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를 파서 확보한 가장 넓은 장소에 주방과 다이닝 공간을 배치했다. 부부는 이곳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다.
헬렌과 스콧 니어링 부부는 대공황으로 도시의 폐해가 최고조에 이르렀던 1932년 뉴욕을 떠나 버몬트의 시골로 이주했다. 그들은 건강을 지키고 해롭지 않으며, 자기를 잃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몇 가지 원칙을 정했다. 산골짜기의 땅을 개간해 채소와 과일을 키울 것, 손수 집을 지을 것, 먹고살기 위해 일하는 시간을 여섯 달로 줄이고 나머지 여섯 달은 여가 생활로 보낼 것. 그렇게 주체적으로 스무 해를 살아간 이야기를 담아 <조화로운 삶>이라는 책을 펴냈다. 그들이 실천한 삶은 9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친다. 한국에도 비슷한 마음을 품은 가족이 있었다. 증권 회사에서 일하는 남편 정준 씨와 아내 조명진 씨, 대학생이 된 딸과 열 살 반려견 비노 네 식구다. 아이가 태어나고 대학생이 될 때까지 신혼집으로 마련한 아파트에서 살아온 정준 씨 가족은 원하는 방식의 삶을 살기 위해 그들만의 모험을 시작했다. 아파트에서 주택으로, 똑같은 평면에 끼워 맞춘 삶에서 가족에게 오롯이 맞춘 공간으로.
다이닝 공간에 마주 앉은 조명진 씨와 정준 씨, 그리고 반려견 비노. 정준 씨가 가꾸는 식물도 이곳을 채우는 주인공이다.
부부는 살고 싶은 삶의 양식도, 집의 형식도 비슷한 나이대의 여느 부부와는 조금 달랐다. 일단 두 사람은 취미 부자다. 남편은 와인과 식물을 좋아하고 아내는 그림과 사진, 요리가 취미다(그저 취미라기엔 집 안에서 키우는 식물이 80개가 넘고, 와인은 와인 냉장고를 가득 채운 것도 모자라 동굴 같은 저장고에 몇백 병이 있다. 집에 건 그림은 전부 조명진 씨가 그렸다!). 지인들이 골프장으로 향할 때 부부는 전시와 공연을 보러 가고, 여행을 가도 맛집보다는 멋진 건축이 눈에 먼저 들어왔다. 집에 관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아파트 단지는 편리했지만, 단조롭고 재미가 없었어요. 늘 마음 한쪽에는 주택에 대한 로망이 있었습니다. 나에게 맞춘, 더 입체적인 집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한옥과 양옥 사이로 가만히 조화를 이루는 집의 모습. 규모는 대지면적 110㎡, 연면적은 142㎡이다.
“대부분 노후를 보낼 집으로 근교의 전원주택, 마당 넓은 집을 생각하는데, 저희는 좁더라도 교통이 편리하고 문화시설이 가까운 도심을 원했어요. 주말이면 아내와 함께 후암동이나 서촌, 팔판동, 소격동 등 여러 동네를 거닐며 어디서 살고 싶은지 이야기를 나누곤 했습니다.”
매물이 드문 이 동네의 부지를 나온 지 하루 만에 매입할 수 있었던 것은 이렇듯 오랫동안 관심을 기울인 결과였다. “그동안 둘러본 여러 동네 중에서도 가장 좋았어요. 한옥과 양옥이 어우러진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고 상업 공간이 적어서 조용하고 깨끗했지요. 면적이 작았지만 공간을 잘 구성하면 살기에는 충분하겠다 싶었어요.”
2층에 있는 부부의 침실. 한옥의 무드를 담아 콘크리트 미장과 짙은 색감의 목재로 마감하고 칸살 창호, 한지 등의 아이템을 선택했다.
건축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도 부부의 기준은 뚜렷했다. 젊고 감각적인 디자인을 하는지, 손발을 맞춰 온 시공팀이 있는지, 마지막으로 목조 건축보다 공간 구성이나 분위기 면에서 선호하던 콘크리트 건축 포트폴리오를 살폈다. “이룩은 건축가로는 드물게 시공팀을 직접 관리하고 있었고, 제주도에 설계한 스테이 프로젝트도 마음에 들었어요. 결과적으로 집을 짓는 몇 년 동안 순탄하지 않을 때가 많았는데, 문제가 생길 때마다 매끄럽게 조율해줬습니다.”
이룩 김영필 소장은 처음 프로젝트를 의뢰받고 걱정이 앞섰다고. “주택이 밀집해 있고 골목이 좁은 도심인 데다 규제도 까다로웠어요. 철거나 지하 공사부터 어려움이 많을 것 같았고 실제로 그러했습니다.(웃음)” 이룩은 건축부터 인테리어, 가구 디자인과 브랜딩까지 여러 영역을 넘나들며 작업하는 건축 스튜디오다. 그들의 목표는 건축주를 충분히 이해하고 그 삶을 잘 담아내는 것.
2층까지 5m 가까운 높이를 뚫어 만든 보이드 공간. 덕분에 집 곳곳에 소리와 공기가 통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한쪽 벽면은 유리블록으로 전부 마감해 하루 종일 빛이 든다. 오른쪽의 장식 기와는 정준 씨가 무형문화재 김창대 제와장의 가마에 직접 찾아가 구한 잡상들. 위험으로부터 집을 지켜주었으면 하는 마음을 담았다.
