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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ing Art 일상 속으로 들어온 예술, 컬렉터블 디자인
이제 회화나 조각만 수집하는 시대는 지났다.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컬렉터블 디자인collectible design’은 말 그대로 소장 가치가 있는 리빙 디자인을 뜻한다. 예술 및 디자인의 경계를 허물며 독창적 조형미를 드러내는 점이 핵심이다. 그렇다면 기존 가구와 비교해 어떤 차별성과 특별함을 지니고 있을까? 서울에서 선보인 국내외 컬렉터블 디자인을 통해 그 해답을 찾았다.

가구를 단순한 생활 도구가 아닌 예술적 오브제로 바라보는 흐름이 세계 아트 시장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컬렉터블 디자인이라 일컫는 이 움직임은 작가가 한정 제작한 가구와 실험적 오브제를 예술 작품처럼 수집·거래하며 순수 미술과 산업디자인의 경계를 허문다. 2018년 브뤼셀에서 시작한 ‘컬렉터블 페어Collectible Fair’는 이 변화를 대표하는 무대다. 최근 제작한 유니크 피스, 주문 제작품, 리미티드 에디션만을 엄선하고, 실제 사용이 가능하거나 기능성을 염두에 둔 작품만을 원칙으로 삼아 주목 받았다. 현재는 뉴욕을 비롯한 세계 주요 도시로 확장되며 컬렉터와 아티스트가 교류하는 새로운 시장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세계적 갤러리스트 마시모 데 카를로는 “가구는 오래전부터 단순한 오브제가 아닌 하나의 아이디어였다”고 말한다. 실제로 글로벌 컬렉터블 디자인 시장은 매년 5~6% 성장하고 있으며, 한정판 가구와 실험적 디자인 오브제의 경매 역시 꾸준히 상승 중이다. 이는 단순한 취향을 넘어 예술과 실용을 아우르는 투자 대상으로, 미술과 디자인의 융합을 보여주는 새로운 수집 방식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리고 그 흐름은 한국의 아트 신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특히 컬렉터블 디자인의 한 분야인 ‘아트 퍼니처’의 부상이 두드러진다.

 

이번 개인전을 위해 서울을 찾은 페르난도 라포세. 아가베잎에서 얻은 천연섬유를 이용해 털이 난 듯한 조각 작품이자 램프 ‘Patachon’을 만들었다. 멕시코 괴물 전설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Patachon’, agave fibers, brass, 3D printing filament, plywood, steel structure, 178×220×110cm, 2024.


멕시코 자연 재료로 만든 지속 가능한 아트 퍼니처 - 페르난도 라포세 Fernando Laposse
멕시코 출신 아티스트 페르난도 라포세는 옥수수, 아보카도, 아가베 같은 멕시코 토착 식재료를 현대적 미학으로 재해석해왔다. 환경 파괴와 생물 다양성 위기, 지역 공동체 붕괴를 주제로 한 10여 년의 연구가 그 작업의 바탕이다. 우리는 그에게 지속 가능한 아트 퍼니처의 현재를 물었다.

멕시코 남부에서 자생하는 아가베 선인장잎을 긁어내면 ‘사이잘sisal’이라는 질기면서도 고운 천연섬유를 얻을 수 있다.
서울의 더페이지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개인전 <자연의 첫 번째 금은 초록(The First Gold is Green)>은 마치 누군가의 집에 초대받은 듯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맞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그런 편안함을 공간 전반에 담아내고자 했습니다. 테이블, 램프, 캐비닛을 배치해 관람객이 거실에 머무는 듯한 경험을 하게 하고 싶었죠. 특히 멕시코 원주민 공예가 지닌 ‘단순함과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아시아 철학과 연결하고 싶었습니다. 최근 루파(수세미) 램프 작업을 다시 시작하면서도 그러한 미학이 아시아 전통과 깊이 공명한다고 느꼈어요. 제 작업은 재료의 본질을 드러내되 완벽을 추구하지 않는 데서 출발합니다. 일본의 쇼지 스크린이나 구미코 기법처럼 반복되는 사각형, 단순한 직선, 기하학 구조에서 영감을 받았지만 단순히 복제하는 대신 고유한 기술로 재해석하죠. 또한 이번 전시작의 상당수는 음식 재료를 활용해 제작했는데, 멕시코의 전통 제례와 축제에서 음식은 영적 상징성을 지닙니다. 이러한 맥락은 한국 관객에게도 깊은 울림을 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전시 제목은 미국의 대표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Nothing Gold Can Stay’에서 영감을 얻었다고요? ‘The First Gold is Green’이라는 전시명에 담긴 의미를 좀 더 자세히 들려주세요.

