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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디자이너 김하람 잘 모으고 잘 만드는 디자이너
집에서 다양한 취미를 즐기는데도 흐트러짐 없이 정돈된 김하람 씨의 공간.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것만으로도 “부럽다” 외칠 텐데, 누구보다 부지런하게 자신의 삶까지 가꿔나가니 부러움이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직접 만든 백참나무 테이블이 서재의 중심을 잡아준다. 알록달록한 오브제가 많아 무게감을 주기 위해 조명은 모두 블랙으로 통일했다.
직접 제작한 책장은 높이 조절이 가능하다. 7백 개 이상의 구멍을 뚫느라 귀에서 드릴 소리가 들리는 환청을 겪을 뻔했다고. 서랍을 열면 조명이 자동으로 켜지도록 제작했다.
“자기 전엔 절대 침대에 눕지 않아요. 제가 좋아하는 게 좀 많거든요. 그런 열정은 제 부지런한 성향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인터뷰를 하고 나면 그날 머릿속에 맴도는 문장이 하나쯤은 있는데, 김하람 씨에겐 이 문장이었다. 어쩌면 기자와 정반대 성향인 듯 보이는 그가 존경스러우면서도 별나 보였기 때문. 기상 시간은 오전 6시, 특별한 일상 루틴은 먼지 청소라는 말과 함께 멀티탭 하나 눈에 띄지 않는 깔끔한 이 집을 보며 짐작하긴 했으나, 그는 보기 드물게 규칙적이고 부지런한 디자이너다. 김하람 씨는 현재 디자인 전문지 <월간 디자인>에서 편집 디자이너로 근무 중이다. 대학 졸업 후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소규모 브랜딩 작업을 하다, 규칙적 생활에 갈증을 느껴 회사 소속 디자이너로 삶을 선택했다.

“처음엔 공예과에 입학했다가, 이후 시각디자인으로 전과를 했습니다. 교수님들이 농담으로 하시는 말씀 중 ‘공예는 엉덩이 무거운 사람이 이기는 것’이라는 게 있어요. 그런데 저희 집을 보면 아시겠지만, 전 한 가지에 집중하기보다 이것저것 관심을 갖는 분야가 많거든요. 대개 공예과 학생들은 작가로 생활하는데, 제 인생에서 도예 작가로 사는 삶이 그려지지 않더라고요. 편집 디자이너로 일하게 된 것은 학생 때 <어메이징 매거진>이라는 독립 잡지를 만든 게 영향이 컸어요. 아트 디렉터로 일하면서 편집 디자인에 대한 애정을 키워왔죠.”


커피를 워낙 좋아해서 한 달 원두 소비량이 약 1kg은 될 것이라는 김하람 씨.
가장 최근에 만든 침실의 타원형 테이블.
김하람 씨 특유의 성실함은 그의 공간에서도 뚝뚝 묻어난다. 원래는 서재에 침대가 있었지만 생활 루틴을 바로 세우기 위해 공간을 분리했다. 침실은 수면만을 위한 곳, 서재는 작업을 위한 곳, 거실은 소파에 앉아 음악을 듣는 곳으로 말이다. 서재 테이블은 중앙에 배치해 창을 등지고 앉을 수 있도록 했는데, 이는 작업 집중도를 높이기 위한 김하람 씨의 세심한 의도가 담긴 것.

촬영 이후 김하람 씨의 집 사진을 면밀하게 살펴본 <행복> 편집 디자이너들은 귀여운 질투심을 드러냈다. 이유는 그들의 동료가 너무 ‘잘’ 산다는 것. 그의 집은 수집욕을 자극하는 독특한 아이템으로 단정히 꾸며졌다. 물건을 모으는 것에 아낌없이 투자한다는 김하람 씨는 중고등학생 때부터 책꽂이에 만화책 1천 권이 꽂혀 있을 정도에, 대학교 졸업 작품까지 아카이브를 주제로 할 만큼 수집광이다. 독립 이후엔 집 꾸미기에 관심을 틔웠고, “인테리어는 집에 필요 없는 걸 들일 때부터 시작”이라는 글을 읽곤 인테리어 오브제를 모으기 시작했다.


위스키장도 직접 만들었다. 친구가 운영하는 을지로 바 ‘에이스포 클럽’에서 위스키를 배웠다. 평소 미국 문화를 동경했기에 자연스레 버번 위스키에 빠져들었다고.
너도밤나무로 만든 서랍에 곳곳의 문구점에서 산 필기구를 모아뒀다.
“디자이너 도널드 저드, 엘스위스 켈리, 브리짓 라일리를 좋아해요. 기하학적이면서도 단순한 조형성을 추구하는 작가들인데, 이들의 미적 감각이 느껴지는 아이템을 주로 구매하는 편이에요. 또 다른 기준이 있다면 남들과 비슷한데 조금 다른 것을 모아요. 그래서 빈티지를 좋아하기도 하고요. 바우하우스 때 만든 칼 트라버트의 데스크 램프는 제가 아끼는 조명 중 하나입니다. 이베이에서 낡은 걸 낙찰받아서 직접 도색하고 스위치와 전선도 갈아 복원했어요.”

