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해주세요.
본문 바로가기
건축가 김학중·하초희 부부의 단독주택 평창동 고지高地에 지은 세 번째 집
이번 칼럼은 건축가가 지은 집이자 건축가가 사는 집이다. 왠지 더 특별할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나? 일본 저자가 쓴 <건축가가 사는 집>이란 책이 있는데(<행복이 가득한 집>을 펴내는 디자인하우스에서 나왔다), 한국에는 아직 이런 책을 펴낸 건축가가 없다. 많은 건축가가 아파트에 살기 때문이다. 건축가가 사는 집을 보고 싶다는 갈증이 오랫동안 있던 터라 더 반갑고 흥미로웠던 취재.

계단을 중앙에 배치하고 다이닝룸과 거실에 단차를 줘 깊고 풍성한 공간감을 선사하는 김학중ㆍ하초희 부부의 집. 두 면에 펼쳐진 통창 너머로 소나무와 아카시아 군락이 넘실댄다.
2층 부부 침실. 자작나무 합판으로 마감한 벽면이 많아 환하고 온화한 느낌이 드는데 목공 작업은 10년 넘게 함께 하는 절대적 에이스 정동원 목수의 솜씨다.
“아이고! 계속 올라가네요.”
택시를 타고 취재처로 올라가는 길. 택시 기사분이 “눈 오면 운전도 힘들겠다”며 걱정스럽게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차는 굽이굽이 좁은 길을 따라 계속 올라갔다. 힘들겠다는 그 말에 공감이 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전망이 끝내주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세권이 지존인 서울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탁 트인 전망이 더 중요하다. 나 역시 이 같은 부류의 사람으로 평지(비싸기도 하지만)에 있는 집에는 희한하게 마음이 안 움직인다. 덕분에 오랫동안 다리가 고생이지만.

그리고 마침내 당도한 아담한 주택. 1층 거실 창문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통쾌하리만치 시원했다. 비탈진 빈 땅에 소나무와 아카시아나무가 군락을 이뤄 호젓하고 한적한 숲을 만들고 있었다. 눈 오고 비 오면, 아니 사계절의 마디마디가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원래 이곳이 건축 행위가 금지된 원형 택지 구역이었거든요. 지구 단위 계획이 수립되지 않아 땅값이 저렴했어요. 신혼 때 부암동 단독주택에서 전세살이를 했는데, 어느 날 이 땅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당시에는 무용한 땅이었지만 도로와 인접한 곳이라 언젠가 개발 제한이 풀릴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마음의 결정을 하기 전 몇몇 부동산에 들렀는데, 죄다 반대했어요. ‘개발 기다리다 죽은 사람 여럿이다’란 말까지 들었어요.(웃음) 당장 살 집이 있으니 훗날을 기약하자, 하는 마음으로 샀지요. 그런데 운 좋게도 몇 년 있다 개발 제한이 풀린 거예요. 그때는 정말로 로또라도 당첨된 줄 알았어요.”


2층 복도에 마련한 미니 화장실. 평면을 얼마나 열심히 그리고 고쳤는지 알 수 있는 공간이다.
가족 휴게실 너머로 미니 화장실과 드레스 룸이 펼쳐진다. 좁은 평면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슬라이딩 도어를 다양하게 활용했다.
흥미진진한 부부의 이야기는 계속됐다. “로또가 아니었던 것이 집을 지으면서 고생을 정말 많이 했어요. 일단 완전한 개발 허가가 아니었어요. 이곳 용적률이 50%이거든요. 그런데 대지의 20% 정도는 자연 상태 보존 지역이라 건드릴 수가 없었어요. 바닥 면적이 165㎡(약 50평)이니 33㎡(약 10평)가 내 땅이 아닌 거죠. 10평을 손해 보고 시작하니까 집이 작아질 수밖에 없었어요. 경사지라 골조를 세우기도 어려웠고요. 집을 다 지은 후 공사 과정에서 망가진 땅을 원상 복구한 후에야 준공 허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구청에도 여러 번 가고 서류 작업도 정말 많았어요.”

부부가 집을(사무실이 딸린 건물 포함) 지은 것은 이번이 세 번째. 김학중 소장은 ‘이제 정말 그만하고 싶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지만, 나도 아내인 하초희 씨도 그 말을 믿지는 않았다. 집 짓기도 중독(좋은 의미에서)이니까. 살다 보면 안 좋은 기억은 다 사라지고 좋은 기억만 남으면서 ‘이번에는 잘 지을 수 있을 것 같다’는 포부와 의지가 샘솟는다. 그리고 그렇게 집 짓는 여정은 다시 시작된다.


다락방은 아직 어린 자녀 방으로 활용한다. 계단을 중심으로 딸과 아들의 공간을 분리했다.
경사지를 활용한 전략적 설계
힘들고 불리하고 열악한 여건에서 지은 집은 덕분에 알뜰하고 재미있었다. 크기부터 정리하자면 1층이 66㎡(약 20평), 2층이 56㎡(약 17평), 다락방이 39㎡약 12평). 현관은 입면 도로에서 보면 지하 1층에 있다(1층이라고 해도되지만 이곳에 가려면 주차를 한 뒤 아래쪽으로 난 계단을 따라 땅 밑으로 들어가야 한다). 세 개 층 중 가장 넓은 곳으로 단차를 이용해 거실과 주방 공간을 분리했다.

