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적 스타일이 싫었다는 윤용식·김단비 부부는 자신들의 특색이 담긴 포근한 집을 바랐다. 그들의 선택은 원목 마루와 비정형 형태인 이사무 노구치의 커피 테이블. 내추럴한 분위기 속 인더스트리얼한 유리 중문이 포인트다.
같은 다세대주택이라도 빌라는 아파트와 전혀 다른 느낌이다. 특히 화단과 가까운 1층 세대라면 아파트보다는 오히려 주택에 가깝다고 느껴질 정도. 윤용식·김단비 부부도 그런 집에 살고 있었다. "작년 봄, 결혼 준비와 함께 신혼집을 고민할 때 장인어른이 세를 주고 있던 집을 흔쾌히 내주셨어요. 아내가 학창 시절 살던 곳이라 하더라고요. 꽤 오래된 집이다 보니 노후 문제가 있어 레노베이션 공사는 당연한 절차였어요. 오래 살 집이니 기초 설비부터 저희가 원하는 디자인까지 다시 손대지 않아도 될 만큼 꼼꼼하게 고치려 했습니다.'’ 이때부터 남편 윤용식 씨의 철저한 분석과 계획이 시작되었다.
이 집의 하이라이트인 발코니. 옆문을 통해 정원과 이어진다.
부부가 요청한 아일랜드의 좌석. 전골 형태 요리를 좋아하는 부부에게 딱 맞는 다이닝 구조다.
누수를 잡기 위한 천장 공사부터 단열 보강한 벽 및 창호 공사까지 심혈을 기울여 고친 발코니. 중앙에 배치한 텍타의 M21 테이블과 마당이 어우러져 부부의 상상 속 풍경이 실현되었다. 포인트는 스틸 액세서리가 있는 유리 중문.
꼼꼼하다는 말은 용식 씨에게 딱 맞는 표현이 아닐까. 그는 직접 리빙 디자인 분야를 공부하며 미팅 전부터 원하는 집의 모습을 철저히 구상했다. 인테리어 콘셉트는 물론, 각 실을 활용할 방법과 사용하고 싶은 기구와 가전, 이들을 놓을 위치까지 계획한 것이다. 인테리어업체를 고를 때도 용식 씨의 섬세함은 빛이 났다. 입소문 난 동네 인테리어업체부터 통합 인테리어 서비스 기업, 개인 디자인 스튜디오까지 예산의 제약 없이 폭넓은 후보를 모은 뒤 세 가지 조건에 따라 업체를 추렀다. 먼저 원하는 디자이너 가구 리스트가 있던 상황이기에 디자이너 가구에 익숙한 곳이어야 했으며, 부부가 추구하는 스타일에 부합하는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있으면서 사후 관리에 대한 걱정도 없어야 했다. 세 가지 조건에 모두 부합한 것은 o!h 스튜디오. 특히 포트폴리오 중 부부가 원하던 집과 거의 유사한 케이스가 있었기에 망설임 없이 노경륜 대표와 미팅 일정을 잡았다. 노경륜 대표는 부부와 만남을 이렇게 회상했다. “제안한 디자인과 가구 중 수정하거나 거절한 안이 없을 만큼 쿵짝이 잘 맞았어요. 명확한 청사진을 공유해주셨기에 기능한 일이었죠. 큰 틀은 물론, 각 공간별 실용적 니즈, 일부 가구와 마감재까지 정해져 있으니 두 분 머릿속에 있는 그림을 최선을 다해 구현하면 되었거든요. 유일하게 힘들었던 건 기초공사였어요.” 설계 도면을 보관하고 있는 곳이 없을 만큼 연식이 오래된 집이었다. 부부와 노 대표 모두 수리할 곳이 많으리라 예상은 했으나, 막상 철거하고 보니 생각보다 공사 범위가 넓었다. 천장 누수부터 발코니 영역의 단열, 화장실 배수관 교체까지 하게 된 것. 튼튼하게 기초를 다진 후에는 모든 일이 일사천리였다.
안방에는 침대와 이불장, 간단한 암체어만 두었다. 특히 붙박이장의 전형적 형태에서 벗어난 이불장이 창문 및 제작한 헤드보드 라인과 깔끔하게 연결된다.
서재는 싱그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재택근무용 공간을 넘어 1인용 토고 소파에 앉아 만화책도 보고 쉴 수 있게 계획했다. 창밖의 풍경을 조금도 가리고 싶지 않아 책장도 높이가 낮은 제품을 선택했다.
삶의 구조 계획한 부부, 집의 감각을 완성한 디자이너
이들의 첫 보금자리는 삼성동의 43 평형 빌라. 동마다 작은 마당이 딸린 곳인데, 암묵적으로 1층 세대가 각 집의 앞쪽 영역만 사용하고 있다. 덕분에 1층 세대에는 마당과 연결된 널찍한 발코니가 있었는데, 윤용식·김단비 부부는 이곳이 이 집의 하이라이트라 생각했다. “우리나라 집에서 찾아보기 힘든 구조잖아요. 양면의 창으로 정원이 내다보이니 넓은 테이블을 두어 다이닝 공간처럼 꾸미겠노라 마음먹었죠. 둘 다 ‘아파트’ 하면 떠오르는 전형적 구조와 디자인은 피하고 싶었거든요. 매끈하고 깔끔한 것보다는 조금은 러스틱한 너무 세련된 분위기보다는 오히려 투박한 쪽을 원했어요."
