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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파토&쿰버스Giopato&Coombes 스튜디오 조명으로 창조하는 초자연적인 백일몽
조파토&쿰버스는 빛을 물질과 비물질을 결합하는 매개체로 활용해 상호작용하는 공간을 재정의하는 조명 작업을 선보이는 디자인 듀오다. 이들은 디자인적 접근과 솔루션뿐 아니라 아트 리서치를 작업에 접목하는 동시에, 베네치아 인근 트레비소Treviso를 거점으로 삼고 베네치아 무라노 유리 공예가들과 협업해 독보적이며 예술적인 컬렉터블 디자인 조명을 만든다.

1751년 이탈리아 트레비소에 지은 오래된 빌라를 개조한 조파토&쿰버스 스튜디오 내부. 당시의 아름다운 테라초 바닥이 그대로 남아 있는 가운데 이들의 조명 작품이 어우러진다. 안쪽 샹들리에는 ‘젬 샹들리에 브랜치 14Gem Chandelier Branch 14’, 바닥에서 천장까지 세로로 설치한 조명은 ‘밀키 웨이’, 벽 램프는 ‘조이엘리 03’이다.
“톡톡 떨어지는 빗소리가 들리는 여름 오후, 먹구름이 서로를 쫓아다닌다. 갑자기 비가 그치고 묘한 분위기가 눈에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색과 빛이 만들어낸 팔레트, 그 마법같은 순간은 흔히 볼 수 없는 광경이었고, 우리 마음을 뒤흔들었다.” 마치 시처럼 쓴 이 문장은 조파토&쿰버스 듀오의 조명 작품 ‘밀키 웨이Milky Way’에 대한 설명이다. 기억과 추억으로 남겨지는 일상의 순간. 이들은 이러한 순간을 다양한 감각의 축제로 승화시키고 싶었고, 이를 가장 잘 담는 매체는 조명이라고 믿는다. 빛을 통해 공간은 인간과 상호작용하며 재정의되기 때문이다.


조파토&쿰버스 듀오는 나무가 어우러진 한적한 정원 속에 자리한 빌라를 우연히 발견하고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거점으로 삼기로 했다.
크리스티나 조파토와 크리스토퍼 쿰버스 듀오. 이들 옆의 샹들리에 조명은 ‘듀드롭스 샹들리에 리니어 05Dewdrops Chandelier Linear 05’, 벽 램프는 ‘소피오 월 버티컬 18Soffio Wall Vertical 18’이다. 사진 Mattia Balsamini
조파토와 쿰버스는 이를 ‘초자연적인 백일몽(Supernatural Daydream)’이라고 부른다. 일상에서 시작해 현실과 꿈의 경계를 넘어서는 경험이라는 뜻이다. “우리 마음속에서 상상력은 여러 방향을 따라 혼란스러운 생각의 차원을 헤쳐나갑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잠시 시간을 멈추고 영감의 한 조각을 붙잡을 수 있습니다. 밀키 웨이는 이 일시적인 균형에 영감을 받아 만든 조명이에요.” 어두운 우주 속에서 마치 은하수 한 줄기의 빛이 곧게 드리우고, 그 주위에 아름다운 행성이 빛나는 듯한 꿈결 같은 디자인적 영감을 더욱 견고하게 완성시키는 건 베네치아의 장인들이다. 밀키 웨이에는 베네치아 무라노 장인들이 입으로 불어 만든 유리와 손으로 직접 만든 황동을 사용했다.


둥근 벽 구조와 조명이 은은하게 어우러지는 내부 풍경. 벽에 설치한 ‘서크Cirque’ 조명은 곡예사의 기구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했다. 브러싱 처리한 황동과 마치 실처럼 가느다란 선을 지닌 유리 캡슐이 볼륨과 디테일, 우아함의 균형을 유지한다.
이탈리아 건축가와 영국 디자이너의 만남
조파토&쿰버스는 베네치아와 도심을 관통하는 강 두 개 사이의 비옥한 평야지대에 위치한 트레비소에 스튜디오를 설립하고, 베네치아 장인들과 긴밀히 소통하며 예술적인 조명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들의 스튜디오 이름은 부부인 각자의 성에서 따왔다. 이탈리아 트레비소 출신인 크리스티나 조파토Cristina Giopato는 2002년 밀라노 폴리테크니코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후 2012년 베네치아에서 건축학 학위를 받았다. 하스이케 마키오Makio Hasuike의 사무실에서 인턴십을 한 후 2002년부터 파트리시아 우르키올라 스튜디오에서 일했다. 영국 출신인 크리스토퍼 쿰버스Christopher Coombes는 2001년 런던 브루넬 대학교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후 밀라노로 이주, 조지 소든George Sowden과 서배스천 버그너Sebastian Bergner와 일하며 산업디자인 분야에서 경험을 쌓았다.

