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과 한지, 허명욱 작가의 작품이 아름답게 레이어링된 한옥의 한 장면.
요즘의 북촌은성수동못지않게 하루하루가 새롭다. 입지와 전망 한국의 고유한 풍경을 고루 갖춘 이곳에는 매일 수많은 관광객이 몰려들고, 그 덕분에 한옥은 점점 더 브랜드의 각축장이 되고 있다. 앞다투어 플래그십을 오픈하고, 전시를 열거나 신제품을 공개히는 무대로 삼기도 한다. 시시각각 변호무쌍한 북촌 풍경 속에 하이엔드 주거 브랜드 레이어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하이엔드 복합 주거공간 레이어 청담으로 성공적 데뷔 무대를 치른 이들의 두 번째 프로젝트는 바로 한옥. 지난해 오픈해 문화예술을 소통하는 공간으로 운영 중인 레이어 한옥 아뜰리에에 이어 이번에는 레이어라는 브랜드를 다양한 방식으로 경험하는 215m² 규모의 메인 한옥, ‘레이어 한옥 하우스X허명욱이 문을 열었다.
창과 문을 이용한 중첩, 정원을 매개로 연결된 안팎 등 한옥의 본질을 간직한 안채에 허명욱 작가의 가구와 기물이 아름답게 놓였다.
‘‘레이어 청담 이후 어떤 공간을 기획해보면 좋을지 고민하다 북촌 한옥까지 이어졌어요. 단순히 스테이가 아니라 레이어와 결을 같이하는 브랜드, 작가와 함께 만들어갈 콘텐츠를 보여주는 공간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공간사업부를 이끄는 레이어 송현빈 부사장은 오랫동안 기획과 브랜딩 프로젝트를 해오며 좋은 공간과 적임자를 알아보는 안목을 키워왔다. 한옥 두 채도 무엇을 할지 방향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지만 느낌이 좋아 ‘일단 질렀다’고. 그리고 이곳의 역할을 고민하며 레이어 청담의 인테리어를 맡았던 든든한 파트너 샐러드보울 스튜디오에 다시 한번 디자인을 의뢰했다. 구창민 대표 역시 이 한옥을 보고 남다름을 느꼈다.
별채의 다이닝룸. 조명은 허명욱 작가가 레이어 한옥을 위해 새로 만든 것. 김진욱 장인이 백토로 미장한 벽에서 은은하고 자연스러운 그러데이션을 감상할 수 있다.
”가장 인상적이던 건 번화한거리에서 살짝 비켜나 조용히 자리 잡은 한옥에서 느껴지는 기품이었어요. 소음이 적은 골목인데, 그마저도 대문 안에 들어오면 사라져요. 입구에서 여러 단의 계단을 올라 높은 대지에 한옥이 우뚝 서 있는 모습도 멋졌고요. 북촌 한옥에서는 위에서 아래의 한옥을 내려다보는 뷰 가 대부분인데, 반대로 위쪽을 올려다보는 뷰도 독특했어요. 여러모로 지금까지 봐온 한옥과는 다른느낌이었습니다.” 두 사람이 프로젝트에 돌입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기준은 다른 한옥과 비슷한 장소가 되지 말자’는 것이었다.몇 차례의 시행착오를 거치며 보존이라는 키워드를 택했고, 여기에 허명욱 작가의 협업이 더해졌다.
침실에서 바라다보이는 안채 모습. 책상이 놓인 박스 공간은 샤워실, 욕실과 함께 새로 추가했다.
“고대하던 첫 한옥 작업이라 처음에는 힘이 많이 들어갔어요. 현대적 재료와 기법을 시도하기도 하고, 다른 한옥에는 없는 장면을 만들려고 애썼죠. 그런데 새로운 것을 넣을수록 오히려 다른 한옥과 비슷해지는 거예요. 무엇을 남길지에 대한 고민이 얕았던 거죠. 여러 고민 끝에 방향을 완전히 바꿨습니다. 보존에 초점을 맞추고 한옥에서만 볼 수 있는 장면을 담기로 했어요. 채의 배치, 창과 문 너머로 마주치는 시선, 내외부의 연결 같은 것요.” 구창민 대표는 한옥의 본질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다시 공간을 구성했다. 실내는 불필요한 요소를 덜어내고 별채와 본채만 두어 동선을 명료하게 정돈했다.
채와 창이 중첩되며 나타나는 레이어링의 순간. 허명욱 작가의 ‘아톰’과 눈을 맞추는 것은 덤이다.
