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SEOUL OPENING
도시 ‘서울’을 읽는다는 것
업무적인 일로 사람을 만날 때면 명함을 주고받는다. 보통 명함에는 소속 기관과 직함, 연락처 등이 적혀 있다. 대개 명함을 받으면 딱 그 정도의 정보를 훑은 뒤 지갑 속에 넣곤 한다. 그런데 명함 한 장에서도 정보 외의 다양한 것을 살펴볼 수 있다. 종이에 새겨진 폰트 모양, 글자 색깔, 자간, 심지어 종이 색이나 종이 재질처럼 명함 안에는 실로 볼거리가 다양하다. 어느 걸 볼지 초점을 맞춘다면 말이다.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휴지는 어떨까? 어떤 카페는 휴지 한 장에도 자신의 브랜드 이름이나 로고를 새겨 넣곤 한다. 그런 브랜드를 보면 디테일 하나에도 신경을 쓴다는 인상을 받는다. 필롤로지philology. 누군가 문헌학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늘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사물을 가지고 답하곤 한다.
책상 위 명함이나 휴지에 적힌 문구를 응시하는 시선을 책상 밖 벽과 계단, 또는 카페 가는 길가에 놓인 배수구나 길 모양, 패치워크처럼 덧댄 길바닥 타일로 확장하면 도시를 읽는 일이 된다. 같은 서울 압구정인데도 길 하나를 사이에 놓고 어째서 이쪽은 연립주택이 모여 있고, 건너편은 왜 아파트 단지로만 이루어졌는지 물음을 가지는 일. 문자에서 비문자로 눈을 옮기고 생각의 꼬리를 물어보는 것. 도시문헌학이란 내가 사는 도시를 읽는 일이다.
남겨진 것과 사라진 것에 대한 집합체
도시 서울
인생의 3분의 2를 머물렀던 도시 서울. 초등학교 4학년 시절 약 1년간 가족과 함께 잠실 주공 1단지에 산 적이 있다. 1982년 처음 잠실에 이사 왔을 때, 주공아파트 단지와 공사 중이던 올림픽 주경기장 사이에 친구들과 우리만의 비밀 기지를 만들고 놀았다. 그러다 이내 어른에게 발견되면 헐려버리기 일쑤였고, 그럴 때면 우리는 기어코 그 자리에 다시 한번 우리만의 비밀 기지를 착착 쌓아 올렸다. 머문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으나 추억은 제법 깊었던 그 장소. 2004년 그때보다 훌쩍 큰 몸을 이끌고 그곳을 다시 찾았을 때는 잠실 주공 4단지는 사라진 후였다. 다행히 내가 살던 1단지는 헐리지 않고 꼿꼿하게 서 있었다. 서울 하면 그 당시 덤불과 반지하 벽 위치를 곰곰 살피며 추억을 더듬거린 기억이 난다.
이제는 흔적조차 사라졌지만, 머리에 선연히 남은 기억 속 서울의 한 조각. 도시에는 내가 여기 있었노라 말하는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나는 이것들을 도시 화석이라 부른다. 도시 서울에는 이 화석이 곳곳에 숨어 있기도, 대놓고 멀뚱멀뚱 서 있기도 하다. 감각을 열고 도시를 바라보면 만날 수 있다. 두 다리와 마음을 열고 주변을 두리번거릴 여유와 시간만 있으면 충분하다.
