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해주세요.
본문 바로가기
나탈리 레테 Nathalie Lété 새 둥지로 날아든 아티스트
올빼미가 밤낮으로 지키고 있는 커다란 나무 둥지에 숲속 요정들이 만들어놓은 듯한 포근한 침대가 놓여 있다. 마치 동화 속 한 장면 같은 이곳은 프랑스 아티스트 나탈리 레테가 살고 있는 파리 아파트다.

누가 파리 중심부에 위치한 아파트에서 이런 풍경을 상상했을까? 건축가 니콜라 앙드레와 함께 개조한 실내는 어린 시절 할머니 집 뒤편 숲속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새 둥지를 연상시키는 침대, 나무줄기를 섬세하게 표현한 나무 조각, 플라워 패턴 테이블과 의자는 모두 직접 디자인해 아티스트와 메이커의 도움을 받아 제작했다. 침대 머리맡의 새와 나무 자수 패브릭은 포파리스와 협업한 제품이다.
“제 작업 과정은 새가 둥지를 짓는 일과 비슷해요. 새가 숲속 곳곳에서 나뭇가지나 짚을 모으듯 저만의 서사를 만들기 위해 세계 각국의 동화·만화·빈티지 장난감 등에서 소재를 찾고 다양한 재료, 기술, 방식을 뒤섞어 작품을 완성하죠. 그래서 제 작업은 일러스트레이션과 공예 사이에 있다고 볼 수 있어요. 아티스트로서 저를 드러내는 공간을 파리에 만들고자 했을 때 이런 과정을 직설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인테리어를 떠올렸죠.”


한쪽 벽은 새와 잎사귀를 테마로 한 일러스트 타일로 장식했다. 선반 위에 놓인 빨간 두건을 쓴 소녀상과 닭고기·스테이크 모양 조각품은 모두 아스티에 드 빌라트, 고양이 얼굴 꽃병은 쿤 케라미크Kuhn Keramik 제품.

바자르테라피와 협업한 플라워 패턴 스툴.
구찌, 이세이 미야케 등 패션 브랜드 등은 물론 앤트로폴로지Anthropologie, 아스티에 드 빌라트Astier de Villatte 등 리빙 브랜드와 협업하며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아티스트 나탈리 레테. 그는 파리 2구에서 혼자 머물기에 적당한 아파트를 찾자마자 잘 알고 있던 건축가 니콜라 앙드레Nicola André에게 직접 그린 도면을 건넸다. 방학마다 찾던 독일 할머니의 집 뒤편에 자리한 요람 같은 평화가 깃든 숲. 요정이 살고 있을 것 같은 나무 둥지 침대와 나이테가 드러나는 나무 선반이 함께하는 방이었다. 이를 위해 캐비닛 메이커 앙토니 카드류Antonis Cardew와 매슈 임페이Matthew Impey를 찾았고, 친구이자 조각가 클레망 포마Clément Poma에게 나무 그루터기 조각품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그는 숲에 사는 동식물을 모티프로 한 일러스트레이션 타일을 제작하고 패브릭에 각종 꽃을 수놓기 시작했다.


식물 그림을 그린 행어와 우산, 가방은 모두 도메스틱 Domestic 제품.

욕실 벽은 오스트레일리아 벽지 브랜드 지미 크리켓 월페이퍼Jimmy Cricket Wallpaper와 협업한 아트 벽지와 직접 만든 세라믹 조명, 장식 거울 등으로 꾸몄다. 문턱 너머 샤워실이 위치한다.

