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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에스 건축 박지현, 조성학의 양평 집 두 채 집은 ‘보편적인 사람’이 짓는 것
20년 넘는 죽마고우이자 건축사 사무소도 공동 운영하는 박지현, 조성학 건축가가 함께 땅을 사서 각자 설계해 지은 집 두 채. 각자의 아내까지 네 명을 인터뷰하면서 실로 오랜만에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서는 경험을 했다. 집을 향한 그들의 간절한 마음과 건강한 행복이 생생하게 느껴져서. 나는 이 기사를 집 장만에 어려움을 겪는 부부부터 출산율을 고민하는 이 땅의 정책 입안자까지 많은 사람이 봤으면 싶다. 우리 사회의 가장 취약한 점 중 하나가 바로 집에 대한 상상력이요, 그런 현실 때문에 아파트만 좇는 문화가 고착화된다고 생각하는데, 이들의 이야기가 그 상상력을 한 뼘 넓혀줄 거라 확신한다.

아파트가 아니더라도 ‘집’은 세상에 많고 혼자 지을 수 없으면 친구와 함께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들 부부를 보면서 집 짓기와 집 장만에 대한 우리 사회의 상상력이 풍부해지기를 바랐다. 왼쪽이 조성학·김수빈 부부, 오른쪽이 박지현·박민주 부부.

취재를 위해 도로를 달리면서 이내 기분이 좋아졌다. 서종면이라고 하면 양평에서도 땅값이 가장 비싼 탓에 분당 같은 화려함이 먼저 떠오르는데, 시내에서 벗어나 ‘도장리’라는 작은 마을로 들어가는 길은 저 먼 곳의 시골길처럼 한갓지고 평화로웠다. 굽이굽이 2차선 국도를 따라 펼쳐지는 산과 밭. 장마철이라 사방의 녹음이 한층 진하고 촉촉했다.

신혼 특유의 산뜻함과 단정함이 배어 있는 거실. 경량 목구조의 산물인 나무 천장이 아늑함을 더한다.
내비게이션을 따라 찾아간 집은 근래 취재한 곳 중에서도 독보적으로 멋진 자연을 품고 있었다. 작지 않은 마당과 정원을 에워싸고 굽이굽이 펼쳐지는 앞산과 뒷산. 달항아리 같은 한국 미술의 원형을 이야기할 때 미학자나 예술가들이 빠뜨리지 않고 언급하는 바로 그 능선이었다. 뾰족함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강물처럼 넉넉하고 풍요로운. 그렇게 아름다운 산의 풍경을 품고 있으니 정원은 부러 소박하고 단출하게 조성했다. 단풍과 수국 같은 좋아하는 수종 몇으로만 띄엄띄엄 자리를 잡고 채소는 상추며 방울토마토, 가지 정도만 심었다. 마당 전면에 꼼꼼하게 마사토를 깔고, 네모반듯한 수돗가가 있는 풍경은 두 신혼부부의 모습처럼 산뜻하고 사랑스럽다(이런 모습을 보면 나에게도 이런 시절이 있었지, 잠시 한숨 같은 상념에 빠져든다).

