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을 걸고 있는 김 프란치스카 씨. 왼쪽 콘크리트 기둥에 건 작품은 민병헌 작가의 작품으로 젤라틴 프린트 방식으로 표현한 섬세한 톤이 기둥과 더 없이 잘 어울린다. 데이베드는 이케아와 버질 아블로의 컬래버레이션 제품이고, 정면의 회화는 인도네시아 출신 아티스트 인드라 도디의 작품이다. 프로젝터와 자녀의 어린 시절 신발을 올려둔 선반은 강지호 소장이 만들었다.
독립 전시 기획자로 활동 중인 김 프란치스카 씨가 남편 및 딸과 함께 사는 지금의 177㎡ 아파트 리모델링을 마치고 이사 온 것은 올해 1월이다. “이 집에 처음 입주한 건 2003년이에요. 그러나 이사한 지 두 달이 채 안 돼 저는 학업을 위해 미국으로 떠났고, 1년 뒤 남편도 해외로 발령이 났어요. 그 후 계속 임대를 하다 작년에 다시 들어올 결심을 하며 집을 리모델링했죠.” 20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에게 집의 중요성은 지난날보다 훨씬 더 커졌고, 두 자녀도 훌쩍 성장했다. 이젠 부부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 집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브릭 레드 컬러 타일과 이세현 작가의 붉은 산수화가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다이닝룸. 콘솔 위에 이헌정 작가의 달항아리, 결혼하며 받은 함, 이재훈 작가의 조각 등을 올려두었다. 창가 티룸의 푸른 펜던트 램프는 1960년대 생산한 파일 앤 푸츨러의 갤럭시 블루로 강지호 소장이 추천해 구입했다. 다이닝 테이블 위 빨간 레일 램프 셰이드는 강지호 소장이 3D 프린터로 제작한 것이다.
프로젝트는 아틀리에오 건축사사무소의 강지호 소장이 맡았는데, 건축주와 강지호 소장의 인연은 몇 해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립 전시 기획자로 활동을 시작하기 전 다니던 회사에서 아티스트 레지던시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그때 담당 큐레이터와 건축가로 인연을 맺었어요.” 힘든 프로젝트였기에 공감대 형성이 빠르던 것은 물론, 긴밀하게 커뮤니케이션하고 그가 만들어내는 결과물을 지켜보며 강지호 소장의 감각을 믿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의 집을 리모델링하겠다고 결심했을 때 고민 없이 바로 그에게 연락했다. 이는 강지호 소장도 마찬가지였다. “건축주의 미감과 라이프스타일이 매력적이기에 집을 고치는 과정에서 배울 게 많겠다 싶었죠. 심지어 프로젝트의 준공 사진은 건축주의 가구와 오브제를 모두 채운 뒤 찍었는데, 제 손에서 끝난 뒤가 아닌 건축주의 라이프스타일로 채운 후 공간의 모습을 저도 모르게 기대한 것 같아요.”
거실 가구 중 새롭게 구입한 것은 오랜 로망이던 폴트로나 프라우의 케네디 소파뿐이지만, 모든 가구를 계획하에 짜맞춰 넣은 것처럼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소파 위에 걸린 작품은 홍경택 작가의 판화.
거실에서 바라본 다이닝룸과 주방. 중앙의 원형 기둥은 수납을 위해 새롭게 만든 것인데, 존재감이 뚜렷한 콘크리트 기둥으로 분산되는 시선을 하나로 모아주는 구심점 역할을 한다.
콘크리트 기둥을 액자 삼아 채운 컬러
건축주의 요구 사항은 단순했다. 첫 번째 모델하우스 같은 천편일률적 디자인을 벗어날 것. 두 번째 진짜 사람이 살고 있는 느낌이 날 것. 이를 구현하기 위해 강지호 소장은 이 아파트가 벽체식이 아닌 기둥식 구조란 점을 적극 활용했다. “공간을 만든다는 건 중력을 거스르는 일이에요. 자연의 이치에서 벗어난 천장의 하중을 견디는 기둥은 사람이 공간에 머문다는 걸 인식하게 하는 요소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집 안의 기둥을 마감으로 숨기지 말고, 콘크리트 상태 그대로 고스란히 노출하면 어떨지 제안했죠.” 건축주는 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너무 좋다며 박수를 쳤다고.
다이닝룸 기둥 앞에 놓은 빈티지 체어와 나라 요시토모의 조각. 왼쪽의 조명은 이케아 제품이다.
