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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카인드 김철호·김경희 부부의 인제 라이프 행복한 사람은 떠나지 않는다
해발 600m, 양구의 펀치볼 마을에서 자연 순환 농법으로 ‘좀 다른’ 사과를 키우는 애플카인드의 김철호·김경희 부부. 10년 전 연고도 없는 강원도 인제의 산기슭으로 귀촌한 것이 그 일의 발단이었다. 승승장구하던 도회 사람을 산골 농부로 만든 것, 회의와 부정에서 자기 긍정으로 돌아서게 한 것은 다름 아닌 행복에 대한 질문이었으니.

이 땅과 인연은 우연에서 시작됐다. 3백~5백 평쯤 되는 땅을 구해달라고 부동산 중개업소에 청한 뒤 아들과 캐나다 여행을 갔는데, 밤중에 잠이 오지 않아 인터넷을 기웃거리다 매물로 나온 이 땅을 발견한 것. 13년쯤 된 농가 주택을 새로 짓다시피 고쳐 풍산개 두 마리와 함께 10년째 살고 있다. 애초 계획보다 땅의 규모가 훨씬 커져 여러 용도로 활용하고 있다.
生이라는 한자의 풀이가 이러하단다. 그 하나는 식물이 땅 에서 움튼 모양을 본뜬 것으로, 생기로 가득 찬 일이라는 뜻이다. 누군가는 소 우牛와 한 일一로 파자破字해 풀기도 한다. 소가 외나무다리를 건너듯 돌이킬 수 없고 위태한 것이라는 말이다. 생의와 딜레마…. 무엇이 인생일까?
꽃멀미 날 정도로 이 집 정원이 한창이라는데, 시위라도 하듯 고속도로에 빗발이 날렸다. 산길에 다다르고서야 하늘이 방석 한 장만큼 열렸다. 그 아래 잘생긴 나무와 꽃을 앞세운 소박한 집, 그 앞에 나무처럼 객을 맞는 김철호·김경 희 부부. 단정한 모습과 눈빛이 5년 전 사진(<행복> 2017년 10월호 ‘자연에서 식탁까지’ 칼럼에 이들의 사과 농장 애플카인드를 소개했다)과 그대로다. 호우성 소나기로 촬영을 멈춘 틈틈이 나는 고구마 캐내듯 이들 삶의 내력을 묻고, 아내와 남편은 서로의 답을 더투었다. *2017년 10월호 기사 보기

거실 통창 앞 테이블은 아내가 취미로 그림 그리는 자리, 소파는 남편이 쉬는 자리다. 그 뒤로 걸린 허달재 화백의 매화 그림은 보는 이의 마음이 붉으면 매화도 붉고, 마음이 희면 매화도 흰, 매우 묘한 그림.
김철호 씨는 ‘특목고 입시 학원의 신화’라 불리는 G1230(구 글맥학원)을 30년 동안 운영했다. ‘겨우 이렇게 살다가 갈 수는 없지 않느냐’고 중얼거리던 날들이기도 했다. 짬만나면 산을 탔고, 백두대간을 두 번 종주했다. 어디로 가면 인생의 빛이 있고, 행복한 밥이 있나, 같은 질문을 사려쥐고 살던 그는 결국 시골행을 결심했다. 그에게 유야무야란 없었다. 이태 전부터 눈여겨보던 강원도 인제군, 설악산 중 청봉이 내다보이는 산골 마을로 내려가, 전 주인이 열서너 해 살아 낡은 집을 뼈대만 남기고 고쳤다. 산골의 집이지만 관정도 샘물도 전기 시설도 있고, 진입로도 닦인 터라 수리가 꽤 수월했다. 작은 방 두 개, 더 작은 부엌, 더 작은 욕실을 두었다. 그 집에서 처음엔 뭘 하겠다는 계획조차 세우지 않았다. 그저 쉬고 싶었다. 절박하게.
승승장구하는 커리어우먼이던 김경희 씨도 남편을 따랐다. 사실 김철호 씨는 서울 사람, 김경희 씨는 전주 사람이니 회향回鄕은 아니었다. 대신 고향을 가슴에 품은 회향懷鄕이라 할까. 고향을 가슴에 품고 사는 이는 고향에 못 간 사람이다. 그리고 그 고향은 단지 나고 자란 자리가 아니라 가슴에 품은 염원, 꿈 같은 것…. 삶이란 각자 무언가 찾는 여행이라 치면 이것만큼 맞는 말이 없다.

