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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가 지은 집 사계아방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제주 사계리 마을에 거대한 콘크리트 경사 지붕 집이 들어섰다. 파파레서피 김한균 대표의 가족은 주말이면 이곳에서 온종일 뛰놀고 먹고 쉬며 하루를 보낸다. 반복되는 집에서의 시간을 벗어나 커다란 지붕 아래에서 되찾은 여덟 식구의 새로운 일상.

콘크리트 경사 지붕에 올라선 김한균 대표의 가족. 땅에서 시작한 지붕은 햇빛과 바람으로부터 가족을 보호하는 셸터이자 산방산을 담는 프레임, 바다를 바라보는 전망대이다.


아이의 시간은 어른의 시간보다 천천히 흐른다. 영국 배스 대학교 크리스티안 예이츠 교수는 “우리가 감지하는 시간은 이미 살았던 기간의 비율에 좌우되므로 다섯 살 어린아이가 보내는 5년은 마흔 살 어른의 40년과 같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들의 이론에 따르면 어린 시절의 시간은 기억에 더 많이 남는다. 그것은 차곡차곡 저장되었다가 문득 떠오르는 추억이 되고, 그중 어떤 순간은 평생을 지탱하는 기억으로 남기도 한다.

네 아이의 아빠이자 뷰티 브랜드 파파레서피를 운영하는 김한균 대표가 제주에 세컨드 하우스를 지은 데에도 이 같은 생각이 바탕이 됐다. 그는 첫째 딸의 피부 고민 때문에 천연 원료로 제조하는 화장품 브랜드를 창립했을 정도로 가족이 삶의 중심이 되는 사람이었다. “예전에는 일 때문에 한 지역에서 1년 이상 살아본 적이 없을 정도로 자주 집을 옮겼어요. 40대에는 일보다는 아이들과 조금 더 여유롭게 보내고 싶었고, 아직 아이들이 어릴 때 자연 속에서 가족과 좀 더 함께하는 시간을 만들어주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김한균 대표 부부와 네 아이, 아내의 부모님까지 여덟 식구는 5년 전 제주로 이주했다. 그리고 아이들의 학교생활과 오롯한 가족의 시간을 두루 확보하기 위해 학교 근처 아파트와 자연이 가까운 주말 주택을 오가는 두 집살이를 계획하기에 이르렀다.


“사계리는 바다도, 산도 가까우면서 마을도 어느 정도 형성된 곳이었어요. 특히 제주에 올 때마다 좋아하던 산방산이 눈앞에 펼쳐지는 모습이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 산방산이 풍경처럼 자리하는 집을 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하나로 탁 트인 주방과 다이닝 존, 거실 모습. 실내는 따뜻한 느낌을 살려 말간 색감의 콘크리트와 자작나무 합판으로 마감했다.
덱으로 덮인 수영장은 여름에는 가족의 물놀이장, 겨울에는 뛰노는 놀이터가 된다. 지붕 너머로는 완벽한 산방산 뷰가 펼쳐진다.

김한균 대표는 사계리 마을에 세컨드 하우스를 짓고, 아버지의 마음을 담아 ‘사계아방’(아방은 아버지라는 뜻의 제주도 방언)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그 뜻을 함께한 이는 건축가 조병수다. 땅의 장소성을 지키는 건축물을 지어온 건축가는 가족의 든든한 바탕이 되어줄 집을 설계했고, 조병수건축연구소 윤혜진 팀장과 조경 디자이너 전용성, 공정건설 고찬욱 소장은 이를 실재하는 형태로 구현해냈다. 제주에서 자라 이제는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가구 디자이너 문승지는 가족의 생활에 맞춘 가구를 더했다.

“산방산이 바라다보이는 모습이 정말 듬직했고, 반대편의 들판과 멀리 언뜻 보이는 바다도 매력적이었습니다. 이러한 조망에 대응하면서도 뜨거운 제주 햇살과 바람을 막아줄 방법으로 생각한 것이 땅에서 이어지는 기울어진 판이었어요. 그렇게 경사 지붕 집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조병수 소장의 소개에 따르면 이 지붕은 ‘산방산에서 이어지는 땅의 흐름을 잇고, 품고, 또 흘려보내며 이 집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그 장소성을 경험하고 모색하는 요소’다. 그리고 그 지붕 아래에 움막처럼 가족의 집이 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는 거대한 책장 겸 벽을 설치했다. ⓒSergio Pirrone
부부의 침실. 자작나무 합판으로 마감한 왼쪽 벽에는 에어컨과 제습기가 숨어 있다.

1640㎡ 규모의 대지에서 집이 차지하는 면적은 불과 250㎡ 정도. 넓은 정원과 텃밭, 수영장과 발을 담그는 나지막한 풀, 캠핑 존까지 모두 실외에 자리한다. 텃밭을 가꾸고, 수영을 하거나, 옹기종기 둘러앉아 모닥불을 피우는 등 야외 활동은 가족이 다 함께 즐길 수 있는 액티비티이자 제주의 땅과 교감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실내 또한 함께 지내는 집에 초점을 맞췄다. 각자의 침실은 최소한의 크기로 프라이빗하게 배치하고, 함께 이용하는 거실과 다이닝 및 주방은 하나로 이어진 넓은 공간으로 계획했다. 바탕처럼 만든 집을 채우는 것은 디자이너의 가구. 그는 제주스러운 가구를 만들어달라는 김한균 대표의 요청에 맞춰 소파와 테이블, 체어를 비롯해 침대, 야외 벤치까지 집 안팎의 모든 가구를 직접 디자인했다. “조병수 선생님의 설계를 보고 강한 형태로 존재감을 과시하기보다는 힘을 빼고 디자인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기본 구조를 잘 지켜서 편안하게 오래 쓸 수 있는 가구가 핵심이었습니다. 또 특정한 형태보다는 제주 고유의 분재인 석부작이나 정낭 등 이곳의 문화를 녹여냈습니다.”


“땅이 지닌 환경을 가장 잘 경험하고 살리는 집입니다. 아이들이 자연과 접하고 몸으로 경험하며 자라는 집, 그래서 커서도 기억에 남을 순간을 만들어줄 곳을 지으려 했습니다.”


왼쪽 안방 욕실에서도 산방산이 바라다보이는 뷰를 놓치지 않았다. 오른쪽 디자이너 문승지가 작업한 다이닝 테이블과 체어. 테이블의 원기둥 구조는 제주 전통 대문인 정낭에서 착안해 디자인한 것. ⓒKiwoong_Hong
실내보다 훨씬 넓은 지붕 아래 외부 공간에서는 모닥불 캠핑, 수영, 자전거 등 가족의 다양한 놀이가 이뤄진다. ⓒSergio Pirrone
집이 완성된 뒤로 김한균 대표 가족은 슬기로운 두 집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아이들은 학교 일과가 없는 날이면 늘 이곳에서 지내며 정원을 뛰놀거나 수영하고, 할머니와 텃밭에서 채소를 돌본다. 요리가 취미인 김한균 대표는 부지런히 삼시 세끼를 담당하고, 저녁이면 야외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쏟아질 듯한 별을 보며 도란도란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사계아방에서는 아이들만 아니라 어른들의 시간도 한결 천천히 흘러간다. 이곳에서만은 늘 함께인 가족, 그들을 넉넉히 품어주는 제주의 자연, 그리고 이제는 또 하나의 가족이 되어버린 집과 함께.


*기사 전문은 <행복> 3월호를 통해 만나볼 수 있습니다! E-매거진 보러가기

글 정경화 기자 | 사진 박찬우(별도 표기 외)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5년 3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