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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과 현대의 앙상블, 규방도감
삼청동에 있던 우영미 작가의 전통 수예 브랜드 규방도감의 보금자리가 북촌으로 이전했다. 달라진 것은 위치만이 아니다. 손맛 좋기로 유명한 그의 요리를 맛볼 수 있는 다이닝 공간 ‘규방도감집 우영미’가 한옥 안에 터를 잡았고, 좌식이던 이전과 달리 입식 구조로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지는 공간 미학까지 고루 갖췄다.

북촌으로 이전하며 새롭게 문을 연 다이닝 공간 규방도감집 우영미 내부에 걸린 우영미 작가의 수예 작품. 매장과 다이닝 공간을 품은 한옥 규방도감은 10월에 열릴 행복작당 북촌에서도 만날 수 있다.
조선 시대 부녀자들이 거처하는 방이던 ‘규방’과 국장도감, 가례도감 등 국정의 여러 사안을 처리하기 위해 설립된 임시 관부를 칭하는 ‘도감’. 두 단어를 합쳐 ‘규수 방의 기준점이 되겠다’라는 포부를 담은 규방도감은 무명, 비단 등 천연 소재를 한 땀 한 땀 바느질해 만든 침구, 생활 패브릭, 오브제 등을 선보이는 우영미 작가의 전통 수예 브랜드다. 오랜 세월 삼청동에 터를 잡고 있던 규방도감이 올해 초 새로운 변화를 맞이했다. 북촌의 한옥에 새로운 둥지를 튼 것. 그리고 새 보금자리 안에 규방도감 매장뿐만 아니라 ‘규방도감집 우영미’라는 이름의 한정식 식사 공간을 마련하고 삼신할머니상을 모티프로 한 메뉴 갈비상, 금태상(계절 메뉴), 수육상 등을 선보인다(전통적으로 삼신할머니상은 아이가 태어난 후 산모와 아이의 건강 및 장수를 기원해 올리던 상이다. 우영미 작가는 가족의 생일이면 늘 삼신할머니상이라 부르는 갖가지 잔치 음식을 차렸다고).


문간방을 개조해 만든 매장 내에 앉아 있는 우영미 작가. 뒤편으로 삼청동 규방도감 시절부터 함께해온 고가구가 자리한다.
“옛 규수들이 책임지던 집안의 의식주 중 의衣는 홈웨어·앞치마 등으로, 주住는 이불로 선보였죠. 그리고 이제 규방도감집 우영미를 통해 식食까지 충족할 수 있게 됐어요.”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삼청동 시절부터 음식 솜씨가 좋기로 소문나 작업실 옆 국수와 연잎밥을 메인 메뉴로 하는 작은 식당을 운영하기도 한 그에게 이는 예견된 수순이기도 했다.


본채의 끝 방에 위치한 매장. 고객의 요청 사항에 따라 섬세하게 맞춤 제작한 이불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한옥 리모델링 디자인은 이건우 디자이너가 맡았다. “앞서 말했듯 규방도감의 중추는 우영미 작가예요. 공간 디자인도 그를 온전히 이해하는 사람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태어난 순간부터 우영미 작가가 만든 이불을 덮고 자고, 밥을 먹고, 옷을 입고 자란 ‘우영미 키즈’예요. 심지어 첫째이기 때문에 우영미 키즈 중에서도 그분을 가장 잘 안다고 자부할 수 있죠.(웃음)” 제품과 공간의 어울림을 고려할 때 도움이 될까 싶어 스케치업과 캐드 프로그램도 배워둔 터였다. 그러나 이건우 디자이너가 건축 혹은 공간 디자인을 전공한 것은 아니기에 전문적인 영역을 보완해주고 그의 디자인을 실현해줄 협력자가 필요했다. “시공은 한옥 인테리어를 전문으로 하는 고호 박덕준 소장이 맡아주셨어요. 이 일대 한옥 중 그의 손을 타지 않은 것이 드물 정도로 동네에서 실력이 정평 났죠. 삼청동 규방도감 시절부터 작업실에 자잘한 문제가 생기면 와서 봐주고, 작게 운영하던 식당의 인테리어도 해준 분이에요.” 단순히 인연에 기댄 선택만은 아니었다. 박덕준 소장이 직접 고치고 운영하는 한옥 바 ‘와옥’에 손님으로 드나들며 그의 실력에 감탄했던 터. 게다가 전통을 지키면서도 현대적 터치를 적절히 가미해 지금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그의 작업 스타일도 이건우 디자이너가 원하는 바와 일치했다.


