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에 둔 메인 작업 테이블. 새 제품을 사기에는 금액이 부담되어 중고 마켓에서 원목 테이블을 구매한 뒤 상판만 새로 칠했다.
‘그림 같은 집’이라는 표현에 완벽히 부합하는 곳. 바로 일러스트레이터 강한의 아파트다. 그의 이름을 처음 듣는 사람에게도 그림만은 익숙할 텐데, 뷰티·푸드·디지털·패션·엔터테인먼트 등 다채로운 브랜드와 협업은 물론, 전시와 개인 브랜드 ‘어 레터 프롬’에 이르는 활동을 왕성하게 이어왔기 때문이다. 학생 시절부터 벌써 7년째 프로 작가로 활동할 수 있었던 건 일찍부터 일러스트라는 분야에 확신을 가진 덕. 그 시작은 예술고등학교 입시를 준비하던 중학생 시절. 당시에도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고 싶어 담당 선생님과 상담을 했는데, 학과는 중요하지 않으니 그림 연습과 개인의 세계를 확장할 수 있는 순수예술 쪽을 추천받아 대학까지 동양화를 전공했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단순히 ‘좋아서’ 그린 그림보다는 사회문제나 개인사 등 심도 있는 이야기를 담아야 했고, 그 과정이 스스로를 애써 포장하는 일로 느껴졌다.
메인 작업 테이블 앞 벽은 좋아하고 직접 만든 다양한 소품과 작품으로, 맞은편 벽은 소파와 컬러풀한 러그로 리듬감을 주었다.
“최근에 첫눈이 왔잖아요. SNS로 친구들 소식을 살펴보는데, 폭설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휴가를 즐기거나, 일과 후 눈싸움을 하고 눈사람을 만드는 등 일상에서 벗어난 하루를 보내는 모습이 행복해 보이더라고요. 이렇게 소소한 일상에서 만족감을 느끼는 편이라 그런 장면을 제 그림에 담아내고 싶었어요. 그래서 본격적으로 일러스트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고요. 다행히 많은 분이 좋아해주어서 꾸준히 ‘너와 내가 좋아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답니다.”
가장 공을 들인 주방. 좋아하는 민트 컬러를 곳곳에 담았다. 주방에 있는 대부분의 컵과 식기는 직접 만든 세라믹 제품이다.
침실은 하늘색을 테마로 쉼을 위해 여백을 남겼다. 벽에 평소 좋아하는 일본 작가 미로코 마치코의 전시 포스터와 가애 작가의 원화를 걸었다.
강한 씨의 아파트는 1997년에 지은 구옥으로 세 개의 방이 있는 구조다. 그중 거실은 메인 작업실, 안방은 짐이 가장 많은 개인 브랜드 업무를 위한 방(일을 도와주는 동생의 주 작업실이다), 나머지 두 개의 작은방이 각각 침실과 드레스룸 겸 창고다. 처음에는 업무와 생활을 완벽하게 분리하고 싶었다. 하지만 월 고정비는 절약하면서 안전한 전세 매물을 찾다 보니 아파트를 얻게 되어, 지금은 먹고 자는 것은 물론 종종 친구를 초대해 음식도 대접하며 삶과 일이 혼재된 아지트처럼 활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2024년 4월에 이사한 뒤 한동안은 이 공간에 정이 들지 않아 그림조차 근처 카페에서 그렸다고.
왼쪽 개인 브랜드 어 레터 프롬을 위한 작업실로, 평상시에는 포장 등의 업무를 돕는 동생이 주로 사용한다. 오른쪽 강한 씨는 디지털 작업만 하기보다는 물감이나 색연필로 직접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는 경우가 많다.
“아마 낯설었던 것 같아요. 6개월이라는 시간을 들여 방마다 커튼을 달고, 마음에 들지 않는 곳은 페인트나 시트지 작업을 하고, 추억이 담긴 가구나 소품이 하나둘 늘어나면서 점점 집에 나의 색을 입혔죠. 그제야 내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성을 쏟은 만큼 집의 모든 요소에는 저마다의 사연이 담겨 있었다. 그중 컬러풀한 주방은 본래 무채색 가구와 붉은 타일이 어색한 대비를 이루고 있었는데, 확실한 변화를 위해 상·하부장에 알록달록한 시트지를 붙이고 중고로 목재 카운터를 사 와 가장 ‘강한’스러운 스타일로 완성한 것.
지난 4월 용인 벗이미술관 기획전 에 참여할 때 전시장을 꾸미고자 구입한 화분. 약 석 달간 진행된 전시의 추억을 담아 집으로 데려왔다. 화분 커버는 친한 친구의 선물.
강한 씨와 대화를 나눌수록 필연적으로 ‘그림 같은 집’에 살 수밖에 없는 사람임을 느꼈다. 그에게는 그림이 곧 취향이기 때문. “저는 주택에 로망이 있어요. 25세 때부터 35세에는 주택을 사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죠. 지금은 여러 현실적 문제로 불투명해졌지만요.(웃음) 그래도 언젠가 저의 집을 갖게 된다면 그때는 구조부터 벽지 색 등 정말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쓰고 싶어요. 집이나 작업실을 꾸밀 때 항상 ‘나답게’ 만들자는 목표를 세우는데, 제대로 나의 모든 면을 녹여낸 집을 만드는 거죠.” 그의 세계를 담아 지은 집은 또 얼마나 동화 같은 모습일지, 기대되는 마음을 담아 ‘강한 주택’을 응원하는 목소리를 남겨본다.
1 강한 씨의 작품은 아날로그를 기반으로 하는 만큼 작업 테이블에는 수많은 채색 도구가 있다. 그중 하나인 물감.
2 4~5년 전 전시를 위해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빨간 구두를 직접 구입해 안쪽에 패턴을 그린 것으로, 지금은 페어나 전시 때마다 챙겨가는 행운의 아이템이 되었다.
3 단종되어 중고로만 구할 수 있는 미국 보이즈 베어스사의 애착 인형.
4 취미로 꾸준히 도자기 공방을 다니는 중인데, 종종 이 치즈 캐릭터처럼 직접 그린 것을 만들어 오기도 한다고.
5 배우 이준혁이 만든 모바일 게임을 원작으로 한 그림책 <안녕 팝콘>. 강한 씨의 대표 작품이기도 한데, 2024 알라딘 이 분야 최고의 책으로 선정되며 최근 새로 커버를 그렸다.
나만의 취향을 발견할 수 있는 <1집구석>에서 강한 님 인터뷰 보기!
▶사랑스러운 소품 가득, 일러스트레이터의 동화 같은 집
- 1집_싱글 하우스_일러스트레이터 강한 집, 하나로 연결된 세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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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보면 그 사람의 취향을 짐작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분명할 수 있을까. 좋아하는 것을 그리고 싶어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었다는 강한 씨의 동화 같은, 상냥한, 사랑스러운 일러스트를 닮은 아파트.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5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