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초량은 1925년 일본의 토목건축업자 다나카 후데요시가 지은 집이다. 해방 이후 태창기업의 창업주가 새로운 주인이 되며 근대 주택사와 생활사를 함께 품은 공간으로 변모했다. 2007년 등록문화유산 제349호로 지정되면서, 2023년 복합 교육 문화 공간 오초량으로 재개관했다. <오!분더카머>전을 비롯해 다양한 전시를 개최하는가 하면, 정원에서 편지를 읽으며 차를 마시는 <레터하우스: 편지감각> 등 오초량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문화 행사를 진행해왔다. 최근 공예 작가 5인이 참여한 <흙의 전시>를 기획한 최성우 이사장에게 1백 주년을 맞이한 오초량이 머금은 시간에 관해 물었다.
아파트 단지 사이에 있어 ‘여기가 맞나’ 생각했어요.
안내판을 설치할 수 있는데 일부러 그렇게 하지 않았죠. 길을 좀 잃게 의도한 것도 있고요.(웃음) 높은 아파트 사이에 1백 년 된 집이 있을 거라는 걸 상상하기 쉽지 않잖아요. 이곳을 찾는 분에게 도시 안의 작은 틈 같은 것을 발견하는 기분을 선사하고 싶었어요.
오초량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고 들었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 이사를 왔어요. 설렘도 있었지만 두려움도 공존했죠. 계단도 엄청 크고 당시에는 방이 13개였으니까 돌아다니다 길을 잃으면 어쩌나 무섭기도 했거든요. 지금은 오초량 주변에 아파트가 서 있지만 어릴 때는 집 앞이 부둣가였어요. 뱃고동 소리가 빈번하게 울렸죠. 그 소리가 초량 구봉산까지 닿았다가 되돌아와 집 안을 울리면 마룻바닥에 미세한 진동이 일곤 했죠.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 후 2023년 복합 교육 문화 공간으로 재개관하며 대중에게 개방했어요.
개인 주택이지만 시간의 켜가 쌓인 건물이기에 공공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초량은 부산역부터 이어지는 근대 문화 루트 중 하나예요. 이를 기억할 수 있는 공간이라 개방하게 됐습니다. 부산역, 차이나타운, 텍사스 스트리트, 남선창고, 벽제병원, 초량시장, 초량천, 그리고 오초량을 걸으면 부산의 근대 및 원도심을 느낄 수 있어요.
양옥과 일옥, 한옥의 요소가 얽히고설킨 오초량의 모습은 대륙과 해양, 외래와 본토가 혼재한 부산의 지역성을 닮아 있는 듯해요.
이곳은 1925년에 지어진 일본식 집인데, 일본 사람은 20년만 살고 그 이후 한국 사람이 80년을 살았거든요. 실제로 1층은 한국 목수들의 손길이 많이 묻어 있기도 하고요. 그럼 이 집을 일본 집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식민지 잔재를 우리는 오늘날 어떻게 우리 문화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 나아가 어떻게 해야 그것을 창의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을 해보게 돼요. 고층 아파트 단지 사이에 1백 년 된 건물이 놓인 모습을 보면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누군가의 삶과 시간의 켜가 쌓인 풍경을 없애는 것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고요.
7월 20일까지 오초량에서 〈흙의 시간〉 공예전이 열려요. 이 전시를 기획하게 된 배경은 무엇이었나요?
국가와 민족이란 개념이 생기기 이전의 근원적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어요. 그런 의미에서 물, 불, 흙, 공기는 세계를 구성하는 근원적 요소라 볼 수 있고, 그중 흙을 주제로 하는 공예전을 열게된 거예요. 내년에 한·중·일 흙의 역사를 잘 보여주는 다완茶碗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하는데, 마침 흙이 다완과 밀접한 연관이 있기도 하죠. 향후에는 나무의 시간, 그다음에는 실, 천의 시간 같은 시리즈도 기획해보고 싶어요.
오초량은 한 사람의 집에서 모두가 방문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변했어요. 사람이 살던 곳에 역사와 문화가 거주하게 됐는데, 앞으로 오초량을 어떻게 운영할 예정인가요?
