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해주세요.
본문 바로가기
푸드 디렉터 박수지 새것은 헌것이 되고, 헌것은 다시 새로움이 된다
새것은 헌것이 되고, 헌것은 다시 새로움이 된다 어떤 공간은 세월을 넘나들게 하는 힘이 있다. 박수지는 집이라는 거대한 플레이트 위에 자신만의 경험이라는 레시피를 이용해 익숙하면서도 독특한 방을 만들었다.

수지 씨는 한 달에 한 번, 지인들을 초대해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며 시간을 보낸다.

단어는 세월에 따라 의미와 쓰임이 달라지는데, 빈티지란 단어도 그렇다. 본래 포도 수확을 뜻하는 라틴어 빈데미아 vindemia에서 출발한 이 말은 포도밭 밖으로 나가며 가구나 디자인, 패션과 결합해 문화 현상을 서술하는 힘을 획득했다. 오늘날 빈티지는 단순히 시간적 과거로 회귀가 아닌, 특정 시대의 문화적 의미를 곱씹어보고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는 미적 시선을 의미한다. 푸드 디렉터 박수지의 집은 바로 이 빈티지 소품으로 가득하다.

“무역업에 종사하는 아버지가 출장길에서 돌아올 때 생경한 물건을 많이 사다주셨어요. 유년 시절부터 자연스레 국적과 세월을 불문하는 빈티지 소품들에 둘러싸여 지냈죠.” 부모님의 여권에 찍힌 도장 숫자가 늘어갈수록 수지 씨의 집 안 곳곳에도 여러 소품이 배치됐다. 부지불식간에 빈티지에 대한 향수를 마음속 수납장에 차곡차곡 진열했다.

과거 수지 씨가 동생과 함께 운영한 브런치 카페 67소호를 기억하며 지인이 만들어준 러그.

매치스패션에서 즉흥적으로 구입했지만 소확행이된 지노리 화병.

 

빈티지 재떨이. 현재는 수지 씨가 좋아하는 초콜릿 접시로 활용 중이다.

수지 씨가 자주 가던 단골 카페 대표님이 선물해준 빈티지 시계. 현재는 수지 씨의 작업 테이블 위에 자리한다.

하나의 빈티지 소품이 서울 성북동에 오기까지 수많은 시간을 경유했듯, 수지 씨도 풍성한 사연을 지니고 있었다. “원래는 전공을 살려 뉴욕은행 서울지점에서 일했어요. 그렇게 20대를 보내는데 문득 다른 삶을 살고 싶어졌어요.” 요리를 해본 적 없지만, 그동안 맛본 미식 문화가 알게 모르게 몸에 스며들어 있었다. 수지 씨가 정성스레 만든 음식은 지인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그들의 탄성을 지도 삼아 푸드 디렉터의 길로 들어섰다. 동생과 함께 영국 브런치 카페를 콘셉트로 한 ‘67소호’도 운영했다.


빈티지 슈타이프. 이름이 수지라고 한다. 

3년 전 찾은 새 보금자리에서 수지 씨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장소는 테이블이다. “처음부터 이 자리에 테이블을 놓을 생각은 없었어요. 이것저것 공간을 채우다 보니 테이블을 놓을 만한 마땅한 자리가 이곳뿐이었죠. 근데 막상 놓고 보니 좋더라고요. 볕도 잘 들고 바깥 풍경을 보며 음악도 듣고 새소리도 듣는 습관이 생겼어요.” 의도치 않은 테이블 배치가 마지막 퍼즐 조각처럼 딱 들어맞았다.


수지 씨가 이 집을 보고 마음에 든 것 중 하나는 주방의 초록색 타일이다. 보자마자 내 집이다 생각하며 계약했다고. 핑크와 민트 컬러 벽은 과거 프랑스 여행에서 묵은 숙박 시설의 기억을 떠올리며 칠했다.

요소가 많은 거실과 반대로 침실은 온전한 쉼에 초점을 맞췄다. 침대 주변에 자주 읽는 책과 오래된 애착 인형 등을 배치했다.

“테이블은 67소호를 운영할 때 손님들 좌석으로 쓰던 거예요. 영국 빈티지 숍에서 운 좋게 구매한 건데 지금은 콘텐츠 제작 및 개인 작업 공간으로 요긴하게 쓰고 있죠.” 과거 다른 장소에서 다른 목적으로 사용한 테이블과 조명은 수지 씨 집 안에 정착하며 새 용도를 부여받았다. 전 세계를 돌며 맛본 미식 문화의 잔향이 그의 몸에 여전히 배어 있는 것처럼. 

수지 씨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다. 영국 빈티지 숍에서 구매한 테이블 위에는 수지 씨와 부모님의 추억이 담긴 빈티지 아이템이 자리했다. 최근에는 테이블에 앉아 집필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과거를 지표 삼아 오늘을 그리는 빈티지한 라이프스타일은 주방에도 역력하다. “보통 주방 싱크대 위치가 출입문을 향한 곳을 찾기 쉽지 않아요. 주방의 초록 타일도 흔히 보기 어렵고요. 이전에 살던 분의 취향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부분인데, 이게 너무 마음에 들었어요.” 주방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되, 핑크와 민트 컬러로 벽을 칠해 자신만의 부엌으로 재탄생시켰다.


수지 씨가 모아오던 것 중 각별히 아끼는 것을 모아놓았다. 집안 내부에 벽지와 핀이 있어 액자와 소품을 걸어 놓기도 한다.

에릭 로메르 영화의 미장센에 감동해 집 안 곳곳에 영화 장면을 떠오르게 하는 오브제를 배치했다.

독일,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 등 유럽의 각종 소품을 모아놓은 캐비닛.

작업과 휴식이 공존하는 빈티지 테이블 위에서 그가 다시금 새롭게 하는 일은 집필이다. “2016년에 요리책을 한 권 냈는데 후속작을 준비하고 있어요. 지금은 사라졌지만 67소호를 운영했을 때가 인생에서 즐거웠던 순간 중 하나였거든요. 기록을 남기면 좋을 것 같아 그 시간을 떠올리며 글을 쓰는 데 시간을 할애하고 있어요.” 새로운 것은 오래된 것이 되고, 오래된 것은 새로움으로 다시 돌아온다. 수지 씨는 집이라는 거대한 플레이트 위에 자기만의 경험이란 레시피로 익숙하면서도 독특한 자신의 공간을 만들어가고 있다.


<행복> 7월호를 통해 더 많은 콘텐츠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E-매거진 보러가기

김승훈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5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