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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공간 자연 속 기도원이 직장인의 별서로
경기도 광주의 산골짜기, 신자들이 기도를 올리던 검박한 공간이 반도체 검사 장비를 생산하는 넥스틴의 연수원이자 직원들을 위한 세컨드 하우스로 변모했다. 기도원의 원형을 보존하며 땅 위에 조용히 자리 잡은 집에서 직원과 가족들은 일상을 보낼 에너지를 다시금 채워간다.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산자락에 자리한 회사 넥스틴의 연수원이자 직원들과 공유하는 세컨드 하우스. 설계를 맡은 김택수 소장은 40년 전 지은 기도원을 고쳐 주변 경치가 녹아든 공간을 완성했다.
오늘의 목적지는 서울에서 차를 타고 한 시간. 도심을 벗어나 급격히 달라지는 풍경에 현실 세계에서조차 멀어지는 기분이 들 때쯤 넥스틴 박태훈 대표가 지은 건물 한 채가 나타난다. 회사의 연수원이자 직원들과 공유하는 세컨드 하우스인 이곳은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마을 끝자락에 나지막이 안착해 있다.
박태훈 대표는 2010년 반도체 검사 장비 시장에 뛰어들며 넥스틴을 설립했다. 이후 기술 개발에 성공하며 미국 업체가 독점하던 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고, 지금은 직원 1백60명을 건사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는 ‘아침에 웃으면서 출근하고 가족이 자랑스러워하는 회사를 만들자’를 슬로건으로 삼을 정도로 평소 직원들의 복지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이곳을 짓기로 결심한 때는 코로나19 시기였어요. 저희 회사는 특히 어린 자녀를 둔 직원이 많은데, 당시 집 밖 어디에도 마음 놓고 나가기 어려운 상황이었죠. 직원들이 마음 편히 머무를 장소가 없을까 하다가, ‘그럼 직접 만들면 되지’ 하면서 시작했습니다.”
회사가 위치한 동탄에서 차로 한 시간 내에 닿는 거리, 사람의 왕래가 적은 동네, 아이들이 놀기 좋은 계곡이 가까운 곳. 그는 이 세 가지 조건을 바탕으로 서울 근교를 물색했고, 40년 전 지은 기도원이 있던 부지를 발견했다.

넥스틴 박태훈 대표. 직원 복지에 진심인 그는 코로나19 기간 동안 직원들이 리프레시할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이곳을 짓기로 결정했다.
이곳은 한국 천주교의 발상지인 천진암 근처로, 천주교 신자들이 학문을 연구하던 동네인 동시에 울창한 숲과 맑은 계곡이 있어 잘 알려진 피서지이기도 하다. 한적하고 자연이 가까운 곳을 원하던 건축주의 조건에 딱 부합한 셈. 부지를 구입한 후 박태훈 대표가 처음 결정한 것은 기존 기도원의 유지 여부였다. 당시 575㎡ 규모의 대지에는 면적이 약 200㎡인 직사각형 건물 두 동이 ㄱ자로 놓여 있었다. 운영을 멈춘 기도원은 한 동만 관리인의 거주 공간으로 쓰는 중이었다.

첫 번째 동의 라운지. 세 면에 모두 통창을 설치해 울창한 잣나무 숲을 만끽할 수 있다.
“건축주는 실내만 고쳐서 쓰고 싶어 했어요. 저는 부수고 새로 짓자는 마음이었고요. 벽을 뜯어보니 그대로 두기에는 덧댄 흔적이 너무 많았어요. 주인이 바뀔 때마다 공사를 했는지 마감재가 세 겹이나 겹쳐 있었죠. 반면 가장 안쪽에 드러난 콘크리트 구조는 40여 년이 흘렀음에도 굉장히 튼튼했습니다. 기도실의 크기에 맞춰 2.5m마다 기둥과 보를 시공한 덕분에 구조가 굉장히 촘촘하고 견고했어요. 신축으로는 건축주가 원하는 기간 내에 마무리할 수 없었고, 콘크리트를 타설하기 쉬운 곳도 아니었기에 이 구조체를 살리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건축가와 건축주는 여러 상황을 고려한 끝에 레노베이션으로 방향을 정했다. 애써 남긴 구조체를 다시 가리기보다는 이를 정체성으로 삼아 드러내면서 새로운 공간을 더하기로 했다. 살아남은 구조체는 구조적으로도, 디자인 면에서도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게 됐다.