동화 속 자화상
아크릴물감으로 쓱쓱 빠르게 그려낸 듯한 그의 작품에는 늘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 속 화자는 항상 자기 자신이다. 그래서 그림에는 인물 대신 자신과 교감하던 오브제가 등장한다. 서로를 품어가며 살아가는 동물과 계절에 따라 꽃을 피우고 열매 맺는 식물은 우리 마음을 다독여주고, 빈티지 장난감·만화책·명작 동화에 등장하는 캐릭터와 사물은 우리를 동심의 세계로 데려간다. 하지만 실제로 그의 어린 시절은 아름답지만은 않았다고 그는 말한다. 독일인 어머니와 중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외동딸로 태어나 프랑스에서 성장한 그는 친구들과 교류하는 것을 힘들어했고, 대부분 혼자 외로운 시간을 보냈다. 방학이면 부모님과 떨어져 독일 할머니 집에서 지냈다. 그는 할머니 집 뒤편 숲에서 하늘을 가로지르는 새를 보며 자신도 한 마리 새가 되어 몸과 마음에 날개를 달고 싶다고 상상했다. “어떤 평론가가 저의 작품에는 환상과 현실, 슬픔과 희망, 선과 악이 공존한다고 했는데, 가슴에 와닿았어요. 저는 외로움을 잊기 위해 그림을 그렸고, 마음이 공허해질수록 제 스스로 만든 환상의 세계에 기댄 것 같아요. 모든 장면은 그래서 말썽 많고 고통스럽던 삶의 기억과도 맞물려 있죠.”


독일 할머니 집의 창가 벤치에서 착안해 코너장을 이용한 벤치를 만들었다. 의자는 모두 업홀스터리한 것으로 프랑스 브랜드 테브농과 협업한 패브릭 시리즈를 활용했다.
동식물에게 배운 절대적 공감
40m2 크기의 작은 원룸인 이 아파트는 파리 중심지 제2구에 위치한다. 이곳은 가족과 함께 사는 집과는 별도로, 엄마와 아내라는 이름 대신 온전한 아티스트로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장소다. 그는 파리로 훌쩍 날아와 올빼미처럼 밤낮없이 작업 하고, 현실에서 도피할 수 있는 피난처에서 마음껏 창작에 몰두한다. “고양이나 강아지 그림을 그려달라는 사람들의 요청 때문에 그런 그림이 많이 알려졌지만, 사실 가장 많이 등장하는 동물은 새일 겁니다. 그들의 몸짓, 표정, 행동을 보고 있으면 마치 마법에 홀린 것 같죠. 항상 구름 사이를 유연하게 날아다니며 세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새와 함께하고 싶었어요.”


프랑스 파리 뒤페레 응용미술학교에서 패션 디자인을, 에콜 데 보자르에서는 판화를 전공했다. 초창기 몇 년간 ‘마티아스와 나탈리’라는 그룹으로 조각 설치 작업을 한 후 홀로서기를 시도하며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을 시작했다. 현재는 이미지를 중심으로 그림, 세라믹, 설치 작업을 넘나들고 있다. 각종 브랜드와 협업하면서 유명해졌으며, 일러스트레이터로 한국에서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그는 클레망 포마가 만든 나뭇가지 위에 두 팔을 펼치고 있는 올빼미 도자기 오브제를 올려두었다. 집을 보호하는 수호신이자 세상을 등지고 작업에 몰두하는 자신을 투영하기 위함이다. 벽, 커튼, 쿠션에도 다양한 컬러의 새들이 날아다닌다. “집에는 항상 동물이 있었어요. 지금도 가족과 함께 사는 이브리쉬르센Ivry-sur-Seine 시골집에는 반려견 닥스훈트 스파이크와 길고양이 세 마리가 있죠. 제가 동물과 가까이 지내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절대적 공감력입니다. 사람은 약자에게만 공감을 허락하지만, 동물은 약자뿐만 아니라 강자와도 공감하고 협력하면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내죠. 곤충과 식물도 서로를 도와서 한계를 뛰어넘습니다. 그들로부터 스스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경쟁보다 협동을, 논리적 이해보다 정서적 공감을 키워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있어요.”

* 전문은 행복이 가득한 집 5월호 본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참고 www.nathalie-lete.com

글 계안나 | 사진 Lionel Moreau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4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