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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오버스토리 윤건수·이현옥 씨 가족 끝이 아닌 너머의 이야기
남산서울타워부터 한양도성 성곽길까지 아름다운 풍광과 자연을 벗한 라이프스타일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어 담장을 낮춘 성북동 오버스토리. 모든 자연이 쉬어 가는 겨울, 나무 다섯 그루는 땅속의 뿌리를 단단하게 다지며 새봄을 기다린다.

성북동 선잠단지 끝자락에 집을 짓고 그리너리 콘셉트의 프라이빗 카페, 공간 대여 서비스를 운영 중인 오버스토리 가족. 가족이 모두 모이는 일요일 오후, 윤건수 대표와 첫째 자영, 막내 승현, 아내 이현옥, 둘째 주환 씨가 포토 존으로 꼽히는 삼각형 입구 앞에 섰다. 건물 왼쪽 끝에 비스듬하게 자리한 삼각형 입구는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의 관계를 정리하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다.
뿌리: 집에서 시작하다
성북동 선잠주택단지 이정표를 따라 굽이굽이 막다른 골목까지 올라가면 안쪽으로 봉긋하게 솟은 건축물을 마주한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날이었다면 설산의 봉우리로 느껴졌을 듯한 새하얀 파사드는 어떤 설명 문구도 없어 이곳이 갤러리인지 주거 공간인지, 혹은 카페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입구에 적힌 ‘오버스토리overstory’라는 글자만이 공간을 설명하는 유일한 단서이다. 지하와 지상 2층 규모로 경사지에 지은 건축물은 선잠단지에서도 가장 끝자락에 자리해 남산서울타워부터 한양도성성곽길까지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전망이 그야말로 일품이다. 윤건수·이현옥 씨 부부는 2년 전 이곳에 집을 지으면서 지하 근린 공간의 활용 방안을 고민했다.

“오버스토리는 삼림의 덮개를 형성하는 상층부라는 뜻으로 지하 카페의 이름이에요. 제가 투자회사를 운영하면서 이전 집 앞마당에서 네트워킹 파티를 자주 열었는데,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하면 단순히 비즈니스 관계 이상의 라포가 쌓이더라고요. 집을 지으면서 지하를 이벤트나 파티 공간으로 좀 더 체계적으로 구획하면 좋겠다 싶었죠. 손님이 매일 오는 건 아니니 평소에는 카페로 운영하고요.” 마침 직장에서 콘텐츠 영상 기획을 담당하던 큰딸 자영 씨와 호텔관광학부를 졸업한 막내 승현 씨는 스몰 웨딩 같은 소규모 이벤트와 미식이 함께하는 공간 브랜딩을 꿈꾸고 있었다. 일찍이 30대부터 전원주택에 살며 정원을 가꾸어 온 이현옥 씨의 가드닝 구력이 더해져 자연스레 ‘그리너리 greenery 카페’라는 공간의 콘셉트가 정해졌다.

남쪽 뷰를 향해 열린 구조의 집. 1층 거실과 2층 가족실을 보이드로 설계해 개방감을 더했다. 건축설계는 더시스템랩(thesystemlab.com, 02-6219-6800) 김찬중 소장이 맡았다.

디저트와 음료를 담당하는 막내 승현 씨. 카페는 예약제(@overstory.seongbuk, 0507-1382-7894)로 운영한다.
건축설계는 더시스템랩 김찬중 소장이 맡았다. 명확하게 목적이 정해지지 않은 근린생활시설이 가족의 주거와 공존해야 하는 것이 설계의 가장 큰 이슈였다. 집과 근린 공간이 완전히 분리된 매스로 존재할지, 한 덩어리 안에서 영역을 구분할지 구성부터 동선까지 고민한 김찬중 소장은 삼각형 진입로로 해결점을 찾았다. 지상에서 보이는 건축물은 프라이빗한 주거 공간이지만, 집으로 들어서는 현관 입구를 후정 안쪽에 배치해 시선을 차단한다. 실제 카페는 지상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대신 평평한 파사드 왼쪽으로 조형성이 강한 삼각형 입구를 배치해 마치 블랙홀처럼 자연스럽게 손님의 동선을 유도한다.

