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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옥 10가지 낯선 물성의 집
투자 회사를 운영하는 윤건수 대표와 길연 이길연 대표가 함께 만든 서촌의 프라이빗 스테이는 돌 대신 노출 콘크리트, 금속과 타일, 스테인을 입힌 까만 서까래까지 한옥의 전형을 벗어나 낯선 물성으로 가득하다.

한옥 디콤마서촌의 메인 공간인 다이닝룸. 블랙&화이트 무드의 공간에 황형신 작가의 적동 도어, 유남권 작가의 옻칠 한지, 통석 세면대로 구현한 아트월이 강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가운데 테이블은 류지안 작가가 자개를 새긴 작업. 오른쪽 벤치는 허성자 작가가 왕골을 엮어 앉을 자리를 만들었다.
거친 질감이 살아 있는 종석뜯기 담장과 거대한 적동 도어. 서촌의 조용한 골목에 자리한 한옥 ‘디콤마서촌D,seochon’의 첫인상이다. 서까래와 기와가 없었다면 한옥이라 짐작하기 어려웠을 모습.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화강암 대신 콘크리트로 지은 기단과 탄화목 벤치, 왼편에는 노출 콘크리트로 시공한 박공 형상의 벽까지 서로 다른 물성이 의외의 조화를 이루는 이곳은 길연의 이길연 대표가 디자인한 프라이빗 스테이다.

 

한식 방으로 향하는 전이 공간 겸 서재. 윤건수 대표와 김근태 디자이너 모두 ‘최애’ 장소로 꼽는 곳이다.


벤처 캐피털 투자회사를 운영하는 윤건수 대표는 회사의 세컨드 하우스로 쓰기 위해 이 한옥을 마련했다. “시작은 회사 직원들을 위한 스테이였어요. 번거로운 교외의 리조트 대신 서울에 마음 내킬 때 가볍게 다녀올 수 있는 장소가 있으면 좋겠다 싶었죠. 그게 마당 있는 한옥이라면 획일화된 호텔보다 훨씬 특별한 경험을 줄 거라 생각했고요. 또 투자회사를 운영하다 보니 손님을 초대하는 자리가 종종 있는데, 고급 레스토랑보다 집에서 정성 들인 한 끼를 나누는 것이 훨씬 깊은 시간이 될 때가 많았어요. 그러한 이유로 지금의 공간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500kg이 넘는 정선 대리석을 재단해 만든 세면대.


윤건수 대표는 모든 결정에 명확한 근거를 두는 사람이었다. 한옥을 만든 이유도, 원하는 조건도, 디자이너를 택한 과정도 분명했다. 가능성을 발견하면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자신의 일처럼 말이다. 그는 넓고 웅장하기보다는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기 좋은 휴먼 스케일의 집을 원했고, 손님이 방문하기 편리한 위치가 중요했다. 1년 가까이 찾은 끝에 발견한 지금의 한옥은 모든 조건을 두루 만족하는 곳이었다. 50~60년 전 지은 뒤 여러 차례 손을 타며 더 이상 한옥이라 부르기 어려운 모습이었지만, 햇살이 가득 드는 마당과 위요감 있는 ㄷ자형 집에서 무언가 좋은 기운을 느꼈다고.

 

목재나 삼베 외의 소재로 포인트를 주고자 아크릴로 제작한 부엌 수납장.


윤건수 대표의 취향이 미니멀한 스타일, 노출 콘크리트와 무채색이라면 길연은 다채로운 물성과 공간감을 짓는 스튜디오다. 윤 대표는 그 차이가 오히려 좋은 결과로 이어질 거라 믿었다. “한옥을 정형화된 모습대로 짓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와 다른 시각을 지닌 디자이너와 서로 맞춰가는 과정에서 훨씬 나은 공간이 탄생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윤건수 대표가 요청한 것은 한옥의 분위기는 유지하되 편리하고 안전한 공간. 이길연 대표는 클라이언트의 요청을 만족시키는 것은 물론, 여러 물성과 공예 작가의 작업을 녹여 풍성한 공간감을 완성했다. “한옥의 정취는 간직하면서도 편리하고 새로운 장소성이 느껴지길 바랐어요. 즐겨 쓰는 소재를 사용하되 노출 콘크리트처럼 변화를 줄 곳은 과감하게 분위기를 전환하면서 새로운 해석을 시도했습니다.”

