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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7디자인스페이스 임규범 대표 극강의 미니멀리즘으로 구현한 우아한 삶
대학에서는 건축을 전공하고, 사회에서는 인테리어디자인을 전공해 건축의 안과 밖을 다 설계하고 디자인할 수 있는 817디자인스페이스의 임규범 대표가 서초구 한적한 땅에 집과 사무실을 합친 새로운 아지트를 마련했다. 어느 하나 아쉽거나 부족한 점이 보이지 않는 무결점의 공간. 일의 영역에서는 결과물의 완성도가 곧 그 사람의 실력이자 매력이라 공간을 둘러보고 인터뷰를 하는 내내, 아니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아름다운 공간과 임규범이란 이름이 깊숙하게 각인돼 있다.

3층 주택 공간에서 포즈를 취한 817디자인스페이스(817designspace.co.kr) 임규범·심호경 부부. 큰 창호 너머로 와락 펼쳐지던 녹색 풍경이 지금껏 눈에 선하다.
서초구에 있는 새정이마을. 3호선 양재역에서 내려 녹색 버스를 타고 20여 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8차선 도로가 펼쳐지는 도심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청계산 자락과 동네 뒷산이 마을 주변으로 드넓게 펼쳐져 있고, 밭일을 하는 사람들도 띄엄띄엄 보였다. 그런 풍경만 놓고 보면 과수원 가는 길이라 해도 믿을 정도였다. 아담하고 오래된 놀이터가 있고 화강석으로 지은, 노인처럼 푸근한 단층집이 많았다. 무엇보다 주변이 온통 녹색이라 눈과 마음이 청량하게 시원해지는 기분. 살다 보면 지금 사는 동네가 편하고 좋은 것 같지만, 이렇게 다른 곳에 발걸음을 들여놓으면 또 그곳의 매력이 봄바람처럼 신선하게 와닿는다.

거실 옆에 있는 다이닝 공간. 사진 상부에 일자로 길게 이어진 틈새가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구멍’이다. 오른쪽 문을 열면 팬트리가 나오고 세탁기와 건조기 역시 안쪽으로 배치했다.
욕실 창 너머로는 청계산과 새정이마을이 사시사철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강원도 깊은 산속에 와 있는 듯한 황홀함!
임규범 대표의 집은 큰길 뒤 이면 도로에 자리했는데, 단단하고 모던한 질감의 크림색 트래버틴을 외장재로 택한 데다 수직으로 높은 형태라 유럽의 고급 주택단지에서 봄 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디자인 역시 말끔하고 담백한 모습. 반듯한 사각 형태에 창이 수직과 수평으로 자리 잡았을 뿐 다른 비정형 요소는 없었다. 마중 나온 임규범 대표와 사무실로 사용하는 1층 내부로 먼저 들어섰는데, 우아! 천고가 훌쩍 높았고 천장은 조명이나 배관 라인 하나 없이 일자로 쭉 뻗어 건물의 골격만 힘 있게 도드라졌다. 가구는 딱 두 점. 저 멀리 흰색 원형 테이블이 있었고 입구에는 보테로의 그림처럼 빵빵한 양감量感과 우아한 라인이 돋보이는 이탈리아 브랜드 리빙디바니Living Divani의 치자색 대형 소파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중정. 최근 가드닝이 트렌드가 되면서 풍성한 정원을 갖추는 것이 집이나 상공간의 화룡점정이 되었지만, 임규범 소장은 오래된 배롱나무 한 그루만 상징처럼 심었고 그 나무에서는 분홍빛 꽃이 막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다. 극강의 미니멀리즘을 보여주면서도 둥근 온기로 편안한 공간. 평소 자질구레한 소품도 적절히 섞인 생활 감각 묻어나는 집을 편애하지만, 이런 미니멀리즘이라면 기꺼이 더 들여다볼 마음이 있다.


왼쪽 이런 곳에서 운동을 하면 매일 더 오래, 더 기분 좋게 땀을 흘릴 수 있지 않을까? 오른쪽 1층은 사무실로 사용하는데, 반 층 너머 접견실 역시 극강의 미니멀리즘을 보여준다.

