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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과 공예의 주방 오피치네 굴로
불과 물이 공존하고 벼려진 칼과 도구가 혼재하는 곳, 주방은 주거에서 가장 터프하고 위험한 공간이다. 생활감 없는 아름다운 주방 사진에 속지 않았다면, 주방의 모든 상황이 위험의 연속이라는 것을 잘 알 것이다. 도마와 칼이 부딪치고 둔중한 반죽이 패대기쳐지는 사이 한쪽에선 기름이 끓고 소스는 흘러내리며 잘려나간 식재료와 불순물이 사방으로 튀고 들러붙는다. 구현할 수 있는 기술이 전제된다면 주방이 태생적으로 내구성을 갖춘 금속으로 구축돼야만 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리고 오피치네 굴로는 이 어려운 것을 당연하게, 그것도 놀라운 공예적 완성도로 이뤄낸다.

초기부터 전 단계에 이르기까지 고객의 취향을 모든 프로세스에 반영하는 오피치네 굴로의 테일러 메이드 컬렉션. 영원히 지속되는 예술성을 구현했다.
피렌체의 17세기 대표 예배당 산 살바토레 아 오니산티San Salvatore a Ognissanti에 자리한 오피치네 굴로 하우스. 오는 9월 청담동에 오피치네 굴로 서울 플래그십 쇼룸을 오픈해 브랜드가 추구하는 미식과 예술을 함께 향유할 계획이다. 현재 팝업 스토어(강남구 언주로 154길 10)를 예약제로 운영 중이다.
오피치네 굴로라는 세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시작한 오피치네 굴로Officine Gullo는 장인 정신에 기반을 둔 주방 브랜드이다. 고강도의 강철과 광택 처리한 구리, 주철, 황동 같은 금속만을 사용해 수작업만으로 고급 주방을 완성한다.

배경은 이탈리아의 철강 산업이 발달하던 19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피렌체 일대에는 예술적 주조 공방이 넘쳐났고, 연금술사의 DNA를 물려받은 장인들은 팔라초palazzo(이탈리아 르네상스 시기의 귀족들을 위한 살림집)에 어울리는 금속 주방을 맞춤 제작하는 기술을 개발해냈다. 곧장 유럽 중상류층이 선망하는 위시 리스트에 올랐지만 안타깝게도 호황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대량 생산하는 모듈화된 주방과 가볍고 가공하기 쉬운 소재의 등장에 밀려난 것이다.

카르멜로 굴로Carmelo Gullo는 창업가답게 밀려나는 금속 주방에서 오히려 사업적 기회를 발견했다. 외형과 재료 그리고 기술은 지키면서도 음식을 조리하고 보관하는 데는 현대 기술을 접목한 주방을 만들어낸 것이다. “피렌체 팔라초의 파사드, 프레스코화와 조각들에 숨어 있는 완벽한 기하학에 대해 생각하며 금속을 단조하는 지침으로 삼았다.”

오늘날 오피치네 굴로는 피렌체와 밀라노는 물론 런던, 뉴욕, 로스앤젤레스, 상하이, 홍콩, 모스크바, 텔아비브, 케이프타운, 라고스 등 주요 국제도시와 디자인 수도에 열한 개의 단일 브랜드 쇼룸을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하이엔드 주거 상품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서울에서도 올해 9월 쇼룸을 열기 위해 준비 중이다.


테일러 메이드 컬렉션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혁신적 모던 엘레강스를 표현한 콘템포라네아 컬렉션.
오피치네 굴로의 브랜드 정체성은 원재료인 금속을 아름답게 가공하는 기술에 담겨 있다. 무엇보다도 이 과정이 고도화된 기계에 의해서가 아니라, 장인 정신으로 요약되는 손기술과 감각에 의지한다는 것이 이 금속 주방을 특별하게 만든다.

금속 판재와 각재가 아닌 재료는 존재하지 않는다. 일체의 기성품이나 반제품 없이 고객이 주문하면 금속을 자르고 깎고 두드리는 성형 과정이 시작된다. 서랍과 캐비닛, 상판 같은 금속 패널은 스테인리스 스틸을 사용해 최대 7mm 두께까지 작업한다. 손잡이, 모서리 트림, 경첩을 비롯해 기계적 메커니즘을 적용하는 부속은 황동을 사용해 가공하고 밀링을 통해 하나씩 깎아낸다. 모든 부품이 준비되면 가조립해 제품의 정확한 형태를 확인한다. 이것이 오피치네 굴로에서는 가장 기본 단계다.

해머링과 바니싱, 니켈 도금과 황동 크롬 도금, 강철의 앤티크 효과와 파우더 코팅을 거치면 비로소 금속에 색상을 입힌다. 색은 컬러 팔레트에 의존하지 않고 고객의 요청에 따른다. 누군가는 집 안의 가구 색에, 누군가는 자신의 럭셔리 자동차 색에 주방의 색을 맞춘다. 마지막으로 피렌체의 전통 문양에서 영감을 얻거나 고객의 니즈에 맞춰 디자인한 심벌 또는 엠블럼 장식을 인그레이빙해서 넣으면 주방은 완성된다.