 

 

노출 콘크리트와 탄화목, 통창과 기와가 어우러져 이곳의 독특한 무드를 형성한다.


대문을 열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중심 채에는 주방 겸 다이닝룸이 자리한다. 클라이언트 미팅과 식사, 직원 회의가 모두 이루어지는 핵심 공간이다. 서까래와 기둥 및 마루는 어두운 스테인을 칠한 목재를 사용하고, 벽과 가구는 길연의 시그너처인 삼베 마감에 흰색 페인트를 도장해 클라이언트가 추구하는 블랙&화이트 콘셉트를 구현했다. 특히 다이닝룸과 화장실을 구분하기 위해 세운 벽은 이곳의 백미. 유남권 작가의 옻칠 한지로 마감한 벽에 황형신 작가의 적동 도어, 500kg이 넘는 통석 세면대를 더해 하나의 거대한 아트월을 세웠다. 세 가지 물성이 모인 벽은 나머지 공간을 모노톤으로 통일한 덕분에 더욱 드라마틱하게 느껴진다. 윤건수 대표의 소개에 따르면 한옥을 방문한 누구나 가장 감탄하고 감동하는 포인트라고.

 

블랙&화이트 분위기의 침실. 허성자 작가가 왕골을 엮어 만든 침대 헤드보드, 한결 작가의 소반 책상, 김수연 작가의 모시 발이 어우러져 있다.


오른쪽 채의 침실과 욕실은 다이닝룸과 마찬가지로 블랙&화이트 콘셉트를 이어가지만, 왼쪽 채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다. 마당에서 보이는 노출 콘크리트 박공 벽의 안쪽 공간인데, 이길연 대표는 이곳을 가장 안쪽에 자리한 한식 방으로 향하는 전이 공간이자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쉬어가는 장소로 계획했다. 바닥을 한 단 낮추고 천창과 큰 창을 내 마치 반외부 공간 같은 느낌이 드는 게 포인트. 바닥과 가구, 벽과 천장까지 검은색으로 통일한 덕분에 창을 통해 드는 빛과 풍경에만 오롯이 집중할 수 있다. 가장 안쪽의 작은 침실은 한지 바닥과 벽, 한식 요와 창살과 손잡이까지 전통적 디테일로 마무리해 한옥의 정취를 응축했다.

 

 

윤건수 대표는 일주일에 3일 정도는 이곳에 들러 일도 하고 쉬기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이길연 대표와 김근태 디자이너는 28평 남짓한 한옥이었지만 완공까지 1년 가까이 걸린 쉽지 않은 프로젝트였다며 지난 시간을 회상했다. “온전히 사용할 수 있는 부재가 거의 없어 서까래나 기둥도 다시 제작하고, 한옥을 온전히 세우는 것부터 시작했어요. 한옥 짓는 대목수부터 인테리어 팀, 함께 작업한 작가들까지 1백 명 가까이 되는 이들이 하나하나 손길을 보태어 완성한 그야말로 공예 집 같은 곳입니다. 못 하나, 휴지걸이 하나까지 어느 것 하나 힘을 쏟지 않은 것이 없어요. 늘 그렇기는 하지만.(웃음)” 국가무형유산 완초장 이수자인 허성자 작가가 왕골 짜임을 한 땀 한 땀 엮어 감싼 벤치 스툴과 류지안 작가가 자개를 수놓은 테이블이 어우러진 다이닝 공간, 소반을 모티프로 만든 한결 작가의 테이블과 의자 옆으로 김수연 작가의 모시 발이 드리워진 침실, 자연의 그러데이션을 담은 허성자 작가의 화문석 침대 헤드보드까지 작품이 집의 일부로 녹아든 한옥은 “최고의 럭셔리는 공간에 투자하는 것”이라는 이길연 대표의 말을 고스란히 증명하고 있다.

 

종석뜯기 담장과 황형신 작가의 적동 도어가 한옥의 첫인상이자 엔딩을 형성한다.


윤건수 대표는 이 한옥을 한 점의 소장품처럼 즐긴다. “어쩌면 저희 집보다도 더 애착을 느껴요. 특별히 이용하는 사람이 없을 때는 평소에도 자주 와서 일도 하고, 커피도 마시며 시간을 보내곤 해요. 디콤마서촌이라는 이름처럼 이곳에 방문하는 이들 또한 책도 읽고, 음악도 들으며 재충전하는 일상의 쉼표 같은 공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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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경화 기자 | 사진 박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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