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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먼트 라이프 흙 내음을 밑고 산다
아파트라는 한계 안에서 자연과 하나 되는 방법을 극대화한 곳. 네 식구가 함께 있을 때도, 각자 시간을 보낼 때도 풍경 속에서 일상을 보내도록 고친 김지민 · 윤혜진 부부의 144m2 아파트는 주택처럼 눈과 귀와 코로 사계절을 만끽할 수 있는 집이다.

김지민 씨 집에서는 어느 공간에 있어도 벚나무를 볼 수 있다. 봄에는 꽃, 여름에는 녹음, 가을에는 단풍, 겨울에는 설경을 즐길 수 있다는 게 그가 소개하는 이 집의 자랑거리다.
 
당신의 안식처는 어떤 모습인가? 김지민 씨는 이 질문에 명확하게 답하는 사람이었다. 바로 자연과 맞닿아 있어야 한다는 것. “안식은 편히 쉰다는 뜻이잖아요. 당연히 마음이 편안한 게 가장 중요해요. 어르신들이 ‘사람은 흙을 밟고 살아야 된다’고 말씀하시는 게 사실 의학적 근거가 있거든요. 그래서인지 저도 항상 자연과 함께하는 집에 대한 열망을 갖고 있었어요.” 그 열망에는 부모님과 주택에서 살아본 경험이 큰 역할을 했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흙 내음을 맡다 보면 안정감까지 느껴졌다고. 하지만 주택 관리에 우려를 표한 아내 윤혜진 씨를 위해 아파트 안에서 주택을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김지민 씨와 아내 윤혜진 씨. 캠핑, 화분 키우기가 취미일 만큼 부부 모두 자연과 맞닿은 삶을 지향한다. 이 집은 그 결실인 셈으로, 주방에 팔맥의 후드를 꼭 사용하고 싶던 이유도 덩굴식물과 디스플레이한 모습에 반했기 때문이다.
김지민 씨가 바란 주택 같은 집의 핵심은 트인 공간이었다. 처음에는 탁 트인 뷰를 찾아 고층으로 올라갔다. “당시 살던 집은 거실 양쪽의 발코니를 확장한 구조라 파노라마 뷰가 펼쳐졌어요. 막힌 것 하나 없는 시야에 반해 아이들이 아직 어려 뛰어놀기 좋은 집을 찾던 중이었는데도 과감하게 그 집에 살기로 결단을 내렸죠. 좋은 전망을 오래 보며 사는 것도 좋은데, 이제 쉰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서일까요? 땅과 더 가까워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부모님 댁에서 맡던 흙냄새도 그리웠고요.” 이사한 곳은 다름 아닌 옆 동이다. 같은 단지 저층에 정착하기로 마음먹은 건 단지 구성에 만족하기 때문이다. 동 사이 간격이 넓어 서로의 시야나 채광 및 환기를 막지 않으며, 조경에 신경 써 아파트에서도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이 집을 8월에 보러 왔어요. 집이 어수선한 가운데 창밖 풍경이 빛나더라고요. 우거진 녹음과 밝은 자연광이 내리쬐는 모습을 보고 ‘아이들이 이런 풍경을 보고 자라야지’란 생각이 들었어요.”  

화이트, 우드, 동양적 무드까지. 집의 분위기를 집약해둔 현관.

아파트에서 주택을 구현하기 위해
새로운 집에서는 마음속에 품어오던 이상을 보다 명확하게 구현하고자 했다. 다행히 아내가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주었고, 덕분에 온전히 자신의 취향과 의도를 반영한 공간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건축이나 인테리어에 관심은 많았지만 해본 적이 없어 어떤 식으로 공사가 진행되는지, 아파트라는 한계 안에서 어디까지 바꿀 수 있는지 몰랐죠. 그래도 꼭 하고 싶었던 건 주방 위치를 바꾸는 것이었어요. 카멜레온 디자인을 선택한 이유도 이 때문이었습니다. 유일하게 주방 위치를 바꿀 수 있다고 말해준 곳이었거든요. 공간이 낱낱이 분리된 구조가 답답해 보여 아쉬웠는데, 모두 싱크를 옮길 수 없다 해서 포기하려던 차였죠. 한데 간단한 일이라 말하는 것을 보고 전문가다운 경험치가 느껴졌습니다.” 첫 미팅부터 자신의 바람을 공간에 구현할 방법을 제안해주었기에 김지민 씨 입장에서는 결정을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이날 카멜레온 디자인과 도출한 리모델링의 방향성은 풍경과 일상이 연결된 집. 뷰 때문에 이사를 결정하고 캠핑과 식물 키우기를 좋아하는 김지민 씨 가족의 취향을 충실히 반영한 것이다.
 
거실의 내력 기둥으로 구획한 영역의 활용도를 높이고자 바닥면에 붙박이장을 짜 넣었다. 덕분에 큰 짐을 수납함과 동시에 평상처럼 활용하는 새 공용부가 생겼다.
 
