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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스 스터디 고택 뷰, 산 뷰, 정원 뷰 품은 집
신축에서 레노베이션, 개축으로 방법을 바꾸며 꼬박 2년에 걸친 집 짓기가 끝나고 이명자 씨 부부가 은퇴 후의 삶을 보낼 집 한 채가 완성됐다. 부부는 창밖으로 드는 해를 따라 자리를 옮겨 다니며 아침, 점심, 저녁밥을 지어 먹고 풀멍과 빗소리멍, 물안개멍을 즐기며 전원생활을 200% 만끽하는 중이다.

2년 동안의 집 짓기를 마무리하고 전원주택살이의 기쁨을 만끽 중인 이명자·신동근 씨 부부. 경사진 지붕 아래 길고 나지막한 모습의 이곳은 부부가 주로 지내는 거실 겸 다이닝 공간.


아파트 단지로 둘러싸인 지하철역과 택지 개발이 한창인 부지를 지나 조금 더 들어가면 거대한 저수지와 함께 사뭇 다른 풍경이 등장한다. 수리산 자락과 밭이 푸르게 펼쳐진 전경. 몇몇 농가가 있고 아직 도로도 제대로 나지 않은 이곳에 신동근·이명자 씨 부부는 은퇴 이후의 인생을 준비하며 집 짓기를 시작했다.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시내의 아파트에 살았어요. 5년 전부터 아내와 노후를 어떻게 보낼지 고민하다 전원주택을 지을 결심을 했지요. 전원주택 하면 양평이잖아요. 많이 보러 다녔는데, 결국 구입까지 이어지지 못했죠.” 신동근 씨 부부가 구입을 망설인 가장 큰 이유는 도시와의 거리였다. 전원주택은 대개 교외에 짓지만, 나이를 생각하면 병원을 비롯해 갑작스러운 상황에 대비할 도시의 인프라가 필요하다. 그러다 찾은 곳이 이곳이었다. 도시에서 너무 멀지 않으면서 유동 인구가 많지 않고 자연은 풍성한 곳. 전원주택의 완벽한 배경이 되어줄 동네였다.


거실에서 내다보이는 정원. 2백50년 된 고택의 담장을 마주하고 있다. 정원에는 뻐꾸기를 비롯해 수많은 새가 찾아오고, 어느 날 밤에는 고라니가 마당에서 자고 가기도 했다고.
집을 짓기로 결심하고 어떻게 지을지 고민하며 부부는 준비에 돌입했다. 인스타그램에서 마음에 드는 주방이나 거실 이미지를 찾아 저장해뒀고, 건축 박람회에 방문해 설계를 맡길 만한 업체를 알아봤다. 사례 조사를 위해 매달 스테이 탐방 여행도 떠났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그 이후의 일은 부부의 준비만큼 예측 가능하지도, 순탄치도 않았다. “건축 박람회에서 설계부터 시공까지 다 하는 건설사를 알게 되어 설계를 맡겼어요. 그런데 신축이 안 된다는 거예요.” 부부에게는 청천벽력 같던 소식. 지구 단위 계획을 비롯해 문화재 옆이라는 위치, 도로에 내주어야 하는 면적 등의 상황이 겹치면서 신축이 불가능해졌고, 원래 있던 2층 규모의 구옥을 고치는 것으로 방향을 바꿔야 했다.

샐러드보울 스튜디오와의 인연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인테리어 디자이너는 화려한 것보다 간결하고 자연스러운 미감을 좋아하는 아내 이명자 씨의 픽. 샐러드보울 스튜디오 구창민 대표는 부부를 만난 뒤 이곳을 처음 본 순간을 이렇게 표현했다. “2백50년 된 고택이 보이고 높은 건물 하나 없이 자연이 가득한 풍경이 너무 멋졌어요. 이런 곳에 집을 지으면 너무 좋을 것 같았죠.” 그는 고칠 집을 보러 갔다가 반대로 집 지을 결심을 굳히고 돌아왔다. 구옥 위에 올라가 바라본 뷰 덕분이었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뷰가 너무 좋았는데, 그 집 안에서는 보이지 않았어요. 집의 배치가 다르고 창도 나 있지 않았거든요. 사무실에 종종 건축 의뢰가 들어오는데, 저희의 전문 분야가 아니라서 고사해왔어요. 그런데 여긴 풍경을 보고 집을 짓고 싶다는 결심을 하게 됐죠.”


구창민 대표는 자연이 가득한 주변 경치를 만끽할 수 있도록 곳곳에 커다란 창을 냈다. 이곳 2층 방의 창으로는 문화재인 고택과 숲이 함께 보인다.


구옥을 유지, 보강하기 위한 비용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건축주와 디자이너 모두 인테리어로만 마무리하기에는 아쉬움이 컸다. 샐러드보울 스튜디오는 다시 한번 가능성을 따져봤고, 마침내 ‘개축’이라는 해결책을 찾았다. 신축이 원래의 것을 허물고 대지의 기준에 맞춰 새로 짓는 것이라면, 개축은 종전 건물의 규모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다시 짓는 것을 뜻한다. 결론적으로는 똑같이 집을 허물지만 구옥의 면적을 넘지 않으면 새로 지을 수 있었고, 까다로운 문화재 심의도 건너뛸 수 있었다. 그렇게 1년 만에 방향을 확정하고, 다시 1년의 설계와 시공을 거쳐 낮고 기다란 박공집과 2층 규모의 네모난 집이 비스듬하게 만나는 지금의 집이 완성됐다. “처음에는 두 동을 분리된 느낌으로 계획했습니다. 북촌에 가면 현대식 주택에 단층 한옥을 연결한 집들이 있어요. 그 장면을 모티프로 두 가지 다른 모습의 집을 설계했지요. 이후 시공과 비용 문제로 건물은 하나로 합치게 됐지만, 콘셉트는 이어갔습니다. 높이와 지붕 모양을 다르게 하고, 살짝 각도를 틀어 별개의 건물처럼 느껴지게 했어요.”


