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규모의 하우스 노웨어 서울 옆으로는 막스 지텐토프Max Siedentopf의 설치 작품 ‘모어 이즈 모어More is More’가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성수동은 1960년대 구두나 신발 공장 같은 경공업이 발달하며 성장했다. 작은 건물과 촘촘한 도시 구조는 시간이 흘러 이 동네를 팝업 스토어의 성지로 만들었다. 사람들은 시시각각 바뀌는 거리의 이벤트를 TV의 채널을 돌리듯 즐긴다. 방문객이 늘어난 만큼 자본의 유입도, 개발의 규모도 커졌다. 그리고 그 중심에 오피스가 있다. 영국의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설계를 맡으며 화제가 된 크래프톤 신사옥은 지하 8층, 지상 17층, 연면적은 무려 10만㎡에 달하는 규모로 진행 중이다. 무신사는 무신사 캠퍼스라는 이름으로 성수동에 연이어 사무실을 열었고, 성수역의 부역명이 무신사역이 되기도 했다. 상징적인 사옥 건축이 아모레퍼시픽이나 한국타이어 같은 대기업만 가능한 일이었다면, 이제는 젊고 존재감 넘치는 브랜드의 새로운 언어가 된 셈이다. 그중에서도 요즘 주목받는 두 개의 프로젝트, 아이아이컴바인드의 하우스 노웨어 서울과 JKND의 성수 사옥을 소개한다. 두 작업은 공교롭게도 성수, 국내 패션 브랜드, 리테일을 겸한 오피스라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그들이 집중하는 목표와 방식은 사뭇 다르다.

헤드웨어 브랜드 어티슈 스토어. 도트 패턴을 입힌 라운드 월, 데님과 은사를 혼합해 만든 카펫 등 독특한 소재 미학이 돋보인다.
“이곳 또한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로 인해 더욱 도전적인 건축물이 탄생하고, 보다 다채로운 서울이 되기를 바라요.”
세상에 없던 건축, 하우스 노웨어 서울
지난 9월 문을 연 하우스 노웨어 서울은 프리즈 서울의 작품들 못지않게 압도적이었다. 젠틀몬스터와 탬버린즈, 누데이크와 누플랏, 새로 선보인 어티슈까지 다섯 개 브랜드의 리테일 그리고 아이아이컴바인드 본사 오피스로 이루어진 14층 규모의 건물은 도시에 거대한 실루엣이 처음 등장한 날부터 주목받았다.

우주 로봇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외관.
하우스 노웨어 서울은 낮은 건물이 대부분인 거리에서 콘크리트 트로피처럼 솟아 있다. 둥근 도넛을 포개놓은 듯한 저층부, 콘크리트를 목구조처럼 짜맞춘 중층부, 캔틸레버 구조로 멀리까지 고개를 내미는 고층부로 구성한 파사드는 서울을 관찰하는 거대 우주 로봇을 연상시킨다.
“2017년부터 신사옥을 논의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해외에서 다양한 건축물을 접하며 ‘왜 서울에는 해외처럼 상징적이고 영감을 주는 건물이 부족할까’라는 의문이 들었고, ‘그럼 우리가 스스로 서울에 영감을 줄 수 있는 건축물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이어졌죠.” 아이아이컴바인드의 다섯 브랜드가 모두 공유하는 핵심 철학은 바로 ‘새로움’이다. 하우스 노웨어 서울은 새로움을 향한 브랜드의 실험을 집대성한 프로젝트라 할 수 있다. 그 실험에 동참한 건축가는 더 시스템 랩의 김찬중 소장. 새로운 재료와 구법을 시도하며 전에 없던 건축을 선보여온 더 시스템 랩은 아이아이컴바인드와 함께할 최고의 적임자였다.
아이아이컴바인드는 넓은 면적을 확보할 수 있으면서 실험적이고 크래프트적인 무드가 잘 맞던 성수동을 부지로 결정하고, 와일드와 엘레강스라는 상반된 개념을 결합해 미래적 건축을 완성했다. 하우스 노웨어 서울의 방점은 본래 목적인 오피스보다는 하우스 노웨어의 철학인 퓨처 리테일의 실현에 있는 듯하다. 그들이 상상하는 리테일의 새로운 방향성은 1층부터 3층까지의 스토어, 그리고 5층 누데이크 티 하우스에 오롯이 구현되었다. 기계장치로 귀의 떨림까지 구현해 마치 살아 있는 듯한 거대한 닥스훈트, 붉은 카펫 위 우주선처럼 오르내리는 콘크리트 인스톨레이션, 이질적 스케일의 인체 오브제 페인티드 자이언츠까지 ‘되돌아온 미래’를 주제로 초현실적 작업이 펼쳐진다. “해외 건축물을 보며 저희가 떠올린 것처럼 이곳 또한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가 되었으면 해요. 그로 인해 탄생한 도전적이고 용기 있는 건축물들로 서울이 한층 다채롭고 흥미로우며, 더 많은 영감을 남기는 도시가 되기를 바랍니다.”
가위 계단 코어를 중심으로 양옆으로 나뉘어 있는 오피스 공간.
