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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완·김은영 부부의 211㎡ 주택 공간을 비워 삶을 담다
벽돌집이 즐비한 단독주택 단지 사이 홀로 단정한 매력을 뽐내는 JB하우스. 라이프스타일에 초점을 맞춘 심플한 구성과 동선이 관전 포인트다.

현관을 지나면 짧은 복도가 공용 공간과 계단 사이를 연결한다. 계단을 오를 때마다 가로로 긴 창과 트인 공간이 조금씩 드러나며 점진적인 확장감을 선사한다.

오른쪽 화이트 톤의 담백한 디자인을 원하는 아내 김은영 씨의 의견에 따라 마룻바닥을 제외하고는 흰색 도장과 마이너스 몰딩으로 깨끗한 도화지 같은 바탕을 만들었다.
퇴직 이후의 삶을 이야기하다 보면 조용한 마을에 내 집을 짓고 살고 싶다는 이야기를 적지 않게 듣는다. 교외에 너른 저택을 짓고 싶다는 바람부터 아예 시골에 내려가 소박한 삶을 살고 싶다는 꿈까지. 저마다의 성향에 따라 원하는 집은 가지각색이지만 정말 잘 지은 집이라면 취향에 상관없이 누구나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특히 건축가나 디자이너는 설계와 시공의 모든 과정을 지켜보는 사람으로써 집에 대한 기준이 더욱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면 그 집은 꽤나 성공적인 프로젝트라 말할 수 있는데, 디노바 송준형 대표에게 JB하우스가 그랬다.

생각해보면 참 신기한 인연이다. 송준형 대표와 김주완 건축주의 만남은 디노바가 학동역에 사무실을 두고 있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전까지 홀로 건축을 하던 송준형 대표는 첫 동업을 시작하며 사무실을 구하고 있었는데, 재밌게도 건축주가 다니던 회사 소유 건물에 디노바 사무실이 들어오게 되었다. 잘나가는 이벤트 회사의 창립 멤버인 건축주는 업무에 바쁜 나날을 보내던 시기로, 한 번씩 디노바 사무실에 들러 응원의 말을 건네던 것이 이 관계의 시작이었다. “젊고 꿈 많은 친구들이 참 열정적으로 일을 하잖아요. 옛날 제 모습도 생각나면서 괜히 더 응원해주고 싶더라고요. 한번은 회사 일로 작업을 같이 해본 적이 있어요. 직접 건축이나 인테리어를 의뢰하면서 협업한 건은 아니었지만 마냥 어린 동생들이 아닌, 자기 분야에서는 전문가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느끼는 계기가 됐죠. 매번 장난처럼 건네던 “내 집을 지어달라”는 약속이 그 이후부터 점점 진담이 되었는지도 몰라요.(웃음)”

디노바가 학동역에 사무실을 두고 있던 당시가 2018년 즈음이고, 이 집을 위한 현장 답사는 2022년 2월에 시작했다고 하니 채 5년도 되지 않아 장난 같던 약속이 실현된 것이다. 김주완·김은영 부부에게 이전까지 집 짓기에 대한 명확한 로망이 없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모든 일은 상당히 빠르게 진행된 셈이다. “제가 그즈음 큰 수술을 했어요. 그래서 회사도 퇴직하고 요양하다 보니 문득 옛날 생각이 나더라고요. 저희가 이 동네 원룸에서 결혼 생활을 시작했어요. 이 동네는 일산 1기 신도시가 시작될 때 형성된 마을이라 당시에도 단독 주택이 모여 있었거든요. 산책하다가 이쪽이 보이면 나중에 저런 집 하나 지어주겠노라 종종 이야기했어요. 진지한 약속보다는 가벼운 농담에 가까웠지만, 일하다 힘들 때면 그 기억이 떠오르면서 다시 열심히 일할 동기가 되어주었습니다. 그래서 인생의 전환점이라 할 수 있는 지금, 그 약속을 실현해보자 싶었죠.”

사실 부부가 아파트를 떠날 때, 직접 집을 ‘지을’ 생각은 아니었다. 이웃에게 의도치않게 피해를 주고 받는 것에 대한 걱정 없이 자유롭고 싶다는 마음에 단독 주택을 꿈꿨고, 처음에는 인근 듀플렉스 형 타운하우스를 살펴보았다. 하지만 막상 계약을 마치고 입주를 목전에 둘 때까지도 그 공간이 내 집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디자인부터 구조, 모든 요소가 도통 마음에 들지 않아 송준형 대표와 의논했더니 고치는 것보다 새로 짓는 게 낫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때 마침 부동산으로부터 신혼 시절 꿈과 같던 지금의 마을에 매물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고 곧장 건축가를 대동한 채 부지를 살폈다. 예닐곱 곳 중 만장일치로 지금의 부지를 계약했다. 이때도 리모델링을 먼저 고민했으나 부부가 원하는 요소를 정확히 실현하기 위해 결국 2022년 6월 철거를 시작했다.


김은영 씨가 가장 신경 쓴 주방. 화이트 톤이 단조로워질 것을 우려해 아일랜드에는 화려한 패턴의 천연 대리석을 상판과 앞면, 옆면에 나란히 이어 붙였다.