천장을 받치고 있는 나무와 테라초 바닥이 이곳이 유서 깊은 곳이었음을 나타낸다. 입구에 배치한 조명은 비눗방울에서 영감을 받아 무라노 유리 장인과 함께 만든 ‘볼레 샹들리에Bolle Chandelier’.

 

이들은 크리스티나가 교환학생으로 런던에서 공부할 때 만났고 2005년 조파토&쿰버스 스튜디오를 설립했다. “우리는 항상 함께 일하지 않겠다고 말해왔어요. 하하. 저는 엔지니어링 배경이 더 많고 아내는 디자인과 인테리어디자인 배경이 더 강했죠. 그래서 우리는 늘 상호보완적이기도 해요. 서로에게 항상 조언을 구했고, 함께 작업한 디자인 작품이 더 결과가 좋았기 때문에 같이 일하기로 결심했어요. 그리고 저는 아내의 고향에 이주하기로 했습니다.” 이제는 완벽한 이탈리아어를 구사하게 된 크리스토퍼가 말했다.

재료에 대한 실험과 프로토타입을 제작하는 작업 공간.

이들은 지난해 12월 오래된 빌라를 개조한 곳으로 스튜디오를 이전한 참이었다. 이 빌라는 5년 전 부부가 우연히 베네치아 출신 노인과 대화하면서 그가 어린 시절 베네치아의 더위를 피해 보내던 빌라에 대해 알게 되었고, 구입을 했다고 한다. 빌라는 숨은 보석이었다. 이들은 내부 안뜰을 감싸고 있는 따뜻한 색조의 건물이 품고 있는 수백 년 된 나무들이 있는 정원, 나무로 된 문이 있는 고대 마구간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잊혀진 무역품과 예술품을 발견했다.

빌라를 구입한 즉시 재건과 개조를 동시에 진행한 이들은 조명과 마찬가지로 감정적 공간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일상에서 태어나 현실을 뛰어넘는, 친숙한 동시에 과거와 연결된 어떤 것의 감각을 끌어내는 공존, 바로 조파토&쿰버스의 철학대로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철학은 마침내 빌라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1751년에 지은 이탈리아 빌라가 21세기 조명과 조응하는 아름답고 새로운 조파토&쿰버스 스튜디오로 재탄생했다.


빌라의 두 번째 거실. 채도가 낮은 색채들이 기품과 분위기를 더하는 가운데 베네치아 석호와 하늘의 색상을 담은 유리공예로 완성한 ‘플라우티 3F’ 펜던트 샹들리에가 빛을 발한다. 벽 램프는 ‘조이엘리 01 월’.
공예와 디자인 그리고 공학의 균형
빌라 안에는 베네치아의 석호들이 품고 있는 색상이 어우러져 있다. 고대 베네치아 테라초 바닥과 근처 칸실리오Cansiglio 숲에서 가져온 19세기 나무 기둥이 천장까지 이어진다. 역사적 가치와 구조적 기능성뿐만 아니라 시간의 흐름과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구조는 여전히 강력한 요소로 유지되고 있다. 이제 이 빌라는 변화와 새로움을 상징하기도 한다. 조파토&쿰버스의 아이디어를 창조적으로 전달하는 허브, 경이로움이 흐르는 디자인 상호작용의 공간이 됐기 때문이다. 이들은 고대 마구간을 수작업과 연구 및 실험이 펼쳐지는 프로토타이핑 전용 작업장으로 만들었다.

베네치아는 유리와 황동을 만드는 고귀한 공예 유산을 보유한 도시다. 이들이 트레비소를 거점으로 삼은 것도 자신들의 디자인을 구현하기 위해 전통적 재료를 잘 활용해야 한다는 점을 깊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언제나 베네치아의 장인들과 함께 재료를 탐구하고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기 위해 긴밀히 소통한다. 밀키 웨이의 큰 특징 중 하나인 검은 반점 유리는 무라노에서 ‘스트라차텔라’라고 부르는데, 이는 초콜릿 조각이 들어 있는 아이스크림을 뜻한다고 한다. 이 외에도 비눗방울의 가벼움을 표현한 ‘볼레Bolle’, 베네치아의 다채로운 빛깔을 담은 ‘플라우티Flauti’ 등이 장인과 협업해 만든 조명이다.