오랫동안 꿈꿔온 ‘트래버틴의 집’
한 사람의 직업적 커리어는 어떤 곳에서, 어떤 것을 보며 살아가느냐에 따라 그 무늬와 내용이 결정된다. 월급은 적어도 경험하는 것의 내용이 좋다면 기꺼이 한 시절을 투자할 만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인테리어 회사에서 일했어요. 백화점에 들어가는 럭셔리 브랜드의 매장 공사를 많이 하는 회사였지요. 미소니, 막스마라, 발렌티노 같은. 그러고 보니 다 트래버틴이 나오는 이탈리아 브랜드네요.(웃음) 그곳에서 3년 8개월을 일했는데, 그때 시공과 디테일을 많이 배웠어요. 트래버틴이란 재료에 애정을 갖게 된 것도 그때였어요. 막스마라 같은 브랜드는 이탈리아에 있는 플래그십을 포함해 전 세계 모든 매장에서 트래버틴을 주요 소재로 사용하거든요. 로마의 판테온 신전, 로스앤젤레스의 게티 센터, 미국 샌디에이고의 솔크 연구소도 트래버틴을 외장재로 택했는데, ‘영원성’이 느껴지는 그 재료의 질감이 좋았어요. 언젠가 내 건물을 짓게 되면 꼭 트래버틴을 쓰겠다고 다짐했지요. 신축이 속도를 내면서 토탈석재(1999년 설립한 건축자재 회사로, 천연 대리석을 수입하고 직접 가공한다) 민병준 전前 부사장과 의기투합했고, 그가 이탈리아까지 직접 날아가 여러 종류의 트래버틴을 보여주고, 저는 한국에서 그것을 일일이 보면서 지금의 대리석으로 최종 결정 했습니다. 그곳에서 절삭까지 마친 후 배로 들여왔고요. 비쌀 거라 생각하는 분이 많은데, 전체 마감재를 놓고 보면 중상위 등급이 아닐까 싶어요. 시간이 지나면 ‘땟물’이 흘러내리고 북향에 접한 면에는 이끼가 낄 수도 있지만, 자연과의 상호작용이나 시간성이라고 생각하면 그리 실망스러운 부분은 아니지요. 미감의 차이일 수는 있어요. 표면에 ‘곰보’라고 해서 작은 구멍이 있는데, 저희 어머니도 마뜩잖게 생각하는 부분이지요.(웃음)”

역시 압도적 녹색 풍경이 펼쳐지는 침실. IoT 시스템과 연결된 리모컨을 누르면 벽면 양쪽에서 영화 감상용 스크린과 프로젝터가 둥~ 하고 나타난다. 

