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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알레 우현미대표 정원에 인생을 심는 꽃밭의 철학자
특정 분야에서 독창적 능력을 발휘하는 이들에게 세상이 감탄하며 하는 말이 있다. “타고났다.” 정원을 중심으로 카페와 미식까지 독창적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주는 마이알레 우현미 대표의 미감에도 그 축복 같은 유전인자가 들어 있다. 매 계절 새로운 나무와 꽃이 자리 잡던 어릴 적 집에서 저마다 다른 수목의 생애 주기를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던 때부터 그녀는 이미 훌륭한 조경가가 될 준비를 했는지 모르겠다. 그때 보고 들은 야생과 신비, 그리고 고요. 그 시절의 기억으로 그녀는 집과 일터 양쪽에서 ‘종합적’ 아름다움을 만들어나간다.

이토록 감각적인 집이라니! 식물이 빚어내는 ‘초록’과 간결하고 조형적 인테리어가 맞물려 고유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우현미 대표가 최근 새롭게 둥지를 튼 이곳을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모른다. 이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는 그녀의 ‘예전 집’이 있다. 그곳에 처음 들어가 공간을 둘러보던 때의 기억이 새록하다. 장성한 아들처럼 크고 늠름한 식물들이 1~2층 곳곳에 자리 잡고, 미색 광목으로 제작한 커튼 자락 위로 빛이 조용히 영롱한 무늬를 그리던 곳. 바닥에는 카펫 여러 장이 깔려 있었고, 그 위로는 큼지막한 소파와 가구가 놓여 있었으며, 벽에는 매미를 포함해 여러 곤충을 형상화한 도자 오브제가 걸려 있었는데, 유행 아이템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공간은 그곳만의 뭉근한 질감과 분위기가 있었다. 뭐랄까? 극도로 감각적인데 편안하고, 무척 전위적인데 또 한편으로 자연스러운…. 그녀가 빠져나온 집은 이후 ‘리빙룸마이알레’라는 새로운 간판을 달고 토크부터 전시까지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다.

 

원형 거울에 비친 풍경마저 그림 같다. 그림이나 사진 액자뿐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오브제가 기분 좋은 생기와 리듬을 만들어낸다.

 

마이알레에서 수입, 소개하는 프랑스 ‘두웰Duwel’ 체어. 자연스러우면서도 세련된 컨트리 시크country chic가 콘셉트이다.


작년과 올해 봄, 리빙룸마이알레에서 진행한 <우현미의 마이리빙룸: 봄, 부러진 가지> 전시는 그녀를 한층 더 깊은 마음으로 바라보게 했다. 군산과 아산 및 과천을 포함해 전국의 산하에서 가져온 자두나무, 개복숭아나무, 산진달래, 자목련, 라일락, 매실, 꽃사과의 가지가 그 자체로 소재이자 주제이던 전시. 우현미 대표은 전지나 재개발 등의 이유로 돌연 부러져 버려진 가지를 가져다가 커다란 화분(혹은 고무 통)에 담은 후 뿌리에 물을 채우고 바깥쪽으로 이불까지 둘러주면서 부러진 가지의 개화를 도왔다. 2월 말에 시작한 전시의 기간은 총 9일. 첫날 고집스럽게 앙다문 꽃잎은 이틀이 지나 3일째 되는 날 거짓말처럼 활짝 피어났고, 전시 종료일 즈음에는 거의 모든 부러진 가지에 색색의 꽃이 매달렸다.

 

거실 벽을 가로지르는 긴 선반 위에는 그녀가 모으고 아끼는 여러 작품과 물건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제목이 안 보이도록 책등을 뒤집어놓은 것이 인상적이었는데, 요즘의 MZ 세대가 책을 이렇게 정리한다니 우현미 대표의 감각이 새삼 더 젊게 느껴진다.


이런 전시는 뭐라고 해야 할까? 달이 차고 기울듯이 어떤 생명의 생애를 경이로운 마음으로 지켜보게 하는 극장 같은 무대랄까…. 그 과정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자연의 순환과 본성, 그것이 은유하는 인생에 대해서도 여러 상념이 떠오른다.

 

거실에서 묵직한 존재감을 발휘하는 소파와 그 위에 설치미술처럼 자리 잡은 조명. 누웠을 때 ‘아, 편하다’ 싶은 소파가 가장 좋은 소파라 생각한다.

 

2층에서 내려다본 1층 거실의 한쪽 풍경. 배전함도 가리고, 공간에 조형적 리듬도 만들 겸 아예 원통형 기둥을 만들어 넣은 것이 압권이다.