부산은 한때 일본 왜관倭館이 자리해 많은 일본인이 살던 곳이에요. 담을 치고 살았다지만 자연스레 교류가 이어질 수밖에 없던 환경이었죠. 이후에는 한국전쟁을 겪으며 다양한 지역의 사람들이 모여들기도 했어요. 그야말로 짬뽕 도시죠. 부산의 문화는 역사적 선형성만으로 이뤄져 있지 않아요. xy 좌표가 럭비공처럼 튀어서 섞인 것에 가깝죠. 그렇게 혼합된 현재 자체가 부산의 정체성이죠. 문화란 우리 것과 다양한 역량이 섞이는 과정에서 생성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장소로 만들고 싶어요. 내년에는 동아시아 문화에 대한 얘기를 해볼 생각이에요.
달맞이길을 하나의 예술로 경험하는 열린 갤러리 - 조현화랑 주민영 대표
시대가 변하면 그 흐름에 발맞춰 끊임없는 고민을 하게 된다.
오랜 세월 부산에 자리해온 조현화랑은 변화하는 세태와 지역이라는 조건 속에서 더더욱 복잡해진 갤러리 역할에 대해 고민하며 균형을 잡아간다.
조현화랑은 1990년 부산 광안리 예술의 거리에서 ‘갤러리월드’로 시작해 1999년 해운대 파라다이스 호텔 인근으로 이전하며 외연을 확장했다. 2007년부터는 달맞이길에 자리 잡으며 조현화랑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 김종학, 박서보, 이배, 윤형근, 정창섭, 백남준 등 한국 현대미술사를 대표하는 거장들과 깊이 있는 협업은 물론 강강훈, 이소연, 진 마이어슨, 조종성, 이광호 등 동시대성을 지닌 신진 작가와도 적극 교류하며 세대를 아우르는 전시를 이어왔다. 공간에는 김종학 화백의 드로잉 원화, 최정화 작가의 아이디어로 구현된 외벽 등이 있어 건물 자체를 하나의 예술로 경험할 수 있다. 부산 달맞이길에 오랜 세월 자리해온 조현화랑의 바통을 이어받은 주민영 대표에게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물었다.
주변 자연환경 덕에 사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지금은 부산이라는 지역이 발달했지만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잖아요. 긴 세월 동안 흔들림 없이 달맞이길을 지켜온 비결은 무엇일까요?
작가와 작품을 고를 때 당장보다는 10년 또는 20년 후의 가치를 바라보려고 해요. 그런 가치가 있는 작가라면 세월을 함께할 수 있는 클라이언트를 만나게 해주려고 노력하죠. 故 박서보 작가님과 1991년도에 첫 전시를 했는데요, 그때부터 돌아가시기 전까지 조현화랑에서 열다섯 번의 개인전을 열었어요. 2~3년에 한 번꼴로 전시를 한 거예요. 또 김종학 화백의 꽃 그림이 엄청 주목받던 시기가 있었어요. 어느 순간부터 김종학 하면 꽃으로 점철되더라고요. 조현화랑은 설악의 작가, 꽃의 작가로만 인식되던 작가의 세계를 다각도로 조망하고자 계절에 맞는 그림을 다섯 개 전시관을 활용해 전시했어요. 뿐만 아니라 김종학 화백이 수집한 가구전도 진행했죠. 한 사람이 일평생 모아온 수집품에서도 작가를 이해하는 관점을 얻을 수 있거든요. 자연스레 갤러리는 작가에 대해 깊이 알게 되고, 화랑을 찾은 관람객이나 고객에게도 작가를 보다 깊게 이해하는 지점을 만들 수 있었죠.
조현화랑은 작가의 전시 외에도 여러 행사를 진행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어떤 것이 있나요?
