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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한옥헤리티지하우스 짓는 25명의 장인
전국 각지를 누비며 목재를 다뤄온 대목장 25명이 2017년부터 6년째 영월에서 한옥을 짓고 있다. 그들이 한옥의 근본인 나무를 이해하고 독자적 기술로 가다듬어 완성한 더한옥헤리티지하우스는 우리에게 새로운 형태의 장인 정신을 보여준다.

더한옥헤리티지하우스를 짓는 장인이 선돌정에 모였다. (왼쪽부터) 대목장 김동렬, 풍광현, 안두복, 박의준, 정영대, 전강, 허수길. 이 외에도 대목장 강성중, 권재호, 김영기, 김태현, 류창현, 마동현, 박동식, 박종천, 박진우, 오정호, 이정철, 이충국, 장봉순, 정승호, 조윤준, 진철, 최재문, 최정호까지 총 25명이 함께 프로젝트를 완성하고 있다.
아직 뜨거운 햇볕을 채 떠나보내지 못한 가을의 길목, 새로 짓는 한옥을 위한 지하 공사가 한창인 영월 더한옥헤리티지하우스(이하 더한옥)에는 요즘 매일같이 동해와 제천, 단양에서 가공을 마친 목재가 모여든다. 원목의 껍질을 벗기고 건조·재단한 목재가 도착하면 도편수는 매서운 눈길로 생김새에 적합한 위치를 정하고, 대목장들은 단단한 손길로 부재에 마지막 터치를 입힌다. 이들이 모여 짓고 있는 것은 독채 한옥 열세 채와 객실 36개가 있는 한옥으로 이루어진 호텔이다. 거대한 선돌과 절벽, 굽이굽이 이어지는 산자락까지 영월의 절경이 한가득 펼쳐지는 부지는 1차로 조성하는 면적만 33만㎡가 넘는다. 지난해 독채형 한옥인 영월종택 1동과 2동이 먼저 운영을 시작했고, 올해 하반기에는 연면적 981㎡ 규모의 2층 한옥 선돌정까지 문을 연다. 그리고 지금은 모든 대목장이 모여 지하 3층, 지상 1층 규모의 한옥 영빈관을 짓고 있다. 3백여 명을 수용하는 연회장을 비롯해 레스토랑, 갤러리, 호텔형 객실 14개가 들어설 이곳은 이름만큼이나 화려한 위용을 자랑한다.
더한옥헤리티지하우스 조정일 대표는 ‘한국인에게 가장 편안하고 좋은 집이 한옥인데, 왜 해외 호텔처럼 근사한 장소나 멋진 랜드마크가 되지 못할까?’라는 생각으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유럽에서는 잘 보존된 고성이 호텔로 쓰이기도 하는 것을 보며 한옥으로도 멋진 경험을 선사하고 싶었다고.

선돌정 대청마루에서 내다보이는 풍경. 차경에 원경과 중경, 근경을 모두 담겠다는 조정일 대표의 의도가 드러나는 장면이다.
한옥은 건축가만큼이나 짓는 이들의 역량이 건축의 완성도에 큰 영향을 미친다. 끌로 표면을 다듬고 짜맞추고 칠하는 등 공정 내내 목수의 손길이 곱절로 들기 때문이다. 잘 지은 한옥이 한 점의 공예품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한옥을 이루는 소재의 8할이 나무인 만큼 목재를 다루는 대목장은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존재다. 조정일 대표는 2017년 현재 도편수를 맡고 있는 대목장 박의준을 만나며 본격적으로 프로젝트에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총 25명의 대목장으로 이루어진 드림팀을 꾸렸다. 이번에 현장에서 만난 대목장 박의준을 비롯해 김동렬, 안두복, 전강, 정영대, 풍광현, 허수길은 모두 15~20년의 경력을 지닌 베테랑으로, 첫 작업인 영월종택부터 지금까지 합을 맞춰왔다.

영월 치목장에서 작업 중인 대목장들.
도편수가 목재 위에 먹을 매긴 대로 대목장이 재단하고 끌로 파내어 모양을 만든다.
“예전에는 대목장이 지관이자 건축가이고 시공자였어요. 집을 어떻게 앉힐지 결정하는 것부터 산에 가서 나무를 고르고 마지막 기와를 올리는 순간까지 모든 과정을 관장했죠. 그러다 일제강점기 이후 상업 한옥이 늘면서 역할이 하나씩 나누어졌고, 대목장의 일은 도면에 맞춰 목재를 다루는 치목 정도로 좁아졌습니다.” 그러나 이번 프로젝트에서 박의준 대목장은 건축가의 설계를 바탕으로 전체를 총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원목 구입부터 시작해 부재의 배치와 조립 방식까지 모두 그의 손을 거쳐 결정된다.