식물을 좋아하는 아내가 아래쪽에서도 꽃과 나무를 더 자세히 관찰할 수 있도록 벽 하부에 큼직한 창을 냈다.
마침내 마당 있는 집을 갖다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전에 집 소개를 먼저 해보자. 주차장을 지나 콘크리트 계단을 올라가면 정면에서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오른쪽은 박지현·박민주 부부의 집, 왼쪽은 조성학·김수빈 부부의 집. 두 곳 다 마당과 정원을 품고 있는 단층집으로 크기는 약 132m2(약 40평) 내외다. 구조는 양쪽 모두 경량 목구조. 한옥에 들어가는 굵고 무거운 목재가 아닌 얇고 가벼운 나무를 약 40cm 간격으로 세우고 앞뒤로 합판을 붙여 집의 뼈대를 만드는 공법으로 콘크리트보다 평당 1백만 원 정도 적은 금액으로 시공할 수 있다. “선릉에 있는 사무실이 콘크리트 건물 4층인데, 외부에 있다가 밤에 들어가면 안이 후끈후끈해요. 콘크리트도 돌덩어리인 거잖아요. 재료 자체가 열을 머금는 데다 식는 속도가 느려 무척 덥지요. 그에 반해 나무는 열에 달궈지지 않으니까 여름에도 시원하고요. 하지만 콘크리트에 비해 지켜야 할 규칙들이 많아 디자인적 자유도가 떨어진다는 단점도 있어요. 이런저런 장단점이 있지만 경량 목구조의 가장 큰 장점은 아늑한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는 거예요. 벽면이나 지붕에서 목재의 따뜻함이 느껴져 포근한 기분이 들지요.” 박지현·조성학 건축가의 말이다. 경량 목구조를 적용한다 해도 외관은 각자의 취향대로 만들 수 있다. 박지현 소장 부부는 외단열(단열재를 바깥에 두르는 공법)에 벽돌 타일을 붙였고, 조성학 소장 부부는 역시 외단열에 검은색 미장으로 마무리했다.

왼쪽 둥근 벽을 지나면 만나는 거실과 주방. 창문 밖 초록 풍경만 봐도 마음이 차분해진다. 오른쪽 고측창에 후드득 올라가 새도 보고 하늘도 구경하고 낮잠도 자는 것은 이 집 ‘냥이’가 가장 좋아하는 레저 활동이다.
두 친구가 합심해 땅을 찾고 집을 짓게 된 데는 박지현 소장의 아내 박민주 씨의 한숨 섞인 말이 큰 역할을 했다. 다른 세 명의 마음에 방아쇠를 당겼다고 할까? “대구가 고향인데 직장 생활을 하며 서울에서 자취를 하다 보니까 한 곳에 정착하기가 힘들었어요. 2년에 한 번씩 이사를 다녀야 했으니까요. 그렇게 ‘임시 상태’로 13년을 살다 보니 알게 모르게 지친 것 같아요. 사람과 일에 치이는 날이 많았고, 어느 날 당시 남자친구이던 남편이랑 통화를 하면서 ‘우리도 집 짓고 살래?’ 하는 말이 튀어나왔어요. 사귄 지 3년 정도밖에 안 됐을 때라 결혼을 할 거란 생각도 안 했을 때에요.(웃음) 시골에서 집을 짓고 살 거라는 생각은 더더욱 못 했고요. 진심으로 한 얘기도 아니었고 어쩌다 그 말을 뱉게 됐는데 오빠가 너무 좋아하면서 그 주에 바로 땅을 보러 가자고 하더라고요. 그 때까지만 해도 제가 살 집은 아파트라고만 생각했어요. 서울에 아파트를 마련하는 게 꿈이었고요.” 남편인 박지현 건축가가 말을 이어받았다. “교외에 단독주택을 지어 산다고 하면 자칫 특별한 케이스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어떤 특권이 있는 사람만 지을 수 있는 것 같고요. 아파트는 어떻게 사서, 어떻게 들어가는지 다 알지만 단독주택을 짓는다고 하면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너무 막막하잖아요. 돈도 많이 들 것 같고요. 이렇게 집을 짓고 나니 정말로 ‘보편적인’ 사람이 교외에 집을 짓고 사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저희가 돈이 많아서 이 집을 지을 수 있던 게 아니거든요. 집을 짓기 전에는 후암동에 있는 사무실에서 조성학 소장이랑 함께 살았는데, 이렇게 내 집이 생기니 정말로 좋습니다. 집이 있는 게 어디냐! 싶지요. 공사를 하면서 계속해서 돈이 들어가다 보니 아직 정확한 금액을 뽑지는 못했는데(웃음) 한 집당 약 4억 원이 들지 않았나 싶습니다. 땅값은 별도고요.”

