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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강진주 Kang Jin Ju 돌고 돌고 도는 자연에 기대어
고유의 향취가 묻어나는 개성 있고 아름다운 집은 인테리어의 영역이 아니라 삶의 영역이 아닐까 싶다. 사랑하고, 배우고, 흠모하면서 하나씩 모으고 디자인한 시공간. 그런 공간에 들어서면 대번에 멋스럽다는 감탄이 터져 나오는데, 사진작가 강진주의 집이 그렇다. 그리고 그 이면에의 작업과 삶은 더 깊고 풍요롭다.

주방에 있는 것들은 대부분 주문 제작했거나, 공예품이다. 식탁은 강정태 건축가가 만들어준 것이고 벽에 걸린 그림은 곽인식 작가의 작품이다.
이면 도로 안쪽으로 야트막한 오르막길을 오르면 나오는 삼층집. 대문 옆에는 강진주 작가의 애마 랜드로버가 서 있다. 오랫동안 한국의 쌀과 농부, 그리고 식재료를 찍어온 강 작가는 몇 해 전 이 빨간 벽돌집을 구입한 후 인테리어 디자이너 윤이서와 함께 내부를 통째로 뜯어고쳤다. 흔히 생각하는 모던한 방식이 아니라 쪽모이 세공으로 마감한 나무 바닥과 대나무로 들어 올리는 들창, 네덜란드의 조선소와 항구에서 쓰던 묵직한 조명이 있는 곳으로. 휘둥그레진 눈으로 집을 구경하다 보면 신기하고 독특한 것이 계속 시야에 들어온다.

왼쪽 1층 작업대. 바닥에는 을지로에 산 고무 바퀴를 달았다. 상판에 올려둔 것은 17년을 함께한 강진주 작가의 영원한 친구이자 스승인 반려견 소피의 사진과 흔적들. 그녀의 삶에서 소피는 빼놓을 수 없는 생명이자 시간이다. 오른쪽 철판과 합판으로 만든 아트월. 자연과 식재료를 주제로 작업한 사진들이 빼곡히 붙어 있다.
1층에 있는 사무용 책상 다리에는 을지로에서 구한 큼직한 고무 바퀴가 끼워져 있고, 2층 벽에는 행위 예술로도 유명한 아티스트 성능경이 퍼포먼스를 하며 남긴 타다 남은 부채가 걸려 있다. 진한 톤의 합판으로 깔끔하게 마감한 주방 상부장 위에는 석간주로 만든 항아리가 주르르 도열해 있고, 그 옆으로는 시각 장애인이 점토로 만든 천사상이 놓여 있다. 요리 애호가의 집답게 조리도구도 넘친다. 동 냄비와 전골 요리용 도자기, 안동에서 가져온 느티나무 도마…. 식탁은 이곳에 모여서 사는 이야기도 나누고, 살롱에서처럼 지식도 교환하던 강정태 건축가가 만들어줬다. 이런 기물과 가구를 나열하자면 잡지 한 권도 모자라다. 이곳은 좋아하는 것도, 사랑하던 것도, 알고 싶은 것도 많은 강진주의 집이다.

자연과 제철 식재료, 민가에서 사용하던 조리 도구는 어느새 강진주 작가의 모든 것이 되었다.

그녀는 사진가이면서 사진과 영상을 중심에 둔 행동가, 그리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기도 하다. 사진 작업부터 이야기하자면 그녀는 쌀, 배추, 소쿠리, 광주리를 비롯해 땅을 일구는 농부와 초등학교 앞에서 뻥튀기 기계를 돌리는 사람들을 찍는다. 1월부터 12월까지 각 달의 대표 식재료를 검은색 배경지를 뒤에 대고 힘 있게 찍은 식재료 시리즈는 보는 것만으로 계절 속에 함께 있는 듯 충만한 기분이 된다. 1월의 곶감, 2월의 대합, 3월의 달래, 4월의 딸기, 5월의 꽃게, 6월의 참외, 7월의 가지, 8월의 풋고추, 9월의 무화과, 10월의 배추, 11월의 늙은 호박, 12월의 굴…. 계절의 순환, 자연의 순환, 삶의 순환을 생각하자는 의미에서 시작한 프로젝트로 그때가 2011년이다. 2016년에는 평택에서 쌀농사를 짓는 농부 전대경 씨와 마을 사람들의 삶을 밀도 있게 기록한 도서 <쌀을 닮다>를 펴냈다. 쌀과 농사에 대한 애정 및 정성으로 가득한 이 책은 지난 2020년 미식 책 분야의 오스카상이라 평가받는 ‘구르망 월드 쿡북 어워드’ 쌀 부문에서 1위를 수상했다.

“저는 박물관에 있는 건 안 찍어요. 소외된 것, 그런데 살아 있어서 에너지가 느껴지는 것에 끌려요. 이를테면 조랭이떡국 만드는 데 쓰는 나무칼부터 아기를 위해 제작한 아주 작은 밥상, 맏며느리가 쓰는 제기나 소쿠리, 주걱이나 도마 같은 거요.”

