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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 맞게 재편집한 집
부부의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주방과 안방의 위치를 맞바꿨다. ‘남향 거실, 북향 주방’이라는 관습적 구조를 벗어나 치열한 고민 끝에 다이닝 공간과 주방을 정면에 배치한 행당동 145m2 아파트. 부부는 거실 대신 주방과 식탁 위에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아침을 맞이한다. 생활에 맞게 구조를 바꾸고, 그 과정에서 이곳만의 특별한 우수관 오브제까지 얻었다.

레노베이션 이전에는 거실 베란다였던 곳에 테이블을 두어 다이닝 공간으로 활용한다.테이블을 중심으로 양쪽에 주방과 남편의 작업실이 일직선으로 이어진다.
등받이가 평평하지 않고 유선형인 소파를 선택했다. 벽에 기대어놓는 배치가 아니라 거실 공간에 독립적으로 영역을 확보할 수 있어 효과적이다.
거실을 중심으로 주방, 침실, 작업실, 아이 방을 구성한 행당동 145㎡ 아파트. 언뜻 보기에는 구조상 2000년대에 지은 구축 아파트와 큰 차이점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집 안에 들어서면 조금 특별한 차이점이 드러난다. 베란다가 있어야 할 자리에 다이닝 식탁이 놓여 있고, 안방이 있어야 할 자리에 주방이 배치되어 있다. 안방과 주방을 맞바꾸어 집의 정면에 다이닝 공간을 배치한 것. 이 집은 가족의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공간을 재편집한 것이 특징이다. 이 덕분에 유진영·최주현 부부는 아침 햇살을 받으며 식사 준비를 하고, 아이와 함께 햇살 가득한 다이닝 공간에서 오전의 여유를 즐긴다.

주방에서 바라본 안방. 안방과 주방을 잇는 공간에 작은 화장실 겸 파우더룸이 있다.
다이닝 공간에서 바라본 주방. 앞쪽에 오브제처럼 보이는 기둥이 바로 이 집만의 특별한 오브제, 우수관이다.
‘수면’에 집중할 수 있도록 연출한 안방. 단을 높이면서 탄생한 알파 공간과 침대를 오르내리는 반려견을 위해 설치한 계단이 포인트.
“카페 인테리어를 할 때는 자연광과 조명등이 분위기를 좌우하잖아요. 음식 맛이 조금 아쉬워도 분위기가 마음에 쏙 든다면 그쯤이야 그냥 넘어갈 수 있죠. 집 안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낮에 주로 활동하는 공간은 정면에, 야간에 활동하는 공간은 북향에 배치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레노베이션을 맡은 풍화지 건축사사무소 안종훈 소장은 구축 아파트 유형이 지닌 특이점을 보완해 공간을 재배치했다. ‘남향 거실, 북향 주방’이라는 관습을 깨고 요즘 생활에 맞게 고민해 적용한 것. 침실은 오히려 빛을 절제하는 게 장점이 될 수 있으니 북쪽에 배치했다. 대신 손님을 맞이하고 가족이 모여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주방을 남쪽에 두었다. “공간 배치는 용도부터 향, 채광, 경관, 주변 공간과의 연계성까지 수많은 조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합니다. 이 집에서는 작업실-거실-주방으로 이어지는 동선에 주목했어요. 이 동선을 중심으로 방을 병렬로 배치했죠. 바로크 시대 건축의 앙필라드enfilade 형식을 염두에 두었는데, 이렇게 하면 문 프레임이 연속적으로 나타나 공간에 깊이감을 줄 수 있습니다.”

안방과 주방 간의 배치 전환 외에도 이 집에는 방문하는 사람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이 있다. 화이트 톤의 주방 입구 쪽에 오브제처럼 놓인 우수관이다. 지금은 이 집을 특별하게 만드는 효과적인 인테리어 요소지만, 레노베이션을 계획할 당시만 해도 동선에 걸림돌이 되는 우수관 때문에 배치 전환 자체가 전면 무산될 뻔했다. 하지만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던가? 안 소장은 고재와 금속의 조합으로 멋진 오브제를 완성했다. “저는 모양에서 영감을 받기보다 태도에서 영감을 받는 편이에요. 애써 숨기거나 감추기보다는 오히려 담백하게 디자인해서 솔직하게 드러내는, 긍정적 태도를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화이트 톤의 주방 인테리어에 완성도를 높인 또 다른 포인트는 안 소장이 신경 써 제작한 후드다. 화이트 컬러의 후드는 금속으로 몸통을 만든 뒤 분체도장했다. 불에 구워 열에 강하고 내구성이 좋아 실제로 사용하는 데에도 편리하다. 남편이 주로 요리를 하는 부부의 일상도 주방에 잘 녹여냈다. 키가 큰 남편의 요청에 따라 주방 상판 높이를 5cm 높인 것. “처음부터 클라이언트의 요청 사항이 디테일했어요. 싱크대 높이가 평균보다 높으면 좋겠다, 서재와 안방을 분리하면 좋겠다, 강아지와 아이를 위해 바닥의 소재감을 신경 써달라 등등 생활에 아주 밀접한 것이었죠. 반면 공간의 구성이나 분위기 전반은 제가 자유롭게 제안할 수 있었어요.”


주방 입구에서 바라본 다이닝 공간. 유진영·최주현 부부와 아이가 오전의 햇살을 즐기는 장소다.
현관 중문 왼쪽 벽면에는 의류 관리 제품을 설치했다. 대개 창고로 활용하는 자투리 공간이지만, 외출하고 집에 돌아온 뒤 바로 외투를 걸어두는 부부의 생활 습관에 맞게 가전제품을 배치한 것.
클라이언트의 요청에 따라 가구나 마루, 도장 페인트 등의 소재는 최대한 친환경 재료를 선택했다. 도장한 부분은 KCC의 친환경 페인트를 사용했고, 붙박이장 등의 가구를 제작할 때도 친환경 등급의 보드를 사용했다. 대리석처럼 보이는 바닥재는 이건마루의 강마루인 세라 플렉스다. 대리석이나 타일처럼 시원한 느낌이 들면서 아이와 강아지의 안전을 생각하는 클라이언트의 마음을 반영한 결과다.

“구조변경이 쉽지 않은 아파트를 레노베이션할 때는 용도를 재편집하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클라이언트의 요구 사항에 따라 거실에서 하길 원하는 활동 중 서재로 편입하면 더 좋은 것은 재배치하죠. 반대로 다이닝 공간이나 주방에서 하면 좋은 것을 다시 조정하면서 각 공간을 배치합니다. 일례로, 이 집에는 현관문 바로 앞에 의류 관리 제품을 설치했어요. 대부분은 청소기나 잡동사니를 보관하는 자투리 공간이죠. 하지만 생활의 특성과 연계성을 고려해 각각의 배치가 온전할 수 있도록 치열하게 재편집했습니다.” 이처럼 단순히 분위기를 개선하는 것 이상의 레노베이션 덕분에 부부는 자신들에게 꼭 맞는 일상을 이어나간다. 매일 그들의 일상을 편집하면서. 




안종훈 소장은 홍익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에서 건축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풍화지 건축사사무소(www.p-ao.kr)를 설립하고 상공간과 주거 공간을 포함해 다양한 범위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관습적인 공간 구조를 답습하지 않기 위해 고민하며, 은은하게 삶에 스며드는 공간을 구성하고자 노력한다.

글 손지연 | 사진 이우경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4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