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유미 씨 집 안 곳곳에는 거울이 많다. 자신의 취향으로 꾸민 공간 속에 놓인 본인 모습을 한 프레임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게 거울의 매력인 것 같다고.
채유미 씨가 사랑하는 LP 벽 선반 공간. 이곳을 꾸미기 시작하며 이전보다 부지런해졌다고 말한다. 선반 특성상 먼지가 쉽게 쌓여서 부지런히 움직일 수밖에 없단다.
흑과 백의 반듯한 설계 도면이 겹쳐 보이는 집. 건축공방과 유현준 건축사무소를 거쳐 약 10년간 건축 디자이너로 일해온 채유미 씨는 조금은 차가워 보이는 이 집에서 누구보다 여유로운 1년의 휴식기를 보내고 있다. 퇴사 당시만 해도 건축을 아예 하지 않을 각오였다는 첫 대답과 달리, 이야기하면 할수록 채유미 씨가 얼마나 건축 일을 사랑하는 사람인지 느낄 수 있었다. 이 집을 소개하면서부터 그랬다. 무채색에 직선적 가구로 인테리어한 이유를 대번 설명하면서도 “아무래도 건축을 하기 때문에…”라는 깜찍스러운 구실이 줄곧 따라붙었다. 유럽에서 만난 모든 건축가가 검정과 흰색 옷을 입고 있었다는 일화를 풀어가면서도 그랬다. “건축가는 블랙&화이트만 입는다”는 우스갯소리를 하는 그의 모습을 보았을 때, 그 말을 하고 있는 채유미 씨조차도 흰색 셔츠에 검은색 뷔스티에를 입은 모습을 확인하곤 남몰래 웃음을 삼켰다.
“일로서는 건축처럼 묵직하고 큰 스케일을 계속 다루고, 인테리어에 대한 욕구는 개인 공간인 집에서 풀려고 해요. 사실 인테리어에도 어쩔 수 없는 건축 디자이너의 취향이 담겨 있어요. 데이비드 치퍼필드처럼 군더더기 없고, 모던한 감성을 굉장히 좋아해요. 그래서 이 집에도 무채색과 스틸 소재의 선적인 가구를 많이 들였죠. 이 집에 온 이유 중 하나도 우리나라 오피스텔에서 보기 어려운 까만 문과 블랙 프레임 때문이었고요.”
3년 전부터 재즈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채유미 씨. 연주하다가 잠드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더 자주 연습하기 위해 피아노를 침실에 두었다.
이전 집보다 공간의 실평수는 좁아졌지만 안정감은 더욱 크게 느끼고 있다.
작업방이 있긴 하지만 업무는 주로 아르텍 테이블이 놓인 거실에서 한다.
채유미 씨의 무채색 집을 따스하게 만드는 것이 있다. 바로 재즈다. 온종일 턴테이블에선 재즈 음악이 흐른다. 재즈의 매력에 빠진 건 중학생 무렵 에디 히긴스의 음악을 접한 이후였지만, 그가 바이닐을 본격적으로 모으기 시작한 건 약 4년 전부터다. 어린 시절 다락방 가득 바이닐을 모으던 아버지의 취향을 물려받은 건지도 모른다. 혹은 어느 날 회사 동료가 구매한 턴테이블을 자랑하는 모습에 혹한 건지도 모른다. 직접 톤암을 돌려 바이닐 위에 카트리지를 닿게 하는 아날로그적 행위도, LP판이 돌아가는 것과 바이닐 앨범 커버 디자인을 바라만 보고 있는 것마저도 그에겐 힐링이다.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도 거실 한쪽에 마련한 LP 벽 선반이에요. 저는 이 공간을 저만의 ‘무드보드’라고 불러요. 기분이나 상황에 따라 배치를 달리하거든요. 새로운 바이닐이나 소품을 사면 그에 따라 컬러링을 다르게 하고, 그날 듣고 싶은 음악과 느끼고 싶은 분위기에 따라 자리 배치를 바꾸기도 해요. 얼마 전 생일에 마일스 데이비스의 시그너처 트럼펫 포즈를 본떠 만든 곰돌이 피겨를 샀어요. 그래서 요즘엔 그 이야기에 맞춰 마일스 데이비스의 바이닐을 콘셉트로 장식해뒀죠. 보통 사람들이 집을 꾸민다고 벽에 거는 포스터나 그림을 주기적으로 바꿔주잖아요. 저희 집에선 그 역할을 바이닐 앨범 커버가 톡톡히 해줘요.”
