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사물이 예술로 승화되는 공간
Novo Studio
노보 작가는 자기 주변의 삶을 관찰하고 그 안에서 발견한 다양한 표식과 사물을 그만의 시각언어로 그려낸다. 그의 아틀리에는 공간과 물건이 지닌 따스하고도 정겨운 기억과 에너지를 끄집어내고, 평면 속에서 입체적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작가의 영감 창고다.
대중문화와 여행지에서 수집한 엽서와 다양한 그래픽 등이 노보 작가가 요즘 어떤 대상에 몰두하고,영감을 받는지 보여준다.
노보 작가의 그림 속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사물이 존재한다. 그는 일상 속에서, 여행 중에 끊임없이 발견하고 수집해온 이미지를 저장해두었다가 캔버스 위 그만의 공간으로 불러와 콜라주 형식으로 재배치하고 그리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장충동에 위치한 그의 아틀리에에는 물감과 붓들 사이로 그가 사랑하고 연구하는 사물과 이미지가 가득하다. 도심 속 상가 건물 2층에 위치한 이곳은 아틀리에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인테리어 감각이 돋보이는데, 2년 전 이곳으로 이사 오면서 그는 직접 공간 구성과 배치를 구상하고 시공사와 함께 꾸몄다고 한다.
“공간을 모두 틔우고 르레브 스튜디오의 사무 공간과 제 작업실 딱 두 공간으로만 나누는 유리벽 하나만을 배치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빛이었어요. 그전의 작업실에서는 햇빛이 잘 들어오지 않았거든요. 여기는 아침에도 오후에도 제가 그림을 그릴 때 사물을 관찰하고 전체적인 무드를 그리기에 너무 좋은 햇빛이 잘 들어와요. 아무리 조명을 밝게 해도 인위적으로 만든 빛보다는 자연광에서 느낄 수 있는 어떤 감정이 제 작업에서 매우 중요하죠.”
작업실 옆 작은 라운지 공간에서 노보 작가는 완성한 작품을 걸어놓고 다시 한번 멀리서 관찰해보고, 때론 음악을 듣고 휴식을 취한다.
그림에 집중할 수 있는 효율과 기능이 가장 최우선이었지만, 벽 쪽으로 모두 몰아놓은 하얀 장식장과 정갈한 책상, 철제 선반에 가지런히 놓은 수많은 수집품과 휴식을 위한 소파와 음향 시스템 등의 배치와 장식 미감 또한 매우 뛰어나다. 특히 그는 미국의 땅콩 캐릭터인 ‘플랜터스 피넛Planters Peanuts’을 좋아해서 이와 관련한 땅콩 틴케이스와 캐릭터 오브제, 심지어 캐릭터의 역사와 수집품 가격을 기록한 책까지 수집했는데, 이것들을 모아놓은 장식장은 스튜디오를 방문하는 이들이 매우 신기하게 관찰하는 섹션이 됐다.
“그림을 그릴 때도, 브랜드와 협업할 때도 중요한 것은 나의 감성과 감정을 억지스럽지 않게 자연스럽게 보여줘야 한다는 점이에요. 여행을 하면서 많은 걸 느껴요. 이 세계의 다양한 시간대에 정말 다양한 감정이 제가 다 볼 수 없는 곳곳에서 발생하고 움직이고 있었구나, 생각이 들었죠. 그리고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상상하고 배치하기 시작했어요. 더 넓게, 보이지 않는 것까지 생각을 해보자, 이러니까 바로 그림을 그리고 싶고 너무 신나는 거예요.”
글 강보라 | 사진 이우경 기자
추상적 인생을 담는 캔버스
Ortwin Klipp
사진을 기반으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색깔을 통해 부드러운 형태로 부유하는 듯한 추상 작품을 그려내는 오르트빈 클리프. 그의 스튜디오는 빛과 색채를 테마로 한 자신의 작품을 담는 캔버스 같은 공간이다.
오르트빈이 가장 좋아하는 공간인 주방. 여기에서 차를 내리고 편안하게 앉아 사색하는 시간을 즐긴다. 보일러와 냉장고를 가리는 목재 캐비닛과 맞춤형 벤치는 직접 제작한 것. 감프라테시가 디자인한 대리석 테이블과 벨벳 의자를 매치했다.
사진작가인 오르트빈은 루마니아 출생으로 열세 살경 가족과 함께 독일로 이주했다. 뮌헨에서 그래픽디자인을 공부하고 베네치아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화가 르네 차콘René Chacón의 어시스트를 거쳐 2000년부터 독립 예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금은 뮌헨이 제2의 고향이지만, 어린 시절 카르파티아산맥 한가운데의 자연과 더불어 할머니와 함께 살던 기억은 그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아파트 겸 스튜디오는 파트너이자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제바스티안 쳉커Sebastian Zenker와 5년 전 함께 꾸민 공간이다. 제바스티안은 고급 주거 공간과 호텔, 리테일 공간을 두루 작업하며 독일 디자인 어워드에서 수상한 적이 있는 실력파다. “제 작업에서 알 수 있겠지만 저는 컬러를 무척 좋아합니다. 그 때문에 다채로우면서도 편안한 분위기로 만드는 것이 최우선이었어요. 모던한 디자인 요소로 채웠지만, 공간에 들어섰을 때 편안하고 안정적인 느낌을 주지 못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지요. 가장 큰 도전일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우리는 적절한 균형을 찾아냈어요.”