박지현·박민주 부부의 집과 거실. 따뜻하고 환한 기운이라 들어서면서부터 아늑한 기분이 든다. 창밖으로는 계절마다 다른 얼굴의 정원이 펼쳐진다.

조성학·김수빈 부부의 집과 거실. 친구의 집과는 또 다른 기운으로 아름답다. 부부는 본인들이 원하는 집의 분위기를 정확히 알고 있었는데, 때론 그런 느낌만으로도 자신에게 맞춤한 집을 지을 수 있다.
집을 지어 이사를 온 지 어느덧 1년. 사계절을 지나면서 박민주 씨는 삶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느낀다. “제가 새로운 경험에 대한 욕구가 엄청 낮아요. 그냥 집에 있는 게 가장 좋은 사람이라서 삶이 무미건조하지요. 도시에 살 때는 사계절의 삶이 똑같았어요. 겨울에는 두꺼운 옷을 꺼내고 여름에는 반팔을 입고…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었지요. 이곳에 와서 가장 크게 느끼는 건 ‘계절 감각’이에요. 봄에는 사방에 꽃이 피고, 여름에는 열기가 가득하고… 모든 계절이 저마다 달라 사계절이 다 좋고 다 기다려져요. 지난겨울에는 이곳에서 눈썰매를 탔는데 아이가 된 것처럼 천진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어른 아이가 된 것 같고. 어? 이상하다? 나 현실적이고 염세적인 사람인데 좋네, 싶고요. 오빠가 냇가에 가서 물고기 잡는 걸 좋아하는데, 저도 한 번씩 따라가 물에 발 담그고 책 보며 놀아요. 제가 이렇게 바뀔 줄은 정말 몰랐어요.”

좋아하는 분위기만 알아도 멋진 집을 지을 수 있다
마침내 나만의 집을 갖게 된 조성학·김수빈 부부의 행복도 친구들의 그것에 못지않다. 이 부부는 결혼식도 이 집에서 했다. 정해진 시간 안에, 순서에 따라, 식순을 치르는 예식장에서 하는 결혼은 그들의 기호가 아니었다. 아주 가까운 친구와 양가 부모님만 모시고 마당에서 식을 치렀고 사회는 당연히 바로 옆집에 살고 있는 박지현 건축가가 맡았다. 시골 마당집에서 치르는 결혼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분명 공사가 다 끝났어야 했는데 결혼식 당일 아침까지 미장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걸 본 부모님이 ‘하~’ 하고 심란해하시고요.” 하지만 지나고 나니 모든 것이 해피 엔딩. 저 멀리 몽글몽글한 산의 기운, 꽃 도시락을 포함해 많은 장면이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매번 느끼지만 특별한 시간은 특별한 공간에서 만들어지고 라이프스타일 역시 내 식대로 만든 나만의 집에서 움튼다.

주방 쪽에서 바라다본 거실. 굵은 나무 기둥과 격자창, 사선으로 마감한 지붕이 입체적이고 매력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박지현·박민주 부부의 집이 빛을 중요한 좌표로 삼고 지은 것 같다면 조성학·김수빈 부부의 집은 어둠을 고정값으로 놓고 설계한 것 같다. 집의 외관도 검은색 미장으로 마감했고 내부에도 있는 힘껏 빛을 끌어들이지 않았다. 거실에는 천장 조명 대신 보름달처럼 둥근 한지 조명을 맞춤한 길이로 내렸다. 첫눈에 환한 집은 아니지만 한마디로 ‘분위기’가 있다. 집을 짓는다고 하면 마디마디 결정하고 내가 원하는 바를 정확히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할 것 같지만 때론 어떤 분위기의 집을 갖고 싶은지만 말해도 된다. 암호 같아도 괜찮다. 선명하지 않아서 더 선명하게 그려지는 느낌이랄까? 그런 분위기를 설명하는 건 또 그리 아득하지만도 않아서 어떤 시공간에서 마음이 느긋해지고 충만해졌는지를 가만 떠올리면 된다. 이 부부는 둘 모두 밝은 곳보다 어두운 곳을 좋아했고, 그런 마음의 결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하며 공간 각각의 느낌을 잡아나갔다.