크리스토퍼의 개인 사무 공간. 오래된 하얀 벽을 그대로 활용한다.
다이닝룸에 배치한 ‘문스톤Moonstone’은 달의 암석을 지구로 가져온다는 초현실적 상상으로 만든 조명이다.
“입으로 불어서 만드는 유리는 공기와 불에서 태어나는 예술입니다. 우리는 베네치아 무라노섬에 숨어 있는 비밀의 빛을 조명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새로운 재료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장인에게 계속 찾아갑니다. 아주 간단한 스케치부터 시작해서 장인들과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기도 했죠. 우리는 언제나 전통 기술을 깨우치는 동시에 장인들은 우리가 제안한 새로운 방식을 접목하면서 서로 성장하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명은 전통 기술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이들은 전통적 재료를 선호하지만 기술은 가장 최신의 것을 선택하고, 때론 직접 개발하기도 한다. 베스트셀러 중 하나인 ‘매화Maewha’가 대표적인데, 몇 년 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하얀 매화꽃이 흩날리던 봄 풍경 속에서 매우 깊은 인상을 받아 디자인한 조명이다. 매화꽃 수십 송이가 피어 있는 듯한 이 조명의 모든 구성 요소는 맞춤 제작했다. 전구를 장착할 수 있도록 케이블을 약간 유연하게 만들었는데, 이 때문에 전구가 구의 중앙에 있지 않다. 전구는 항상 약간 구부러져 있고 수작업으로 만든 유리 조명은 하나하나 그 모양이 다르다. 조금씩 다른 자연스러운 반복, 모든 꽃잎이 나무에 피어나는 자연의 풍요로운 순간을 재현하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이들은 지난해 11월 열린 디자인+아트 페어 ‘디파인 서울’에 참가해 한국에 자신들의 조명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가장 최근 작품인 ‘달 DAL-Drawing a Line’은 수려한 선과 둥근 빛이 어우러진 신비로움으로 컬렉터들과 관람객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 직접 개발한 미세 금속 선으로 이뤄진 얇은 튜브로 구성해 마치 공중에 떠다니는 듯 ‘언제 놓아야 할지 알면서, 이끌어가는’ 선을 지닌 이 조명은 지난해 10월 파리플러스 아트 페어 기간 생제르맹데프레에 위치한 이들의 갤러리에서 처음 발표한 것이다. 이름인 ‘달’은 한국어에서 따온 것이 맞다. 이들의 스튜디오를 방문한 이배 작가와 대화를 통해 오래 구상해오던 적절한 연결과 적절한 리듬의 선을 지닌 조명에 대한 실마리를 얻었기에 이배 작가에게 헌사하는 이름이기도 하다. 무의식의 제스처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붓질의 힘을 탐구하며, 회화적 반복과 자유로운 실험 사이에서 자아를 내려놓는 이배 작가의 ‘브러시스트로크Brushstroke’ 작품 자체뿐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정신에 이들은 깊은 감흥을 받은 것이다.


상호 보완적인 디자인 구상과 공학적 접근을 통해 초자연적 백일몽을 담는 조명을 만드는 조파토&쿰버스 듀오. 사진 Mattia Balsamini
“이배 작가님과 대화를 하다가 drawing a line의 약어인 dal이 한국에서는 ‘달’을 의미하는 것을 알게 되었죠. 우연이었지만, 반복감도 달과 비슷한 점이 있었어요. 달의 궤도처럼 많은 선을 그린다고 가정해보면 달의 궤도는 반복되는 것이지만 항상 조금씩 다르죠. 같은 궤도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항상 조금씩 움직입니다. 이런 종류의 리듬이지만 동시에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변하는 리듬과 같습니다. 달과 달 문화 전반과 관련한 미학적 함의가 있었다고 할 수 있어요.”

이들은 선이 마치 자신들과 같은 크리에이터의 타임라인을 상징한다고 생각했다고. 좋은 날도 있고 나쁜 날도 있는 것처럼, 그냥 흐름에 따라가야 한다는 것을 그들은 이제 알게 되었다. 그러니 균형 감각을 유지하면서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도 말이다.


사진 Marina Denisova

글 강보라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4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