첫 번째 동은 목재와 칸살, 젠 스타일 중정으로 동양적 무드를 연출했다.
박태훈 대표가 김택수 소장에게 요청한 것은 딱 두 가지. 건물 두 동을 독립적으로 쓸 수 있도록 할 것. 그리고 서로 다른 분위기로 디자인해 바꿔 쓰는 재미를 줄 것. “공간이 넓다 보니 지인이나 부모님 또는 가족과 함께 오는 경우가 많을 텐데, 같이 놀다가도 잠잘 때는 서로 프라이빗하게 지내는 게 좋겠다 싶었어요. 그리고 아이들이 떠들고 뛰어다니며 노는 공간, 어른들이 조용히 쉬는 공간 두 가지 다른 분위기로 만들면 아이도 어른도 편안하게 즐길 수 있고요. 그 외에 직원들에게 어떤 장소가 되었으면 하는지 의견을 취합하기도 했어요. 노래방이나 수영장은 그 결과 탄생했습니다. 나머지 디자인은 김택수 소장님께 일임했고요.”
6개월의 설계, 8개월의 시공을 거쳐 완성된 건축을 관통하는 문장으로 김택수 소장은 ‘자연에 녹아드는 집’이라는 표현을 썼다.

인더스트리얼한 무드로 연출한 두 번째 동. 기둥과 보는 40년 전 지은 기도원의 구조체를 그대로 살린 것.
“새로 지었다면 좀 더 재미있는 시도를 했겠지만, 이왕 건물을 보존하기로 했으니 거기에 뭔가를 덧붙이고 싶지 않았어요. 본래 형태를 지키면서 자연도 건축도 거스르지 않는 조용한 모습으로 설계했습니다. 오늘처럼 눈이 오면 건물은 있는 듯 없는 듯 거의 보이지 않아요. 완성하고 보니 지금처럼 존재하는 것이 이곳에는 더 맞는 방식인 것 같아요.”

두 번째 동은 에폭시, 콘크리트 등 러프한 소재로 마감하고 색감이 강한 컬러로 포인트를 줬다.
건물 두 동은 건축주의 요청에 맞춰 ‘따로 또 같이’ 누리는 집이 됐다. 마주 보던 출입구를 멀리 떨어뜨려 같은 대지에 있지만 프라이빗하게 이용하고, 각각의 동에서도 침실은 가장 먼 곳에 배치해 혹시 모를 소음도 방해가 되지 않도록 했다. 반대로 거실이나 다이닝 공간처럼 공적 공간은 가까이 모으고, 가운데에 야외 공간을 두어 원할 때는 언제든 두 동의 가족이 함께 즐길 수도 있다. 입구를 지나 나타나는 첫 번째 동은 칸살문과 따뜻한 목재, 교토의 료안지를 닮은 중정 등의 요소로 차분하고 고즈넉한 동양적 무드를 구현했다. 이곳이 어른들이 한가롭게 쉬는 집이라면, 두 번째 동은 아이들이 자유분방하게 뛰노는 놀이터다. 거친 콘크리트와 어울리는 스틸, 에폭시 등 물성이 강한 재료로 마감해 빈티지한 분위기의 펍처럼 연출한 것이 특징.
“스타일은 상반되지만, 공통적으로 둘 다 아파트에서 느낄 수 없는 공간감을 주려 했어요. 아파트는 벽식 구조라 곳곳에 실을 구분하는 벽이 놓이는데, 이곳에는 최소한으로 두었습니다. 욕실과 침실을 제외한 라운지와 다이닝 공간, 주방은 모두 하나로 열려 있죠. 대부분 통창으로 마감해 곳곳에 자연과 빛이 드나들고요. 또 일반적으로 집에 쓰는 마감재보다는 목재나 석재, 금속 등 자연 재료를 인위적으로 가공하지 않고 사용했습니다. 옛 건물의 구조체처럼 시간이 흘러도 본래의 모습을 잘 유지하는 재료들이고, 불특정 다수가 다양하게 쓰는 공간이어서 관리하기에도 유리합니다.”

숲속에 나지막하게 자리 잡은 건축물은 자연의 일부처럼 녹아들어 있다.
자연을 품은 리조트는 많지만, 이곳처럼 고개만 돌리면 하늘과 나무가 시선에 닿고, 문 열고 몇 발짝이면 울창한 숲과 계곡을 만날 수 있는 곳은 흔치 않다. 또한 건축가는 기존 땅이 지닌 질서를 해치지 않는 건물을 디자인하고, 호텔의 정제된 마감재나 인테리어를 따르는 대신 주변을 닮은 재료로 자연스럽게 녹아들도록 했다. 최고의 건축은 자연임을, 최고의 휴식 또한 자연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임을 건축주와 건축가가 잘 알고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건축가 김택수는 미국 Sci-ARC에서 건축을, 호주 멜버른 RMIT 대학에서 건축과 실내 건축을 전공하고 2002년 버텍스디자인을 개소했다. 호주와 미국에서 경험한 디자인을 우리의 주거 환경에 맞게 해석해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공간을 선보인다. 주요 작품으로는 인천영어마을, 성균관대학교 학술정보관, 넵스쇼룸 파주, 성북동 주택, 대장동 주택, 더퍼스트터치 사옥, 운중동 더디바인주택, 마곡 MICE, 부천 영상단지, 강남 메가커피 사옥 등이있다. ver-tex.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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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경화 기자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5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