윤이서 인테리어 디자이너의 감각이 오롯이 묻어나는 주방. 벽까지 흙 미장으로 마감했다.
2층 구석방. 가만있으면 조용히 충전되는 기분이 든다.
어쩌면 가뭇없이 잊혀가는 사물들에게 보내는 연정. 이렇게까지 시간과 마음을 쓰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을 떠올려보세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 전에 행한 마지막 만찬인데, 예수와 제자12명이 한쪽으로만 일렬로 앉아 있지요. 맞은편에는 사람이 없는데, 왜 그런지 아세요? 중세 시대에는 전쟁과 폭력이 난무했기 때문에 맞은편에 사람을 안 앉힌 거예요. 그런데 그런 시대가 코비드 사태 때 다시 반복됐잖아요. 상대가 없는 식탁에서 ‘혼밥’을 먹는 시대가 온 거죠. 과학과 문명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발전하지만 사물과의 관계, 좋던 문화, 인간다움의 본질이 기억되고 이어지지 않으면 다 무슨 소용이겠어요. 사람이 계속 달리기만 할 수 있나요? 물건도 계속 쓰면 예뻐져요. 사람도 마찬가지지요. 후졌다, 촌스럽다고 내팽개치는 게 아니라 그 안에 있는 내밀함과 단단함, 다양성을 지켜주고 싶은 거예요. 그렇게 사물과 기운, 문화가 순환할 때 인간다움도 지킬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죠.”

왼쪽 1층 작업실에 있는 조형물이자 설치미술. 철근 끝에 다완 한 점이 살포시 올라가 있다. 오른쪽 도자와 나무, 유리와 장난감을 포함한 강진주 작가의 컬렉션은 화장실과 테라스를 포함해 집 곳곳에 작은 보물처럼 자리 잡고 있다.
쪽모이 세공으로 완성한 나무바닥. 계단참 위의 벽에는 성능경 작가가 퍼포먼스에서 사용한 타다 만 부채를 걸었다.
과거에 접속하는 여유와 지혜도 필요해
그렇게 찍은 사진에는 친밀한 내러티브가 있다. 조랭이떡과 나무칼이 눈처럼 허공에 휘날리고 나무 밥상은 그림자를 드리운 채 붕 떠 있다. 클로즈업해 찍은 소쿠리와 광주리는 장군처럼 늠름하다. 이런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이유는 그녀 자신이 음식과 음식 문화를 잘 이해하는 덕분이다. 식문화에 꽂힌 이후로 그녀는 관련 문화를 도장 깨기하듯 배워왔다. <쌀을 닮다>를 함께 만든 조희숙 선생을 비롯해 스승 겸 친구로 지내는 셰프가 부지기수고 명지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인 윤용이 선생께는 우리 옛 그릇과 도자 문화를 배우고 있다. 부산차인연합회 허충순 선생에게는 몇 년간 한국 차와 꽃에 관한 수업을 들었다. 목공예, 유리공예에도 박식하다.


인터뷰를 하다 보면 점점 이야기의 전 단계, 삶의 전 단계가 계속해서 궁금해지는 사람이 있다. 어떤 과거의 삶이 지금의 삶을 견인했을까 싶어 묻지 않을 수 없는. 30분가량 이어진 긴 서사를 간추려보자면 이렇다. “중앙대 사진과를 졸업하고 무작정 일본으로 날아갔어요. 히라가나도 모른 채로요.(웃음) 당시 일본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사진 스튜디오에 운 좋게 취직을 했고 그곳에서 새로운 인생을 살았습니다.”

상업 사진을 찍던 강진주 작가를 자연의 순환으로 이끈 상징적 작품. 배추 뿌리에 있던 흙까지 그대로 들고 와 푸릇한 생명력을 고스란히 담는 데 집중했다. 볼수록 ‘우주’처럼 보이는 작품.
일본에서 돌아와 잘나가는 상업 사진작가로 이름을 떨치던 그녀는 이제 식문화와 관련한 사진과 연출, 기획 위주로 커리어를 정리하고 있다. 환경 보호에 앞장서지 않는 기업과는 함께하지 않는다는 원칙도 세웠다. 삶의 방향이 명확해지자 만나는 사람도, 집에 들이는 물건도, 보내는 시간의 내용도 한 맥락 안에서 정리되고 있다. ‘아트적인’ 삶은 이렇게 살아야겠다, 하는 신념 안에서 시작되고 만들어지는 것. 그녀의 3년 후, 5년 후, 10년 후의 모습이 더 기대되는데, 그렇게 크고 좋은 생각을 지니고 사는 사람의 삶은 언제나 빛나고 귀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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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성갑(갤러리 클립 대표, <건축가가 지은 집> 저자)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5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