왼쪽 설계실에서 바라본 거실. 설계실에는 부부의 책상이 나란히 붙어 있다. 오른쪽 크고 작은 상·하부의 창으로 자연 풍경이 넘실대듯 들어오는 아지트(라운지). 부부가 책을 읽고, 음악도 듣는 공간이다.
“이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자려고 침대에 누울 때예요. 창문 밖으로 조명을 받은 꽃과 나무가 일렁일렁 큰 그림자를 만들어내는데,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치 숲속에서 자는 것 같은 기분이 들거든요. 어떤 순간이라기보다 그런 장면을 좋아해요.” 박지현·조성학 건축가와 함께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김수빈 씨(그녀 역시 건축가다)의 말이다. “건축가로 일하다 보면 다양한 사례를 접하게 되는데, 취향이 ‘센’ 분과 작업할 때 특히 재미있더라고요. ‘아, 이렇게 해도 되는구나’ ‘나도 이렇게 확실한 취향이 느껴지는 집을 짓고 싶다’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곰곰 생각해보니 저는 조명이 밝은 걸 안 좋아했고, 나무로 된 가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더라고요. 검은색도 좋아하고요. 처음으로 갖게 된 이 집이 마음에 들어요.”

부러 꽉 채우지 않고 듬성듬성 식재한 정원이 숨구멍 역할을 하는 조성학·김수진 부부의 집 외관. 병풍처럼 서 있는 뒷산도 든든하다.
남편인 조성학 건축가는 친구를 이웃으로 두고 있는 특수한 관계, 그런 관계에서 나오는 상황을 이 집의 매력으로 꼽았다. “박 소장님이 고양이를 키우잖아요. 녀석이 나무 계단을 따라 천장 창틀까지 휙휙 올라가는 걸 좋아하는데, 밤에 우리집에서 보면 저 높이 고양이 실루엣이 보여요. 비일상적이고 신기한 장면이지요. 마당을 박 소장님 집 쪽으로 내고 창도 그 방향으로 냈는데, 박 소장님이 예쁜 집을 지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우리를 위해 박 소장님은 또 일반적인 높이에 창을 안 내고 고측창을 만들었고요. 친구 집에서 보면 우리 집이 더 예뻐 보여요. 정원을 포함해 더 온전한 풍경으로 들어오니까요. 그건 박 소장님네도 마찬가지고요. 정원 너머로 박 소장님 집의 측면 벽이 보이는데, 그 벽이 있어서 어떤 안전함 같은 것을 느껴요. 박 소장님네가 여행을 가면 고양이도 봐줍니다. 아기 한 명을 키우기 위해서는 하나의 마을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우기 위해서는 두 집이면 충분한 것 같아요.(웃음)”


왼쪽 길게 자른 아연 골강판을 설치미술처럼 천장에 매달았는데, 이 또한 아이디어. 허공에 떠 조명을 분사하는 역할을 한다. 오른쪽 강판을 구부려 설치 미술품처럼 만든 빗물받이.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박지현· 조성학 건축가와 집을 지어도 좋겠다 싶어 차 안에서 혼자 즐거웠다. 한 사람은 빛, 한 사람은 어둠. 누구와 더 잘 맞을까 상상하는 것도 행복했다. 예산이 없으니, 당장 실현할 수 있는 꿈은 아니지만 뭐 어떤가. 원하는 집을 계속 꿈꾸고 상상하는 건 인생에서 가장 즐겁고, 중요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글 정성갑(갤러리 클립 대표, <건축가가 지은 집> 저자) | 사진 박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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