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적 공간에서 창조한 디지털 세계관
SixNFive STUDIO
아르헨티나 출신의 디지털 아티스트 에세키엘 피니Ezequiel Pini는 3D 기술을 활용해 자신만의 시그너처인 몽환적이고 시적인 미학으로 꿈결 같은 가상 세계를 창작하고 있다. 동시대 가장 인정받는 디지털 아티스트 중 한 명으로 등극한 그의 스튜디오는 자연에서 영감을 얻는 명상적이고 평화로운 감성을 그대로 담고 있다.
전형적인 테크 관련 사무실의 기준을 뛰어넘는 식스앤파이브 스튜디오. 직접 제작한 마이크로 시멘트 소재 테이블이 눈에 띈다. 공간은 L자 형태를 통해 공적 공간과 업무 공간이 자연스럽게 분리된다.
화창하고 온화한 바르셀로나의 대기에 머물다 보면 저절로 긍정적 마음이 샘솟을 수밖에 없다. 아름답기로 유명한 람블라스 거리와 바르셀로나 해변가에서 그리 멀지 않은 동네 포블레노우Poblenou의 한적한 거리에 식스앤파이브SixNFive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에세키엘 피니의 스튜디오가 자리한다. 그는 디지털 이미지를 전문으로 컴퓨터 그래픽의 한계를 뛰어넘는 초현실적 판타지 세계를 창조하는 작가로 유명하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윈도우 바탕 화면을 비롯해 애플·나이키·리모와 등의 회사와 협업한 바 있으며, 대니얼 아샴과 파트리시아 우르키올라, 리카르도 보필 건축사무소 등 독보적 크리에이터의 디지털 워크도 도맡았다.
상업 프로젝트뿐 아니라 그만의 확고한 예술 세계도 구축했는데, 꽃들이 마치 폭포수처럼 흘러 부드럽게 떨어지고 커다란 태양이 떠오르는 등 서정적인 디지털 영상 작품은 우리에게도 익숙할 만큼 많이 회자되었다. 그의 작품은 스페인과 스웨덴 등의 뮤지엄에 소장되어 있고, 올해 홍콩 아트 바젤 기간 중 소더비 옥션에 유일한 디지털 아트로 출품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식스앤파이브 스튜디오는 이 같은 그의 작품 세계의 철학이 어디에서 연유하고 무엇을 지향하는지 보여준다. “팬데믹 기간 중에 스튜디오를 만들기로 하고 여러 곳을 찾아다녔어요. 그러다 한때 레스토랑이던 이 공간을 찾아냈는데, 정말이지 엉망이었지요. 절친한 인테리어 디자이너 이세른 세라Isern Serra와 함께 완전히 탈바꿈시키는 데 6개월이 걸렸어요. 천장이 훨씬 낮았는데 벽을 허무니 높은 천고가 나타났고 콘크리트 구조를 그대로 활용했어요.” 1층의 거리로 난 입구에 쇼룸과 작은 전시 공간 그리고 스리 마크스 커피Three Marks Coffee의 카페가 자리한다. 공적 공간과 스튜디오 공간이 L자 형태로 자연스럽게 결합된 구조다. 이 동네에서 식스앤파이브의 독보적 공간은 이미 유명하다고.
현실성에 기반을 두었지만 동시에 몽환적이면서도 초현실적인 감성을 전달하는 식스앤파이브의 디지털 아트.
그는 그래픽 디자이너로 커리어를 쌓아왔지만 독창적 아이디어를 표현하는 데 한계를 느끼고 3D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물리적 세계의 사실성을 기반으로 가상 세계만이 지니는 무한한 표현력에 매료되고, 구조와 색상 그리고 진정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탐구하기 시작하면서 독보적 작업관을 구축했다.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디지털 아트는 저의 스타일이 아니에요. 저는 언제나 자연으로부터 영감을 얻으며 명상적이고 평화로운 디지털 아트 세계를 만들고 싶습니다.” 명상적이며 아름다운 이미지를 통해 디지털 산책으로 초대하는 그에게 바르셀로나는 온화한 날씨와 해변 그리고 푸른 산을 통해 창조적인 자양분을 끊임없이 제공한다고. 더불어 두 딸아이를 키우는 가장으로서 삶 또한 충만하게 영위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도시다. 그에게 인터뷰하는 내내 품고 있던 질문을 했다. 식스앤파이브는 무슨 뜻인가?