시골 살림이지만 멋을 아는 이들답게 작은 부엌을 채우는 세간이 근사하다.
“시골에 내려오면서도, 이곳에서 몇 년 지내면서도 저 양반을 이해할 수 없었어요. ‘그 큰 사업체를 저렇게 나 몰라라 내버려두고 산골에서 뭐가 좋을까, 나는 아직 4~5년은 더 일하고 싶은데 여기서 흙이나 보고 사는 게 인생의 퇴보가 아닌가’ 했죠. 그런데 서서히 느껴지더라고요. ‘내가 매달리던 1등의 삶은 나를 위한 1등은 아니었구나, 내 인생이다, 내가 행복한 시간을 살자’라고요. 저 양반은 저보다 일찍 눈을 뜬 거예요.”(아내 김경희)
“진짜 무모한데 그 무모함과 같은 무게로 행복을 갈구한 거예요.”(남편 김철호)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덜 중요할까?”라고 질문한 이는 어린 왕자뿐만이 아니다. 이들도 질문했다.


붙든 것 다 내려놓으니
불교에 방하착放下着이란 말이 있다. ‘붙들고 있는 것 다 내려놓아라’쯤 되는 말이다. 붙든 것 내려놓으니 이들에게 산의 나무가 보였고, 산골의 소란한 밤이 느껴졌다. 이후 남편은 농업기술센터를 드나들며 농사를 배웠다. 과수 농사를 결심하곤 기왕 하는 것 남달리 하자 싶어 전국 사과 고수를 찾아다니고, 농업 전문가에게 컨설팅을 받았다. 그 바탕에는 세 아들의 내일 그리고 ‘50개의 평범한 사과보다 하나의 놀라운 사과’라는 생각이 있었다.
“미래로 갈수록 도회의 삶은 매력도, 가치도 없어 보였어요. 아들들이 자연과 연결된 일을 하면서 삶을 풍요롭게 가꾸길 바랐어요. ‘젊은이가 행복한 꿈을 꾸는 농업 회사’로 만들어주고 싶어, 수출할 정도는 되게 5만 평 사과밭을 일궜죠. ‘더 빠르고 더 많이’ 생산하는 대신 소비자가 믿고 먹는 ‘한 알의 놀라운 사과’를 내놓자는 생각도 했고요.”

산 아래가 내려다보이는 작은 덱에서 지인들과 작은 파티를 열기도, 부부가 한갓진 티타임을 즐기기도 한다.

왼쪽 꼭 필요한 면적에 꼭 필요한 세간만 둔 부부 침실. 머리맡에 마이클 케나의 사진을 두었다. 오른쪽 침실과 거실 사이 복도에도 마이클 케나의 사진 작품을 여러 개 걸었다. 거실 한쪽으로 보이는 페치카와 장작더미가 강원도 산골 추위를 짐작케 한다.
흩어져 제 삶의 영토를 일구던 세 아들이 아버지의 비전을 듣고 양구로 모였다. 입소문을 듣고 젊은 직원들도 모여들었다. 올해 설립 6년 차인 양구 펀치볼의 애플카인드 농장에선 사과와 풀을 함께 키우는 초생 재배(천연 해충 방제), 땅심을 되찾기 위해 우드 칩·쌀겨·효소·깻묵을 섞어 1년 동안 발효 후 뿌리는 퇴비, 정확한 기상 데이터를 적립하는 ‘날씨 경영’ 등 좀 남다른 농사를 짓고 있다. 그리고 그 바탕에 다름 아닌 ‘행복’이 있다. ‘행복한 농부, 행복한 사과, 행복한 세상’이 이 농업 회사의 이념이다. 자연 생태까지 더불어 행복한 농사로 한 알의 행복한 사과를 얻으면 그것이 행복한 농부로, 행복한 세상으로 이어진다는 믿음이다. 기업을 사회의 공적 도구로 볼 때 이利와 덕德을 어떻게 함께 좇을까, 그 해답지를 이들에게서 본다.
행복하게 키운 애플카인드 사과는 단맛과 신맛을 마침맞게 합한 ‘옛날 사과 맛’이 난다. 작년에는 이들을 한껏 고무 시킨 일도 있었다. 애플카인드 사과가 전국과일제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것. ‘더 빠르고 더 많은’ 농사 대신 ‘느리고 제대로인’ 이들의 농사는 붙든 것 다 내려놓은 뒤 얻은 행복이리라. 사과 명장이 되고 싶어 하는 큰아들, 판매와 마케팅을 책임지며 기발한 아이디어를 쏟아내는 둘째와 셋째 아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들이 다 내려놓고 붙든 것은 바로 아들들의 행복인 듯도 하다.


각자 직장으로 출근합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덜 중요할까?”라는 질문의 답을 찾았을까. 이들이 가꾼 텃밭과 뜰을 보며 해답은 저기 있군, 속말로 되뇌어보았다. 이즈음 양구 사과밭은 세 아들이 주로 건사하고, 이들은 아침마다 인제 산속의 각자 직장으로 출근한다. 남편은 텃밭으로, 아내는 정원으로. 남편은 키친 가든(애플카인드 사과밭을 디자인한 가든 디자이너 오경아 씨가 만들어준 텃밭. 이곳에서 먹을거리 자급자족을 이뤘다!)과 자작나무 숲(나중에 스몰 웨딩 장소로 쓸 요량이다), 작은 사과밭을 가꾼다.

