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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위네 가족의 첫 집 연대기
지은 지 90년이 훌쩍 넘은 북촌 한옥을 구입한 아내 박 아녜스 씨와 남편 정 라파엘 씨. 부부는 그들의 성향대로 새로 짓기보다 고치기를 택해 잃어버린 집의 본모습을 복원하고 부부의 생활을 녹여냈다. 그리고 서향 빛이 아름다운 이곳에 연하당이라는 당호를 붙였다.

서향으로 통창을 낸 다이닝 공간에 모인 아내 박 아녜스 씨와 남편 정 라파엘 씨, 그리고 고양이 빠위. 이곳을 통해 내려다보이는 인왕산과 동네 풍경은 연하당의 백미다.

빠위를 위한 배려가 곳곳에 보이는 안방. 왼쪽 창가에는 빠위가 바깥 풍경을 바라볼 수 있게 베이 윈도를 만들고, 벽면은 삼베로 마감한 뒤 페인트를 도장해 한국적 분위기를 내면서도 빠위의 발톱이 걸리지 않도록 했다. 한옥 반자 천장을 벽지로 마감한 것도 동서양이 뒤섞인 이집만의 포인트다.
클래식 음악을 감상하는 취미를 계기로 만나 지금은 14년 차 부부인 박 아녜스 씨와 정 라파엘 씨. 두 사람이 살던 빌라에서 먹이를 주다 가족이 된 고양이 빠위. 이렇게 세 식구는 지난해 가을, 북촌 한옥으로 이사했다. 2021년 5월 집을 계약하고 2023년 10월 완공하기까지 장장 3년에 걸쳐 진행한 연하당 프로젝트는 가족에게 맞는 삶을 찾는 여정이자 집을 쫓는 모험이었다. “그동안 원룸부터 단독주택, 아파트까지 다양한 유형의 집에 살았어요. 모두 저희 소유가 아니다 보니 갑작스럽게 변화를 감수해야 하는 일이 많았어요.” 여름에는 그늘이 되어주고 겨울에는 눈이 쌓여 그림 같은 풍경을 선사하던 아파트 단지의 벚나무가 어느 날 순식간에 잘리거나 주인이 이사 오는 바람에 쫓겨나는 등 여러 번의 아픔을 겪으며 부부는 온전히 그들만을 위한 집을 찾아 나서게 됐다.

두 사람은 서울에서 오래된 것을 보존하는 데 공감대가 있는 동네, 자연을 가까이 두고 땅과 애착 관계를 형성하며 살 수 있는 집을 찾았다. 그 답이 북촌과 한옥이 된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수순. “사실 저는 아파트에서 누릴 수 있는 안전과 프라이버시를 선호했고, 한옥이나 단독주택에서 살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그러다 춘천의 어느 한옥에서 휴가를 보내게 됐는데, 안팎의 경계가 흐릿하고 집 안에 있어도 자연과 맞닿아 있는 기분이 좋더라고요. 그때 처음으로 한옥에서 사는 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졌고, 정성갑 작가의 <집을 쫓는 모험>, 혜화1117 이현화 대표가 쓴 한옥 수선기 <나의 집이 되어가는 중입니다>를 읽으면서 ‘나도 살 수 있겠는데?’ 하고 생각했어요.” 박 아녜스 씨는 책을 보며 용기만 얻은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맞는 건축가도 발견했다. 바로 <나의 집이 되어가는 중입니다>에서 한옥 설계를 맡은 엄현정 소장이다. 그는 일본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돌아와 한국에서 일했고, 2017년 선한공간연구소라는 이름의 사무실을 열고 독립한 후에는 한옥에 집중해왔다.


기존 대들보를 복원한 대청 공간. 정 라파엘 씨의 취향이 담긴 모자이크 패턴 마루는 테카의 원목 마루 제품. 정면에 보이는 벽 아래쪽에 고양이 빠위의 화장실이 있다.
박 아녜스 씨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으로 꼽은 욕실. 욕조에서 목욕을 하며 마당과 하늘을 내다볼 수 있다.


집은 본래의 원형을 살려 대문을 열고 들어오면 왼쪽에 별채가, 오른쪽에 본채가 있고 쪽마루로 서로 이어지는 튼 ㅁ자형으로 배치했다. 관광객이 많은 지역인 만큼 도로 가까이에는 욕실과 드레스룸을 완충 공간으로 두고, 안쪽에는 다이닝룸 및 대청 등 중요한 공간을 배치한 다음 서쪽의 인왕산을 향해 커다랗게 통창을 냈다. 빠위를 위한 배려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 막히거나 꺾인 곳 없이 뚫린 동선은 고양이가 길게 내달리도록 하기 위함이고, 드레스룸에 딸린 빠위의 화장실은 고양이도 사람도 불편하지 않은 크기와 방식을 고민한 결과다. 바닥은 빠위가 발톱을 내밀고 걷더라도 자연스레 표면이 긁혀 발에 부담이 적은 원목 마루를 택했다. 엄현정 소장은 여기에 벽지를 활용해 서양 스타일을 한 스푼 섞었다. 특히 안방 천장은 서양과 동양이 어우러진 독특한 모습.


튼 ㅁ자형 배치를 복원하며 탄생한 별채는 부부가 살아본 후 특히 좋다고 꼽는 공간 중 하나다. 손님이 올 때면 작지만 근사한 한옥 객실이 된다.
연하당 외관. 시공은 젤코바코리아(02-742-9272)가 담당했다.


정 라파엘 씨의 어머니가 지어준 이름 ‘연하당煙霞堂’은 안개와 노을이 있는 집이라는 뜻으로, 계절마다 달라지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사자성어인 연하일휘에서 따왔다. “어머니가 굉장히 어렵던 시기에도 노을은 엄청 아름답더라는 거예요. 하루를 잘 버틴 것에 대한 칭찬, 내일도 잘 해보라는 응원 같기도 하고요. 이 집이 노을이 좋기도 하고, 저희도 이곳에서 힘과 응원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서 지어주셨어요.” 부부에게 연하당은 반려묘 빠위처럼 또 하나의 가족과도 같다. 무생물도, 생물도 이곳에서는 어엿한 가족의 일원이 되어 오롯이 관계를 맺는다. 

 

 ― 기사 전문은 <행복> 5월 호를 통해 만나볼 수 있습니다.


엄현정 소장은 일본 무사시노 미술대학 건축과를 졸업하고 2007년부터 2017년까지 간삼건축에서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한국 파트너로 재능문화센터(JCC 아트센터), 마곡 LG 아트센터 등의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일본에서 건축을 공부하며 생긴 한국의 전통 건축과 주거 문화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선한공간연구소(seon-space.com) 를 설립해 다양한 작업을 하고 있으며, 한국전통문화대학교학과 전통건축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설계 엄현정(선한공간연구소) * 기사 제목은 박찬용 작가의 책 <첫 집 연대기>에서 차용했다.

글 정경화 기자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4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