“이 이름은 처음엔 단순히 두 숫자를 발음하는 소리가 마음에 들어서 결정했어요. 하지만 하루 일과를 마친 오후 6시 5분이라는 뜻도 있지요. 딸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향하며 ‘아, 오늘도 정말 멋진 하루였어’라고 되새기는 시간 말이에요.”
글 강보라 | 사진 Salva Lopez
그림을 그리는 일도, 피겨적 형태로 가구를 만드는 일도 모두 똑같이 즐겁다는 이학민 작가.
만화적 상상이 현실이 되는 무경계의 공간
STUDIO Hak
이학민 작가는 ‘서브컬처subculture’라는 뿌리를 기반으로 평면과 입체 작업을 자유롭게 넘나든다. 더 쉬운 말로 풀어 설명하자면 만화에서 영감을 얻어 그림도 그리고 가구와 오브제도 만든다. 다양한 예술 작업에 모태가 되는 그의 상상은 자신이 애정으로 가꾼 작은 작업실에서 시작된다.
쇼룸 혹은 미팅 장소로 활용하는 공간. 파우 퍼니처 시리즈를 메인으로 공간을 꾸몄다.
동대문역에 인접한 좁은 골목길로 몇 발짝 걸어 들어가면 이학민 작가의 작업실이 유쾌하게 고개를 내민다. 장난감인 듯 가구인 듯 호기심을 한껏 자극하는 작품들이 통유리창을 통해 엿보이는 공간. 아직은 진행형이지만 자신이 작업한 작품만으로 가득한 공간을 만들고 싶다던 이학민 작가의 소망을 대변하듯, 아주 소소한 부분까지도 그의 작품으로 채웠다.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봐야만 보이는 H빔(철골 보)에도 그가 만든 피겨와 3D 스케일 모델링 샘플들이 쪼르르 줄지어 놓여 있으니 말이다.
이학민 작가는 본래 원단 창고로 쓰던 구옥을 자신의 작업 환경에 맞게 레노베이션했다. 드로잉도 하고 가구도 만드는 양손잡이 아티스트이기에 두 작업을 효율적으로 병행할 수 있도록 유리문을 설치해 공간을 분리했다. “사포 작업을 할 때 가루가 많이 날리다 보니 작업할 때마다 대청소를 해야 해서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먼지가 넘어가지 않게 유리문을 만들고 천장 쪽도 아크릴로 막아놨습니다. 사소하지만 제 작업실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유리문을 설치하며 직접 만든 손 모양 문고리를 단 거예요. 손잡이를 밀며 들어갈 때 제 작품과 하이파이브를 하는 것 같아서 힘도 나고 기분이 좋아져요.”
이학민 작가의 드로잉 작업 공간. 프로젝트의 주제를 가장 적합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드로잉, 가구, 오브제 등 기법과 소재 및 텍스처를 결정한다.
그의 대표작 파우 퍼니처Paw Furniture와 사캐스틱 피겨Sarcastic Figure 시리즈 모두 큰 주제는 서브컬처에서 파생한 만화적 상상력이다. 하지만 그의 상상은 이를테면 ‘맥락 있는 상상’이다. 이학민 작가는 ‘그냥’이라는 말로 단순한 시각적 유희에 그칠 수 있는 것에 맥락을 부여해 작품으로 승화시킨다. 피겨 같은 파우 퍼니처를 레진이 아닌 금속 알루미늄 주물로 제작한 것은 가볍고 유기적인 형태에 무게감이라는 반전을 주기 위해서였고, 만화책 그림체 같은 사캐스틱 피겨를 냉소 초상으로 그린 것은 사회적 이슈를 비판적으로 패러디하기 위함이었다. 그의 만화적 상상력을 깨우는 건 의외로 시사나 뉴스에 있다. 작업을 하며 라디오를 들을 때 작품에 대한 대부분의 영감을 얻는다. “지금 갤러리 민트에서 열리는 전시 <I’m in Energy-Saving mode_나는 절전모드 중이야>도 인간의 일곱 죄악 중 하나인 나태를 비꼰 것이에요. 핵 오염수 방류에 관한 현대인의 정치적 무관심을 유머러스하게 비판한 작품이기도 하죠.”
