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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 디자이너 이성선 3대의 추억이 담긴 집
특별한 순간이 아닌데도 잊히지 않는 기억이 있다. 브랜딩을 공부하는 이성선 씨에게는 이 집에서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한 기억이 그렇다. 추억을 지키기 위해 40년이 넘은 주택을 고쳐 살기 시작한 1999년생 청년의 이야기.

어머니의 의견을 반영해 최근 바꾼 거실의 배치로, 기대어 쉴 수 있게 소파를 벽에 붙였다. 전면 괘종시계는 조부모님이 이 집에서 사용하던 제품이며, 옆의 반닫이는 중고 장터에서 구매했다.
살 집을 구한다면 대부분 직장이나 학교와의 거리, 주변 인프라, 내부 공간의 퀄리티 등을 종합적으로 따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오늘 만날 이성선 씨는 가족의 추억만을 생각해 집을 골랐다. 46년이라는 집의 연식과 대학은 직선거리로만 약 80km가 떨어진 세종시라는 악조건을 무릅쓰고 말이다. “이 집은 저희 할아버지가 살던 기와집을 1979년에 헐고 직접 지은 곳이에요. 제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살았으니 아버지의 유년 시절은 물론 제 유년 시절도 담겨 있죠. 특히 조부모님이 각각 세 살, 다섯 살 때 돌아가셔서 그분들과의 몇 안 되는 기억이 남은 장소가 이 집이라 제게는 좀 더 소중한 곳이에요.”

 

하지만 2005년, 성선 씨 가족이 이사를 가고 먼 친척이 세 들어 살며 18년가량 이 집을 찾지 못하다, 약 2년 전 친척마저 이사를 가 가족이 아닌 세입자를 구하게 되었다. “낡은 집이다 보니 그분들 눈에는 수리할 점만 보인 것 같아요. 그래도 집의 자랑이던 발코니 창을 뜯어낸다 하고, 전체 리모델링해 파티룸을 만든다는 이야기를 했다니까 모든 추억이 사라지는 것 같아 너무 속상하더라고요. 부모님도 같은 마음이어서 세입자 구하는 데 난항을 겪던 차에 제가 그 집에 살고 싶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처음에는 통학 때문에 조금 걱정하셨지만, 옛 기억을 간직하고 싶던 제 마음을 기쁘게 이해해주셨어요.”

다리가 불편하시던 할머니가 자주 바깥 구경을 할 수 있도록 할아버지가 설계한 작은 발코니. 한옥의 고창이 떠오르는 구조는 성선 씨가 이 집의 자랑이라 여기는 요소 중 하나다.
성선 씨의 집은 화성 행궁 옆에 자리 잡은 3층짜리 상가 주택. 1층은 상업 공간, 2층은 주거지, 3층은 옥상과 실내외에 창고가 하나씩 있다. 성선 씨가 머무는 2층은 약 18평 정도의 스리룸으로 현관과 화장실이 현관문 밖에 있고 다락이 두 개 숨어 있는 특이한 구조다. 처음 낡은 집을 고쳐 살겠다고 마음먹은 시기는 군 복무 중이던 2022년. 당장 이사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복무 기간 동안 타일·방수・도배같이 전문 인력이 필요한 공사와 큰 가구 구입만 미리 끝내고, 올 1월 전역과 동시에 본격적으로 집을 꾸미기 시작했다.

안방은 조부모님의 자개장을 메인으로 정하고 다른 가구와 소품도 아이보리, 블랙, 화이트 톤으로 맞췄다.
왼쪽 현관문에 건 스토리지 보드. 여행지에서 사 온 기념품이나 간단한 공구를 보관 중이다. 오른쪽 침실 자개장에는 어릴적 사진이나 어머니가 주신 옛 그릇을 진열했다.
“가족의 추억이 담긴 집이니 예스러운 분위기를 살리려 했어요. 제가 원래 역사나 전통을 좋아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처음에는 수납함으로 거실 중앙에 평상을 만들고, 소파도 보료와 장침이 연상되도록 등받이가 낮은 제품을 골랐는데 막상 살아보니 불편한 점이 있더라고요. 예쁘면서 편한 구조를 찾아 지금까지 10번 넘게 배치를 바꿨어요. 이제는 어느 정도 큰 틀은 잡힌 것 같아 작은 가구나 소품의 위치만 조정하는 중이랍니다.” 약 6개월 전부터 그는 현관 옆방은 드레스룸, 큰 방은 침실, 주방 안쪽 방은 작업실로 결정했다.

넓은 테이블을 둔 다이닝 영역은 성선 씨가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 중 하나로 과거 세를 주는 방이 있던 자리다.
가장 최근에는 가족의 추억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거실 한편에 나만의 수장고도 만들었다. 높은 선반장을 사다 할머니의 유품인 됫박, 건물을 지을 때 외벽에 사용하고 남은 타일 등을 전시하고 박물관처럼 캡션까지 달았다. 중앙의 아이맥은 집을 방문하는 손님들과 성선 씨가 함께 사진을 찍는 사이버 방명록(함께 취재한 기자들의 기록도 남기고 왔다)이니 수장고는 이 집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역사를 담는 공간인 셈이다.

‘수장고’에는 성선 씨가 좋아하는 현대 오브제, 할머니의 장독대와 됫박 등을 전시하고 차례로 캡션을 만들고 있다.
“저는 항상 제가 모르는 부모님의, 조부모님의 모습이 궁금했어요. 엄마・아빠의 젊은 시절이나 할머니・할아버지의 건강하고 선명한 얼굴요. 그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창구가 사진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지금 제가 이 집에서 이어가는 이야기도 꾸준히 남기고 싶어요. 먼 훗날 생길 제 아이와 손자들과도 공유할 수 있도록요.” 

1 여섯 살 크리스마스 때 선물 받은 곰 인형으로 성선 씨와 함께 18년 만에 이 집으로 돌아왔다.
2 이 집에서 떨어져 나온 것들로 만든 액자. 세탁실 공사에서 남은 타일과 요즘은 잘 사용하지 않는 형태의 플라스틱 배수구 뚜껑, 이사 온 날 우연히 떨어진 옥상 걸쇠를 모았다.
3 집에 스며 있는 가족의 사랑을 오브제로 구현하고자 이사 온 당일 성선 씨가 직접 만든 화병으로, 달항아리에 ‘어머니의 사랑’이라는 꽃말의 목화를 꽂았다.
4 온라인 쇼핑몰의 체험단으로 받은 에라토라는 브랜드의 모이 2인 9피스 그릇 세트다. 스태킹했을 때 동양적인 커다란 꽃이 연상되어 평소에는 오브제로 사용하는 중이다.
5 본가에서 이삿짐을 챙기던 중 발견한, 주인을 알 수 없는 탁상시계가 귀여워서 가져왔다. 아래쪽 작은 서랍에는 향초를 보관한다.

 

글 최지은 기자 | 사진 이경옥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4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