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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in Life_ 레노베이션 스토리 공예와 가족의 시간으로 짓는 유일무이한 아파트
진화원 씨 가족의 집 인테리어는 15년째 진행 중이다. 다섯 식구의 시간이 흔적처럼 쌓인 공간에 작가의 작품, 인테리어 디자이너의 디테일이 어우러져 가족만을 위한 풍경을 지어내는 집. 획일적 구조의 198㎡ 아파트에서도 주택처럼 사는 방법이 여기에 있다.

15년 넘게 디자이너와 클라이언트로 인연을 맺고 있는 이길연 디자이너와 진화원 씨. 두 사람이 앉은 BDDW 의자 사이의 테이블은 황형신 작가의 작품. 뒤쪽에는 허명욱 작가의 스틱 작품이 벽면을 딱 알맞게 채우고 있다.
가족에게는 결혼과 임신, 육아 같은 일련의 생애 주기가 있다. 진화원 씨 가족에게도 세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서 독립하는 변화의 시점이 있었다. 누군가는 이사를 고민하기도 하는 전환점에 부부는 집 고치기를 택했다. “15년 전, 이 집을 처음 고쳤을 때는 아이들에게 완전히 포커스를 맞췄어요. 욕실에는 세면대와 샤워기를 두 대씩 설치하고 아이들 침실도 공주풍으로 꾸몄죠. 5년 전, 아이들이 청소년이 되면서 아이 방과 주방을 한 차례 리모델링했고, 셋 모두 독립한 후에는 부부의 안방과 욕실을 중심으로 다시 한번 바꾸게 됐습니다.” 그때마다 함께한 디자이너는 처음 이 집을 고치면서 인연을 맺은 길연의 이길연 대표. 그는 당시 클라이언트의 라이프스타일을 120% 반영하는 인테리어와 깔끔한 시공으로 만족스러운 집을 선사했고, 무엇보다도 인테리어 디자인, 작가와 작품, 그릇 한 점까지 취향이 서로 비슷했다.

안방에 커튼 대신 설치한 슬라이딩 도어는 유남권 작가가 한지 위에 옻칠을 올려 제작했다.
다이닝룸 벽면에는 까만 그릇장을 설치하고 싶던 진화원 씨의 로망을 대신해 박찬우 작가의 작품을 걸었다.
그렇게 인연이 이어져 리모델링 프로젝트가 다시 한번 시작됐다. “남편은 숫자를 중심으로 사는 사람이라 작품이나 공간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어요. 그런데 잘 고친 집에 10년 넘게 살다 보니 공간의 힘을 실감했는지 어느 날 ‘왜 내 욕실은 고쳐주지 않아?’라고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욕실만 고치려던 것이 안방과 거실, 아이 방까지 일이 커졌죠.” 남편의 의뢰로 시작한 인테리어인 만큼 침실과 욕실은 그의 요청을 적극 반영했다. 좋아하는 반신욕을 즐길 수 있도록 붙박이장이 있던 공간까지 욕실로 할애했고, 아들 방은 아이의 연령대에 맞게 가구와 작품의 매무새를 조정했다. 거실과 현관은 몰딩을 비롯한 장식 요소를 깨끗하게 정리한 다음 한식 원목 마루, 하얀색 스페셜 페인트, 석재 등 단정하고 정갈한 질감의 소재로 마감했다.

새하얀 거실과 대비되어 프레임 속 장면처럼 느껴지는 블랙 톤의 주방. 가족의 추억이 가장 많이 담긴 다이닝 테이블은 15년 전 이길연 디자이너가 김동원 작가의 작품을 설치한 것.
깔끔하게 정리한 바탕 위에는 진화원 씨가 하나하나 고른 작품이 제자리를 찾아갔다. 오래전부터 애정해 온 박찬우 작가의 작품 ‘스톤’은 주로 시간을 보내는 주방 테이블에서 가장 잘 보이는 위치에 걸었고, 그릇장을 형상화한 작품은 다이닝 테이블 옆에 설치해 부엌에 까만 그릇장을 두고 싶던 로망을 대신했다. 거실 한쪽 벽면에서 존재감을 내뿜는 허명욱 작가의 작품은 원래 갖고 있던 것을 ㄱ자로 꺾인 벽면에 맞춰 다시 시공했다. 딱 알맞게 배치한 덕분에 공간의 완성도까지 함께 높아졌다.

