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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터이자 문구인 김규림 나를 더욱 또렷하게 하는 집
김규림 씨의 집은 메모리폼 베개 같다. 집에 있는 사물,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그의 취향과 생활 방식에 맞춰 형태가 잡혀 있다. 앞으로도 그의 움직임에 따라 집 모습이 조금씩 바뀔 것이다. 파도 파도 예쁜 것이 물밀듯 눈에 들어오고, 하나하나 흥미로운 이야기가 깃들어 있는 ‘김규림 유니버스’에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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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림 씨는 일상에서 포착한 영감을 자신과 닮은 캐릭터와 짧은 글로 꾸준히 기록한다. 그의 이야기들은 다른 이에게 닿아 새로운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김규림 씨는 얼마 전 거실 책상 위치를 바꿨다. 벽면을 보게 배치한 책상을 창가 쪽으로 돌리고, 그 자리에 있던 침대를 치워 공간을 마련했다. “무료할 때면 소품 위치를 바꿔보곤 하는데, 이 책상은 이 집에 이사 온 후로 거의 6년 동안 자리를 옮겨볼 생각을 못 했더라고요. 작업에 집중하려면 책상이 벽에 붙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책상을 이렇게 놓으니 할 일을 하다가 창밖을 내다볼 수 있고, 친구들과 마주 앉아 이야기 나누는 시간도 늘었어요. 가구 방향만 살짝 틀었을 뿐인데 삶에 신선한 즐거움이 생겼어요.”

그는 이렇게 일상에 크고 작은 변화를 주는 일을 ‘관성 깨기’라 부른다. 내가 먼발치(SNS)에서 보던 김규림 씨는 언제나 새로운 자극을 즐기는 천생 ‘자유인’ 같았다. 그래서 큰 힘을 들이지 않아도 매일 특별한 일이 생기고 있을 거 같았는데, 실은 그게 아니라고. “10년째 하고 있는 블로그의 기록을 찾아보니, 좋아하는 음식점을 무려 1백50번이나 갔더라고요. 절반만 다른 곳을 갔어도 맛의 새로운 지평이 열렸을 텐데 말이에요.(웃음) 익숙한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 제자리에 머물지 않으려고 노력을 많이 해요.” 그래서 뭔가 하고 싶다거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일단 행동으로 옮긴다. 새로 다짐하고, 그러다 무너뜨리기도, 방법을 고쳐 다시 시작하기도 하며 삶에 변주를 준다. 사소한 규칙을 정해 게으름을 깨보는 것이다. 그중 몇 가지는 꾸준히 지켜 일상 루틴으로 만들었다. 전자 기기 사용 시간을 줄이기 위한 ‘노 와이파이 존’제도와 생각을 글로 옮겨 발전시키는 시간을 가지기 위한 ‘목요일의 글쓰기’처럼. 원래 작은 방을 노 와이파이 존으로 정하고 휴대폰을 비행기 모드로 바꾼 채 세상에서 ‘로그아웃’된 시간을 보냈는데, 지금은 아침에 일어나서 한 시간 동안을 디지털 알고리즘 없이 보내는 것으로 방법을 바꿨다.

그간 읽은 책이 꽤 많이 모여 집 한쪽에 미니 도서관을 마련했다. 원래는 책이 더 많았는데, 이사를 앞두고 친구들에게 조금씩 나누어주는 중. 김규림 씨는 스누피 캠핑 의자를 집안 햇빛이 잘 드는 곳에 두고 그곳에 앉아 책 읽는 시간을 좋아한다.
2017년에 시작한 목요일의 글쓰기는 어느새 2백 회가 훌쩍 넘었다. 올해는 ‘굳이 안 해도 되지만 하면 기분 좋아지는 것’을 늘려갈 예정이다. 이건 외부 환경에 휩쓸리지 않고 스스로 감정을 조절할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다짐. 배달 음식을 예쁜 그릇에 담아 먹기, 다이어리 예쁘게 꾸며 기록하기 등 조금 번거로워도 일단 해보면 저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장치를 여러 개 마련해두려 한다. 창문에 춤추듯 흐르는 주황색 곡선이 붙어 있고, 큰 나무 책상이 있으며, 예쁜 것 옆에 귀여운 것이 있고, 뭔가 되게 많은데도 묘하게 평온한 김규림 씨 집. 하지만 곧 타국으로 파견되어 이 집에서 보낼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정든 공간을 떠나서 아쉽지만, 공간이 바뀌면서 시작될 또 다른 삶을 기대해요. 몇몇 아끼는 물건은 가지고 갈 예정이라 어디서든 나답게 생활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요.”

“곧 죽어도 예쁜 물건을 좋아해요. 하지만 외형만큼이나 이야기도 중요해요. 이 아름다운 물건이 나오기까지 누가 어떤 고민을 했는지, 그 속에 얽힌 이야기를 알면 더 특별하게 여겨지거든요.”_김규림

자신의 드로잉을 주황색 시트지에 그려 재단해 창문에 붙였다.

자칭 ‘문구덕후’인 문구인 김규림 씨. 오래된 문구점에서 구한 펜꽂이와 각종 수납함에 수집한 문구류를 보관한다.

아끼는 물건은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두고 애정을 쏟는다.

벽과 문에 붙인 영감을 주는 이미지.
김규림의 이유 있는 소비
인스타그램에서 ‘소비 예찬’ 계정(@sobi_yechan)을 운영하는 김규림 씨.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소비”라 말한다. 그의 물건은 모두 깊은 고민과 나름의 당위성 그리고 운명적 만남을 통해 지금의 자리에 놓인 것이다.


찾고 찾다가 결국 직접 만든 펜꽂이
“마음에 드는 펜꽂이를 1년 넘게 찾아 헤맸어요. 잠깐 없이 살면 살았지 급한 대로 대충 사는 건 물건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결국은 못 찾고 유리잔에 가죽 커버를 입혀 직접 만들었죠. 그간 쌓인 열망의 기간이 마침표를 찍게 되어 그런지 완성한 펜꽂이를 책상 위에 올려놓을 때 알 수 없는 희열을 느꼈어요.”



나의 ‘오리진’, 꿈돌이
“대전 출신이라 꿈돌이 캐릭터에 가지는 애착이 남달라요. 몇 년을 기다리고 수소문해 찾은 (머리에 파란 별까지 온전히 달린) 꿈돌이 피겨입니다.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져요. 만약 지금 당장 물건 열 개만 싸서 집을 떠나라 한다면 이 꿈돌이를 가장 먼저 챙길 거예요. 어느 나라에 가도, 돈을 많이 주고서라도 다시 못 구할지 모르니까요!”



기분 따라 골라 쓰는 키보드
“재택근무 중인 요즘, 아침마다 이 아름다운 기계식 키보드 중 무엇과 업무 시간을 함께할지 즐거운 고민을 합니다. 컵과 치약, 펜도 마찬가지로 하나만 있어도 전혀 문제 되지 않지만,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직접 골라 쓸 수 있게 선택지를 만들어둬요. 이거 아니면 저거, 고르는 과정이 스스로 기분을 살피고 기쁘게 만들어주는 방법이 돼요.”

글 박근영 기자|사진 이우경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2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