아주 짧지만 강렬한 이 시는 자연의 첫 잎이 지닌 무상함과 그 소중함을 이야기합니다. 계절과 시간의 흐름, 자연의 주기를 에덴의 신화와 연결해 탐욕으로 인해 정원이 파괴되는 이야기를 이어가죠. 제 작업이 수년간 탐구해온 주제와 맞닿아 있어 흥미로웠습니다. 바로 무역과 상업, 그리고 자연 자원의 상품화가 공동체와 산림을 어떻게 압박하고 파괴하는지에 관한 문제죠. 특정 자원이 하루아침에 상업적 붐을 타며 가치가 폭등하고, 결국 사라진 뒤 남는 것은 파괴뿐이라는 현실과도 연결됩니다. 전시 제목은 이 시를 참조하면서도 종교적 맥락보다는 지금 우리가 직면한 현실, 즉 자원의 상업화와 그로 인한 자연 파괴에 초점을 맞췄죠.

 

아보카도 껍질을 활용해 새로운 소재를 개발했고, 그 결과 가죽을 연상시키는 광택 있는 갈색 마케트리가 완성되었다.


옥수수, 아보카도, 아가베 같은 재료를 작품 재료로 사용하게 된 계기를 말씀해주세요. 처음 그 재료로 작업했을 때를 기억하나요?
약 10년 전 멕시코 이달고주 토투틀라 및 툴라 인근 옥수수 재배 지역에서 아트 레지던시에 참여했어요. 유전자 변형 옥수수의 수입을 막기 위해 활동하는 현지 단체와 협업하게 됐지요. 함께 토종 옥수수를 되살리고 장려할 방법을 찾으면서, 토착 농부들이 전통을 이어가며 옥수수를 지속적으로 재배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재료 개발까지 연구가 확장되었고요. 그 결과물이 바로 ‘토토목슬Totomoxle’입니다. 저는 예전부터 스스로를 예술가라기보다 디자이너에 가깝다고 생각해왔기에 이러한 연구 중심의 과정에 깊이 매료되었습니다. 특히 문화적·역사적 맥락을 담은 작업일수록 더욱 큰 의미가 있다고 느꼈고요.


스스로의 작업을 리서치 중심이라고 했는데, 그 과정이 실제 제작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토토목슬 프로젝트의 경우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도 궁금합니다. 또 작품을 완성해가는 과정에서 가장 흥미롭거나 도전적이었던 순간은 언제일까요?
사실 제 작업은 제작보다 리서치에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토토목슬’만 해도 멕시코 토종 옥수수의 씨앗을 되살리고 재배 체계를 복원하는 데만 3~4년이 필요했어요. 단순히 상업적 목표가 아니라, 사라져가는 생물 다양성과 그 안에 담긴 삶의 방식을 존중하려면 먼저 현장을 조사하고, 공동체와 관계를 구축해야 했기 때문이죠. 모두가 같은 것을 소비하는 세상에서 다른 방식의 삶과 재배 전통을 지켜내는 일이 제 작업이 지향하는 가장 큰 가치입니다. 그래서 제 작품은 결과물 이전에 공동체와 연결되고, 전통을 보존하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루파로 만든 천장 램프와 벽 고정 램프가 따뜻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구체적으로는 토토목슬은 앞서 말했듯 푸에블라 지역 농가와 협력해 토종 옥수수 종자를 복원하고 재배하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다양한 품종을 다시 뿌리고 수확하는 데 두 해가 걸렸고, 그 후 옥수수 껍질을 건조·다림질해 평평하게 펴고, 이를 종이나 섬유 지지체에 부착해 모자이크처럼 조합하는 마케트리(wood inlay) 기법을 완성했죠. 이런 기술적 과정이 안정되기까지 실험과 실패가 반복됐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실제 제작 과정 자체를 크게 즐기지는 않습니다.(웃음) 대신 기술적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나갈 때, 그리고 재료가 어느 순간 스스로 어떤 형태를 띠어야 할지를 보여줄 때 가장 큰 흥미를 느낍니다. 첫 수확에서 여러 색과 질감의 옥수수 껍질이 되살아났을 때가 특히 도전적이면서도 짜릿하던 순간이었어요. 그때 비로소 이 재료가 스스로 작품 형태를 이끌어갈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죠.