광장시장에 있는 신도랩이라는 스테이크 바와 함께 갤러리에서 바비큐 파티를 열었어요. 부산 맥주와는 여름 프로젝트를 진행, 갤러리 테라스를 개방하고 관람객에게 맥주를 무한 제공하기도 했고요. 보스코 소디의 전시 〈DAWN〉에서는 모모스커피와 함께 커피 자루를 활용한 작품 전시, 콜드 브루를 활용한 커피 칵테일,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개발한 디저트 두 가지를 선보였어요. 겨울에는 서면에 있는 한 포장마차를 통째로 옮겨오기도 했죠.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를 통해 부산이라는 도시를 새롭게 발견해 더 사랑하게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어요.
작가와 작품뿐 아니라 로컬 브랜드를 소개하는 역할까지 하고 있네요.
갤러리는 작품 판매 공간을 넘어 시대의 예술 담론을 형성하고 작가와 관객 및 사회를 연결하는 플랫폼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출판사처럼 작가의 생각을 기록하거나, 박물관처럼 작가의 궤적을 역사화하고, 교육기관처럼 대화와 성찰의 계기를 제공하는 식으로요. 조현화랑은 이러한 유기적 구조 안에서 ‘열린 갤러리’를 지향하고 있어요. 이전 시대 조현 대표님께서 만들어놓은 기반과 철학을 잃지 않으면서도, 현시대의 변화에도 적응할 수 있도록 균형을 맞추고자 계속 고민하고 있죠.
조현화랑 VIP 라운지의 모습. 벽면에는 김종학 화백의 작품'Pandemonium'이 자리해 있다.
얼마 전 종료된 아트부산부터 현재 진행 중인 루프 랩 부산 등 부산에는 문화 예술 행사가 끊이지 않는데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부산은 항구도시 특유의 개방성과 이질성이 공존하는 도시예요. 새로운 문화를 빠르게 수용하면서도, 지역 고유의 정서와 서사를 간직하고 있어 실험성과 진정성이 공존할 수 있는 예술적 환경이 형성된다고 생각해요. 이런 분위기 덕에 아트부산, 부산비엔날레, 루프톱 프로젝트 등 다양한 창의적 활동을 전개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싶어요. 조현화랑 역시 그 흐름에 맞춰 부산의 예술 생태계를 함께 만들어갈 수 있고요. 항구의 활기, 시장의 생동감, 바다의 평온함, 그리고 달맞이의 고요함까지 부산은 다양한 결이 공존하는 도시예요. 이 모든 것이 한 도시 안에 녹아 있는 게 그 이유 아닐까요?
조현화랑의 테라스. 관람객을 위한 쉼터 및 다양한 행사장소로 활용한다.
조현화랑 달맞이만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도심 속 갤러리가 주기 힘든 인상을 조현화랑은 지니고 있거든요. 달맞이길 주변의 바다와 숲은 관람객이 예술을 통해 위로받고 새로운 감각을 열도록 하거나,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을 남기는 작품과 마주하도록 돕죠. 김종학 화백의 드로잉 원화, 이강소 작가의 디자인으로 바닥에 새긴 화랑의 직인, 최정화 작가의 아이디어로 구현된 외벽 등 전시장 곳곳에 살아 숨 쉬는 작가들의 흔적은 공간 자체를 하나의 예술로 경험하게 만들어주죠. 인위적으로 조성한 조경이 아닌, 오랜 세월을 이겨낸 들꽃과 바람에 날아온 씨앗이 자연스럽게 뿌리 내려 형성된 정원도 매력으로 다가가는 듯해요. 계절마다 달라지는 자연의 변화 또한 조현화랑 달맞이에 많은 이가 찾아오는 이유라고 생각해요.