왼쪽 건축가 최시영 씨가 이 집 뜰에 설치해준 유리 온실. 오른쪽 “정원은 20년 넘게 열심히 일한 내게 주는 선물이에요.” 김경희 씨가 아침에 눈뜨면 출근하는 직장도 이 정원이다. 지금은 아스틸베 꽃이 지천이다.
자작나무 숲은 스몰 웨딩 장소로도 쓸 계획이다.
“사춘기부터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에요. 사춘기 정도 돼야 혼자 밥 차려 먹고, 버스 갈아타는 것 깨우치듯이 이 산골에서는 벌레 잡는 법, 풀숲 사이 길 찾는 법까지 새로 배웠어요. 그런데 그게 또 그렇게 재미있어요. 분명히 어제와 다르단 말이죠. 이만큼 자라 있거나, 어딘가 좀 잘못되어 있거나. 그렇게 생명체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모습이 경이로워 이 뜰을 떠날 수가 없어요.”(남편 김철호)

이 집 정원을 일구기 시작할 때 가든 디자이너 오경아 씨의 도움을 받았다. 키친 가든과 작은 쉼터는 남편의 직장이다.

유리 온실 속 정원 도구들.

꽃은 남김없이 거름이 되고, 거름은 어김없이 꽃이 되는 일, 오래도록 ‘스스로 그러 하도록(自然)’ 디자인된 자연을 이 텃밭에서 실감한다. 그 생각은 농사로 이어진다. 아내는 1만여 평의 산비탈 정원을 제 식대로 가꾸느라 매일 하루해가 짧다. “처음에 계획 세울 때 비용이 많이 들어 고민했는데, 25년 열심히 일했으니 이런 정원 하나는 가져도 괜찮겠다 싶어 투자했죠. 친정 어머니 뜰에서 키우던 명자나무도 옮겨오고 토종 꽃도, 아스틸베 같은 이국의 꽃도 심으며 매년 업그레이드 중이에요. 아침에 눈뜨면 정원으로 달음박질하고 싶어 발바닥이 간질간질해요. 오늘은 얼마큼 컸는지, 아픈 덴 없는지 살피다 보면 도둑맞은 것처럼 시간이 훌쩍 가죠. 정원은 저를 이곳에 있게 하는 존재 이유예요.”

양구 펀치볼에 자리한 애플카인드 농장에서. 왼쪽부터 셋째 중원, 둘째 두원, 김경희 씨, 김철호 씨, 첫째 대현. 이 가족 뒤로 보이는 풍경이 그림 같다. 집 지을 때 인연으로 오경아 씨는 애플카인드의 사과나무 식재에도 관여했다. 애플카인드 사과밭은 와이너리 포도밭처럼 줄 맞춰 식재하고, 나무 주위 잡초를 그대로 둔 초생 재배 방식으로 구성했다. 그 덕에 유럽의 어느 와이너리 못지않은 경관을 자랑한다.
이 꽃밭에서 김경희 씨는 매일 할미꽃의 할미꽃다움, 명자나무의 명자나무다움, 메뚜기의 메뚜기다움에 대해 경탄한다. ‘스스로 어떠할 줄’ 모르게 태어난 인간이 ‘스스로 그러한’ 존재에 감복하는 장소, 더불어 ‘사람다움’을 생각하는 장소. 그들에게 이 뜰은 그런 장소다.
촬영 내내 두 사람의 환한 얼굴이 사라지지 않았다. 미덥고도 기분 좋아지는 얼굴이었다. 이들의 사업 밑천 중 가장 큰 것은 저 얼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정도로. 말에는 언령言靈이 있어 “행복해져라, 행복해져라” 말하니 진짜 행복해진 걸까. 가슴에 품고 살던 염원, 꿈을 드디어 만난 걸까? 모름지기 행복한 사람은 떠나지 않는다.

원래 산자락에 있던 돌을 그대로 두고 그 사이에 꽃을 심어 암석 가든을 만들었다. 그 위로 소박한 집이 보인다. 시골 살림에 꼭 필요한 창고도 나중에 지었다.

찍박골정원 가드너 김경희의 가드닝 클래스
- 일자: 5월 18일, 6월 15일, 7월 20일, 8월 17일, 9월 21일
- 장소: 장충동 디자인하우스, 내곡동 가든일레븐
- 자세한 내용은 여기에서 확인해 주세요!

글 최혜경 기자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2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