“계단을 내려가 카페 입구로 들어서면 주방 너머로 서울 도심이 한눈에 펼쳐지는 통창을 마주하죠. 처음 설계를 시작했을 때는 카페를 하겠다는 명확한 목적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어요. 기본적으로 사람이 모이는 곳이라면 음식이 있고 즐길 공간이 필요하니 주방과 홀을 메인으로 구성하되, 행사에 필요한 부대 공간은 유동적으로 조율할 수 있도록 최소한으로 배치했죠. 스몰 웨딩 행사를 진행한다면 주방 아일랜드는 리셉션 데스크로 변신해요. 아일랜드 맞은편 계단은 루프톱으로 연결되는 동선으로 사적 영역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건물 곳곳을 즐길 수 있도록 했죠.”

한옥 철거 현장에서 공수해온 구들돌이 단아한 미감을 완성한다.

창밖의 전망을 바라볼 수 있도록 좌석을 배치한 카페 홀. 한옥의 서까래를 연상케 하는 골조 장식과 나왕으로 제작한 가구가 노출 콘크리트 마감에 담백하게 어우러진다. 인테리어는 육연희 실장이 맡았다
줄기: 자연이 유일한 양분이다
“저희 가족은 아파트에서 산 시간이 거의 없어요. 막내가 두 살 때 용인 전원주택으로 이사해서 17년간 쭉 한집에 살았어요. 처음에는 막연히 땅을 밟고 살고 싶다는 생각에 남편을 설득해 전원주택으로 이사했는데, 살아보니 불편한 점보다 행복한 기억이 더 많아요. 땅은 인연이라고, 성북동이 땅을 봤을 때 용인 집의 안온함이 느껴지더라고요.” 이현옥 씨는 오버스토리의 조경 담당이다. 보통 성북동 주택 하면 높은 담장 너머 너른 잔디 마당이 펼쳐지는 장면이 떠오르지만, 이 집 정원은 사뭇 다른 모습이다. 화단의 수국부터 계단을 따라 자리 잡은 억새, 후정의 구들돌과 야생화까지… 꾸미지 않은 듯 소박하고 편안하다.

“조용한 주택가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카페는 예약제로 운영해요. 보통 주차장에서 손님을 맞는데, 꽃과 나무만으로도 한참 이야기를 나누게 되더라고요. 올해는 후정에 오솔길을 만들 계획이에요.” 후정은 주거 공간의 1층과 연결되는 구조다. 현관으로 들어서면 거실 테이블을 중심으로 왼쪽에 주방이, 오른쪽 끝에 부부 침실이 자리하고, 2층은 가족실과 서재 그리고 세 자녀 방으로 구성했다. 먼저 집의 첫인상은 미니멀 자체다. 거실에 소파도, 벽에 그림 한 점 없이 간결한 라인의 주방 가구와 테이블, 의자 정도가 인테리어 역할을 한다. 여기에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고가구와 식물, 물확 등이 드문드문 놓여 고요한 파동을 일으킨다.

건물 후면 루프톱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도 차경을 즐길 수 있도록 작은 창을 냈다.

1층 주거 공간의 거실 겸 주방. 부부 침실 앞에 있는 둥근 기둥은 윤건수 대표가 가장 좋아하는 자리. 등을 기대고 창밖을 향해 앉아 있으면 식구들이 하나둘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곤 하는데, 그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
“실제 사용하는 주방은 아일랜드 수납장 뒤편으로 배치했어요. 문을 닫으면 완벽히 감춰지는 히든 스페이스로, 거실을 늘 정갈한 상태로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죠. 저 역시 예전에는 손님 초대가 마냥 쉽지만은 않았어요. 무슨 요리를 할지, 식탁은 어떻게 꾸밀지, 집은 어떻게 치울지 부담과 걱정이 앞섰죠. 그런데 이렇게 단순히 비우니 시간도, 공간도 ‘여지’가 생겨 좋아요. 누가 온다고 해도 집을 치우느라 시간을 할애할 필요가 없고, 차 한잔만 있으면 창밖 풍경을 벗 삼아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편안하게 담소를 나눌 수 있죠. 호스트가 편해야 게스트도 편해요.”