공예적 관점에서 봤을 때 아이디어가 좋다고 꼭 완성도 있는 작업은 아닐 수 있지만, 그럼에도 이학민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과정은 아이디어 구상 단계라고 한다. 이 과정에서는 그 어떤 제약도 없기 때문. 그에게 중요한 가치는 상상인가 싶었는데, 이야기를 다 듣고 보니 진정 중요한 건 상상을 넘어선 ‘자유’인 것 같다. 좋아하는 일로 밥 벌어먹고 사는 것이 삶의 궁극적 목표라는 그의 말도 다시 곱씹으니 자유와 연결되는 것이었다. 아직도 자신은 좋아하는 일을 찾는 과정의 어느 한 지점에 있다는 이학민 작가. 그가 또 어떤 예술의 경계를 침범하며 자신만의 만화적 상상력을 펼칠지, 더 많은 자유와 상상으로 채워진 그의 작업실이 기대된다.
글 오송현 기자 | 사진 이우경 기자
디자인 스튜디오 스팍스 에디션을 이끄는 장준오 씨와 어지혜 씨.
모든 것을 비우고 창작의 스파크를 피워내는 공간
Sparks Edition
스팍스 에디션은 장준오·어지혜 두 디자이너가 이끄는 디자인 스튜디오다. 이들은 ‘아트웍’이라 부르는 개인 작업과 함께 뮤지션 및 다양한 브랜드와 작업을 진행한다. 지난 5월에는 그래픽 기반의 디자인 작업에 조금 더 집중하기 위해 새로운 작업실을 얻었다. 최소한의 아카이브와 도구만 두고 즐거움과 재미, 그리고 이들만의 도전으로 채워나갈 공간이다.
모두가 모이는 거실 공간. 넓은 창으로 들어오는 초록과 햇빛을 흰 벽이 품는다. 중앙의 테이블은 장준오 씨가 수납과 디자인 작업이 용이하게 합판으로 만든 것.
조각을 전공해 입체적 아이디어에 강한 장준오 씨와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전공하고 화가로 활동하며 색감과 회화적 질감, 그리고 스토리텔링에 강한 어지혜 씨. 스팍스 에디션은 장준오·어지혜 씨, 부부 디자이너인 두 사람이 이끄는 디자인 스튜디오다. 브랜드 작업과 이들이 ‘아트웍’이라고 부르는 개인 작업을 함께 하나 그 출발점은 같았다. 어지혜 씨는 “둘이서 하는 페인팅이나 조형 작업 등의 아트웍이 디자인물로서 보일 때 더 많은 사람에게 전달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각자의 작업을 하나로 합칠 수 있는 것이 디자인이었고, 그 프로세스가 재미있어 계속하다 보니 스튜디오가 되었어요”라며 자신들의 시작을 설명했다.
스팍스 에디션의 작업실은 성북구 동선동 붉은 벽돌 주택 2층에 자리한다. 담쟁이덩굴이 벽을 따라 길게 이어지고, 앞에는 작은 마당이 있다. 10년 전 처음 마련한 국민대 앞 작업실을 베이스 그라운드로 두고 지난 5월 이사했다. 장준오 씨의 조형 작업과 어지혜 씨의 회화 작업, 그리고 스팍스 에디션의 그래픽디자인 작업을 한곳에서 진행하던 것을 분리해 그래픽 기반의 작업과 일부 개인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새롭게 꾸린 것이다. 장준오 씨는 “장소를 선택할 땐 창밖으로 나무나 풀이 보이고, 해가 잘 드는 것이 첫 번째 조건입니다. 작업 공간에서 영감을 얻기 때문에 공간이 주는 분위기가 중요한데, 딱딱하고 차가운 건물보다 따뜻한 집 같은 공간을 원했지요. 나무 바닥부터 벽돌, 넝쿨까지 모든 게 마음에 들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두 사람의 작업 공간에는 어지혜 씨가 언제든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도구가 준비되어 있다. 검은색 테이블 또한 장준오 씨가 만들었다.
10년 넘게 사용한 짐으로 가득한 국민대 앞 작업실과 달리 이곳의 목표는 되도록 짐을 두지 않는 것이었다. “최소한의 아카이브, 우리가 좋아하는 빛을 볼 수 있는 조명, 작업하기 좋은 넓은 테이블만 두었어요. 공간을 비우고 해가 비치고 나무의 움직임을 바라볼 수 있게끔 만들자고 생각했죠. 저희가 사실 맥시멀리스트예요. 좋아하는 것도 많고 피겨도 모으고요. 그런데 좋아하는 것을 조금만 두니 더 소중해지고, 비우니 새로운 걸 만들 수 있는 욕구가 생기더라고요.”