거실은 모든 면을 몰딩이나 장식 요소 없이 깔끔하게 정리하고 스페셜 페인트로 마감해 질감을 더했다.
여기에 이길연 디자이너는 자신의 시그너처이자 장기인 공예 작가들의 작품을 심었다. 그가 항상 강조하는 것은 ‘생활의 일부가 되는 작품’. “집은 매일 그리고 오래 써야 하는 곳이라 더더욱 유행을 타지 않는 유일한 것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그 방법으로 작가의 작업을 집의 일부로 들입니다. 작품을 구입해서 액자에 넣어 배치하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삶에서 향유하는 공예가 진정한 럭셔리라고 생각해요. 한국 작가에게 작업을 펼칠 기회를 주는 제 나름의 방식이기도 합니다.”

왼쪽 욕실에는 창이 나 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 싶어 김희원 작가의 영상 작품을 설치했다. 벤치와 칸살 벽은 황형신 작가의 작품. 오른쪽 욕조에는 故 김백선 디자이너와 협업한 판티니의 수전을 설치했다.
유남권 작가가 한지 위에 옻칠을 입혀 만든 안방의 슬라이딩 도어나 황형신 작가의 금속 서랍장이 그 결과물이다. 그중에서도 화룡점정은 안방의 욕실. 돌로 제작한 넓은 세면대와 합을 맞출 하부장을 황형신 작가에게 의뢰하면서 시작된 작업은 벤치와 거치대, 선반까지 늘어나 이 욕실만으로 하나의 거대한 프로젝트가 됐다. 붙박이장을 포기하고 확보한 공간에는 파리 시내를 찍은 김희원 작가의 영상 작품도 딱 맞춰 설치했다. 늘 커튼이나 블라인드로 가리고 살아 뷰가 없던 집에 풍경이 있기를 바랐던 이길연 디자이너의 고민이 만들어낸 솔루션이다. 반신욕을 할 때면 황형신 작가가 만든 문살 사이로 김희원 작가의 영상이 하늘하늘하게 보이는데, 그 풍경 덕분에 남편은 욕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훨씬 즐거워졌다고.

황동으로 만든 안방 서랍장과 욕실 수납함은 황형신 작가의 작품.
각자의 집은 그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그곳에서 보내는 가족의 시간이 더해지며 비로소 유일무이한 존재가 된다. 15년이라는 가족의 시간이 쌓인 진화원 씨의 집은 그 자체로 가족이 함께 만들어낸 귀한 공예품과도 같다. 전부 새로 바꾸거나 새집으로 이사하는 것 대신 잘 유지하고 고친 집은 때로는 가족을 지키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한집에서 오래 산다는 것, 그리고 그 집에 변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는 건 좋은 일인 것 같아요. 주방의 식탁은 15년 전에 구입한 것을 그대로 쓰고 있는데, 와글와글 앉아 있던 어린 아이들이 이제 어른이 되었지만, 여전히 같은 자리에 그때 그 모습으로 앉곤 해요. 변했지만 변하지 않은 가족을 이 집도 함께 기억하고 있다는 기분이 듭니다.”

집에 들어서면 박찬우 작가의 작품 ‘스톤’이 가장 먼저 가족을 맞이한다.
디자인 스튜디오 길연의 이길연 대표는 인테리어와 공간을 위한 예술 작품 컨설팅을 함께해 공예가 녹아든 집을 디자인한다.클라이언트의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공간 구조까지 완벽하게 생활에 맞추는 커스터마이징 프로젝트로 잘 알려져 있다. kilye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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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경화 기자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5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