블루와 오렌지 컬러를 활용한 작업 공간과 달리 거실은 더욱 편안한 분위기를 내도록 화이트 벽을 유지했다. 대신 자신의 컬러풀한 사진 작품을 걸어 포인트를 주었다.
그는 작품의 영감을 여행길에서 마주친 자연에서 얻는다. 전작에서는 물과 하늘을 촬영한 작품도 볼 수 있다. 알 수 없을 정도로 광활한 하늘, 그 모든 밝은 색상과 자연 형태는 그의 어린 시절부터 끊임없는 매력을 불러일으키고, 지평선은 그에게 평온함·광대함·무한함의 깊은 느낌을 주었다. 이렇게 자연으로부터 받은 느낌을 그만의 감성으로 포착해 그 안에 생명과 삶의 규칙을 담는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오르트빈은 독일뿐 아니라 프랑스, 두바이 등 여러 나라에서 주목받으며 전시를 열고 있다. 더불어 패션 및 가구 브랜드와 협업도 진행 중이다.
“저에게 사진이란 눈을 뜨고 세상을 바라보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되죠. 짧은 순간이지만 영원히 포착하는 거예요. 이러한 것이 저를 감동시켜요. 현실의 마법을 포착하고 세상의 패턴을 인식하는 것 말이에요.”
글 강보라 | 사진 및 취재 협조 www.ortwinklipp.de
정그림 작가와 단일單一을 의미하는 대표작 ‘모노Mono’(2022) 시리즈 중 하나.
무엇이든 그릴 수 있는 무제 스튜디오
Jeong Green
본인을 ‘뭔가를 만드는 사람’이라 소개하는 정그림 작가. 어쩌면 이름부터가 운명적인 그는 어릴 적부터 손으로 조물조물 만드는 걸 좋아했고, 지금도 여전히 조물조물 무언가를 만들고 있다. 평면과 입체 그리고 가상공간까지자유롭게 오가며 유기적 선 형태를 탐구하는 작가의 상상이 그려지는 새하얀 캔버스 같은 공간에서.
벽체를 최소화해 시원하게 트인 공간과 넓은 창으로 개방감이 느껴지는 스튜디오 전경. 거실과 부엌이 경계 없이 공존하며, 그 뒤로 사무 공간과 작업 공간이 각각 분리돼 있다. 스튜디오 곳곳에 놓인 작가의 작품은 가구로서 혹은 전시품으로서 다양하게 존재하며 새하얀 작업실 풍경을 다채롭게 만든다. 사무실 테이블 뒤의 창문은 녹음이 가득한 풍경 덕에 마치 액자처럼 느껴지는데, 이 풍경을 살리기 위해 노력한 결과물이라고.
가구 같은 오브제의 아트 퍼니처부터 대형 설치 작품까지 공간을 채우는 다양한 작품 활동과 의자·테이블·조명 등 가구 디자인, 패션·리빙 등 브랜드와 협업하며 경계 없이, 한계 없이 활동 중인 정그림 작가. 지난 8월 새로 자리 잡은 그의 네 번째 작업실을 찾았다.
스튜디오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작품들이 보관된 수장고가 맞이한다. 개방된 형태의 창고 안에는 알록달록한 작품들이 단순히 선반에 올려두었을 뿐인데도 전시를 해놓은 것처럼 시선을 사로잡는다. 고개를 돌리면 반대편까지 시원하게 트인 스튜디오가 한눈에 펼쳐진다. “해가 들면 공간이 더 예뻐서 낮에 오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인터뷰 진행이 성사된 후 촬영 일정을 잡기 위해 연락했을 때 정그림 작가가 건넨 말이었다. 그 말에 아침 일찍부터 찾아간 작가의 스튜디오는 새하얀 공간을 햇살이 따스하게 채우고 있었다. 정그림 작가에게 이 작업실은 단순한 작업 공간이 아니다. “이번 작업실은 따듯하고 편안한 느낌으로 꾸몄는데, 작업에도 반영되면 좋겠어요. 예술가나 디자이너라는 직업은 내가 있는 공간이 나를 보여주는 방법이기도 하니까 최대한 나의 성향과 취향을 드러내기 위해 원하는 방향으로 시공하고 들어왔죠.”
본 작품을 만들기 전 스터디를 위해 3D 프린팅 등으로 제작한 목업 모형들.
요즘 그가 가장 관심 갖고 연구 중인 재료는 3D 프린팅과 그 폐기물에서 나온 폐자재로 재프린팅하는 것. “3D 프린터를 써보니 발생하는 폐기물이 엄청나더라고요. 근데 우연히 갈아서 재프린팅하는 방법을 알게 됐는데 흥미로웠죠. 기존 3D 프린팅과 퀄리티나 재료를 다루는 방식이 완전 달라서 연구하는 재미가 쏠쏠해요.”