스팍스 에디션은 현재 많은 뮤지션과 브랜드가 함께하길 원하는 스튜디오다. 에테르노 청담 브랜드 아이덴티티 작업과 사인물, 화장품 브랜드 라네즈의 리브랜딩과 패키징, 에그이즈커밍의 사인물 가이드와 어플리케이션 개발을 포함한 브랜드 아이덴티티 등 6~7개 프로젝트를 지금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비워낸 이 작업실에서 짜릿한 창작의 스파크가 무한히 피어오르길.
글 김혜원 기자 | 사진 이우경 기자
파트너 줄리아 조마Julia Jomaa와 카미유 왈랄라.
컬러와 패턴의 크로스오버
Walala STUDIO
25년 전 런던으로 이주한 카미유 왈랄라Camille Walala의 첫 번째 스튜디오는 창문이 없는 지하실이었고, 두 번째는 다른 열 명의 디자이너와 함께 사용하는 공유 오피스였다. 그리고 드디어 올해 런던 동부 해크니에 위치한 건물 7층에 둥지를 틀며 스튜디오의 정체성을 그대로 담은 생동감 넘치는 색상, 기하학 패턴 그리고 세심한 장인 정신으로 가득 찬 공간을 완성했다.
주방 가구의 두꺼운 검은색 테두리와 대담한 색채과 패턴이 어우러지며 마치 그래픽 이미지를 공간으로 그대로 옮겨온 듯한 느낌을 준다. 스튜디오의 모든 가구는 언젠가 스튜디오가 이사할 때 해체하기 쉽도록 설계했다.
기하학 패턴과 대담한 색상을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한 프랑스 예술가 카미유 왈랄라Camille Walala. 그녀는 자신만의 새로운 스튜디오를 구상하며 인테리어디자인 듀오 아워 디파트먼트Our Department와 함께 자신의 미학을 100% 담은 생동감 넘치는 공간으로 구현하기로 했다. 아워 디파트먼트를 이끄는 사이먼 소여Simon Sawyer와 귀스타브 앙드르Gustave Andre는 예술가의 추상적인 아이디어가 기능적 현실로 전환하도록 돕는 데탁월한 실력을 발휘했다. 그 결과 멤피스 그룹, 팝아트, 포스트모더니즘으로 특정지을 수 있는 왈랄라의 인장이 공간에 새겨졌다.
스튜디오는 두 개의 방으로 분리했다. 하나는 색칠과 모형 제작을 하는 방이고, 다른 하나는 컴퓨터로 ‘깔끔한’ 작업을 하는 방이다. 크기는 작지만 두 공간에서 대규모 공공 프로젝트 협업을 포함해 카미유가 직접 만든 그림, 조각, 도자기에 이르기까지 소규모 예술 작품까지 창작해낸다. 그녀의 모든 프로젝트는 규모에 관계없이 스케치북과 드로잉을 통해 시작되며, 디지털 방식으로 제작한 렌더링은 나중에 다른 예술 작품에 영감을 주기도 한다. 그리고 이 크로스오버는 물리적으로 두 방 사이의 연속성으로 해석할 수 있다. 기능은 다르지만 미적, 질감, 공간적 분위기를 공유하는 것이다.
컴퓨터 작업과 달리 모형 제작과 컬러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조금 더 ‘지저분한’ 작업을 수행하는 공간.
그녀와 팀은 공간에 대한 전체 계획의 스케치 업 모델을 그리면서 선들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지, 선택한 재료가 어떻게 해야 공간에 잘 어울리는지 고민했다고 한다. 작업 공간을 기능적이고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눈에 확 들어오는 미적 선택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시간의 흐름을 견딜 수 있는 재료를 선택했다. 예를 들어 캐비닛은 견고한 테두리가 있는 고품질 멜라민 표면 MDF로 제작했으며, 도어와 패널은 안정성을 위해 고밀도 MDF가 필요했고, 습기와 빛에 대한 저항성을 위해 폴리우레탄 페인트를 사용했다고. 스튜디오의 문손잡이와 책상 다리 등도 모두 맞춤 디자인으로 완성했다.
이렇듯 카미유 왈랄라 스튜디오의 모든 요소는 그녀의 예술적 비전과 완벽히 공명한다. 개성을 기리는 창의성의 한계가 없는 공간, 베이지색과 흰색의 바닷속에서 그녀의 스튜디오는 생동감 넘치는 등불처럼 빛나고, 진정한 혁신은 평범함에서 벗어나는 데 있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글 강보라 | 사진 Taran Wilk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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