완성된 집은 반 층씩 바닥을 어긋나게 하는 스킵 플로어 구조와 계단을 적극적으로 이용해 좁은 면적을 극복하고 쓸모와 재미를 모두 갖춘 공간이 됐다. 현관으로 들어와 계단을 반 층 내려가면 나타나는 반지하 공간은 모두 주방과 다이닝을 위한 장소다. 가족은 가장 넓고 층고가 높은 이곳을 공용 공간으로 내어줬다. 부부는 여기에서 밥도 먹고 책도 읽고 와인도 마시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계단 위쪽의 1층은 침실과 욕실이 자리한 부부의 공간이고, 한 층 더 올라가면 별도의 욕실을 갖춘 딸 방과 미니 거실 겸 서재가 있다. 다이닝룸은 5m 가까이 되는 높이로 뚫려 있는데, 이 보이드 공간이 집의 대부분을 관통하는 덕분에 어디서든 공기와 소리가 통하고 서로의 존재를 살필 수 있다. 특히 비노는 이 공간감을 기막히게 이용해 누가 어디에 있든 찾아간다고. 계단을 오를 때마다 새로운 공간을 마주하고 다른 층고를 경험하는 재미는 덤이다. 옥상에 마련한 테라스는 입지의 장점이 가장 잘 드러나는 이 집의 백미. 송현녹지광장을 가득 품고 반대편으로는 북악산과 인왕산까지 펼쳐져 그야말로 서울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장소다.
부부의 침실. 평소에는 소파 베드를 접어두고 작은 거실처럼 사용한다. 왼쪽 사진은 조명진 씨의 아버지가 취미로 촬영한 작품, 오른쪽 벽에 걸린 그림은 조명진 씨가 직접 그린 것
계단 아래 공간을 활용해 만든 1층 현관 옆 화장실.
집의 아이덴티티를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한쪽 파사드 전체를 채우는 유리블록이다. 김영필 소장 또한 유리블록을 설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꼽는다. “주변과 교감하면서도 존중받는 집의 모습이 되길 바라며 선택했습니다. 실내에서는 프라이버시를 지키되 빛은 충분히 들고, 바깥에서는 주변 건물의 색감이나 형태가 은은하게 비쳐요.” 유리블록 파사드는 벽돌이나 기와를 쌓아 올린 주변의 한옥 담장 같기도, 은은하게 비치는 한지 창호 같기도 해 동네의 풍경이 묻어난다. 실내 또한 주변 한옥과 무드를 맞춰 기와나 목재 구조체와 비슷한 톤의 목재, 질감이 있는 미장 콘크리트로 마감하고, 한지를 덧댄 칸살 창호, 장식 기와 등 한옥의 요소를 들였다.
루프톱 테라스에서는 남산타워, 송현동 녹지광장의 모습이 가득 펼쳐진다.
가족은 맞춤 제작한 집 곳곳을 각자의 방식대로 채우며 그들만의 버전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우선 정준 씨는 이곳에 이사 온 뒤로 진정한 식집사가 되었다. 매일 아침 세 개 층을 오르내리며 물을 주는 것이 그의 첫 일과다. “아파트에 살 때는 베란다에서만 빛이 들어와 항상 식물등을 켜뒀는데, 여기서는 빛이 여러 곳에서 은은하게 들어서인지 훨씬 잘 자라요. 정원에는 올봄에 그라스와 남천나무를 직접 하나하나 골라 심었는데, 첫해치고는 성공적인 것 같습니다.(웃음) 작더라도 직접 일구는 땅이 생기니 실내에서 식물을 키우는 것과는 또 다른 기분이 들어요.” 정준 씨가 식집사에서 가드너로 성장했다면 조명진 씨는 동네를 탐험하는 재미를 만끽하며 종로구 예찬론자가 됐다. 예전에 살던 동네는 주소가 1동, 2동, 3동이고 어느 아파트 단지에 산다는 느낌이었는데, 이곳은 동네마다 사간동, 소격동처럼 하나하나 뜻이 있어 더 ‘우리’ 동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이 가족에게 집은 단순히 거주 공간이 아니라 각자의 취향과 삶의 방식, 지나온 추억을 담는 공간이다. 집에서 애정하는 요소가 하나씩 늘어나는 것, 동네에서 빛나는 순간을 발견하는 것, 때로 겪게 되는 약간의 불편도 내 집만의 루틴으로 품어내는 것. 새로운 보금자리가 된 이 집은 식물처럼 가족과 더불어 자라고 다시 가족을 변화시킨다.
“조화로운 삶이라는 건 정답이 있는 게 아니라 설계든, 시공이든, 여기서 살아가는 시간이든, 그렇게 살아가보겠다는 노력을 통해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이 집이 그 여정의 시작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김영필 소장의 소회를 들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온전히 나다울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할수록 우리는 더 행복해진다고. 방법은 일이 될 수도, 취미가 될 수도 있다. 정준 씨 가족은 그 답을 집에서 찾은 것 같다.
― 기사 전문은 <행복> 11월호를 통해 만나볼 수 있습니다.
스튜디오 이룩은 2010년 김영필 소장이 개소한 이후, 깊이 있는 시선으로 일상을 바라보고 삶에 닿는 이야기를 해석하며 공간과 사람을 잇고 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 유연한 시각으로 설계, 시공을 하며 내일을 함께 그려가는 중이다. 2loo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