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 세러피 공간에는 스피커와 조명, 족욕제가 구비되어 있으며, 좌판에는 보일러를 설치해 추운 겨울에도 이용하기 좋다.
두 명이 함께 누워도 넉넉한 침대와 멋진 풍경을 바라보며 즐기는 반신욕 등 호텔 하면 떠오르는 호화로운 장면은 사실 여유로운 면적에 기반한 것이다. 노스텔지어는 이를 한옥에서도 느낄 수 있도록 크고 넓은 한옥이 잘 보존되어 있는 가회동 31번지에 터를 잡았다. 박현구 대표는 ‘한옥 호텔’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경험을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40평 가량이 확보되어야 한다고 말할 만큼 면적을 중요시해왔다. 그렇기에 노스텔지어의 다섯 번째 공간인 누크재는 그에게 도전일 수밖에 없었다.
인테리어의 출발점이 되어준 임태규 작가의 작품을 집 중앙에 걸고, 작품의 푸른빛을 인테리어 요소로 활용했다.
“2024 행복작당 북촌을 찾은 분들은 아시겠지만 누크재는 협소한 편이에요. 20평이 간신히 넘죠. 비슷한 면적의 한옥을 되판 적이 있을 만큼 노스텔지어에 작은 한옥을 추가하는 데 부정적이던 제가 누크재를 기획한 건 노스텔지어를 많은 분이 더욱 다양하게 누리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어요. 정체성은 지키면서 접근성은 좋게 할 방법을 오랫동안 고민하다 코지한 호텔을 만들 용기를 내보았죠.”
누크재 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뷰가 보이는 자리에 문살도, 창틀도 없는 창을 내어 마당 풍경을 액자처럼 담았다. 또 언제나 열려 있는 창 덕분에 실내외 어디서든 숙박객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단점이라 생각한 작은 면적을 이곳만의 특징으로 승화시키고자 집의 이름을 ‘누크Nook재’라고 지었다. 아늑하고 조용한 곳이라는 뜻처럼 누크재는 가장 가까운 사람과 함께 찾아 집처럼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디자인을 총괄한 마이우스의 오상화 대표는 주거 인테리어로 인지도가 높은 공간 디자이너다. 한옥보다 호텔에 방점이 찍힌 공간을 추구하는 만큼 상업 공간에 능숙한 디자이너에게 설계 전반을 일임해온 지금까지의 행보와는 전혀 다른 결정인 셈이다. 여기에는 2022년 오픈한 힐로재에서 이길연 대표와 협업하며 디자이너의 분야보다 아이덴티티가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얻은 것도 결정 요인이었다. 특히 누크재는 좁은 면적 안에서 최대한의 효율을 끌어내야 했기에 평면 구성에 강점이 있는 오상화 대표가 제격이었다. “마이우스의 프로젝트에서 흥미로웠던 건 단층 평면에 계단으로 단차를 주거나, 침실에 복도가 생기는 등 설계 전 모습에서는 상상도 못 한 레이아웃을 보여준다는 점이었어요. 평면상의 제약이 많은 아파트 리모델링에서도요. 이분이라면 누크재의 작은 면적도 장점으로 승화해줄 것이라는 기대감에 의뢰를 했습니다.”
안방 전체의 단을 높여 평상처럼 연출해 수직 면적이 줄어들었지만, 더욱 아늑하고 동양적 분위기를 풍긴다.
박 대표의 기대처럼 오상화 대표의 손을 거친 누크재는 새롭게 태어났다. ㄱ자 본채와 사랑채가 작은 안뜰을 둘러싼 구조는 유지했지만, 각 실의 역할부터 동선과 창 등을 모두 바꿔 답답하던 첫인상을 없앴다. 가장 큰 변화는 사랑채다. 원래는 가구를 넣기 어려울 만큼 좁은 방이었는데, 지금은 과감히 벽을 털어내고 풋 세러피를 즐길 공간으로 꾸몄다. 방과 달리 고정된 벽이 필요하지 않은 시설이라 안뜰을 더 넓게 사용할 수 있는 데다, 함께하는 사람과의 평온한 시간이라는 누크재의 지향점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본채 내부에도 각 실을 구분하는 벽은 모두 철거했다. 영역은 단차로 구분했다. 오 대표의 센스가 돋보인 부분으로, 평균적인 가구 높이를 고려해 싱크대가 있는 주방은 레벨을 가장 낮게, 침대가 있는 안방은 침대를 놓을 부분만 평상처럼 단을 높여 아늑하게 연출했다.
짙은 초록빛 싱크대. 두 명이 마주 보거나 나란히 서서 요리하기 딱 좋은 사이즈라고.
호텔이라면 집에서는 할 수 없는 비일상적 포인트가 필요하기 마련인데, 오 대표는 아담해진 규모만큼 럭셔리한 라이프스타일을 더 밀도 있게 담아냄으로써 이를 충족시켰다.
“볼라의 수전이나 잉고 마우러의 Zettel’z 5 펜던트 조명을 비롯해 수저 하나를 고를 때도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지 않는 제품을 선택했어요. 인테리어할 때는 임태규 작가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기에 다이닝 테이블 뒤에 이 작품만을 위한 벽을 만들었죠.”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라면 알아챘겠지만, 싱크대와 세면대를 비롯해 공간 전반에 깔린 푸른빛은 작품에서 뽑아낸 색이다. 이렇게 누크재는 한눈에 들어오는 화려함이 아닌 오래 머물수록, 자세히 관찰할 수록 숨겨둔 진가를 하나씩 보여주는 곳이다. 그 때문일까, 오픈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음에도 연박 손님이 유독 많다는 게 박 대표의 설명이다. “집처럼 아늑한 공간에 노스텔지어만의 서비스를 더해 생긴 시너지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이곳이 더 많은 분에게 집보다 더 평온한 아지트가 되길 바라요.”
현대적 미감이 더해진 내부와 달리 외관에서는 전통 한옥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오상화 대표는 인테리어디자인 스튜디오 마이우스MAIUS의 수장으로, 2002년 문을 연 이후 공간의 구조적 역할을 재발견하는 일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왔다. 특히 주거 평면의 획일화된 틀을 깨뜨리는 데 앞장서, 실용적 구조를 탐구함으로써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공간을 제안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