눈이 휘둥그레지는 물건이 가득한 이 집에서도 가장 눈길이 가는 건 김하람 씨가 직접 만든 가구다. “좋아하는 것이 좀 많다”는 그의 말답게 가구 만들기는 많은 취미 중 일부. 오토데스크 CEO직 은퇴 후 목수로 사는 칼 배스Carl Bass는 누구나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며 사는 메이커스 마인드가 필요하다며 공예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이 이야기가 김하람 씨에겐 꽤 인상 깊게 다가왔단다. 무언가 손으로 만드는 행위를 계속 이어가야겠다고 다짐했을 때 그의 마음에 들어온 건 목가구였다.


식탁에 둘 조명을 고민하다 구입한 아르텍의 A110 핸드 그레네이드. 빛이 흩어지지 않고 집중되어 음식을 더욱 돋보이게 해준다.
2002년 열린 제1회 타이포 잔치(서울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의 도록. 2000년대 초반 국제 타이포그래피와 그래픽디자인을 엿볼 수 있는 책으로, 중고 서점에서 어렵게 구매했다.
약 3년 만에 리뉴얼한 <월간 디자인> 2024년 1월호 Vol.547. 제호는 일상의 실천에서, 내지 디자인은 편집부에서 맡아 매우 애착이 가는 책이다. 처음 참여해본 리뉴얼 디자인 작업이라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자신을 한 단계 더 성장시켜준 고마운 책.
나무의 따뜻한 느낌과 질감을 좋아한다는 김하람 씨는 비록 재단과 집성을 직접 하지 않지만, 스케치와 조립 및 마감 과정을 거치며 어디에도 없는 나만의 가구를 만들고 있다. 가구에서도 물론 그의 세심함을 엿볼 수 있었다. 제작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정확한 치수. 자신이 소장한 책의 크기를 고려하지 않고 일반 규격에 맞춰 수납장을 짰다가 책이 장 밖으로 삐죽 튀어나온 모습을 보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밤에 잠을 못 잤다고.

가구를 만드는 일 이외에도 김하람 씨는 취미가 넘쳐나고, 그 취미는 긴 설명이 필요 없이 공간에서 드러난다. 직접 만든 위스키장에 가지런히 진열한 버번위스키, 에스프레소 머신과 모카 포트 등 하루 다섯 잔의 커피를 마시는 자신을 위한 커피용품 여럿, 시력은 2.0이지만 좋아서 수집하는 안경, 브라운 PS500 턴테이블에서 흘러나오는 바이닐 음악…. 비교적 유유자적한 삶을 추구하는 기자는 ‘갓생(남에게 모범적이고 생산적인 삶)’ 열풍을 보며 이따금씩 숨이 막힐 때가 있었는데, 이날은 문득 김하람 씨와 같은 갓생이라면 한번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계발을 위한 억지 노력에 목매는 것이 아닌, 좋아하는 것을 온전히 즐기며 부지런히 실행하는 삶! 동시에 김하람 씨가 누군가에게 살아보고 싶은 영감을 주는 사람이라는 사실에 부러움이 샘솟았다. 누군가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삶만큼 멋진 인생이 있을까.



1 카우보이모자의 대명사로 일컫는 스텟슨의 이글 랜치 해트. 친구에게 포스터 디자인을 해주고 비용 대신 선물로 받았다.

2 밀워키의 M12 충전 해머드릴 드라이버. 가구 조립 및 기타 드릴이 필요한 모든 곳에 유용하게 사용 중이다.

3 친구가 생일에 선물해준 아르텍의 로켓 바 스툴.

4 푸펠 캐나디안 마운티 돌Fufel Canadian Mountie Doll. 순록 털로 만들었다는 말에 도쿄 빈티지 숍에서 홀린 듯 구입했다.

5 미국 3대 경마 대회 중 하나인 켄터키 더비를 기념해 제작한 한정판 우드포드 리저브. 멋진 일러스트에 반해 구입했다.

6 너도밤나무로 만든 서랍에 곳곳의 문구점에서 산 필기구를 모아뒀다.

7 하워드 밀러의 탁상시계.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 구매했지만 시간을 보기 어려워 잘못 일어난 적도 있단다.

8 404 인아웃 포켓 테이프 줄자. 여러모로 가구를 제작할 때 용이하다.


'김하람'님의 1집구석 보러가기 1hows.com

글 오송현 기자 | 사진 이창화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4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