“대부분의 클라이언트는 추상적 키워드만 생각하고 세세한 결정은 어려워하는 편이에요. 그런데 김지민 씨는 반대였죠. 첫 인터뷰 당시에는 많은 말씀을 하지 않으셨는데, 방향성이 잡힌 이후부터는 끊임없이 화두를 던지셨어요. 팔맥의 루멘 175 후드를 꼭 사용하고 싶다거나, 붙박이장 없이 수납력을 높일 방법이 있는지 등 구체적으로 바라는 점을 짚어주셨거든요. 저는 현은지 공동 대표와 이를 시각화할 다양한 안을 만들어 보여드리기만 하면 되었죠. 다행히 제안하는 안을 다 좋아해주셨어요.” 프로젝트를 담당한 정진주 디자이너는 김지민 씨를 가이드라인이 명확한 클라이언트여서 수월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지민 씨는 생각보다 집요한 클라이언트이기도 했다. 각종 마감재와 액세서리 등 공사에 사용할 아이템을 확정 짓는 최종 회의를 14시간이나 진행했을 정도.  
 
김지민 씨의 요구 사항 중 하나이던 개인 공간은 주방 옆에 마련했다. 안방에 만들 때보다 넓은 면적을 사용할 수 있어 아내 혜진 씨가 이 위치를 추천했다고. 공용부의 탁 트인 분위기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유리로 영역을 나눴다.

공사의 핵심은 공용부 구조를 바꾸는 것이었다. “기존 평면은 긴 복도가 집 전체를 가로지르는 구조였어요. 복도를 중심으로 양옆에 방과 공용 공간이 나뉘어 배치되어 있다 보니 창 너머 뷰를 제대로 즐기기 어려웠죠. 그래서 기존 거실과 마주 보던 방을 철거하고 주방 위치를 옮겨 거실, 주방, 다이닝을 하나로 연결했습니다. 어디서든 창밖의 자연을 볼 수 있도록 말이에요.” 디자이너가 판단한 공용부의 또 다른 문제는 내력 기둥이었다. 중앙을 가로막아 거실을 온전히 넓게 쓸 수 없어 기둥을 기준으로 새로운 공간을 구상했다. 자연과 가까운 삶을 지향하는 가족인 만큼 정진주 디자이너와 디자인을 총괄한 현은지 공동대표는 실내 중정 등 다양한 안을 제안했고, 캠핑 장비 등 큰 짐을 보관할 장소가 필요하다는 아내 윤혜진 씨의 의견에 따라 평상을 제작했다. 평상 옆에는 작은 화단을 만들어 사시사철 푸른 조화로 장식했다.
 
안방. 윤혜진 씨가 유일하게 요청한 식물을 키울 공간을 만들었다. 발코니 바닥에 콩자갈을 깔고 수도, 수납장 등을 정리해 화분을 보다 편리하게 관리할 수 있다.

하나로 연결된 공용부가 필요한 또 다른 이유는 여유다. 공용부를 하나로 합침으로써 거실과 주방을 중심으로 현관 쪽에는 자녀 방이, 반대편에는 안방이 있는 구조를 만들 수 있었기 때문. 서로 바쁜 일과를 보내는 가족 구성원이 평소에는 각자의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저녁이나 주말에는 거실과 주방에 모여 함께 어울릴 것을 염두에 둔 구조다. 특히 평상의 활용도가 높은데, 불과 몇 달 전까지는 작은아들이 데려온 햄스터를 이곳에서 돌봤으며,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큰아들도 종종 이곳에 나와 게임을 한다고. 안방을 포함한 자녀 침실에서도 핵심은 뷰다. 창을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가구를 배치했으며, 안방에는 화분 키우기를 즐기는 윤혜진 씨의 요청에 따라 발코니에 콩자갈을 깔아 정원처럼 꾸몄다.
 
직사각형의 탁 트인 공용 공간을 만들기 위해 주방 위치를 옮기며대면형 주방을 만들었다. 아일랜드 뒤쪽의 수납공간이 창을 막지 않도록, 창을 살리고 칸살도어로 가렸다.

인터뷰하는 동안 김지민 씨가 가장 많이 한 말은 “너무 좋아요”가 아니었을까. 벌써 1년 반쯤 살고 있는 집인데도 아침에 눈뜰 때면 발코니에서 올라오는 풀 냄새와 거실 양쪽에서 계절마다 모습을 달리하는 나무들, 맨발로 느끼는 원목 마루의 질감까지. “아파트에서 구현할 수 있는 제 이상을 모두 담았다고 생각해요. 유일한 아쉬움이라면 너무 바빠 이 공간을 요즘 만끽하지 못했다는 것 정도일까요. 그래도 언제든 아내·아이들과 함께, 때론 혼자 시간을 보낼 공간이 모두 갖춰졌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에 여유가 생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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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최지은 기자 | 사진 이우경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5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