가구의 독특한 패턴이 인상적입니다. 이런 디자인은 어디서 영감을 받았나요?
이 패턴을 완성하기까지도 상당히 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예를 들어 토토목슬 작업은 인터넷도 없는 시골의 수도원 같은 환경에서 지내며, 매일 책을 읽고 연구하는 과정을 통해 탄생했죠. 영감의 출발점은 멕시코에 서식하는 다이아몬드백방울뱀의 등 무늬였습니다. 멕시코 전설에는 뱀의 신 케찰코아틀이 인간에게 옥수수를 선물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방울뱀의 비늘은 마름모꼴이 반복되는 무늬를 이루는데, 이를 옥수수잎으로 재해석해 패턴을 만들었습니다.

 

더페이지갤러리 전시 전경. 마치 집과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토토목슬 캐비닛과 테이블이 돋보인다.


색감 또한 인위적으로 조정하지 않았습니다. 옥수수잎은 계절에 따라 흰색·주황색·보라색으로 자라는데, 저는 단지 색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균형 있게 배열했을 뿐입니다. 그 자연스러운 색의 균형이 연속적인 흐름을 보는 듯한 착시를 만들어냅니다. 결국 컬렉터가 구매하는 것은 단순한 오브제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사람의 시간, 즉 노동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AI가 확산되는 시대일수록 인간의 시간이 점점 더 귀해질 것이라 믿습니다.


최근에는 아보카도 껍질을 작업에 활용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계기로 시작했으며, 제작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아보카도처럼 젊은 세대에게 인기가 많고 언제 어디서나 소비되는 식품 뒤에는 자연적 비용뿐 아니라, 인적 비용도 따른다는 점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이를 위해 멕시코시티 전통 시장에서 과카몰리를 판매하는 가족들과 협업했죠. 그들은 과육만 판매하고 껍질은 버리는데, 저희가 주 2회 그 껍질을 수거합니다. 이후 껍질을 압력과 열로 건조하는데, 건조 속도가 관건입니다. 너무 빨리 말리면 갈라지고, 늦게 말리면 썩기 때문에 수많은 실험을 거쳤습니다. 그렇게 완성된 껍질은 종이로 보강한 뒤 원하는 형태로 잘라 목공과 가구 제작으로 이어갑니다. 우리 스튜디오에는 직원 여덟 명이 있는데, 아보카도 껍질 작업에는 보통 두 명이 몇 달 동안 전념해야 합니다.


당신의 작품은 가구 디자인과 예술 작품의 경계에 놓여 있습니다. ‘아트 퍼니처’라는 개념을 어떻게 정의하나요?
단순히 앉거나 수납하는 실용적 기능을 넘어 작품 자체가 시대의 문제의식과 이야기를 품는 것. 생활을 편리하게 하는 물건을 넘어 현재를 기록하는 타임캡슐로서, 수십 년 뒤에도 오늘의 현실을 전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되죠. 예를 들어 제가 제작한 아보카도 캐비닛을 본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21세기 초반에는 아보카도를 전 세계로 운송하던 시대가 있었구나” 하고 그 소비문화를 떠올릴 것입니다.


즉, 아트 퍼니처는 단순히 ‘예쁜 가구’가 아니라, 현재의 문화적 순간을 보존하고 전달하는 도구입니다. 이 개념은 유럽에서 먼저 제도화되면서 본격적인 시장을 형성했습니다. 바우하우스나 아트&크래프트 운동은 기계화·산업화가 인간 삶에 미친 영향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며 현대 디자인과 예술의 경계를 허문 흐름이죠.