욕실 밖에 건식 세면대를 만들며 넓어진 안방 욕실. 샤워 부스에 조적 벽을 반만 쌓아 개방감이 느껴진다.
부부의 집을깔끔히 수납한 드레스룸. 가방, 청소기, 세탁기 등 기능에 따라 사이즈를 맞췄다.
부부의 계획을 완성한 건 노 대표의 감각이다. 먼저 마감재로는 원목 마루를 바닥에 깔고 벽에는 도장 질감과 유사한 텍스처의 벽지를 사용했다. 톤온톤으로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곳에는 각 실의 역할에 맞게 타일, 제작 및 디자인 가구 등으로 포인트를 주었다. 좌판이 깊고 넓은 라운지형 소파 앞으로 비정형 형태의 이사무 노구치의 커피 테이블을 두고, 주방에는 가장자리를 따라 라인 디테일을 더한 제작 기구와 표면에 굴곡이 있는 작은 타일을 더한 것처럼 말이다. 발코니에는 계획대로 텍타의 M21 다이닝 테이블을 두었다. 마당이 포인트인 만큼 창호를 고를 때도 신경 썼는데, 단열 성능이 좋으면서 정원으로 향하는 시야를 가리지 않도록 창 분할 이 최소화된 이중창을 찾았다. 이후 조경업체도 따로 선정해 정원을 꾸몄는데, 이제는 부부는 물론 집에 놀러 온 친지들 모두가 부러워하는 공간이라고 한다. “정원에는 아내 유년 시절의 흔적이 남아 있어요. 이 집을 처음 장만했을 때 장인어른이 식재했다는 소나무가 아직 자라고 있거든요. 그래서인지 아내도 이곳을 가장 좋아해요. 초반에는 주방의 아일랜드를 두고 매번 이 테이블에 저녁을 차렸답니다.(웃음)"
방 세 개는 계획대로 활용했다. 마스터 베드룸을 안방으로, 남은 두 방 중 더 넓고 마당과 맞닿은 곳을 서재로 정했다. 나머지 방 전체를 드레스룸으로 꾸민 건 수납 문제도 있지만, 외출복을 침실까지 가져오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서다. 드레스룸으로 사용하기에 여유로운 면적이었기에 치수를 확인해 세탁기가 들어갈 영역까지 설정했다. 노 대표의 추천에 따라 가장 달라진 곳은 서재다. 현관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문의 위치가 중문 바깥으로 밀려난 것. 처음에는 걱정도 많았다. ‘‘나중에 이 방을 아이 방으로 쓸 생각이었거든요. 유년기에는 현관과 연결된 위치가 걱정됐고, 나중엔 유리문이라 프라이버시가 부족하지 않을까 싶었죠.” 하지만 홈캠, 커튼 등 다양한 보완책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 이 제안을 받아들였고, 결과적으로 집의 인상이 한결 시원하게 바뀌었다.
안방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부분은 다름 아닌 화장실. 반쯤 세운 가벽과 마루로 변기와 세면대, 욕조와 샤워 부스가 나뉘어 구성되어 있었는데, 디자인도 독특하지만 많은 요소가 있다 보니 변기와 세면대가 너무 붙어 있었다. 지금은 주방과 비 슷한 디자인의 타일과 빈티지한 수전을 사용해 분위기도 바뀌고 실용성도 높아졌다. “이 집에 대한 만족도는 100%예요. 사계절을 다 지내고도 아쉬운 점이 하나도 없거든요. 집의 원래 모습을 아는 장인어른과 장모님도 완성된 모습을 보시고는 앞으로 노 대표님께 공사를 맡겨야겠다 말씀하실 정도로 모두가 만족하고 있습니다.'’ 필요를 분석한 뒤 그에 맞춰 다듬은 부부의 집은, 집을 고치는 일이 단순히 예쁜 공간을 만드는 작업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기능과 구조, 감정의 흐름까지 스스로 정의하고 구축해가는 일. 이 집은 그 과정을 기꺼이 감당한 이들이 만들어낸 일상의 형태다.
오스튜디오는 노경륜 대표가 운영하는 실내 인테리어 전문 스튜디오다. 공간 구조와 삶의 방식을 함께 설계하는 데 집중한다. 특정 스타일을 따르기보다 사용자 고유의 생활 방식과 감각에 맞춘 솔루션을 제안한다. 주로 주거 공간을 진행하며, 절제된 미감과 구조적 사고가 돋보이는 작업으로 사용자의 취향을 정교하게 시각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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