선돌정 별채에 자리한 거실. 구조체는 더글라스퍼와 국내산 육송을 사용했다.
프로젝트는 시작부터 나무가 관건이었다. 한옥의 부재가 뒤틀리고 틈이 생기는 것은 대개 충분히 건조하지 않은 목재를 사용한 것에서 비롯된다. 조정일 대표는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옥에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고, 박의준 대목장은 목재를 건조하는 새로운 방법을 고심했다. “목재는 기본적으로 바깥에서 열을 가해 말립니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목재를 얇은 판재로 가공한 다음 다시 붙여서 부재를 만들기 때문에 비교적 건조가 쉬워요. 그런데 한옥은 폭이 240mm 정도 되는 큰 부재를 통으로 세우는 구조이다 보니 건조를 해도 표면만 마르는 정도에 그칩니다. 남아 있는 수분이 마르면서 점점 비틀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부재가 줄어들어 결구 부위에 틈이 생기는 거죠.” 그는 소나무재선충을 없애기 위해 개발한 마이크로웨이브 기술을 건조에 적용해 함수율을 15~20%까지 낮추는 데 성공했다. 전자레인지처럼 전자파로 물 분자를 회전시켜 열을 발생시키고, 그 열로 나무가 머금은 수분을 말리는 원리다. “마이크로웨이브 기술로 건조한 목재는 단단하고 치밀해 시간이 지나도 비틀리거나 휘지 않아요. 이렇게 말린 목재로 지은 더한옥의 첫 집 영월종택은 3년이 지난 지금도 처음 상태 그대로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선돌정 1층 별채의 침실. 침대는 가장자리에 걸터앉을 수 있는 형태로 조정일 대표가 직접 디자인하고, 대목장들이 가공한 목재로 제작했다.
더한옥에는 목재 건조 기술 외에도 여러 방식을 새롭게 시도했다. 우선 단단해진 목재에 맞춰 치목 방법을 바꿨다. 원래는 시간이 지나면서 줄어들 것을 가늠해 목재를 재단했다면, 이제는 도면대로 정확하게 작업한다. 단단해진 만큼 가공하기 까다로워 큰 부재는 CNC 기계를 활용하고, 일부는 짜맞춤 방식 대신 연결 철물을 사용해 조립하기도 한다. “초기에는 새로운 방식에 대해 대목장들이 부정적 반응을 보이기도 했어요. 그런데 실제로 치목을 해보면서 기존 방법만으로는 어렵겠다는 판단을 했고, 새로운 방법을 써본 결과, 그만큼 완성도가 높아져서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

선돌정 다이닝 공간. 서로 다른 목재로 바닥과 벽, 천장까지 마감했다.

더한옥에 사용할 목재를 가공하는 치목장은 모두 네 곳. 가장 규모가 큰 동해 치목장에서는 마이크로웨이브 기계로 목재를 건조·보관하는 일을 전담하고, 제천 치목장에서는 손으로 다듬는 작업을, CNC 기계가 있는 단양 치목장에서는 기둥이나 보처럼 큰 부재의 가공을 주로 담당한다. 이렇게 쓰임에 맞춰 1차 가공을 마친 목재가 영월에 모이면, 대목장들이 한 번 더 다듬고 현장에서 조립해 한옥의 바닥과 구조체, 지붕으로 완성된다. 요즘 대목장들은 영빈관에 사용할 부재의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다. 작업이 끝나는 대로 목구조 조립을 시작하고 내년 6월에는 준공할 예정이라고.

왼쪽 편백나무 욕조에서 소나무를 바라보며 목욕을 즐길 수 있는 욕실. 오른쪽 영월종택 1동의 지붕. 목재 구조체에 오묘하게 색감이 다른 기와가 어우러져 있다.
“한옥에서 정말 중요한 건 목수의 실력입니다. 도편수가 그림을 잘 그리는 것만큼이나 목수가 그걸 얼마나 꼼꼼하게 파악하고 다듬는지에 따라 결과물의 품질이 결정됩니다.” 새로운 기법과 소재, 대목장의 장인 정신이 만나 전에 없던 한옥의 유형을 만들어가고 있는 더한옥. 3년 전 완공한 영월종택은 지금도 흐트러짐 없는 모습으로 그들의 노력을 증명하고 있다. 내년에는 지금 짓고 있는 영빈관을 비롯해 한창 설계 중인 석정원, 회랑까지 모두 완공하며 조정일 대표와 대목장이 함께 꿈꾸던 첫 모습을 완연하게 선보일 예정이다. 문의 033-823-9500

석재 파사드 위 웅장한 한옥의 조화가 돋보이는 선돌정.
“한옥에서 정말 중요한 건 목수의 실력입니다. 도편수가 그림을 잘 그리는 것만큼이나 목수가 그걸 얼마나 꼼꼼하게 파악하고 다듬는지에 따라 결과물의 품질이 결정됩니다.” _더한옥헤리티지하우스 대목장 박의준

글 정경화 기자 | 사진 이우경 기자, 더한옥헤리티지하우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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