소유 혹은 맹목적 무소유에 집착하기보다는 자신에게 행복감을 주는 것과 자연스러운 관계를 통해 형성된 라이프스타일. 바깥 생활이 제한되고 집의 다양한 기능을 요구하는 요즘, 비움과 여백, 안과 밖의 레이어를 통한 이 집의 융통성과 확장성의 장점이 더 크게 다가온다. 그리고 그 백미는 부부 침실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ㄱ 자 통창 구조를 살린 침실은 옆집 한옥 지붕이 가장 근사한 인테리어 요소다. 벚꽃이 흐드러지는 봄부터 달이 해님처럼 환한 가을밤, 한 겨울의 폭신한 설경까지 창밖으로 시시각각 변화하는 자연이 펼쳐지는데 더 이상 무슨 작품이 필요할까.

미니멀리즘의 진수를 보여주는 부부 침실. 이웃 한옥의 지붕이 가장 근사한 인테리어 요소다.
잎: 자기 무늬를 찾는다
윤건수 대표가 집을 설계할 때 요청한 것은 딱 한 가지, 바로 온 가족이 함께하는 공간이었다. 세 자녀 방과 가족실이 있는 2층은 가족의 동선이 가장 많이 교차하는 방법을 고민한 결과다. 가족이 모두 모이는 일요일에는 가족실 테이블에 앉아 온종일 이야기를 나눌 때도 있다. “일요일 아침은 잡담으로 시작해요.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아버지는 권위적 존재였어요. 밥상머리 교육이라고 식사할 때는 꼭 필요한 말 외에는 하지 말라고 하셨죠. 그렇게 성인이 되고 보니 아버지랑 1분 이상 할 얘기가 없는 거예요. 우리 집 애들은 저한테 별별 얘기를 다 해요. 듣다 보면 참 쓸데없는 얘기인데, 불쑥 어떤 실마리가 될 때도 있어요. 첫째는 사람을 좋아하고 정이 많아 사람이 모이는 일을 하면 좋겠고, 책임감 강하고 성실한 막내는 작은 카페처럼 독립적인 일을 시작해도 좋을 것 같았는데 마침 이 공간이 주어졌고, ‘아빠 나 해보고 싶어’ 하더라고요. 둘이 이끌어가는 모습이 기특해요.”

곳곳의 식물 연출이 돋보이는 카페. 겨울철 건조한 실내에 가습기 대신 물확과 식물을 두어 습도를 조절한다.

소규모 대관 행사와 카페의 식물 연출, 식물 판매를 담당하는 자영 씨.

갑빠오 작가의 세라믹 오브제와 식물이 위트 있게 어우러진다.
“아빠는 저나 동생들에게 뭘 하라고 정해준 적이 없어요. 학창 시절 유일하게 한 것이 호텔 워크숍인데, 한 달에 한 번 호텔에서 맛있게 식사하고 룸에 올라가서 그달 어젠다에 대해 각자 PPT로 정리해서 발표를 해요. 예를 들어 프라이탁이 주제면 그 브랜드에 대해서 A to Z로 조사하는 거예요.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잖아요. 스위스로 가족 여행을 갔을 때는 남동생이 프라이탁 본사에 방문하고 싶다고 메일도 보냈어요.” 오버스토리에는 ‘이야기 너머’라는 뜻도 담겨 있다. 이름의 의미처럼 자매에게는 단순한 카페 이상의 꿈을 펼칠 수 있는 플랫폼이다. 인생에서 중요한 의식인 결혼식이 한두 시간 대관으로 기계처럼 치러지는 행사인 게 안타깝던 자영씨는 40명 남짓한 최소 규모로, 애프터 파티까지 온종일 즐길 수 있는 미니 웨딩을 기획·진행한다. 호텔에서 인턴십을 하고 베이킹을 배운 막내 승현 씨는 식물 데커레이션을 곁들인 디저트와 음료를 책임진다. 행사 때 식물 어레인지를 하면서 식물 배송 서비스 등 또 다른 비즈니스로 아이디어가 확장되고, 호텔 공부는 물론 빵과 요리를 더 배워 레스토랑이나 스테이를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이전에 작은 경비실로 사용하던 공간을 온실로 활용한다. 겨울나기가 필요한 식물이나 시름시름 아픈 식물을 돌보는 이현옥 씨의 작업 공간이다.

남산서울타워부터 한양도성 성곽길까지 한눈에 펼쳐지는 전망이 일품. 봄과 가을에는 성곽길을 따라 불이 켜지는 야경을 즐기기 좋다.

* 기사의 전문은 행복이 가득한 집 2022년 2월호 본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글 이지현 | 사진 박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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