싱글 오리진? 부산 오리진! - 모모스커피 이현기, 전주연 대표
성장과 발전을 위해 살던 곳을 떠나는 경우가 왕왕 있다. 부산의 모모스커피는 그 공식을 거부한다. 살던 곳을 보다 풍요롭게 만들어 사람들의 발걸음을 불러들이고 있다. 모모스커피는 2007년 이현기 대표의 부모님이 운영하던 식당의 네 평짜리 창고에서 시작했다. 우연히 찾은 미국 스페셜티 커피 박람회에서 스페셜티 커피를 맛본 후 오직 맛있는 커피를 만든다는 생각에 집중하며 부산에서 묵묵히 스페셜티 커피의 외길을 걸어왔다. 이후 디자인 페스티벌 참여 및 아트부산 VIP 라운지 운영, 그 외 다양한 부산 지역 작가와의 협업 등 커피 브랜드를 넘어서는 도전을 시도하고 있다. 최근 새롭게 다듬은 모모스커피 온천장 정원에서 이현기, 전주연 대표와 로컬 브랜드의 이모저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본래 목조 주책이었던 공간을 커피 교육과 로스팅룸으로 사용했다. 현재는 손님을 위한 좌석을 마련해 두었다.
대개 브랜드는 특정 궤도에 오르면 여러 곳에 지점을 내곤 하는데, 모모스커피는 여전히 부산을 지키고 있어요.
이현기 한자리에서 조금 더 깊이 파고들자는 생각을 했어요. 여러 지점을 내는 것보다 완성도 있는 하나를 제대로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믿었거든요. 모모스 본점을 처음 시작했을 때 생각보다 장사가 잘 안됐어요. 커피에 관한 공부도 꽤나 어려웠고요. 그럴수록 커피를 더 깊게 공부하고 몰두했어요. 그때부터 자연스레 생각한 것 같아요. 부산을 떠나 지점을 확장하기보다는 모모스커피를 시작한 이곳에 집중하자고 말이죠. 브랜드가 조금씩 성장할 때 분점을 내는 대신 매물로 나오는 옆 건물을 하나씩 매입했어요. 건물과 건물 사이에 있던 벽은 허물고, 기존 집의 형태는 최대한 유지해 활용했죠.
처음 들어섰을 때 느낌이 계획된 형태가 아니라 이질적 건물의 집합체 같았어요. 완성형이라기 보다는 진행형에 가까워 보이기도 했고요.
이현기 벽을 허물고 길을 내며 공간을 확장한 것이 어쩌면 철저한 계획을 했다기보다는 그때그때 최선을 다하고, 할 수 있는 걸 한 것 뿐이에요.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네요.
모모스커피 온천장 전경. 우측 하단에 보이는 작은 공간이 2007년 모모스커피가 처음 문을 열었던 네평 남짓한 공간이다.
건물과 건물 사이로 난 길을 걸으며 좌석을 찾는데, 뭔가 산책하는 기분이 들었어요. 아무래도 정원이 한몫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이현기 입구로 들어올 때 대나무 보셨죠?
옛날에 식당을 운영하던 부모님이 심어놓으신 건데요, 그걸 보고 동네 주민들이 그런 말을 했대요. 이 식당이 온천장 속에 있는 숲 같다고. 어쩌다 벽을 허물고 길을 만들었는데, 그 일화가 떠오르더라고요. 벽과 벽을 허물어 생긴 길 주변을 정원으로 조성해 이곳을 찾는 분들이 산책할 수 있는 도심 속 산책로이자 숲처럼 조성하고자 했어요.
2019년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 우승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전주연 대표님은 처음부터 부산에서 바리스타의 길로 들어서야겠다고 생각했나요?
전주연 아뇨, 생각하지 않았어요. 모모스커피에서는 친구 소개로 일하게 됐어요. 친구의 사촌 오빠가 이현기 대표거든요.(웃음) 본격적으로 바리스타 생활을 하기로 마음먹은 건 이현기 대표가 촬영해온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 영상을 보여줬을 때였어요. 한 명의 바리스타가 무대에 서 있고 수많은 사람의 응원을 받는 모습을 보는데, 나도 그 자리에 서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거예요. 2009년부터 본격적으로 도전하기 시작했어요. 뭔가 해보고 싶다는 마음속 문장이 선명해진 건 그때였어요.
10년이라는 기간 동안 도전해온 거군요.