집에 컬러를 입히는 여러 방법 중 강지호 소장이 고른 것은 타일 시공. 페인트, 벽지 등에 비해 색감이 부드러울 뿐 아니라 질감의 변화까지 줄 수 있는 방법이다. 색채 선정은 다이닝룸은 따뜻한 컬러, 주방은 차가운 컬러 등 공간의 용도에 따라 맞는 색온도를 나누는 것에서 시작했다. 최종 색상은 나중에 놓일 건축주의 가구, 오브제와의 조화를 생각해 선택했다. 이 외에도 집 안에 색과 질감을 더해주는 핵심 요소가 하나 더 있는데, 바로 커튼이다. “예전에는 ‘커튼이야 뭐 가려주는 역할만 하면 되지’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강지호 소장 집에 방문했을 때 그 집에 설치된 크리에이션 바우만 커튼을 보고 커튼에 따라 공간 분위기가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알게 됐죠. 그래서 이번에 리모델링할 때는 커튼을 고심해서 골랐는데 굉장히 만족스러워요. 지금은 커튼에 꼭 투자하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말해요.”
클래식한 서재에 포인트를 더해주는 베벨드 글라스 문.
이렇게 철저하게 계산해 짜맞춘 질감과 컬러에 따라 가구를 배치한 공간의 마무리는 건축주가 컬렉팅한 아트피스가 담당했다. “특별히 작품과의 매치를 고려해 인테리어를 하거나, 공간에 맞춰 산 작품은 없어요. 제 직업이 공간에 어울리게 작품을 배치하는 것이기도 하고, 강지호 소장과 워낙 상세하게 소통한 터라 리모델링 중간 과정에서 이미 머릿속에 어떤 작품을 걸면 좋을지 정해졌죠.” 대부분의 사람은 작품은 흰 벽에 거는 것이 제일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 집의 브릭 레드 컬러 타일 위에 이세현 작가의 붉은 산수화가 걸린 장면을 본다면 적절한 공간의 컬러와 디테일은 작품에 더 큰 힘을 실어주는 요소라는 걸 깨달을 것이다.
세면대와 수납장의 민트색 인조대리석 상판과 벽면의 채도 낮은 붉은 톤 타일의 매치가 호텔 욕실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재편집한 구조 미학
기둥식 구조는 벽체식 구조에 비해 공간 변형이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이 집에서 이를 잘 활용한 공간은 맞닿아 있던 방 두 개를 터서 만든 부부의 서재다. “회사 소속이 아닌 독립 전시 기획자로 활동하기 때문에 일할 공간이 필요했어요. 남편 역시 언젠가 은퇴한다면 그 이후 사용할 서재가 필요할 테고요. 그래서 이번에 리모델링할 때 부부용 서재를 만들었죠. 물론 지금은 제 책과 물건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요.(웃음)” 이 공간은 클래식한 느낌을 주길 원했기에 특별히 컬러나 가구로 힘을 주지 않았다. 다만 데칼코마니처럼 선반과 책상을 대칭으로 배치해 구조적 재미를 더하고(이를 극대화하기 위해 페이크 기둥도 설치했다), 기둥 사이 빈 곳을 벽 대신 유리로 마감하거나 문에 베벨드 글라스를 적용하는 등 소소한 디테일을 채웠다.
방 두 개를 터서 만든 부부의 서재는 데칼코마니 같은 대칭 구조가 인상적이다. 붉은 기둥은 구조적 특징을 강조하기 위해 새로 만든 것이다. 중앙에는 백남준 작가의 판화를 걸었다.
벽을 허문 건 아니지만 이에 못지않게 큰 변화를 준 곳이 하나 더 있으니, 바로 거실부터 주방·다이닝룸·티룸이 이어지는 일명 유니버설 스페이스universal space라 칭하는 공간이다. “집을 처음 본 순간부터 중앙이 시원하게 하나로 이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주방과 거실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아일랜드를 철거하고, 대신 바퀴가 달려 필요에 따라 옮길 수 있는 이동식 아일랜드를 설치했죠.” 건축주는 집의 가장 마음에 드는 변화 중 하나로 이동식 아일랜드를 꼽기도 했다. 그리고 여기에 아일랜드와 다이닝 테이블 위치를 바꿀 때마다 조명의 위치를 다시 조정할 수 있도록 천장에 레일 램프를 설치해 편의성을 더했다.
강지호 소장은 간삼건축과 원오원 아키텍스를 거쳐 2018년 아틀리에오 건축사사무소를 개소했다. 원오원 아키텍스 재직 당시 남양 사옥, 가파도 아름다운 섬 만들기 프로젝트 등을 진행했다. 개소 후 주요 프로젝트로는 제주 로스테이 숙박 시설, 묵정동 근린생활시설, 구덕민속예술관, 인수봉숲길마을 주민 공동 이용 시설 등이 있다. 건축과 인테리어의 경계를 넘나들며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담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한다.
― 전문은 <행복> 10월호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