’이 좋아서인 것 같아요. 좋은 자재가 나이도 아름답게 먹거든요.”

“큰 소파를 원래 안 좋아했어요.” 거실을 몽땅 소파가 차지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이렇게 아담한 사이즈로. 오른쪽 벽에 걸린 큰 액자는 사진 콜라주 작업으로 유명한 원성원 작가의 작품이다.


소파 옆으로는 자주 보는 책만 한곳에 모았다.
귀소본능 강한 집돌이, 집순이
이 집의 거주자는 마미지와 홍봉기 대표, 그리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반려견 ‘야룽’과 ‘루니’, ‘빙고’. 첫째 야룽이는 내년이면 스무 살인데 아직도 정정한 편. 루니는 겁이 많아 집에 손님이 오면 “멍멍” 앙칼지게 짖지만 이내 엄마 아빠 품에서 행복한 애교쟁이고, 최근 입양한 빙고는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에서 결벽증 심한 멜빈(잭 니컬슨)의 마음까지 훔치는 브뤼셀 그리펀종으로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이다. 최근에는 아동복 모델로 나서 용돈 10만 원도 벌어왔다고. 나름 대가족이지만 거실에 있는 것은 프랑스 디자이너 피에르 귀아리슈가 디자인한 작은 몸집의 녹색 소파와 샤를로트 페리앙의 사이드보드 그리고 역시 프랑스 디자이너 피에르 샤포의 작은 수납장이 전부. 그 옆으로 주방이 딸려 있는데, 주방 역시 상부장과 하부장을 큼직하게 넣어 어수선한 구석이 전혀 없다. 단정하기는 안방도 마찬가지. 낮은 침대 뒤로 넣은 나무 장이 이불장이자 칸막이 역할을 하고, 옆으로 나란히 들어서 있는 욕실과 세면대에는 나무문을 달아 깔끔한 분위기로 완성했다. 하이라이트는 안방과 서재 사이에 있는 베란다. 한국에서 베란다는 많은 경우 거실로 확장하지만 마미지·홍봉기 부부는 이곳을 그대로 두고 실내 정원으로 가꾸었다. 바닥 타일도 원래의 물성이 좋아 그대로. “신혼집이 신림동 아파트였는데, 그때도 구조가 재미있었어요. 천장을 뚫을 수 있어 박공지붕을 보면서 지냈지요. 천고가 4m 가까이 되고요. 식물은 저희 둘 다 워낙 좋아해요. 인테리어를 할 때도 식물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요. 식물이 자라면서 공간이 함께 변화하는 모습을 보는 게 너무 좋아요. 공간에 생동감을 만들어주거든요. 사계절을 함께 살면서 계절이 변하고 해가 짧아지는 걸 알아차릴 수 있는 인테리어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하남이며 헌인릉, 용인 화훼단지로 꽃과 나무를 보러 가는 것이 힐링이고요. 라이프스타일이라고 하면 특별한 취미나 호사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저희는 그냥 일만 해요. 그게 저희의 라이프스타일이에요.(웃음) 여행도 좋아하지만 강아지가 세 마리나 있으니 떠나기가 쉽지 않고 굳이 그럴 필요도 느끼지 않지요. 주말에 열심히 청소하고,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다 강아지들과 산책만 해도 온전히 충전이 돼요. 저도 집을 좋아하는데 남편은 더해요. 귀소본능이 유독 강하다고 할까요. 일하다 한 시간만 짬이 나도 집으로 들어와요. 그 때문에 옛날부터 집이 깔끔하고 예쁜 게 중요했어요.”

 

서재 한 쪽 풍경. 작품은 사진과 미술사를 공부한 남편이 주로 고른다.

 

역시 깔끔한 면과 단정한 수납이 돋보이는 주방. 평소에도 늘 이런 모습이다. 다이닝 체어는 샤를로트 페리앙의 작품. 알바 알토만큼이나 좋아하는 ‘별’이다.


부부를 함께 인터뷰하다 보면 문득 ‘연애 시절’이 궁금해진다. 인테리어나 사업보다 순수하고 재미있는 이야기. 마미지 대표의 말. “대학에서 건축공학을 전공했는데, 설계보다는 공간을 채우는 일이 더 적성에 맞더라고요. 일자리를 알아보다 가구 컬렉터인 김명한 관장님이 운영하던 aA디자인뮤지엄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어요. 그때 좋은 가구를 알아보는 안목이 생겼지요. 가격에 현혹되지 않고 ‘진짜’를 고르는 법을 알게 된 것 같아요. 이후 인테리어디자인 사무실에 있다가 독립을 했는데, 어느 날 남편한테 연락이 온 거예요. 중국집을 하고 있는데 홍대 쪽에 매장을 알아보고 있다, 공간을 같이 봐줄 수 있겠냐 하고요. 다시 취직을 해야 하나 고민하던 참이라 혹했지요. 이후 함께 열심히 공간도 보러 다니고 인테리어 솔루션에 대해서도 고민을 많이 했는데, 결국 프로젝트는 무산되고 저는 이렇게 엮였네요.(웃음)”

 

역시 깔끔한 면과 단정한 수납이 돋보이는 주방. 평소에도 늘 이런 모습이다. 다이닝 체어는 샤를로트 페리앙의 작품. 알바 알토만큼이나 좋아하는 ‘별’이다.


두 사람의 ‘지향점’ 같은 선배는 핀란드의 국민 건축가 알바 알토. 엄격한 모더니즘이 세계를 휩쓸 때도 핀란드의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유기적 형태의 곡선과 재료로 인간 중심의 공간을 만들던 그처럼 편안하고 아름다운 집을 제안하고 싶다. 한마디로 안식처 같은 집. 어딘가 완성이 덜 된 듯 심심하고 담백한 공간을 선호하는 것도 안식은 적당한 여백에서 비롯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열심히, 조급하게 채우지 않고 빈 구석을 마음 편히 바라볼 수 있는 태도. 그러다 진짜 마음에 드는 그림이나 소품이 있으면 하나씩 기쁘게 들여놓는 태도. 집의 안락함은 거기에서 시작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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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성갑(갤러리 클립 대표, <건축가가 지은 집> 저자)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5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