집 전체에 자신의 취향을 담은 아내는 거실과 주방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편이다. 혼자 있을 때는 동네 길고양이들과 집 안의 고양이 세 마리가 함께 노는 모습을 구경하기도 한다.
멋진 집이 아닌 내 집을 만들어줄 사람
약 10개월 뒤, 철거한 자리에는 네 가족과 고양이 두 마리(지금은 세 마리가 되었다)의 새 보금자리가 생겼다. 이름은 ‘JB하우스’. 건축주의 학창 시절 별명에서 따온 직관적인 이름이다. 구조 역시 명확하다. 1층에는 공용 공간, 2층에는 개인 공간을 배치했다. 이런 명쾌한 구조는 주택에서 살게 된 이유와도 연결된다. 공동 주택에서는 시각·청각 등 다양한 방법으로 개인 공간을 침범받았기에 이 집에서는 확실한 자기 공간을 갖길 바랐다.

집은 외관부터 미니멀한 감각이 느껴진다. 건축주의 요구사항이던 화이트 톤의 담백함과 프라이버시 확보를 정확히 구현한 것이다. 여기서 건축주가 송준형 대표를 찾은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다른 건축사도 만나봤죠. 대부분은 내세울 만한 작업물이나 스타일을 먼저 보여주더라고요. 하지만 저한테 그런 포트폴리오는 중요한 사항이 아니었어요. 저희 가족이 특정한 디자인을 바라지는 않았으니까요. 저희는 공동 주택에 살며 느낀 불편함, 소소한 취향을 듣고 모두 실현해줄 전문가가 필요했습니다.” 송준형 대표는 옆집과 맞닿은 면의 창은 줄이고 관리하기 편한 식물로 조경을 구성하는 등 건축주의 불편함을 해결할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아 건축주의 기대를 완벽히 충족시켰다. 또한 부부가 하나씩 모은 외장재, 문손잡이, 펜던트 조명 등의 사진을 취합한 뒤 전문가의 시각에서 취향을 역으로 도출, 면을 강조하는 디자인을 제안했다. 외관에서는 건축주 부부가 직접 고른 가늘고 긴 석재를 겹겹이 쌓아 올려 건물 전체의 매스감을 강조했다.


남편의 다양한 취미가 담긴 옥탑에서 가장 많은 것은 가족이나 친구와 찍은 사진이다. 추억을 중요하게 생각하기도 하지만 개중에는 직접 찍은 사진도 있다고.

얇은 선과 면이 중심인 외관. 주된 창은 옆집과 면하지 않은 곳으로 냈다.

옷차림부터 부부의 스타일이 매우 다르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사진 속 2층 거실은 각 침실과 유일하게 연결된 곳이라 더 많은 활용법을 고민하는 중이다.
실내의 모든 디자인은 아내 김은영 씨의 취향이다. 사실 결혼 전부터 20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해온 부부지만 둘의 취향은 전혀 다르다. 차분하고 과하지 않은 스타일을 좋아하는 아내와 달리 남편은 다양한 활동을 선호하는 외향적 성격에 원색 같은 화려한 색을 좋아한다. 하지만 아내를 위한 집이기에 모든 디자인은 김은영 씨의 취향을 따르기로 결정한 것이다. 혹시 모를 간극은 디노바가 전문성으로 채우며 방향성을 제시해주리라 믿었다.

외관의 담백한 분위기는 실내까지 이어진다. 흰색 도장과 마이너스 몰딩으로 깨끗한 도화지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마룻바닥으로 따스함을 더했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편리한 동선이다. 현관 바로 앞에 문을 내어 곧장 세탁실과 다용도실, 주방으로 이어지는 동선을 계획하는가 하면 주방은 조리대와 아일랜드가 11자로 마주 보는 대면형 구조로 요리하기 편하게 구성했다. 주방과 거실을 하나로 연결한 뒤 거실 끝에 야외 공간이 보이는 통창을 냄으로써 탁 트인 공간에서 온 가족이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했다.

1층 평면도
2층을 지나면 분위기가 반전된다. 정적으로 정돈된 아래층과 달리 입구부터 강렬한 레드와 블랙을 대조해 강렬한 인상을 빚은 것. “다락에서는 저 혼자 큰 소리로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고, 마음껏 기타, 건반을 치다 해먹에 누워 낮잠도 자요. 잠잘 때를 제외하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인 거죠.” 건축주가 애정하는 공간임을 드러내듯 빨간 선반에는 다양한 종류의 취미용품을 빼곡하게 놓았다. 음향과 관련된 취미가 많은 만큼 입구에는 방음문을 시공하고 내부에도 꼼꼼하게 방음 및 차음 설비를 갖췄다.

“얼마 전 아들이 군대에 갔어요. 몇 년 뒤면 딸아이도 성인이 되고요. 그래서 아내랑 ‘이제 한 10년 정도 지나서 아이들이 다 각자의 생활을 하게 되면 이 집도 2기를 맞이하지 않을까, 그때는 이 집을 어떻게 또 꾸며야 할까’하는 대화를 나눈 적이 있어요. 물론 아직 먼 이야기죠. 그때의 우리 모습에 따라 새로운 모습으로 꾸며볼 계획입니다. 1백 년 무상 AS를 약속했으니 대표님도 오셔야겠죠?(웃음) 그때 정식으로 다시 의뢰하겠습니다.”



송준형 대표는 2010년 공간 디자인을 시작해 올해로 15년째 다양한 주거용·상업용 건물을 짓고 있다. 조각을 전공한 뒤 실내디자인을 했으나 클라이언트의 니즈를 좀 더 폭넓게 표현하고 싶어 건축으로 영역을 넓혔으며 건축은 건축주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작품이라는 관점 아래 꾸준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디노바가 만든 새로운 건축 소식은 인스타그램 @denova_official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설계 및 시공 디노바(denova.co.kr)

글 최지은 기자 | 사진 이창화 기자, 디노바 제공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4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