 

옥수수 껍질을 옥수숫대에서 벗겨낸 뒤 다림질해 평평하게 만들고, 받침용 직물에 붙인다. 이후 이를 레이저로 절단해 서로 맞물리는 조각으로 만들어 마케트리(목재 인레이 기법)로 조립해 완성한 토토목슬.


당신의 집도 궁금합니다. 멕시코에서 집을 짓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지금 짓는 집은 차분하고 고요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습니다. 마치 이번 전시장처럼요. 몇 해 전 런던의 집과 스튜디오에서 화재가 나 모든 것을 잃은 경험이 제 삶을 바라보는 방식을 완전히 바꾸는 계기가 됐습니다. 불길 속에서 살아남은 것은 금속이나 천연 재료뿐이었죠. 그때부터 집과 옷, 인테리어에 이르기까지 천연 재료와 천연 염료만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플라스틱이나 합성수지는 전혀 쓰지 않게 됐지요.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를 들려주세요.
우선 아보카도 생산을 어떻게 늘릴지 연구 중입니다. 새로운 재료를 추가할 계획은 당분간 없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세 가지 재료만 다뤄왔기 때문입니다. 또 교도소 프로그램과 협력해 출소 예정인 수감자들이 아보카도 폐기물을 활용한 작업을 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젝트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재료와 사람을 함께 살리는 순환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과정이죠.


환경과 기후 위기를 이야기할 때 단순히 플라스틱 문제로 한정해서는 안 됩니다. 불평등, 빈곤, 폭력, 자원 흐름의 불균형이 근본 원인입니다. 생물 다양성 상실, 토착민 권리, 토지 침식 같은 다루기 어려운 주제도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앞으로도 아트 퍼니처를 계속 선보이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자연의 첫 번째 금은 초록>
기간 8월 28일~11월 2일
장소 더페이지갤러리 WEST관(서울시 성동구 서울숲2길 32-14)
시간 오전 10시 30~오후 6시(월요일 정기 휴관)



재료가 만든 새로운 경계, 아티스트 4인
컬렉터블 디자인이 주로 해외에서 부각됐지만, 한국에도 이 흐름이 자리 잡기 전부터 재료 기반의 실험을 꾸준히 이어온 작가들이 있다. 올해 프리즈 서울 기간, 서울 곳곳의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 가운데 네 명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이들은 고유한 물성과 제작법을 치밀하게 탐구하며 작업 세계를 확장해왔다. 풍선, 산업 폐자재, 빛, 금속 부자재 등 이질적 매체를 다루며 ‘쓰임’과 ‘형태’의 기준을 새롭게 정의한다. 공예적 감수성과 조형적 사고가 교차하며, 익숙한 사물에 새로운 해석을 부여해 관람객의 시선을 전환한다.

 

돌, 나무, 금속이 빚는 균형 - 박원민
박원민은 돌·나무·금속 같은 원재료가 지닌 질감과 시간이 만들어낸 변화를 탐구하는 조형 작가다. 그는 재료를 최소한으로 다루며 자연 그대로의 성질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작업한다. 대표작 ‘Plain Cuts_Stone & Steel’은 자연석의 거친 표면과 직선으로 절단한 면, 그리고 철판의 인공적 질감을 한 화면에 대비시킨다. ‘Plain Cuts_Tree’는 나무 단면의 결을 금속판으로 이어 확장한 작품으로, 오동나무 수피에 옻칠을 입혀 나무 고유의 질감과 시간성을 보존한 것. 박원민의 설치 작품은 재료가 지닌 물성과 그것이 공간에서 맺는 관계를 직접 체감하게 한다. 따라서 관객은 자연과 인공이 만나는 경계, 그 긴장과 균형 속에서 사물과 인간 및 자연의 관계를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 이러한 태도는 DDP에서 열린 <디자인 마이애미 인 시추 서울>(9월 1~14일)에서도 드러났는데, 한국 디자이너들의 실험적 작업을 세계 무대에 소개하는 맥락 속에서 그의 작품은 재료와 시간에 대한 성찰로 존재감을 발휘했다.