오피치네 굴로의 주방은 제작 기간만 8개월 이상 소요된다. 일곱 가지 금속과 아흔여덟 가지 컬러 조합, 거친 질감의 핸드메이드 바니싱, 슈퍼카에 적용하는 파우더 피니싱 등 마감재와 섬세한 은납 용접, 각인 서비스 등 다양한 비스포크 디테일을 선택할 수 있다.

2023년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공개한 바&라운지 컬렉션. 홈 바는 럭셔리 공간의 필수 요소 중 하나로, 요리와 파티에 최적화한 다양한 액세서리, 세척 장치, 제빙기 등을 내장했다.
장인의, 장인에 의한, 장인을 위한

금속은 3~7mm의 두께를 종류별로 사용한다. 구리와 스테인리스 스틸 그리고 황동을 적소에 배치한다. 인류에게 가장 오래된 금속 재료인 구리는 내구성과 자연스러운 색상이 필요한 자리에, 스테인리스 스틸은 시각적으로 강인하고 모던함이 필요한 곳에, 황동은 고전적 스타일 혹은 현대적 스타일이 필요한 곳에 매치한다.

모든 것은 최고 수준의 정확성, 극한의 가공 기술을 전제로 한다. 자석이나 볼을 사용하는 현대식 클로저 시스템 대신 스프링 와이어를 이용한 기계식 살타레오네 도어 클로저 시스템Saltaleone door closure system을 사용하거나 8mm 두께의 황동 시트를 절단해 문 안쪽에 고정해 코너 부분을 처리하고, 특수 금형으로 주조해 만든 외부 경첩 등이 그 증거다.

일반 주방의 수명이 평균 10~15년이라면 오피치네 굴로의 금속 주방은 세대를 넘겨 마모와 손상을 견뎌낼 수 있을 정도의 내구성을 지녔다. 피렌체 장인들이 수 세기 동안 금속을 단조해 예술품을 만든 것과 동일한 과정을 거치는 덕분이다.


오피치네 굴로의 경영을 맡고 있는 굴로 가족.
오랫동안 장인들 사이에서 독점해오던 기술적 지식은 오피치네 굴로에서 ‘프로제또 메모리아Progetto Memoria’라는 이름으로 보존되고 있다. 장인이 되기 위해 들어온 신입들은 도제 방식으로 하나씩 눈과 손으로 익히지만, 결국 이 피렌체 장인들만의 연금술을 전수하게 되는 것이다.

오피치네 굴로는 처음 출발할 때처럼 여전히 가족 기업이지만, 그 의미는 어디까지나 컨트롤할 수 있는 규모의 범위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만 적용된다. 장인 정신을 기반으로 대기업이 만들어내지 못하는 퀄리티와 밀도 있는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CLAB(Creative Lab)을 통해 디자인적 한계를 뛰어넘고, 아이디어를 모아 기술 사무소를 운영하는 등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투자하는 모습은 절대 작지 않다. 모든 것이 장인 정신에서 출발한다.


영원한 디자인, 최고의 성능, 전통과 혁신의 공존은 오피치네 굴로의 핵심 정신. 모든 제품은 와인 산지로 유명한 피렌체 근교의 키안티Chianti 지역 공방에서 15세기 금속 기술을 전수받은 장인의 주도하에 제작한다.

기술과 미학과 인체 공학의 조화가 만든 주방
주방 컬렉션은 크게 테일러 메이드Tailor Made와 콘템포라네아Contemporanea(영어로 contemporary)로 나눌 수 있다. 아일랜드Islands, 아웃도어Outdoor, 바&라운지Bar&Lounge가 별도의 컬렉션으로 존재하지만, 만드는 방식은 테일러 메이드를 벗어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2~3년 사이 하이엔드 주거 상품 설명에 등장하기 시작한 테일러 메이드는 기존 제품을 커스텀하는 비스포크를 뛰어넘는 방식이다. 초기부터 전 단계에 이르기까지 고객의 취향을 모든 프로세스에 반영해 제작하는 주방 컬렉션이다.

반면, 콘템포라네아는 오피치네 굴로의 상징적 주방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컬렉션이다. 고강도의 강철을 구조에 사용하고, 마감에는 견고한 황동을 사용한 모던한 주방이다. 장인의 기술을 심플한 미학에 숨긴 혁신적이고 독창적 디자인이 특징이다. 특히, 철이 지닌 우아한 매력을 래커 도장과 텍스처 가공을 통해 인위적으로 줄였다. 이런 시도는 전통과 기술의 융합이라는 오피치네 굴로의 지향점을 잘 설명해준다.