좋은 집이 무엇이냐? 정의한다면 나를 닮은 집. ‘확실하게’ 좋아하는 마감재가 있고, 그 소재에 대한 사랑과 사연을 길게 이야기할 수 있다면 그곳은 이미 너무도 매력적인 곳이다. 집 구경만큼 재미있는 것이 없다는데, 눈 반짝 귀 쫑긋 세우고 듣는 재미는 결국 이런 이야기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옥상에 마련한 야외 수영장. 이탈리아 남부나 남프랑스라고 해도 될 정도로 빛과 초록 풍광, 트래버틴의 조화가 훌륭하다.
좋은 공간이 좋은 시간을 만든다
미니멀리즘에 대한 확실한 철학과 애정 역시 임규범 대표가 만드는 공간의 큰 줄기이자 키워드다. “공간을 구획하고 디자인할 때 가장 중시하는 것이 기계 설비예요. 냉난방 시설이며 전기 배선 같은 것을 말끔히 숨기고 싶은 거죠. 그래야만 건축 본연의 매력이 충분히 살아나거든요.” 임 대표의 간결함을 향한 의지는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집요하다. 낮에는 조명을 켤 필요가 없으니 천장의 중앙 조명은 단호히 No, 여름에만 사용하는 에어컨에 가리개를 만들어 가리는 것도 충분치 않아(그 가리개가 또 보이지 않는가) 배기, 흡기 시스템까지 벽 안에 매립해 에어컨 위치에 관한 ‘단서’마저 찾을 수 없게 했다. 그렇다면 에어컨은 어디에 있는가. 건물 3층에 있는 거실을 예로 들면 주방 시스템 상부 안쪽. 바깥에서 보면 상부장 위에 절개선처럼 일자로 긴 줄이 나 있는데, 이곳이 바로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통로 역할을 한다. 미니멀리즘의 실용과 미학은 이 밖에도 곳곳에서 드러난다. 거실 창호 시스템은 한쪽으로 3m 이상 길게 열리는 필로브Filobe 제품으로 선택해 풍경이 쪼개지지 않도록 했고, 침실에 설치한 영화 감상용 스크린과 프로젝터는 벽 안에 매립해 리모컨 버튼을 누르면 둥 하고 모습을 드러낸다. 나 같은 기계치는 IoT(Internet of Things, 사물인터넷)로 구동하는 그런 최신 기술을 보면 단박에 매혹됨과 동시에 ‘참 편하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본인이 생각하는 불필요한 것을 감추고 나면 다른 한쪽에서는 공간의 힘과 매력, 그리고 넉넉함이 맥시멀리즘으로 부풀어 오른다. 그러고 보면 미니멀리즘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더 온전히 누릴 수 있도록 공간과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일이지 단순히 공간을 비우는 것이 아니다.

입구 한쪽에는 마르셀 브로이어의 바실리 체어와 이 건물의 상징인 트래버틴 조각을 함께 놓았다.
마을 풍경을 바라보며 운동할 수 있도록 배치한 피트니스룸, 저 멀리 청계산이 보이는 드레스룸, 욕실과 침실을 구분 짓는 커다란 벽체부터 라운지체어 밑으로 보일러 시스템을 매립해 사시사철 온수가 나오는 옥상의 야외 수영장, 그리고 그 옆으로 설치한 심플한 디자인의 샤워봉까지. 수영장 한쪽에는 야외 바비큐와 캠핑을 위한 금속 수납장과 수전이 설치돼 있고 그 옆으로는 트래버틴으로 만든 테이블을 놓았는데, 이 테이블은 캠핑할 때 식탁으로 자동 변신한다.

접견실 위층에 별도로 마련한 회의실 겸 미팅룸.
“인테리어를 하면서 시선과 동선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주방에서 요리를 하면서도 반대쪽에 있는 욕실 창이 보이도록 했고, 옥상에서 필요한 식재료를 바로바로 꺼낼 수 있도록 꼭대기 층 계단참에 냉장고를 넣었습니다. 집과 사무실을 합치는 것이 오랜 꿈이었어요. 이제야 제가 원하던 라이프스타일이 세팅돼서 돌아가는 느낌입니다. 공간이 바뀌니 시간도 달라졌어요. 바라보는 풍경이 달라졌고, 아내와 나누는 대화가 달라졌습니다. 이곳으로 와 업무 시간을 아침 8시에서 오후 5시로 조정했거든요. 집에 올라와 환복한 후 러닝을 하고 돌아와도 여전히 6시가 안 되어 있는 거예요.(웃음) 마침내 저녁이 있는 삶이 가능해진 거죠. 이렇게 날씨가 좋은 날이면 베이글을 사 오거나 요리를 해 수영장에서 느긋한 아침 시간을 보냅니다. 좋아하는 친구와 지인들도 자주 초대하고요. 좋은 시간이 켜켜이 쌓이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꿈꾸던 트래버틴으로 마감한 건물 외관. 크림색 천연 대리석이 따스하면서도 세련된 모습이다. 자연석이라 몇십 년이 흘러도 질리지 않고 단단, 담백한 질감을 보여줄 듯.

― 기사 전문은 <행복> 11월호에서 만나보세요!

글 정성갑(갤러리 클립 대표, <건축가가 지은 집> 저자)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4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