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베이지, 화이트라는 집의 콘셉트가 한눈에 보이는 거실. 평소 직접 사진을 찍는 것도 남들의 사진을 보는 것도 좋아하는데, 취향에 맞는 사진을 발견하면 액자나 엽서로 제작하기도 한다.디지털 프로덕트 제작자이자 프리랜서 영상 제작자, 인테리어 스튜디오의 BM까지. N잡러 시대에 무려 직업 세 개를 가진 헤이줄스(닉네임) 씨는 빽빽한 스케줄에도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낼 줄 아는 이였다. 계기는 독일 유학. 디자인 석사과정을 밟기 위해 독일로 떠났으나, 코로나19로 석사 학위가 아닌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보내게 된 것이다. “남을 위한 디자인에 흥미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을 즈음 취업 시장이 얼어붙었어요. 학부 시절 세미나에서 만난 BMW나 폭스바겐의 디자이너들의 삶을 꿈꿨는데,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죠.
집은 쉬는 공간이라 말하는 헤이줄스 씨. 거실은 그가 집에서 가장 긴 시간을 보내는 곳으로, 소파에 기대앉아 책을 읽거나 야경을 바라보며 와인 한잔 마시며 여유를 부리기도 한다.이런저런 고민을 하다 가벼운 마음으로 디지털 다이어리 및 포스터 등을 만들어 판매 사이트에 올렸는데 생각보다 잘 팔렸고, 만드는 과정도 즐거웠어요. 오랜 고민 끝에 석사과정을 마치는 대신 지금 내가 좋아하는 일에 집중하자는 결론에 이르렀어요. 그렇게 독일 생활을 정리했습니다.” 독일 유학이 남긴 건 안정적인 사업체뿐만이 아니다. 집 꾸미기에 대한 관심도, 옷 입는 스타일, 좋아하는 컬러와 인테리어 스타일, 심지어 선호하는 조명 색감까지 바뀌었다. 지금 집은 그 모든 변화가 고스란히 담긴 곳이다.
왼쪽 집에서 가장 작은 영역을 차지하는 업무 공간. 직업 세 개가 모두 주로 재택을 하는 직종인 지라 업무가 많은 시기에는 이곳에서 긴 시간을 보낸다고. 오른쪽 소파에서 유학 시절을 곱씹는 방법. 유학 시절 구입하고 읽은 영화 <미 비포 유>의 원서와, 독일을 떠올릴 수 있는 것이 그립다는 말에 독일 친구가 선물한 독일 신문.지금 헤이줄스 씨의 집은 13평 오피스텔로 거실과 침실로 구성된 1.5룸이다. 귀국 후 정착할 지역을 찾던 중 대학 시절 살아본 도시라 친구도 있고 동네도 낯익은 대전에 터를 잡았다. 몇 차례 혼자 산 적은 있지만 기숙사이거나 옵션으로 가득한 원룸이었기에 나의 삶을 담기보다는 정해진 방식에 맞춰 살 수밖에 없었다. “뭐든지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게 기대도 되고 막막하기도 했어요. 무엇부터 시작하면 좋을지 고민하다 우선 제 스타일을 정확히 파악해야겠다 싶었어요. 주변에서 유행을 좇다 금방 싫증 내는 경우를 종종 봤거든요. 그래서 집을 꾸밀 때 부러 시간을 들였어요. ‘오래 보아도 질리지 않겠다’는 확신이 들 때 가구를 하나씩 들인 거죠.”
책 상을 처분하고 남은 자 리에는 그 의 취 향이 담겼다. 거실에는 홈 카페 공간을 만들어 그간 모아둔 커피잔을 진열했으며, 침실에는 시스템 철제 선반을 설치했는데 한쪽에는 타공판을 크게 설치해 엽서, 펜꽂이 등 기존 책상에서 쓰던 용품들과 함께 스타일링했다.
그는 자신의 취향을 한눈에 확인하고자 마치 핀터레스트처럼 무드 보드를 만들었다. 좋아하는 분위기의 사진을 모으고 선별해 집 전체 톤과 가구 스타일을 정립한 것. 그렇게 베이지와 화이트·블랙이라는 컬러, 블랙 우드와 스틸이라는 소재로 선택지가 좁혀졌고, 배치는 3D 프로그램을 이용해 시뮬레이션했다. 가구를 고를 때 컬러와 소재에 신경 썼다면 이를 배치할 때는 영역을 분리할 방법을 궁리했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다 보니 자칫
하면 집 전체가 일하는 공간이 되어버려 제대로 쉴 수 있는 공간이 없어질까 우려했기 때문.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죠. 처음에는 집 안 곳곳에 책상을 배치했어요. 한 곳에서만 일하면 지루할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막상 돌아다니며 일하다 보니 점점 휴식 공간과 업무 공간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업무 공간의 영역만 자꾸 넓어져 집이 주는 안락함이 점점 줄어들더라고요. 그래서 책상 하나만 남겼습니다. 휴식 공간인 거실을 방해하지 않도록 침실에요.”
헤이줄스 씨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 거실과 주방 사이 원탁을 중심으로 독일 유학 시절의 기억을 떠오르게 하는 소품을 모아두었다. 벽의 사진은 독일 유학 시절 살던 마을과 주변 국가를 여행하며 찍은 사진에 디자인을 더해 엽서로 제작한 것.이사 온 지도 2년이 넘었다는 헤이줄스 씨에게 그사이 인테리어를 바꾸고 싶은 적은 없었느냐 물어봤다. 돌아온 답은 단호했다. “극단적으로 한 말이지만, 지금 집은 나이가 들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아요. 가구 배치도 처음과 거의 동일할 정도로요. 제 드림 하우스도 지금과 같은 톤 앤 매너의 이층집을 짓는 거예요. 한국과 외국에 한 채씩요. 공간 분리는 층별로 하면 되겠죠? 한 가지 바라는 건 지금과 달리 커다란 나무를 내려다보며 철마다 바뀌는 풍경을 집에서 누리고 싶어요. 독일에서 살던 기숙사가 그랬던 것처럼요.”
1 서울번드와 WGNB, 쇼핑 플랫폼 29cm가 함께 제작한 보우 글라스. 살짝 고개를 숙인 듯한 디자인이 특징이다.
2 업무가 모두 끝난 저녁에는 종종 초를 켜기에 다양한 디자인의 캔들 홀더를 가지고 있다. 그중 하나인 이 제품은 집의 무드와 어울려 구입했다.
3 학부 시절 바우하우스 학교의 기숙사에서 머물 기회가 있었는데, 이를 계기로 바우하우스 디자인에 푹 빠졌다. 책은 유학 시절 동네 서점에서 구입한 것.
4 폴크porke의 플로르 풀 라이팅 조명. 독일 생활 이후 집에서는 간접등만 켠다.
5 그가 가장 좋아하는 검은 원탁에 놓여 있던 헤트라스hetras의 세라믹 스톤 디퓨저.
나만의 취향을 발견할 수 있는 <1집구석>에서 헤이줄스 님 인터뷰 보기!
▶핀터레스트 감성으로 가득한 1.5룸 무채색 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