전시장에서 우현미 대표가 들려준 얘기를 옮겨보면 이렇다. “여기저기 꽃이 보이는 3~4월이 되어야 봄이라고 생각하지만, 제게 봄은 2월이에요. 마당의 낙엽을 쓸다 보면 땅에 작은 새싹이 녹색으로 송송 올라와 있어요. 그걸 신비롭게 쳐다보다가 추울까 봐 다시 낙엽으로 덮어주지요. 나무가 가장 열심히 살아가는 계절은 오히려 겨울이에요. 늦가을을 지나면서 모든 잎을 다 떨어뜨리면 그때부터 꽃눈을 만드느라 엄청 바쁘거든요. 나무도 겨울에는 쉰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분주해요. 그렇게 열심히 꽃눈을 만들었는데, 전지를 하거나 재개발이 되면서 부러진 채로 버려지면 정말 안타깝잖아요. 이 전시는 나무들이 그렇게 열심히 산 시간에 대한 헌사예요. 9일간 꽃이 서서히 피고 지는 모습을 함께 보는 거죠. 닫혀 있던 꽃봉오리가 톡 터질 때 미세하게 소리가 난다는 거 아세요? 밤에 가만 듣고 있으면 톡, 툭, 탁 하고 꽃망울이 터지는 소리가 들려요. 그때가 제일 황홀해요. 이렇게 같은 조건으로 가져다두고 볕을 쬐고 물을 줘도 자두꽃이 먼저 피고, 복숭아꽃이 마지막에 피는 것도 신기하고요. 다 정해진 본성과 순서가 있어요. 사람 사는 것과 비슷하죠.”

 

큰 덩어리들의 조화를 중시해 공간을 꾸미지만, 그 사이사이 아기자기한 소품을 놓는 것도 좋아한다. 든든한 뒷모습까지 볼 수 있어 좋아하는 캣 우먼 인형.

 

이런 말을 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끌리지 않을 수 있을까? 조경가를 만나 인터뷰를 하다 보면 ‘꽃밭의 철학자’가 아닌가 싶을 때가 많은데, 그녀의 말과 생각 역시 융숭한 구석이 많았다. 그리고 이 집의 취재가 결정되던 순간부터 나는 어서 빨리 그녀의 ‘뿌리 미감’을 듣고 싶었다.

 

아르떼미데에서 세계적 건축가 헤어초크&드 뫼롱과 협업해 선보인 ‘파이프Pipe’ 조명으로 힘을 준 주방. 거실 쪽으로는 원형 식탁과 미스 반데어로에의 캔틸레버 체어를 매치했다.


아버지의 정원이 가르쳐준 ‘종합적’ 아름다움
“유년 시절에 아버지가 가꾸시던 정원을 떠올려보면 한 해도 같은 때가 없었어요. 청파동에 있는 일본식 가옥에서 살았는데, 어떤 해에는 연못이 생기고 또 다음 해에는 새로운 나무와 꽃이 들어와요. 자리 잡았는가 하면 이번에는 또 돌이 들어오고요. 아버지의 정원은 한 해에 끝나는 게 아니었어요. 개도 좋아하셔서 여섯 마리나 키우셨고 커피 애호가이기도 해서 쌀을 살 돈으로 커피 드리퍼를 사오기도 하셨지요. 그런 날에는 엄마랑 심하게 싸우고요. 예쁜 유리잔을 사는 사람도, 정원에 있는 장미꽃을 잘라와 화병에 꽂는 사람도, 일요일이면 음악을 틀어놓고 커피를 내리는 사람도 아버지였어요. 풍기에서 인삼밭을 하던 할아버지도 대단한 멋쟁이셨는데, 그런 영향을 받으신 것 같아요. 그런 아버지를 보면서 엄마는 속이 타셨을 거예요. 자식 입이 줄줄이인데 남편은 한량이니…. 올드카까지 사셔서 저희가 ‘미쳤다’ 하면서 속으로 아버지를 비난했는데, 그래도 저랑은 사이가 좋았어요. 아버지를 따라 남대문 꽃시장에 자주 갔고, 꽃을 사오는 길에 외국 식자재를 팔던 ‘도깨비시장’에도 꼭 들렀어요. 좁은 골목에 있는 곳이라 길을 잃어버릴까 봐 아버지 손을 꼭 잡고 따라다니던 기억이 나요. 집에서는 둘째 언니랑(패션 디자이너 우영미가 그 언니다) 인형 놀이를 그렇게 했어요. 언니는 정말 인형 옷을 목숨 걸고 만들었어요.(웃음) 아버지가 양복에 신는 실크 양말을 갖다가 목을 잘라서 홀터넥 같은 인형 옷으로 만들었다가 엄마에게 들켜 혼쭐이 난 적도 있었고요. 과자 종합 선물 세트가 들어오면 과자를 다 빼서 인형 방으로 만들어주고요. 저는 그런 언니 옆에서 조수 역할을 했지요. 그런 시간 덕분에 꽃도 좋아하고 옷도 좋아하고 집도 좋아하는 사람이 됐어요.”

 

유리블록과 소박한 느낌의 나무 장, 컬러풀한 가구와 조명의 조화가 아름다운 주방 쪽 풍경.