전주연 목표가 뚜렷해지니 즐거웠어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가족과 교수님이 전부 다 반대하는 일을 결과로 증명해보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해요. 당시 바리스타에 대한 인식이 지금과는 다르다 보니 제가 하는 일을 직업으로 봐주지 않는 기색이 역력했거든요.
모모스커피 1층의 모습. 공간 곳곳에 바깥 산책로로 이동하는 문이 숨어 있다.
부산 지역에서 커피를 다루었기 때문에 겪은 어려움은 없었나요?
이현기 어렵다는 생각을 많이 하진 않았어요. 약간의 객기도 있었던 거 같네요. 어느 순간 공부 잘하면 서울이나 대구로 떠나는데, 그 길을 가기 싫더라고요. 반대로 접근했죠. 사람들을 여기로 오게 만들자고. 그러려면 좋은 커피를 만드는 데 집중할 수밖에 없었죠. 시장의 가능성을 봤더라면 모모스커피의 아이덴티티가 명확해지지 못했을 거예요. 말하고 보니 이것도 그저 우연히 살다 보니 오게 된 느낌이네요.(웃음)
‘부산하다’라는 프로젝트는 무엇인가요?
전주연 ‘부산하다’는 모모스커피가 로컬 브랜드, 로컬 크리에이터와 상생을 모색하기 위해 진행하는 프로젝트예요. 2021년 커피로 부산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부산의 1세대 서양화 작가 김종식 화백의 작품 ‘귀환 동포’(1947)와 함께한 시그너처 블렌드가 시작이었어요. 이후에는 조현화랑 달맞이와 함께 커피와 디저트를 즐기며 보스코 소디의 전시를 감상하는 문화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했어요.
부산 토박이로서 느끼는 부산의 특색이나 매력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요?
전주연 부산 사람 특유의 오지랖이라고 해야 할까요? 다른 사람을 챙기는 정서가 부산 사람에게 내재해 있는 듯해요. 서로 챙겨주고 보살피는 포용과 환대, 상생의 개념 같은 것들 말이죠. 이것들이 뭔가를 함께 하는 데 시너지를 내는 것 같아요. 끈끈함?
이현기 항구도시다 보니 새로움을 잘 받아들이는 습성이 자리한 게 아닐까 생각해요. 옛날부터 새로운 문물은 항구로 들어왔잖아요. 스페셜티 커피의 부흥이랄까. 이것이 빠르게 확산될 수 있던 것도, 새로운 맛을 받아들이고 정보를 함께 나눠 커피 열풍을 만들어낼 수 있던 것도 이런 특징이 이유라면 이유 아닐까 싶어요.
미술은 누구의 소유도 아닌 모두의 것이다 - 부산시립미술관 서진석 관장
지역 하나가 거대한 미술관이 될 수 있을까? 부산에서 진행 중인 루프 랩 부산은 영화의전당, 부산시립미술관 마당, 도모헌 등 시민에게 익숙한 장소를 문화 예술의 장으로 변모시켰다. 루프 랩 부산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2003년도부터 선보여온 미디어 아트 축제 루프 페스티벌에 착안한 행사이다. 루프 페스티벌의 경우 비디오 아트 작품이 주를 이루는 반면, 루프 랩 부산은 비디오 아트 외에 현 시대의 테크놀로지, 시간성 기반의 아트로까지 장르적 확장을 시도했다. 미디어 아트라는 고리(loop)로 서로를 엮은 것처럼 부산의 공립 미술관부터 상업 화랑, 대안 공간 등 총 26개 공간이 연대했다. 올해 처음 열리는 루프 랩 부산에 대해 듣고자 전시를 총괄한 부산시립미술관 서진석 관장을 만났다.
부산과 바르셀로나는 자국 내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다국적 컨테이너가 오가는 항만, 관광객으로 가득한 해수욕장까지 여러모로 닮은 구석이 있어요. 루프 랩 부산을 기획하게 된 배경을 소개해주세요.
