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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든 디자이너 박소현 대표 ‘에지’ 있는 할머니 정원사로 나이 들고 싶어요
일상의 행복을 견인하는 여러 시공간이 있을 텐데 그 안에서 쉬고, 일하고, 영감을 얻는 나만의 우주가 있다면 얼마나 뿌듯하고 평안할까? 그루엣홈 박소현 대표가 꾸려가는 평창동 삼층집은 그에게 단순히 집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마침내 얻게 된 결론이자 더 전문적이고 행복한 직업인으로 살기 위한 바탕. 매일 정원을 일구며 그가 꾸는 꿈은 ‘에지 있는 정원사 할머니가 되는 것’이다.

행복이 가득한 집에 산다고 할 때 집만큼 크고 절대적 의미와 가치를 지니는 공간이 정원이다. 평창동 3층 단독주택에 자리를 잡으면서 그녀는 비로소 일과 삶을 온전히 갖게 됐다고 느낀다.
국민소득 4만 달러가 되면 우리에게 각성처럼 중요하게 다가오는 것이 정원이다. 정원이 많은 사람의 꿈이 되면서 정원 디자이너인 박소현 대표 역시 여러 스케줄로 촘촘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그의 라이프스타일을 이해하려면 우선 조경가와 가든 디자이너의 차이부터 알아야 한다. 먼저 조경가는 정원의 설계에 특화된 사람이다. 도시의 ‘녹색 환경’을 위해 땅을 계획하고 설계하는 일. 물론 개인 주택에 딸린 정원도 조성할 수 있지만, 근본적인 업의 뿌리는 꽃과 식물로 아름다운 ‘땅의 설계’에 있다. 조경가를 영어로 풀이하면 Landscape Architect라고 하는데 이것만 봐도 특정 공간의 풍경과 방향, 디자인을 총괄하는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조경가가 건축가라면 가든 디자이너는 인테리어 디자이너에 가깝다.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가구와 조명 및 그림과 그릇에 밝듯, 가든 디자이너는 땅의 설계보다는 식물 한 종 한 종의 특징과 생장에 해박하다.

“가든 디자이너는 개별 식물의 배치와 식재에 보다 감성적으로 접근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존경하는 가든 디자이너 피터 아우돌프의 말을 빌자면 ‘식물이 주인이 되는 공간’을 만드는 사람이지요. 이런 노력이 사람의 감성을 건드려 그곳에 더 오래 머물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하는 거고요. 근본적인 구분은 있지만, 조경가와 가든 디자이너의 일이 활발하게 섞여야 한다고 봐요. 그래야 공공정원은 물론 개인 주택에 딸린 정원이 함께 아름다워지지요. 그런 교차적 이해가 가능할 때 지적으로 더 탄탄하고 각자의 지점도 더 확실한 업의 생태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봅니다.”


2층 작업실. 뒤쪽 창문으로는 한적한 평창동 주택가가, 앞쪽 창문으로는 박소현 대표가 직접 일구는 정원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박소현 대표의 ‘업’은 가든 디자이너. 집에 아름다운 정원을 들이고 싶어 하는 사람을 위해 그 땅과 그 건물에 꼭 맞는 표정과 기운의 꽃밭을 제안한다. 내친김에 정원을 성공적으로 가꾸기 위한 팁 몇 가지를 소개해본다. “정원은 정원주 본인이 직접 가꾸는 걸 권장해요. 예전에는 고객과 통화하며 이런저런 일을 해야 할 때라고 알려드리면 ‘잠깐만요, 아줌마 바꿔드릴게요’ 하는 분이 많았어요. 지금은 꽃 보고 가지치기하는 것이 내게도 좋은 거라는 걸 알기 때문에 수업도 직접 들으러 오지요.(웃음) 특정 식물의 키가 최종적으로 어느 높이까지 자라는지 아는 것도 중요해요. 정원 크기에 따라 심으면 안 되는 나무가 있고, 과실수는 가지치기를 잘하면서 키워야 너무 높이 자라 손이 안 닿는 데서 과실이 떨어져 바닥이 더러워지는 걸 막을 수 있어요. 처음 조성하거나 기존 정원을 레노베이션할 때는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이 경제적이고, 원하는 스타일도 더 맞춤하게 구현할 수 있습니다. 본인이 직접 하다가 곧 후회하고 다시 전문가를 찾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면 시간 면에서나, 비용 면에서 손해가 크지요.”


<행복>을 보며 키운 행복한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동경
자, 제법 많은 공부를 했으니 지금부터는 나무 그늘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쉬는 기분으로 가볼까? 집 이야기부터. “이곳에 터를 잡기까지 집을 엄청 보러 다녔어요. 여기가 지대는 높아도 경사는 완만한데 반대쪽으로 가니 급경사인 곳도 많더라고요.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거의 등산을 하는 수준으로 경사가 심한 곳도 있고요. 이곳은 전신이 빌라여서 좋았어요. 세 개 층 출입구가 따로따로 분리돼 있어서 한 층은 아이들 주고, 또 한 층은 제가 스튜디오로 사용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지요. 아이들이 독립하면 세를 줘도 되고요. 규모 대비 가격이 저렴했는데 거실이 ㄱ자로 꺾여 있어서 그랬어요. 거실이 움푹 들어가고 양쪽 날개 부분에 복도와 큰 방이 있는 구조였는데, 집을 보러 온 사람들 눈에는 그게 불편하던 거예요. 왜 거실이 있다 말아? 한 거죠.(웃음) 저는 그런 입체적인 구조가 좋았고요. 층마다 방과 화장실이 두 개씩 있는 것도, 주차를 일곱 대까지 할 수 있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어요. 할머니가 사업을 하며 이 집을 지으셨다는데 아주 앞서 가는 분이에요.” (중략)

아이디어 스케치와 서류 작업을 하는 서재의 한쪽 풍경. 현실과 환상의 지점이 금빛 색채로 녹아든 고경애 작가의 작품이 아름답다.