도시 서울의 화석 중 하나는 제법 친숙한 간판이다. 종이·나무·돌 같은 물체에 적힌 흔적을 통해 세계를 해석하거나 연원을 가늠할 수 있듯, 도시에 새겨진 글자와 간판을 보면 어떤 가게가 어느 정도의 세월을 살아왔는지 어림잡아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서울 마포구 공덕동 만리재라는 언덕에는 가죽 모피 세탁을 전문으로 하는 한 세탁소가 있다. 그 세탁소는 좌우에 두 개의 간판이 걸려 있는데 오른쪽에는 ‘삼우콤퓨터세탁’이, 왼쪽에는 ‘삼우컴퓨터세탁’이라 쓰여 있다. 틀린 그림을 찾자면 ‘콤’과 ‘컴’ 하나 정도 혹은 그나마 왼쪽에 있는 간판의 색이 좀 덜 바랜 정도를 찾을 수 있겠지만, 한 가지 더 유추할 수 있는 게 있다. 바로 콤퓨터에서 컴퓨터로 외래어 표기법이 바뀐 역사적 사실과 이를 통해 이 세탁소는 computer를 콤퓨터로 발음하던 외래어 표기법 시대부터 영업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친근한 도시 화석의 또 다른 예는 버스 정류장이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의 ‘연희104고지 (구)성산회관’은 서울시 서북부 주민은 물론, 최근 연희동을 찾는 다양한 이에게도 제법 친근한 버스 정류장 이름이다. 성산회관은 2010년쯤까지 영업하던 한식당 상호. 현재는 폐업했고 건물도 철거됐지만, 당시 워낙 지명도가 높은 시설이다 보니 지금까지 버스 정류장 이름으로 흔적을 남기고 있다. 서울 강남구 도곡동 ‘뱅뱅사거리/구 영동중학교 정류장’은 1969년부터 2013년까지 건너편 서초구 서초동에 터를 잡았다가 우면동으로 옮겨간 영동중학교의 흔적을 보여주는 유일한 도시 화석이다. 과거 문화를 보여주는 버스 정류장 이름도 있다. 서울 강북구 미아동의 ‘구 삼양극장’이랄지, 관악구 신림동의 ‘삼모타워 구 신림극장’ 같은 버스 정류장은 이전 시대 극장이 마을의 상징물인 동시에 만남의 장으로 기능하는 문화시설이었음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도시 화석이다.
나만의 서울 오프닝
낯설게 바라보기
있던 것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새로운 것이 들어서는 현상. 도시 서울은 언제나 변화해왔다.
백제 수도이던 위례성과 고려 남경, 조선의 수도이던 한양, 일제강점기 일본의 한 도시이던 경성 모두 지금의 서울이다. 우리가 서울이라 여기는 지역의 상당수는 한때 경기도에 해당했다.
서울은 수많은 층위가 있으며 역사가 깊고, 변화와 생성을 계속해서 거듭하는 도시다. 언제 어느 시점에 서울의 어디에서 생활하며, 서울의 어느 조각을 봤는지에 따라 각자가 경험하고 생각하는 서울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서울 하면 떠오르는 장면을 묻는 질문도 어느 것 하나 같은 답이 나오지 않는다. 누군가는 남산 북측순환로에서 올려다본 저녁 N서울타워의 모습을, 누군가는 도시 서울을 가로지르는 강줄기와 그 사이에 우뚝 선 교각을 떠올릴 테다. 북악산에 올랐을 때 보이는 경관을 서울의 얼굴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어떤 외국인은 롯데타워에서 바라본 강 건너편 모습으로 서울을 기억하기도 한다. 어디를 걸을지 정하느냐에 따라, 그 길을 오가는 동안 무엇을 볼지를 정하느냐에 따라 저마다의 도시 서울은 다를 수밖에 없다. 각자의 서울이 있을 뿐이다.
우리 모두가 도시 서울을 매일매일 읽을 수는 없다. 저마다의 사회적 역할이 있고, 그에 따른 시간의 제약은 물론 생활 반경에도 어느 정도 한계가 있으니 말이다. 다만 도시 서울을 살아가는 동안 한 번쯤 시도해볼 수는 있다. 매번 오가던 길을 조금 우회하거나, 지하철 대신 버스나 자전거를 타보는 것. 점심시간 밥을 먹으러 가는 길에 오늘만큼은 시선을 조금 위로 올려보는 것. 그러면 ‘이곳에 이런 가게가 있었나?’ 싶은 서울의 새 조각을 모을 수 있다. 매번 지나던 간판에서 귀여운 오탈자를 발견할 수도 있고, 좋아하는 브랜드의 매장을 우연히 만나는 순간도 맞이할 수 있다. 관점을 전환하면 일상의 도시를 모험의 장소 서울로 바꿀 수 있다.
* 김시덕은 일주일에 서너 번은 동네 근처에서 먼 지방까지 다니며 도시 곳곳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도시 답사가이자, 도시에 남아 있는 지나간 시대의 흔적과 자취를 추적하며 도시 역사와 현재를 탐구하고 예측하는 도시문헌학자다. 고려대학교 일어일문학과 학부와 석사과정을 거쳐, 일본의 국립 문헌학 연구소인 국문학연구자료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류 이야기가 아닌 서민의 삶에 초점을 맞춰 서울이라는 도시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기록한 <서울 선언> 시리즈, <갈등 도시> <도시문헌학자 김시덕의 강남>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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