디지털 아트 영역이 날로 확장되는 새로운 시대에 맞춰 디지털 아트 장르 중심의 페스티벌을 만들고 싶었어요. 보통 아트 컬렉션은 물질 기반인데, 기술이 발전하면서 비물질 기반의 소유로도 영역이 확장되고 있거든요. 미래에는 디지털 아트의 소유라는 개념이 어떤 방식으로 펼쳐질지 함께 고민하고자 했죠. 또 지난 20세기 현대미술계를 지배한 비엔날레 시스템과 아트 페어 시스템하고는 다른 대안적 예술 행사, 수평적 공동체로 구성한 행사를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비엔날레나 아트 페어처럼 하나의 조직 또는 자본과 노동력이 결집된 조직이 만드는 행사가 아니라, 다양한 문화 주체가 모여서 수평적으로 협업하는 공동체형 행사를 말이죠. 마치 각자 음식을 가지고 오는 포틀럭 파티처럼 기획, 예산, 운영 자체를 공유하는 형태로요.
도모헌에서 진행 중인 <무빙 온 아시아> 전시 전경. 전시는 6월 29일까지 진행된다.
부산시립미술관 앞마당에서 진행 중인 〈디지털 서브컬처〉전에는 어떤 작가들이 참여했나요?
현대미술 작가부터 온라인 세상에서 활동하는 28개국 45명의 디지털 크리에이터가 참여했어요. 이들의 작품을 보여주기 위해 LED 스크린 패널 31개를 설치해 부산시립미술관 정원에 디지털 숲을 조성했어요.
작품들의 공통된 특징을 꼽는다면요?
먼저 유희성이에요. 보는 이로 하여금 묘한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포인트가 작품 곳곳에 녹아 있어요. 둘째는 상향 평준화된 대중의 미적 기준에 신선함을 선사하는 실험성, 셋째는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는 유동성이에요. 이미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주목을 끌기 위한 뛰어난 가시성 또한 공통적 특징이고요. 마지막은 휘발성이에요. 온라인 세계에는 수많은 이미지와 콘텐츠가 나타났다 금세 사라지잖아요. 작품들은 5분·10분, 한 시간·두 시간이 아닌 5~10초로 순식간에 지나가는 형태입니다.
전시 구성에 대해서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디지털 시대 비정형 추상성의 새로운 미학을 실험적으로 보여주는 ‘디지털 앱스트랙(추상)’, 인터넷상 이미지들을 수집해 붙이고 자르는 디지털 기반 신다다이즘을 표방하는 ‘다다의 빛’, 도래할 미래 사회 환경의 모습을 증강 현실, 블록 등 기술과 자연의 일원화된 형태로 보여주는 ‘미러링 네이처’, 오늘날 소셜 미디어에서 생산되는 인간과 기계, 실제와 허상의 경계에 있는 새로운 유형의 인류를 소개하는 ‘미러링 휴먼’, 이렇게 총 네 개 섹션으로 구성했습니다.
해가 지면 낮과는 다른 분위기가 조성된다.
루프 랩 부산 외에도 부산에는 매년 다양한 문화 행사가 열리는데, 어떤 이유 때문일까요?
부산은 지역성과 포용성, 두 가지를 모두 지닌 도시입니다. 문화사적으로 보면 해양 세력과 대륙 세력의 접점지였고요. 피란 시절에는 한반도 전역의 사람이 모여들어 공존하던 배경을 지니고 있습니다. 서구의 문물도 부산을 통해 들어오던 시절이 있었고요. 이러한 속성 덕에 부산이 아시아 문화의 중심지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고 봅니다. 26개 개별 공간이 하나의 루프로 연결될 수 있던 것도 부산이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광주가 사회적 근대화 및 도시 민주화의 대표고, 울산이 기술적 근대화의 대표성을 지닌다면 부산은 문화 근대화의 대표가 아닐까요?