1층의 생활 공간. 일과 생활을 하나의 건물에서 분리된 공간으로 펼칠 수 있다는 것이 두고두고 만족스럽다.
큰 방보다 정원 딸린 집이 필요하던 사람
사람도 가마에서 나온 도자기처럼 저마다 각기 다른 성질과 기운을 지니고 있다고 믿는다. 누군가는 낮보다 밤을 좋아하고 또 누군가는 물보다 불에서 힘을 얻는다. 박소현 대표는 어릴 때부터 흙을 좋아했다. 위로 언니가 있지만, 언니는 정원에 별 관심이 없고 그만 손에 흙 묻히고 꽃향기 맡는 걸 좋아했다. 큰 평수의 아파트에 살아도 뭔가 개운하게 행복하지 않던 이유는 흙을 밟고 만지지 못해서가 아닐까 싶었다. 그에게는 넓은 방보다 작게라도 정원이 필요했던 것이다.

“엄마 화실에 세잔이며 모네의 작품 도록이 있었는데, 위대한 화가는 다 정원과 가까운 삶을 살았더라고요. 그곳에서 그리고, 위안받고…. 공예과에 다닌 덕분에 대학에서는 저 먼 나라의 예술 작품들을 관심 있게 봤는데, 멋진 작품은 모두 정원에 있었어요. 나무와 나무 사이에 그네처럼 연결한 섬유 미술이나 오브제 설치 작품을 보면서 근사하다고 생각했지요. 지나고 나서 보니 그게 모두 대지예술 관련 책이더라고요. 여러 개의 답이 나올 수 있겠지만, 저는 개인이 누리는 일상적 호사의 끝에 정원이 있다고 봐요. 영국의 찰스 국왕도 지금 정원을 열심히 가꾸잖아요.(웃음) 승마며 아트 컬렉션 다 해보고 마지막에는 정원으로 가는 거죠.
한 도시의 기품과 미감도 공공 정원을 보면 알 수 있어요. 도쿄나 런던, 뉴욕이나 파리 같은 곳에 가면 별별 다양한 방법으로 정원을 만들어놔요. 정원이 좋은 건 매일 매시간이 다르기 때문이에요. 아침에 마주할 때가 다르고, 한낮이나 고요한 밤에 만나는 정원이 또 달라요. 어느 때는 시각적 문화 같지만 또 어느 때는 청각과 후각을 건드리지요. 밤에 이 집에 있으면 풀벌레 소리밖에 안 들려요. 이 집에 오면서부터 음악을 별로 안 듣는 이유가 늘 ‘음악’이 흘러나와서 그래요. 아침에는 또 새소리가 끊이지 않거든요. 정원은 늘 그렇게 여러 개의 감각을 동시에 건드려요. 정원 일만 해도 그렇잖아요. 몸과 마음을 동시에 써야 하지요.”

오늘도 아름다운 정원에서. 정원은 몸과 마음, 일과 휴식이 늘 함께 맞물려 돌아간다는 점에서 대체 불가의 힘을 갖는다.
어느덧 50세에 다다른 그는 이전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정원을 소요하고, 탐구하는 중이다. 영국과 독일로 정원 기행을 다니고, 집에서 하는 가드닝 수업도 틈틈이 더 열심히 한다. 고객이 많아지면서 나름의 노하우와 스타일, 그리고 철학도 더 탄탄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일이 너무 재미있다는 그의 말이 행복한 여운으로 남아 있다. “한국에서 정원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것이 얼마 되지 않았지요. 그만큼 갈 길이 멀어요. 이해가 부족하다 보니 정원을 가꾼다고 하면 그저 평소 심고 싶던 식물이나 월동하는 예쁜 꽃을 심으면 되는 줄 아는 분도 많아요.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어떤 정원을 갖고 싶은지 곰곰 생각해보는 것이 더 중요해요. 먹을 수 있는 과실수와 채소를 키우는 곳이라든지, ‘쉼’에 방점을 찍은 정원이라든지, 강아지와 함께할 수 있는 정원이라든지 종류는 수없이 많지요. 현장을 방문하고 정원주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정말 많은 아이디어가 떠올라 저절로 맞춤형 정원이 되는 게 신기하고 재미있어요. 흥분도 되고요. 이 나이에 익사이팅한 게 얼마나 되겠어요. 일이 제일 재미있어요. 완성된 정원에서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저도 덩달아 기쁘고요. 이렇게 쭉 열심히 하다 보면 80대엔 멋진 정원사 할머니가 되어 있지 않을까요? ‘에지 있는’ 할머니가 되고 싶어요.” (중략)


입체적 집 구조 덕분에 거실과 휴게 공간이 곳곳에 마련돼 있는데, 어디서든 평화 같은 정원을 마음껏 볼 수 있다. 사이드 테이블은 포모나앤코POMONA&CO에서 수입하는 데카스텔리DeCastelli 브랜드 제품이다.

 

서재에도, 복도에도 다양한 화분이 쉼표처럼 자리한다.

* 기사의 전문은 행복이 가득한 집 2024년 7월호 본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글 정성갑(갤러리 클립 대표) 사진 박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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