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인 3층 미팅 공간. 그의 취향이 가득한 소품이 테이블을 감싸고 있어 아늑하다.
레트로 소품부터 회화 작품까지. 얼핏 특징이 전혀 다른 아이템들에 뒤덮여 있는 이곳은 이달의 1집러 스튜디오 승호(SS)의 이승호 소장의 집이자 사무실이다. 이승호 소장은 건축 경력 9년째 되던 2021년, 자신만의 디자인을 하고 싶다는 마음에 스튜디오 승호를 설립해 독립하며 용산에 지금의 사무실을 얻었다. 올 8월에는 6년간 살던 신당동 집을 떠나 사무실과 같은 건물로 이사를 했는데, 이 과감한 결정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온전한 휴식처가 되어주는 LP 방의 모습. 별다른 설비를 갖추지 않았음에도 방음이 꽤 잘되어 저녁에도 큰 소리로 음악을 감상하며 지낼 수 있다고.
음반을 재생했을 때 느껴지는 아날로그한 소리를 좋아한다. 늘어진 테이프 사운드나 잡음 섞인 LP의 소리가 좋아 음악을 들을 때면 라디오나 전용 플레이어를 사용한다.
첫 번째는 온전한 독립이다. 대학 입학과 동시에 혼자 살아온 그였기에 다시 독립을 원했다는 말이 의아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그는 진정한 독립을 위해서는 경제적 독립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저희 아버지는 아무런 도움 없이 자수성가하신 분이에요. 그 모습을 동경했기에, 저도 혼자의 힘으로 삶을 꾸려가고 싶었죠. 조금 부끄럽지만 직전 집도 부모님께서 전세 자금을 마련해주신 곳이었거든요. 저도 이제 마흔을 바라보고 있는 데다, 개인 스튜디오도 운영하고 있으니 그 시기를 더 미루고 싶지 않았죠.”
3층 개인 사무 공간 앞에 마련한 테이블. 도면 등 업무에 사용하는 물품이 잔뜩 쌓여 있다.
또 다른 이유는 사무실과 같은 건물이라는 점. 개소 4년 차, 한창 일에 몰두할 시기인 만큼 출퇴근에 낭비하는 에너지를 줄이고자 사무실 부근에 집을 찾았지만, 예산 안에서는 건축가인 자신의 안목을 충족시킬 집을 찾을 수 없었다. 어차피 만족할 만한 집을 찾을 수 없다면, 효율성을 극대화해보자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저도 처음에는 고민이 많았죠. 예전 집보다 규모가 많이 작기도 하고, 마음에 드는 건 사무실과의 거리밖에 없는 곳에 사는 게 맞을지에 대해서요. 지금은 너무 만족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이제 마음만 먹으면, 준비 시간을 포함해서 10분이면 출근할 수 있어요. 전에는 도로 위에서 한 시간도 넘게 허비했는데 말이죠.”
수집품인 만큼 그는 상당한 양의 연필깎이를 가지고 있다. 작년에는 전동 연필깎이로만 ‘약수터 플리 마켓’에 참여했을 정도인데, 1년이 지난 지금은 당시 판매한 만큼 다른 제품이 생겼다고.
이 소장이 지금 사는 곳은 5층짜리 상가 주택 건물이다. 그중 3층을 사무실로, 5층을 집으로 사용하고 있다. 사무실을 먼저 소개하자면, 별도 실을 마련한 개인 사무 공간이 중앙을 차지하고, 양옆으로 큰 테이블을 둔 미팅 공간과 직원들의 업무 공간을 배치했다. 사무실까지 집처럼 사용하고 있다는 그의 말처럼, 업무를 위한 곳이라기보다는 취향이 담긴 소품으로 가득 찬 모습이 누군가의 아지트를 엿보는 듯한 기분이 느껴질 정도다. 그 때문일까, 실제로 친구들과의 약속 공간으로도 사랑받는 곳이라고. “영화 보고 싶을 때는 사무실 스크린을 내려 활용하고, 가까운 지인들과는 미팅 공간에서 종종 만나요. 특히 미팅 공간은 아늑한 데다 제 취향이 가득해서 사무실과 집을 통틀어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죠.”
한쪽 벽면 전체를 채운 LP판. 한 아티스트에 빠지면 앨범 전집을 모으는 편인데, 그중 가장 좋아하는 아티스트는 신해철과 전람회, 변진섭이다.
5층의 집도 비슷한 분위기를 풍긴다. 폭이 좁은 주방 겸 거실을 따라 방 세 개가 차례로 나타나는데, 휴식을 위해 안방에는 짐을 최대한 줄였다. LP 방은 음악이라는 테마 아래 LP, 카세트테이프 등의 음반을 모아두었다. 건축을 제외하면, 유일한 취미가 음악인지라 반드시 필요한 공간이었다고. 덕분에 그의 일과는 훨씬 단순해졌다. 새벽, LP를 듣다가도 좋은 생각이 떠오르면 사무실로 내려가고, 한낮에도 피곤해 집중이 되지 않으면 잠시 집에 올라와 낮잠을 자기도 한다. “누군가는 제 모습이 일에만 치중되었다 느낄 수 있겠지만, 제게 건축은 직업인 동시에 가장 좋아하는 일이에요. 하고 싶은 디자인을 하며 안정을 찾아가는 요즘, 제가 향하는 방향에엗대한 확신을 느끼고 있어요.” 명확한 주관 아래 자력으로 꾸려가는 삶, 그가 바라던 진정한 의미의 독립이 아닐까.
1 그가 본격적으로 수집하는 몇 안 되는 제품 중 하나가 연필깎이다. 이 제품은 독특한 모양이 마음에 들어 이베이에서 구입했다고.
2 에어컨 바람을 좋아하지 않아 선풍기를 자주 사용하는데 황학동에서 컬러와 디자인, 합리적 가격까지 갖춘 제품을 발견해 LP방에 들였다.
3 설계 및 드로잉 작업에 사용하는 필기구를 꽂아둔 연필꽂이.
4 어린시절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마징가 Z 피규어. 다른 로봇과 달리 제트 파일더를 타고 날아 도킹하는 장면이 쇼킹할 만큼 멋져 보였다고.
5 1970년대에 선풍적 인기를 끈 소니 붐박스 CF 580. 오래된 모델인지라 안테나나 일부 패널을 다른 부품으로 수선했다.
- 건축가 이승호 나의 주관과 힘으로 시작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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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인생의 우선순위는 다르기 마련이다. 이에 따라 집의 형태도 달라질 수밖에 없는데, 건축가 이승호 씨는 올해 8월, 그의 1순위인 위해 직주근접을 넘은 직주일체를 실현했다. 일이 곧 취미라는 그의 완전한 독립 이야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4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