옷보다는 꽃을 좀 더 좋아하던 그녀는 결국 서울대 원예학과에 입학했다. “엄마는 제가 의대에 가기를 원하셨어요. 우직하게 공부하는 스타일인 데다 체력도 돼 보이고 하니까.(웃음) 그때는 원서를 써서 학교에 직접 내는 방식이었는데 엄마가 원서까지 다 써놨더라고요. 늦은 시간이었는데 학교로 가 선생님을 붙잡고 ‘저는 의대 안 갈래요’ 하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선생님이 서울대 입시 요강 책을 주시더라고요. 그즈음 둘째 언니가 뉴욕 포드 파운데이션에 다녀왔어요. 실내 조경의 시초가 된 곳으로, 건물 로비에 근사한 큰 나무와 숲이 있죠. ‘나도 나중에 이런 곳을 가볼 수 있겠지?’ 막연하게 생각했지요. 잠시 생물과도 눈에 들어왔는데, 둘째 언니한테 물어봤더니 거기 가면 쥐 배도 째야 하고, 냄새도 고약하고, 종일 실험만 해야 한다는 거예요. 자연스럽게 원예과로 결정이 났죠.(웃음) 엄마는 달가워하지 않으셨어요. 거기 나와서 할 게 없는데 어쩌려고 그러냐며 등록금도 안 줄 거라고 엄포를 놓으셨지요. 그런데 대학에서 원예과를 다니다 보니 제가 원하던 곳은 조경과더라고요. 모집 요강 책자에서 원예과 바로 뒤에 조경과가 있었는데 한 장을 더 못 넘기고 거기서 멈춘 거죠. 조경을 좀 더 체계적으로 배우고 싶어 홍대 대학원에 들어갔고, 그렇게 지금의 삶을 살게 됐습니다.”

2층 발코니에서 계단으로 내려가면 바로 가닿는 정원. 이런저런 식물의 생육과 성장을 살펴보는 실험실이기도 하다.
닫혀 있던 꽃봉오리가 톡 터질 때 미세하게 소리가 난다는 거 아세요? 밤에 가만 듣고 있으면 톡, 툭, 탁 하고 꽃망울이 터지는 소리가 들려요. 그때가 제일 황홀해요. 이렇게 같은 조건으로 가져다두고 볕을 쬐고 물을 줘도 자두꽃이 먼저 피고, 복숭아꽃이 마지막에 피는 것도 신기하고요. 다 정해진 본성과 순서가 있어요. 사람 사는 것과 비슷하죠.

크고, 야성적이며, 원초적인 아름다움
그녀가 구현하는 정원은 아기자기하게 예쁜 정원은 아니다. 마스터피스라 할 수 있는 더현대의 조경을 한번 볼까? 지하 2층부터 지상 6층까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녹지를 볼 수 있도록 했는데, 위로 올라갈수록 녹지가 무성해지고 3층에서는 약 12m에 이르는 인공 폭포까지 만날 수 있다. 그야말로 크고 압도적인 ‘녹색’. 2014년, 첫째 언니이자 마이알레의 수장 역할을 하는 우경미 대표와 함께 만든 라이프스타일 농장 과천 마이알레 역시 온실과 카페, 정원과 나무가 무성하게 어우러지며 큼직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 “우리 집에서는 그나마 제가 제일 아기자기한 걸 좋아하는 편이에요.(웃음) 가족끼리 모여 이야기를 하다 보면 ‘볼드’한 걸로 서로 취향이 맞는 부분이 있어요. 아버지도 그랬거든요. 다른 집에는 자개농이 있던데 저희 집에는 쇠로 된 캐비닛이 있었어요.”

 

놀랍도록 똑똑한 우현미 대표의 반려견 ‘생강이’와 함께. 따로 부르지 않았는데도 거의 모든 사진에 함께했다.


그녀의 집 역시 이런 취향이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주방부터 저 끝의 베란다까지 길이가 무려 17m. 긴 선반이 벽면을 가로지르고 끝에는 야생이라 해도 될 만큼 무럭무럭 자라는 나무들이 작은 숲을 이루었다. 화분 역시 큼직한데 안쪽에 파이프를 매립해 물을 많이 줬다 싶으면 펌핑으로 간단히 빼내기만 하면 된다. 하이라이트는 식탁 앞쪽에 있는 둥근 기둥. 배전함이 있던 곳으로 지저분한 선도 가릴 겸 주변으로 둥그렇게 벽을 치고 외부를 붉은색 벽돌로 마감했다. 소파 옆 테이블은 카시나에서 구입한 1970년대 빈티지 제품. 2층 베란다의 철제 울타리 한쪽을 뚫어 1층 정원으로 쉽게 내려갈 수 있게 한 부분도 돋보였다. 촬영을 앞두고 그녀가 특유의 수수한 미소를 지으며 하던 말이 떠올랐다. “화장은 안 해도 되겠지요? 편하게 할게요.” 그 말이 왜 그렇게 세련되게 들리던지. 유년 시절에 각인된 아름다운 기억과 호흡으로 현재를 살아내는 것도 거듭 보기가 좋았다. 참, 오는 가을에 개봉할 예정인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 수가 없다>에서도 그녀의 감각을 엿볼 수 있다. 정원이 비밀과 폭력, 인생과 우주의 메타포가 될 이번 영화에서 그녀가 우현미 대표와 함께 만든 정원은 그 자체로 강렬한 매혹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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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성갑(갤러리 클립 대표, <건축가가 지은 집> 저자)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5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