대청마루가 있던 자리에는 주방을 배치했다. 우영미 작가가 즐겁게 요리할 수 있도록 그의 취향에 맞춰 인테리어했다.
우영미 작가의 첫 느낌이 정확했음을 뒷받침하듯 박덕준 소장 역시 한눈에 이 집의 가치를 알아봤다. “마당에 들어서면 바로 보여요. 잘 지은 한옥인지 아닌지. 여기는 고가 굉장히 높고 기초가 탄탄해 기운 곳이 전혀 없었어요. 구조목도 나무 중 으뜸이라 손꼽히는 춘양목(적송)이고요.” 그러나 훌륭한 기본 틀이 무색하게 두서없이 증축된 공간과 보온을 위해 계속 덧대 올린 바닥 등 당시 상태는 좋지 못했다. 공사는 한옥의 질서를 되찾고 편리한 동선을 확보하기 위해 레벨을 일정하게 조정하는 것에서 시작했다. 공간에 따라 최소 50mm, 최대 600mm까지 바닥 높이를 낮췄는데 위치상 차가 들어올 수 없어 일일이 사람이 부숴 파내 밖으로 날랐다고. 천장도 철거해 서까래를 드러내고 규방도감의 특성에 맞춰 전통 한옥의 공간별 용도를 변형했다.


마구잡이로 개조된 한옥이 본래 질서를 되찾고, 현대식 미감이 더해진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게 고군분투한 이건우 디자이너와 박덕준 소장.
지금 규방도감의 구조는 대문에 들어서면 문간방과 본채의 끝 방이 양옆에 위치한다. 이곳은 매장으로 운영하는데 유리문으로 마감해 개방감을 주었다. 특히 본채 끝 방 쇼룸은 입식과 좌식을 섞어 내부에 500mm가량의 단차를 두었다. 이는 침대와 흡사한 높이로 실제 침대 위에 이불을 펼쳤을 때 어떻게 보일지 가늠하는 걸 돕기 위해서다. 헌법재판소와 담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본채의 반대쪽 끝은 식사 공간으로 구성했다. 입구가 있는 마당과 마주 보는 면엔 유리 힌지 도어와 창을 설치하고, 담을 바라보는 면은 유리 폴딩 도어를 설치했다. “여기 보이는 담은 헌법재판소 자리에 창덕여고가 있던 시절부터 존재하던 것이에요. 바닥에 앉아 창밖을 바라봤을 때 상반신을 가려주는 전통 한옥의 높은 문지방인 머름처럼 외부 시선으로부터 손님의 프라이버시를 보장해주면서도 높이가 일반 담보다 낮아 헌법재판소의 정원을 의자에 앉은 채로 조망할 수 있게 해주죠.”


규방도감집 우영미의 식사 공간. 우영미 작가가 소장한 고가구와 수예품을 비롯해 한옥과 이질감 없이 어우러지는 가구를 골라 배치했다.
마지막으로 매장과 식사 공간을 잇는 원래의 대청마루는 주방으로 변형했다. “주방은 어떻게 보면 ‘우영미의 요리’라는 작품이 만들어지는 작업실과 다름없잖아요. 어린 시절 손님을 초대해 음식을 대접하고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행복해하던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며 즐겁게 작업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꾸렸어요.” 이를 위해 벽면은 우영미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노란 타일로, 줄눈은 수예 작업에도 자주 사용하는 보라색으로 마무리했다. 주방 가구와 가전은 대부분 스테인리스 스틸 소재인데, 필요에 따라 강단을 발휘하는 우영미 작가의 모습을 떠올리며 들였다.


왼쪽 입맛을 돋우는 동동주와 도라지생채를 비롯해 한우 소갈비찜과 물김치, 울외와 산초장아찌를 곁들인 문어 숙회, 채식 잡채, 각종 나물과 전, 연잎밥, 된장찌개 등을 모두 맛볼 수 있는 갈비상 차림. 사진은 규방도감 제공. 오른쪽 수납공간이 부족한 한옥의 특성을 고려해 만든 다락. 무명·비단 등 갖가지 원단을 보관 중인데, 수납뿐 아니라 장식 역할까지 톡톡히 해내는 중이다.
“대문 앞에 ‘규방도감집’이라는 간판 외엔 아무것도 두지 않았어요. 찾아오는 이들이 ‘밥집’ 혹은 ‘이불집’ 등으로 규정하지 않고 하나의 문화 공간으로 받아들이길 원했거든요. 처음엔 약간의 설명을 적은 입간판이라도 세워야 할까 고민했지만 지금 보니 잘한 선택 같아요. 덕분에 전에는 생각지 못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의뢰해오곤 하는데, 규방도감이 할 수 있는 일의 저변이 넓어지고 있음을 실감해요.” 앞선 말에 한 가지를 추가해야 할 듯싶다. 무한한 가능성도 이 안에서 싹을 틔웠다고.


어떠한 부가 설명 없이 규방도감집이란 글자만 쓰여 있는 간판이 호기심을 자아내는 규방도감 입구.

 

― 전문은 <행복> 10월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글 양혜연 기자 | 사진 이우경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4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