숫자가 직관적으로 보여서 주로 거실에 두고 사용 중인 레트로 플립 탁상시계.
디자이너 리하르트 자퍼가 디자인한 아르떼미데 티지오50. 미니멀하고 직선적인 형태가 아름다워 데스크에 두고 사용하기 좋다. 건축업계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한 명쯤은 가지고 있는 조명.
채유미 씨가 수집한 영국 가수 프렙, 셀레스트, 톰 미시의 바이닐.
사실 이 집은 이사 온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채유미 씨의 뉴 홈이다. 변화한 환경에 걸맞게 모던함만을 추구하던 그의 집엔 요즘 들어 아르텍 알토 테이블, 드비저리의 가죽 상판 사이드 테이블 같은 빈티지 감성의 가구가 속속 입주하고 있다. 나름대로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중이랄까. 채유미 씨는 일을 쉬는 1년 동안 자신의 집을 찍어 인스타그램(@umie.haus)에 올리기 시작했는데, 그길로 리빙 인플루언서로 거듭났다.
그런데 현재로선 그를 인플루언서로 만들어준 피드 속 집과 지금 집의 모습에 크게 다른 점이 없다. 물론 취향은 연결되고, 그의 세상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일 터. 하지만 이제 채유미 씨는 변화에 대한 갈증을 느끼기 시작했고, 블랙&화이트와 스틸 소재만 고집하는 것에서 벗어나 따뜻함이 물씬 풍기는 우드와 가죽 소재를 섞어 연출하는 방법을 연습하고 있다. 확고하게만 보이던 그의 세계에도 기분 좋은 균열이 생기고 있는 것. 마치 그가 사랑하는 건축과 재즈라는 상반된 두 속성이 만나 중간 지점을 찾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서서히 융화되며 깊어지는 채유미 씨의 취향이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그의 집에 발현될지 기대된다.
1 존경하는 디자이너 디터 람스 브라운의 전시 포스터. 세로로 긴 비율 모양이 마음에 쏙 든다.
2 빈티지 숍에서 구매한 알리버트 거울. 이 집에서 가장 애정하는 거울이다.
3 해외 직구로 구매한 실버 색상의 제프쿤스 벌룬독 오브제. 어디에 두어도 유니크하고 귀엽다.
4 바이닐에 입문하며 구매한 데논 DP400. 화이트 유광 보디와 실버 톤 톤암의 조화가 매력적이다.
5 레드 전선과 노란 필라멘트를 노출시킨 레트로한 디자인의 팻보이 포터블 램프.
6 지난해 생일에 연남 사운즈굿에서 구매한 레코드 어댑터&스피너. 재즈의 전설 마일스 데이비스를 모티프로 한 제품이다.
7 브랜드에서 협찬받은 루미르의 열매 포터블 램프.
8 웰컴투씨씨씨Welcometoccc의 POUPOUPOT. 실크 소재와 리본 스트링으로 이루어진 커버가 멋스러워 어떤 식물을 넣어도 고급스러워 보인다.
'채유미'님의 1집구석 보러가기 1hows.com
- 건축 디자이너 채유미 재즈와 건축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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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선처럼 부드러운 재즈의 음률과 건축의 직선적 매력이 담긴 채유미 건축 디자이너의 집. “Life is jazz!”를 외치는 채유미 씨의 목소리와 턴테이블을 통해 흘러나오는 재즈가 사뭇 정적인 그의 집을 따스하게 채웠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4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