별채는 사람들과 교류하는 공간으로, 본채는 프라이빗하게 생활하는 공간으로 구분하고, 채의 안팎을 연결하는 정원을 배치했다. 청림, 간정, 후정 세 개의 정원은 한옥의 어디에서든 시선에 닿으며 레이어처럼 곳곳에서 등장한다. 마감 역시 새로운 재료나 기법에 집중하기보다는 철저히 복원하는 자세로 접근했다. 재료는 한지와 백토, 마루로 단순하게 하되 장인들과 한 땀 한 땀 정성껏 작업했다. 경복궁 복원 사업에 참여한 김진욱장인의 백토 미장과 꽃담의 십장생, 한 지 장인이 한장씩 이어 붙인 벽이 그 결과물이다. 여기에 허명욱 작가의 작품이 더해지며 한옥의 마지막 레이어가 완성되었다. "여러 작가와 협업해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좋았겠지만 콘셉트에 맞춰 한 사람의 세계에 집중하는 방향을 택했어요. 허명욱 작가님의 작업은 한옥의 본질과 닮아 있었고 레이어라는 이름에도 잘 어울렸죠. 작가님의 작업실 같은 모습을 상상하며 빈티지 기구를 제외하고 모든 집기는 허명욱 작가님께 의뢰했습니다.” 한옥을 고칠 때는 보존이 기본이다. 서까래 하나, 기와 한 장 도 버리지 않고 정성스레 보관했다가 앞선 공정이 마무리된 후에 다시 올린다. 과거의 것에 새로운 요소가 더해져 지금의 버전이 탄생한다. 허명욱 작가의 작업도 그렇다.
다도방 속 허명욱 작가의 테이블. 금속 표면을 두드려 질감을 냈다. 이곳 옆에도 개울물이 흐르는 작고 아름다운 정원이 있다. 조경은 오픈니스에서 작업했다.
번화한 거리에서 살짝 벗어나 조용한 골목에 자리한 레이어 한옥 하우스×허명욱. 오른쪽 꽃담은 김진욱 장인이 작업한 것.
“제 작업은 시간을 물질화하는 거예요. 보이지도, 잡을 수도 없는 것을 쌓아 올리는 거죠. 기본 뼈대를 만드는 데만 반년가량 걸 리고 그 위에 계속 색을 입히면서 레이어링을 합니다. 한옥과도 닮은 모습이 있어요.” 그는 기존에 해온 작품 중 한옥의 정서와잘 어울리는 것을 고르고 아쉽던 부분을 얹어가는 식으로 작업했다. 티 클래스를 위한 소반, 침실의 테이블과 조명 파우터룸의 붙박이장, 벽에 걸린 회화 작품까지 그가 쌓아온 시간이 한 집 한 집에 담겨 있다. 허명욱 작가가 작업한 잔과 그릇 같은 기물을 직접 사용하는 것은 이곳에서 누릴 수 있는 호사 중 하나이기도 하다. "안방과 별채의 조명은 레이어 한옥을위해 새로 작업했습니다. 제가 한옥을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은 바람이 드나드는 풍경이에요. 조명이 바람에 자연스럽게 흔들리는 모습이었으면 해서 가볍게 만들었습니다. 틀을 제작하고 그 위에 여러 겹 칠을 바른 다음 칠과 삼베 부분만 남기고 떼어내는 건칠 방식으로 작업했습니다.”
주방을 채우는 허명욱 작가의 아름다운 기물들. 그가 만든 그릇과 잔을 사용하는 것은 이곳에서 누릴 수 있는 호사 중 하나다.
샤워실과 화장실 사이의 파우더룸. 붙박이장도 허명욱 작가가 작업했다.
안채의 통로에 걸려 있는 모시 발은 김수연 작가의 작품.
허명욱 작가, 구창민 대표, 송현빈 부사장 세 사람의 조화로 완성한 레이어 한옥 하우스×허명욱.
경사진 지대는 손님을 환대하는 정원으로 변신했다. 대문에서 올려다보이는 한옥과 ‘아톰’이 멋스럽다.
한옥의 가치는 정교한 꽃담이나 완벽한 미장, 기둥의 빼어난 배홀림에만 있지 않다. 오히려 이 모든 요소가 한데 어우러져 빚어내는 조화에 있다. 이곳 역시 한옥에 대해 같은 철학을 추구하는 세 주체(브랜드, 디자이너, 작가)가 만나 이룬 조화의 결정체다. "잘못된 방식으로 복원한 한옥을 볼 때마다 마음이 좋지 않았어요. 그것이 정답처럼 여겨지는 상황을 마주할 때는 더욱 안타까웠고요. 그래서 이 프로젝트는 모두 우리의 것을 제대로 보여주자는 마음으로 함께했습니다. 제 작업도 이곳에 그저 스며들어 있어요. 협업의 이상적 결과물은 어느 하나가 튀지 않고 잘 녹아드는 모습이라 생각하는 데, 그런 점에서 이번 프로젝트는 최고의 합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이름처럽 협업의 조화를 통해 아름답게 완성한 레이어 한옥 하우스X허명욱은 앞으로 그들과 결이 맞는 브랜드, 작가와 협업해 한옥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줄 예정이다. 또 다른 주체가 더해지며 새롭게 레이어링한 장면은 어떤 모습일지 기대하며 지켜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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