시간과 사람을 매개하는 빈티지 가구의 힘 - 에임빌라 이경신 대표
가구를 사람과 삶 사이의 매개로 생각하며 좋은 가구를 고르고자 힘쓰는 에임빌라는 일상과 가구의 연결 고리를 만들기 위해 편집숍 운영 외에도 다양한 전시를 기획하고 있다. 에임빌라는 1950~1980년대 오리지널 빈티지 가구를 소개하는 부산의 편집숍이다. 고향이 주는 안정감 때문에 부산에서 출발한 에임빌라는 가구 편집숍이지만 가구 판매 외에도 2023년 오초량에서 진행한 <오!분더카머>와 2024년 에케에서 진행한 <호랑나비가 머무는 곳> 전시 등 경계 없는 활동을 펼쳐왔다. 최근 1950년대 여성 기술학교로 사용되었던 대구시 근대 건축물에서 열린 전시를 기획한 에임빌라 이경신 대표에게 가구를 소개하는 것을 넘어 전시 등 콘텐츠를 기획하는 이유를 들었다.
에임빌라를 운영하게 된 배경을 소개해 주세요.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의 디테일을 다양한 사람과 함께 즐기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한 일이었어요. 좋은 것을 보고 그것에 대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아이처럼 온전히 즐거운 마음을 유지할 수 있는 매개 중 하나가 가구라고 생각하거든요. 오리지널 퍼니처만이 지닌 디테일을 발견하는 것도 매력적이었고요. 무엇보다 ‘내 집이 생기면 그 안에 어떤 가구를 채워 넣을까’를 상상하는 일도 즐거웠어요. 취향을 저격(aim)한다는 의미를 담아 에임빌라라 이름 지었어요.(웃음)
에임빌라가 가구를 고를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인가요?
팔리지 않으면 내가 쓴다는 생각이에요. 우리 집에 들이면 어디에 둘지, 미래에 그리는 집을 상상하고 거기에 이 가구를 배치했을 때 어떤 기능과 즐거움을 줄지, 이 가구와 언제까지 함께할 수 있을지, 가구를 고르는 고객에게 꾸준한 즐거움을 나눠줄 수 있을지 끊임없이 생각해요.
에임빌라는 빈티지 가구를 매개로 다양한 전시를 기획하고 있다.
에임빌라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고객의 취향이나 니즈 등에 에임빌라의 철학이 흔들린 적은 없나요?
트렌드를 마주할 때마다 흔들리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요, 그럴 때마다 ‘꾸준할 수 있나’라는 물음을 던지면 답은 생각보다 금방 나오더라고요. 오랫동안 나다움을 유지하며 인연을 맺는 게 편하고 그런 삶을 지향하다 보니 결국은 오래 볼수록 질리지 않고 빛나는 것에 마음속 저울의 추가 쏠려요.
부산에서 빈티지 가구 편집숍을 운영하는 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부산은 제가 태어난 장소예요. 낯선 곳이 아닌 익숙한 장소이기에 자기다움을 잘 발현할 수 있죠. 활동 기반은 부산이지만 편집숍 특성상 배송 업무로 많은 지역을 다녔는데요, 부산에서 나고 자라서인지 그런 움직임과 만남이 여행으로 느껴지는 시간이었어요. 나다울 수 있는 부산에서 맺은 인연과 안정감은 일을 할 수 있는 원동력과 지속성을 지닐 수 있게 만들어줬어요.
최근 대구시가 주최한 〈INSIDE DOOR 한 걸음 문을 열면〉 기획을 비롯해 다양한 전시에 참여해 왔는데요, 이유가 있을까요?
좋은 브랜드가 되고 싶기 때문이에요. 다양한 사람과 브랜드를 만나 인연을 맺고, 디자인을 콘텐츠로 만드는 과정에서 브리지 역할을 하다 보면, 프레임 안과 밖을 드나들며 다양한 이들과 여정을 함께할 수 있는 사랑방 같은 브랜드를 만들 수 있다고 믿었거든요.
오랜 시간 다양한 빈티지 가구를 살펴보고 사용해왔잖아요. 대표님이 생각하는 ‘좋은 빈티지 가구’는 무엇일지 궁금해요.
스스로, 또 지금 당장 곁에 있는 가족이나 지인과 함께 즐길 수 있는 기능을 갖춘 것, 혹은 어떤 디테일한 포인트로 감동을 주는 것이 좋은 가구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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