왼쪽 아들 가족이나 딸 부부가 오면 머무는 2층 공간. 거실과 방, 서재를 배치하고 슬라이딩 도어를 설치해 유연하게 쓸 수 있다. 오른쪽 1층 현관에서 바라본 거실 복도. 굽어 보이는 것은 대지 형태에 맞춰 거실 동의 각도를 꺾어 배치한 결과다.

두 동은 형상만이 아니라 역할도 나뉜다. 경사진 지붕 아래 나지막한 동은 모두 거실과 다이닝에 할애해 별장처럼 쉬고 모이는 공간이고, 2층 양옥은 침실과 욕실 등 사적 기능을 담당한다.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을 구분하고 평면을 퍼즐 맞추듯 깔끔하게 정리하는 샐러드보울 스튜디오의 장기가 발휘된 순간. 두 공간은 취하는 태도도 정반대다. 거실 겸 다이닝 공간은 하나의 넓은 장소로 완전히 열려 있어 부부는 이곳에서 쉬고 책도 읽고 밥도 먹는다. 사적 공간은 최소 면적, 최대 효율을 추구했다. 네모난 경계 안에서 침실과 런드리룸, 욕실 등을 필요한 면적만큼 쪼개고 짧은 동선으로 배치한 다음 나머지는 수납공간에 집중했다.

2층은 아들 가족이나 딸 부부가 오면 머물 수 있도록 방과 욕실을 뒀다. 현관에서 계단을 통해 1층 공간을 지나지 않고 바로 2층으로 올라갈 수 있고 중문을 설치해 더 분리된 느낌으로 쓸 수 있다. 짜임새 있는 공간을 완성한 다음 구창민 대표는 프라이버시를 해치지 않으면서 풍경을 들이는 위치와 크기로 창을 냈다. “인테리어를 할 때는 구조적으로 없앨 수 없는 벽이나 창의 위치가 정해져 있어서 그 바탕 안에서 디자인해야 해요. 이번에는 건축까지 설계한 덕분에 시선의 경험까지 계획할 수 있었어요. ‘여기 앉아서 이 풍경을 보면 너무 행복하겠다’ 상상하면서 재밌게 일한 순간입니다.” 커다란 창은 해 질 때까지 푸른 산과 나무를 아낌없이 들이고, 손자들이 정원에서 뛰어노는 모습을 담는 액자가 되는가 하면,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와 함께 찾아드는 곳이 되기도 한다. 외벽은 가로로 긴 벽돌 타일로 마감해 낮고 긴 집의 수평선을 강조했다. 여기에 수직으로 패턴을 낸 콘크리트 담장이 교차하며 균형 있는 미감을 만들어낸다. 실내 마감재는 샐러드보울 스튜디오의 스타일을 살려 바닥과 천장 및 가구는 따뜻한 목재로 마감하고, 나머지 벽면은 하얀 톤으로 정리해 여백으로 삼았다.

나지막한 볼륨과 경사진 지붕이 이루는 비율이 아름다운 거실 쪽의 집. 외장재는 가로로 긴 벽돌 타일로 마감해 수평적 이미지를 더욱 살렸다.
탄생한 지 이제 갓 4개월이 된 집은 벌써 부부에게 많은 추억거리를 안겨주었다. 첫 번째는 전원주택에서 자연을 누리는 삶을 만끽하는 것. “천장 없는 데서 밥 먹으면 맛있잖아요. 담장 쪽 처마 아래에서 해 올라오는 모습을 보며 아내와 아침 먹고, 점심때는 밭 풍경 보면서, 해 질 녘에는 주방 옆 그늘진 테이블 앞에 앉아 저녁 먹어요.” 부부의 딸과 핀란드인 사위는 지난 3월, 집 마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청사초롱이 걸린 회색빛 주택 풍경, 정원에서의 행복한 결혼식은 가족에게 두고두고 되새길 추억을 선사했다.

부부와 구창민 대표의 집 짓기 이야기는 “집 짓기는 우리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어요”로 시작했으나 “이 집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들어요. 샐러드보울 스튜디오를 만난 것이 신의 한 수였어요”라는 말로 마무리되었다. 도시의 편리함은 잃지 않으면서 전원생활은 제대로 누리는 터, 가족의 생활에 맞춰 구성한 공간, 언제든 지척에 있는 자연. 삼박자를 고루 갖춘 새로운 집에서 부부는 전원주택의 로망을 마음껏 펼치는 중이다. 그들의 인생 2막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구창민 대표는 2014년 공간 디자인 스튜디오 샐러드보울 스튜디오를 설립했다. 편안하고 단순한 집의 감각을 디자인 언어로 삼아 주거 공간부터 상공간, 미술관까지 다양한 공간을 넘나들며 스튜디오만의 분위기를 담아낸다. salad-bowl.co.kr

글 정경화 기자 | 사진 이우경 기자(별도 표기 외) 설계 및 디자인 샐러드보울 스튜디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4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