빛나는 협업의 결과물, JKND 성수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디스이즈네버댓을 비롯해 카키스, 튠, 테누이 등 여덟 개 브랜드를 전개하는 JKND는 지난해 7월 성수동에 입성했다. 2019년 연희동 주택을 고쳐 사옥으로 사용한 지 5년 만에 40여 명이 일하던 회사는 2백 명 규모로 성장했고, 그중 1백여 명이 함께 일할 사옥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연희동 사옥의 건축가 푸하하하프렌즈, 공간 디자이너 씨오엠이 다시 모여 4년여의 혈투 끝에 완성한 JKND 성수 신사옥은 올해 서울시 건축상 대상을 수상하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계단의 폭과 길이, 창호에서 시작된 그리드와 유리창, 솔리드한 벽면이 반복되며 정갈한 입면을 만들어낸다.
성수역 고가철도를 마주한 10층 규모의 빌딩은 콘크리트와 패널, 유리를 하나의 그리드로 차곡차곡 쌓은 정직한 파사드가 먼저 눈길을 끈다. 그러나 이 건축물의 가장 특별한 지점은 내부에 있다.
“JKND가 다른 패션 브랜드와 가장 다른 점은 디자이너로부터 컬렉션이 시작된다는 점이었어요. 그 이후에 디자인팀과 MD팀은 생산과 물류, CS까지 계속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마지막디테일까지 함께 결정합니다.” 푸하하하프렌즈 한양규 소장이 주목한 점은 끝없는 협업이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직사각형 평면의 중심을 십자로 가로지르는 코어다. 건물에서는 계단과 엘리베이터, 화장실처럼 층마다 반복되는 요소가 모여 코어를 이룬다. 편리한 동선을 위해 대개는 가장 중심에 코어를 두는데, 이곳은 모든 요소가 분리돼 있다. 계단은 가운데, 화장실은 양옆에, 엘리베이터는 양 끝으로. 계단은 한 층을 일자로 길게 잇는 형태다. 오피스가 시작되는 4층을 제외하고 5층부터 8층까지는 오피스 가운데를 찢어내는 듯한 이 가위 계단이 반복된다. 프로젝트의 또 다른 이름이 ‘코어해체시스템’이 된 이유다.
계단 너머로 일하는 동료의 모습과 마주치기도 한다.
“이곳에서 계단은 통행로가 아니라, 팀원들이 쉽게 만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건축가가 만든 공간이에요. 실제로 계단에서 이야기하거나 미팅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또 가로막는 문이 따로 없이 열려있는데도 긴 계단이 양쪽 영역을 분리해줘 각각이 독립된 공간처럼 느껴집니다.” JKND 박인욱 대표의 설명이다.
건축가가 공간의 규칙을 세웠다면, 씨오엠은 그 질서 위에 직원들이 편안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했다. 조명을 비롯한 천장 설비는 트레이 안으로 집어넣어 하나의 라인으로 정리했고, 바닥의 복잡한 전선도 트렌치에 매입했다. 패션 브랜드인 만큼 수납이 정말 중요했는데, 창호 간격에 맞춰 창 아래까지만 수납장을 두고 그 위는 행어 시스템으로 조망을 확보했다.
로비처럼 넓은 공간을 마련해 고객들이 앉아서 쉬어갈 수 있도록 디자인한 디스이즈네버댓 성수 스토어.
오피스 외에 2층 카키스, 3층 디스이즈네버댓 성수 스토어, 지하층의 F&B도 모두 씨오엠의 손을 거쳤다. “처음에는 본사 플래그십에 걸맞는 위엄을 보여줘야겠다는 마음에 힘을 줬어요. 그런데 작업을 할수록 화려한 스토리텔링보다은 브랜드의 태도를 오롯이 보여주는 곳이 되는 게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 떠오른 것이 박인욱 대표님이 말씀해주신 ‘디스이즈네버댓은 쉬운 옷입니다’라는 이야기였어요. 성수동은 기운이 센 동네예요. 스토어들도 그걸 이기려고 더 강하게 힘을 주고요. 이곳은 들어오는 순간 공기부터 달라지는 장소를 생각하며 편하게 들어와 의자에 앉기도 하고, 비를 피하기도 하는 곳으로 작업했습니다.” 김세중 대표는 디스이즈네버댓 스토어에 로비처럼 넓게 공간을 두고, 쇼핑에 지친 사람들이 쉬어갈 장소를 마련하는 다정함을 발휘했다. 카키스는 디깅digging하는 재미가 있는 편집숍의 특성을 반영해 여기저기서 착용해볼 수 있는 숨은 공간을 충분히 만들어 고객의 취향을 저격했다.
직원의 본심을 헤아리는 오피스, 손님의 마음을 알아보는 숍. 기본에 가장 충실함으로써 오히려 전에 없던 형식의 건축물이 탄생했다. 그리고 이는 1층을 리테일 대신 로비로 만들어 잠시나마 동네의 쉼표가 될 수 있도록 했던 JKND의 태도와도 닮아 있다.
“다시 이만큼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압도적인 프로젝트였어요. 그만큼 건물을 짓는 과정이 멋있고 아름다웠습니다.”
김세중 대표는 건축과 인테리어의 이어달리기라 표현했지만, 한양규 소장의 마지막 소회를 들으며 다시 본 프로젝트는 2인3각만큼이나 협동심이 돋보였다. 아니, 건축주까지 3인4각이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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