Wonmin Park, ‘Plain Cuts Remediated Low Table SS1901’, 2022

폐재료로 새로운 가치를 빚다 - 장혜경
장혜경은 ‘From Craft to Industry’라는 모토 아래 산업 현장에서 버려진 재료를 공예적 언어로 되살린다. 그에게 공예는 단순한 제작 기술이 아니라, 현대 산업이 놓치기 쉬운 물성의 잠재력을 드러내는 실험의 장이다. ‘Fragment’ 시리즈는 대리석 가공 중 생기는 파편에서 출발했다. 산업폐기물로 취급하던 대리석 조각을 레진과 결합해 자연 그대로의 질감과 빛을 고정하고, 사라질 뻔한 흔적을 작품으로 끌어올린다. 이 과정에서 축적된 샘플들은 ‘Material Notes’라는 평면 작업으로 확장됐다. ‘Relic’ 시리즈의 7m 벤치는 비닐·스티로폼·플라스틱 등 일회용 재료를 레진 속에 봉인해 미래의 유물로 제안한다. 거대한 벤치를 통해 그는 공공 예술과 설치물로 영역을 넓히며, 우리가 남길 흔적을 성찰하게 한다. 이러한 실험은 과거 루마니아 대사관저이던 HJRK 한남을 활용한 전시 (9월 3~7일)에서 소개되었는데, 사적 공간과 공적 전시의 경계가 맞물린 자리에서 작품은 더욱 내밀한 울림을 남겼다.

 

Hyekyoung Jang, ‘Fragment Side Table’, 2024


Hyekyoung Jang, ‘Fragment Side Table’, 2024

 

 

풍선을 조형미로 확장하다 - 양승진
양승진의 ‘Blowing’ 시리즈는 풍선의 불규칙한 형태에서 조형미를 발견하려는 발상에서 출발했다. 단순히 유리 블로잉 작업에서 시작한 작업은 부풀려진 볼륨과 우연히 생긴 형태를 탐구하며 확장됐다. 비규격적 풍선의 불안정함에 공예적 완성도를 더하기 위해 수많은 실험을 거쳤고, 그 끝에 여러 겹의 에폭시를 덧바르는 현재의 제작 방식을 확립했다. 이를 통해 가구나 오브제로 활용할 수 있는 단단한 구조가 만들어졌다. 반복된 코팅으로 유리 같은 질감과 광택까지 얻었다. 언제 터질지 모를 불안한 형상이 의자의 구조로 고정되는 순간, 평범한 재료는 새로운 물성을 얻어 색다른 시각적 경험을 제안한다. 최근에는 다양한 색과 크기를 적용해 작품의 쓰임새와 심미적 가치를 넓히고 있다. 이러한 작업은 디뮤지엄에서 열리는 단체전 <취향가옥 2>(2026년 2월 22일까지) 속 ‘집과 예술의 경계’를 탐구하는 장면에서 선보여 예술적 오브제가 생활공간 속에서 어떻게 자리 잡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Seungjin Yang, ‘Armchair(mixed color)’, 2024

 

 

잔재로 구축한 관계의 조형 - 이시산
이시산의 작업은 산업 공정을 거친 뒤 버려진 금속 판재에서 출발한다. 그는 절단된 단면과 불규칙한 표면을 단순한 폐기물이 아닌 시간과 개성을 지닌 존재로 바라본다. 돌이나 나무처럼 본연의 물성을 존중하며, 다시 깎거나 다듬지 않고 즉흥적으로 맞추고 겹치는 방식으로 조형을 완성한다. 금속 조각은 의자의 다리나 테이블의 일부가 되며, 잔재를 넘어선 새로운 덩어리의 힘을 드러낸다. 산업의 파편이 자연의 일부로 수용되는 순간, 조형은 완성된 형태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생성되는 과정으로 변모한다. 생명 있는 것과 없는 것, 유기적과 무기적, 다듬은 것과 거친 것의 경계 위에서 그는 묻는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흘려보낼 것인가. 날카롭고 직선적인 금속 선반을 받치는 돌은 이 대비 속에서 묘한 균형감을 드러낸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레오킴 스튜디오에서 열리는 듀오전 (9월 6~30일)에서 구체화되었고, 작품은 형태보다 과정과 재료의 본질을 탐구하는 자리에서 관객과 만났다.

Sisan Lee, ‘Stone Pagoda_Level 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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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백세리 기자 | 사진 이우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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