오피치네 굴로의 비스포크 특성은 세계적 디자이너와 셀러브리티의 예술적 취향을 충족한다. 이탈리아 하이엔드 슈즈 브랜드 아콰추라Aquazzura의 창립자 에드가르도 오소리오Edgardo Osorio 에디션.
오피치네 굴로의 카테고리는 주방 가구를 넘어선다. ‘내 집 안의 레스토랑(A restaurant at home)’이라는 콘셉트로 레스토랑에서나 볼 법한 전문 장비와 최고의 인체 공학을 추구하며 주방의 미학을 주도하는 OG프로페셔널 컬렉션과 피렌체에서 제작하며 고성능 가전제품에 황동과 광택 처리한 구리, 앤티크 효과를 준 강철 같은 최고급 소재로 마감한 리스타트Restart 컬렉션 등 다양한 종류의 가스레인지들. 그리고 주방 배기를 위한 후드는 물론 냉장고, 각종 오븐과 전자레인지, 와인 냉장고, 수비드 머신, 파스타 쿠커 등 주방 가전과 수전 및 싱크 볼, 선반에 이르기까지 냄비와 국자 같은 주방 도구를 제외한다면 주방에 필요한 거의 모든 제품을 생산한다.

오피치네 굴로의 금속 주방에서는 공존하기 어려워 보이는 두 요소의 조화를 발견하게 된다. 예술적인 금속 세공 전통과 정밀한 기계공학의 결합이 그러하고, 혁신적인 조리 및 냉장 장비 기술과 테일러 메이드 콘셉트의 공존이 그러하다.


아버지의 대를 이어 경영을 맡고 있는 안드레아 굴로.
Interview
Managing Director Andrea Gullo
오피치네 굴로의 글로벌 경영직을 맡고 있는 안드레아 굴로에게 한국 시장 진출에 대해 물었다. 그는 창업자인 카르멜로 굴로의 아들로 형제인 피에트로, 마테오와 함께 회사를 이끌고 있다.

오피치네 굴로는 하이엔드 주방 브랜드이면서 ‘문화의 향유’를 중요하게 언급한다.
우리는 주방을 기능 이상의 유쾌함과 공유의 장소로 본다. 서로 소통하고 경험을 나누는 공간인 것이다. 주방은 그 시간을 위한 곳이기에 요리와 식사를 중요하게 여기며, 사용자에게도 미학적·문화적 즐거움의 원천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유럽이나 미국과 비교할 때 한국의 주방 문화는 어떤 점이 다르다고 생각하나?
우리는 가정의 주방에 프로페셔널한 조리 환경을 구현해 요리 애호가와 전문 셰프를 모두 만족시키고자 한다. 셰프들과 협업을 지속하며 제품을 개선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서울보다 앞서 타이베이와 상하이 등 아시아 시장에 진출하며 이러한 협업 방식을 통해 아시아에 맞는 조리 환경을 주방에 적용할 수 있었다. 최근 한국을 방문했을 때 바비큐 요리, 철판구이, 수직 불꽃 웍 등이 호평을 받았다. 이것들을 통합한 모듈을 선보이고자 한다.


19세기 황동 주조 공법으로 탄생한 경첩.
전 세계 열네 개 도시에 쇼룸이 있다. 운영의 기준은 무엇이며, 아시아 시장 진출은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
이탈리아와 가까운 유럽에는 쇼룸을 많이 두지 않는다. 접근성을 고려해 미국과 아시아처럼 장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곳에 쇼룸을 연다. 런던은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디자인 허브라는 점을 고려한 경우다. 유럽의 고객은 비행기로 피렌체의 본사까지 쉽게 방문한다. 오피치네 굴로의 생산 시설을 직접 둘러보고, 제품의 품질을 확인하며, 오피치네 굴로 하우스Officine Gullo House에서 미식을 경험한다. 셰프가 준비한 저녁을 먹으며 우리 브랜드의 유산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상하이와 타이베이에서는 단일 브랜드 공간이지만, 제품과 브랜드 역사 및 고유한 기능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풍부한 배경지식을 습득한 직원을 배치하고, 설치와 AS까지 지원 가능한 시스템을 만들었다. 지리적 한계를 극복하고 현지 고객에게 신뢰를 받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브랜드의 정체성과 트렌드의 조화를 위해 오피치네 굴로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인가?
오피치네 굴로의 특징은 긴 역사를 통해 얻은 개성 강한 디자인이다. 이 디자인은 시대를 넘어 지속됐고 트렌드는 일시적이다. 우리는 연구에 집중하며 사내 디자이너 팀과 투철한 실험 정신을 유지한다. 콘템포라네아 컬렉션이나 아웃도어 컬렉션처럼 깔끔한 라인의 새로운 컬렉션을 만들 수 있던 이유다. 이 컬렉션들도 소재의 품질이나 디테일의 우수성이라는 우리의 DNA를 충실하고 일관되게 구현한다.

한국에서 오피치네 굴로의 운영 방식이 궁금하다.
럭셔리 자동차 브랜드를 떠올려보면 된다. 우리는 한국에서 자격을 갖춘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세계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설치 및 AS를 위한 교육을 계속해서 지원하고, 고도로 훈련받은 한국의 직원들은 현지와 같은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다.


취재 협조 엘아이엘코리아(02-6952-5909)

글 황선영(학과꽃)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4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