남향으로 낸 창문은 배드민턴 코트만큼 크고, 그 너머로 숲이 펼쳐져 눈도 가슴도 ‘웅장하게’ 시원하다. 유독 사랑스러운 공간은 현관 왼쪽에 마련한 더스트룸dust room. 말 그대로 먼지가 많이 묻는 외투며 신발을 보관하는 곳으로, 한쪽에 작은 개수대까지 마련한 것을 보니 “평면을 진짜 여러번 뒤집었다”던 김학중 건축가의 말이 실감 났다. 초등학생 5학년 딸, 1학년 아들, 그리고 엄마, 아빠의 옷과 신발은 야외 활동을 즐기는 캐나다 가족의 그것처럼 그득그득했다. 말 없는 옷과 신발이 “평창동에 살면 이 정도쯤은” 하고 말하는 것 같아 덩달아 건강하고 상쾌한 기분이 되었다. 2층은 가족 공용 휴게실과 안방, 그리고 옷방으로 꾸몄다.



휴게실에서는 책도 보고 영화도 보는데, 밖으로 펼쳐진 녹음이 1년 내내 바탕 화면처럼 깔린다. 창호는 PVC 재질로 택했다. 알루미늄 재질보다 가볍고 단열도 잘되기 때문이다. “지난겨울에 추운 날이 정말 많았잖아요. 눈도 많이 오고, 에너지 이슈도 있고요. 그런데 세 개층 가스비가 29만 원 나왔어요. 구기동에 살 때는 40만~50만 원이 나오고, 세검정 주택에 살 때도 45만 원 정도 나왔기에 고지서 금액이 신선했어요.(웃음)” 단독주택에 산다고 하면 “춥지 않냐?”고 묻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도 옛말. 단열 규정이 강화되면서 추운 집은 이제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2층 역시 구석구석 재미있는 부분이 많다. 휴게실과 면한 곳에는 작은 화장실을 넣었고, 옷방 맞은편으로 세탁기와 건조기를 올리고 그 옆으로 욕실을 두었다. 옷을 벗고 빨 옷은 세탁기에 넣은 후 바로 샤워실로 들어가는,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구조랄까? 옷방에서도 전략이 빛났다. 저 안쪽으로까지 수납공간이 이어질 만큼 방을 크게 빼 철 따라 옷을 꺼내고 정리하는 번거로움을 차단했다.


주방 아일랜드 식탁 옆 공간. 벽에 건 그림은 음하영 작가 작품이다.
아이들 화장실은 컬러풀한 타일로 포인트를 줬다.
계단, 공간을 가로지르는 설치미술
3층으로 가기 전, 계단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단독주택에서는 계단을 보조 시설이라 여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당연히 지분도 적어 한쪽에 몰아붙이거나 나선형으로 만든다. 이곳은 다르다. 다락방까지 3개 층을 연결하는 중앙에 계단을 넣고 폭도 넓게 빼 오르락내리락하는 동선과 기분이 좀스럽지 않다. 계단 덕분에 왼쪽과 오른쪽 공간을 확연하게 구분할 수 있고, 집 구조도 한층 유기적이고 입체적으로 바뀌었다. 덕분에 어디서 찍어도 사진이 잘 나온다. 계단이 설치미술 같은 역할을 하는 것. 자주 쓰는 공간에는 응당 그에 맞는 지분을 주는 것이 옳다.


평창동 고지 경사지에 지은 단독주택. 역세권의 편리함을 포기하고 얻은 풍광과 한적한 여유가 소중하다.
집 중앙을 가로지르는 계단참은 바닥부터 천장까지 시스템 창호를 적용. 넓은 창 너머로 사시사철 녹음을 즐길 수 있다.
현관 옆으로는 야외 활동을 위한 신발과 의류를 보관하기 위해 만든 더스트룸이 있다.
자, 이제 마지막 공간으로 가볼까? 바로 다락방. 계단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자리한 다락방은 초등학생인 딸과 아들을 위한 각각의 방으로 꾸몄는데, 책상 역할을 하는 긴 테이블을 합판으로 짜 넣어 공간 손실을 최소화했다. 아이들이 자는 침대 옆으로 작은 창문을 낸 것도 사랑스럽다. 그 중 최고는 덱과 연결된 발코니 창. 다른 곳과 비교해 크기가 작아 아이들도 조금만 힘을 주면 쉽게 열 수 있는 미닫이문을 한쪽으로 밀면 목재로 마감한 테라스가 펼쳐지고, 작은 숲이 아이들을 반긴다. 이런 곳에서 유년을 보낸 아이들은 얼마나 말랑말랑한 감성을 지니게 될까?

볕 잘 드는 언덕 집에서 부부는 행복하다고 했다. 특히 아내의 만족도가 높았는데 “평소 집을 생각하며 꿈꾸던 로망이 모두 실현된 집”이라고. 취재를 하다 보면 유독 아내에게 사랑받는 남편이 있는데 첫째가 목수. 살림살이며 공간을 뚝딱 만들어주니 절대적 사랑을 받더라. 또 다른 직군이 건축가. 가구를 넘어 집까지 지어주니 또 하나의 ‘넘사벽’이다. 올라가는 길이 살짝 험준했지만 구석구석 신경 써 잘 지은 집은 기능적·미적으로 든든하고 아름다웠다. 그들이 다시 집을 짓는다면(지을 것이라 확신한다) 터는 그때도 표정 풍부한 고지高地일 것 같다.


김학중 건축가는 안과 밖 모두를 책임진다는 의미의 ‘안팍건축 설계사무소’(www.ahnpaak.com)와 인테리어 디자인 스튜디오 ‘3025’(@3025.kr)를 이끄는 수장. 집은 물론 사옥과 근린생활시설까지 다양한 건축물에 경험이 많다. 설계는 물론 시공과 인테리어까지 논스톱으로 진행 가능하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 인테리어 사업 부문을 갖추고 있어 외부와 내부를 유기적으로 통합, 조화시킬 수 있다.

글 정성갑(갤러리 클립 대표) 사진 이우경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3년 3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