정그림 작가에게 본인을 소개해달라고 하니 “뭔가를 만드는 사람”이라 말한다. “그것만 하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 특정되고 싶지 않아서 이렇게 얘기해요. 제 작품도 마찬가지예요. 작품으로 봐도 가구로 봐도 상관없어요. 오히려 두 영역에 다 속하면 싶어요. 제가 어느 정도 작품을 만들어놓으면 거기서 사람들이 보고 제각기 상상하는 행위나 상호작용이 더 재밌어요.” 실제로 스튜디오 곳곳에서 작품과 가구 사이를 오가며 쓰고 있는 작가의 작품을 볼 수 있었다. “지금도 현재 작품들보다 작은 오브제를 만드는 걸 생각해요. 그러면서 동시에 엄청 큰 오브제도 생각하죠. 공공 미술 조형물 같은 거요.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화병 같은 걸 생각하면서도 훨씬 큰, 극과 극의 것을 같이 생각하죠. 재료만큼 규격도 훨씬 더 다양하게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다 하고 싶어요. 다 할 거예요!”
글 박지윤 기자 | 사진 이우경 기자
스튜디오 페스카의 베네데타 감비노와 인테리어 디자이너 그레타 체베니니.
창의적 에너지가 응축된 크리에이티브 허브
Spazio Pesca
스파치오 페스카는 스튜디오 페스카의 콘텐츠 제작소를 통합하는 동시에 다양한 이벤트와 프로젝트를 개최하는크리에이티브 허브다. 모든 영역에서 창의적 에너지와 재능을 표현하는 것을 목표로 창조한 이 공간은 곧 아이디어를 흥미로운 콘셉트로 전환하는 하이브리드적 공간의 새로운 방법을 제시한다.
제로글로스에서 맞춤 제작한 주방 아일랜드와 알리아스의 의자.
베네데타 감비노Benedetta Gambino가 2020년 설립한 스튜디오 페스카는 아트 디렉션, 콘텐츠 제작, 그래픽디자인 및 편집 프로젝트 등을 진행하는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로, 식음료·패션·디자인 및 럭셔리 분야의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을 이어가고 있다.
인테리어 건축가이자 세트 디자이너, 스타일리스트로 활동하는 그레타 체베니니Greta Cevenini와 협력해 창조한 공간은 사무실과 갤러리, 사진 스튜디오, 회의실, 주방 등을 갖춘 다기능 장소로 구성했다. 베네데타는 단순히 작업만을 위한 공간이 아닌 ‘창의적 에너지를 담아내는 공간으로서 다양한 이벤트와 프로젝트를 개최하는 크리에이티브 허브’라는 목표를 일찌감치 설정하고 그레타와 긴밀히 논의하기 시작했다.
“저의 바람은 공간을 통해 스튜디오 페스카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내레이션을 이미지를 통해 서술해보기로 했어요. 베네데타와 저는 전형적인 밀라노 아파트에서 벗어나 우아하고 미니멀하면서도 현대적인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레타는 이탈리아의 고전적인 오래된 아파트를 완전히 새로운 공간으로 탈바꿈시키기로 했고, 이에 따라 강렬한 색상의 대조, 건축 재료 및 요소의 조합을 차별적으로 선별했다. 눈에 확연하게 각인되는 눈부신 녹색으로 입구와 전시 공간을 꾸미고, 이와 대조적으로 주방·사무실·회의실은 더 섬세하고 침착한 색상을 적용했다.
전시 공간의 주인공은 단연 강렬한 벽 컬러와 3트만3ttman의 그래픽 작품 ‘Sexy Time in Yellow’다. 테이블과 의자는 소피아 알브리고가 디자인했다.
밀라노는 베네데타를 전문적인 영역으로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게 해준 도시다. 그녀는 만약 자신이 로마나 다른 이탈리아 도시에 살았다면 지금의 스튜디오 페스카는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밀라노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이탈리아에서 크리에이티브 사업을 하기에 가장 좋은 곳이라고 그녀는 굳게 믿는다. 하지만 동시에 그녀가 경험한 두 거대한 도시,런던과 파리에 비하면 여전히 밀라노는 더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이 도시가 끊임없이 제공하는 예술적 기회의 양을 고려할 때 이 발전은 곧 이루어질 것이며, 자신 또한 이 변화의 일부가 되길 바라고 있다.
“저는 설립자이자 회계 담당자이고 프로젝트 매니저이기도 합니다. 제 자신이 많은 역할을 맡고 있지만 같은 비전을 지닌 스태프 열두 명을 한자리에 모으고 스파치오 페스카에서 다양한 일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이 매우 자랑스러워요. 예술가, 수집가, 창작 및 문화계 인사들이 모이고 친밀하게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확대해나갈 계획이에요.”
글 강보라 | 사진 Nicolò Panze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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